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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11일
제목: 별을 헤아리는 사람
성구: 창 15:1-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별을 헤아리는 사람"이란 제
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아무리 밤이 어두워도 하늘에 별이 총충히 빛나면 어두
움을 어두움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에 하
늘에 별조차 비취지 앉으면 그 어두움은 견딜 수가 없습니
다. 인간의 삶이 아무리 어두워도 별같은 희망을 바라볼 수
있으면 절망은 아닙니다. 삶의 어두움과 함께 희망조차 바
라볼 수 없으면 그때는 절망인 것입니다. 희망은 꿈을 낳고
꿈은 사랑을 사랑은 믿음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
님께서는 희망을 바라고 나아가는 사람을 환영하고 사랑하
시고 그와 손을 잡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다.
아브라함은 희망을 좇아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나이 75
세에 육체적인 삶은 노년이라는 밤이 다가왔을 때에 하나
님은 희망이란 별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 희망은 삶에 대
한 새로운 꿈을 가슴속에 갖게 하고 꿈은 삶에 대한 사랑
을 끓어오르게 하며 사랑은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담
대히 새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나이가 많고 늙었다고 해서 희망을 저버
리면 그에게는 파멸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라는
어두운 밤이 아무리 우리를 엄습할지라도 희망이라는 밝은
별을 바라볼 수가 있으면 우리들은 결코 삶에 대한 꿈을
상실할 수 없습니다. 꿈이 없는 이상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이상 신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바로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75세가
되어 이미 은퇴할 나이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희에게 복주고
복주며 창대케 하고 창대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님이 주신 찬란한 별빛 같은 희망인 것입니다. 그 희망을
가슴에 품으니까 아브람은 꿈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
이 되고 신념의 사람이 되고 그는 담대하게 그 아내의 손
을 잡고 갈 바를 모르면서도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에서 시련를 겪고 애굽으로 내려갔습
니다. 애굽에서 인생의 밤을 체험한 후 그는 처참한 심정으
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 왔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재건하는데 다른 일을 하지 않
았습니다. 그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올라
오자마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아
너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
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이것은 어둡고 캄캄한 때에 하나님께서 희망의 별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네가 현지에는 처참한 정경이지만
장차는 이 땅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동서 남북을 바라보
고 희망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사랑을 가져라 믿음을 가지
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 가운데
가나안 땅을 올라 왔지만 하나님이 주신 희망 때문에 그
가슴은 다시 찬란한 꿈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에
대한 사랑이 끓어오르고 신념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100살이 된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100살에 별을 헤아린
아브라함은 참으로 장엄합니다. 그 나이 100살이 되고 그
아내의 90이 되어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에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인생에 캄캄한 밤을 맞이했었
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밤에 비추는
찬란한 별빛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밤이 되어야
별이 총총히 빛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어둡고 캄캄할 때
가 되어야 그때 희망은 더욱 빛이 나는 것입니다. 어두울
때에 빛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밤에 별이 비
추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어두울 때에 희망이 우리에게 비
쳐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 5절로 6절에 "그를 이끌고 밖
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
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 의의로 여기시고" 왜
네가 어두운 밤만 바라보느냐 땅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
보지 말고 고개들 들어 하늘을 쳐다보라 땅이 아무리 어둡
고 캄캄해도 저 하늘의 별들이 찬란한 것처럼 내 나이 100
세가 되고 네 아내의 나이 90이 되어 인간으로서 밤을 맞
이 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이 계신 이상 희망이 있
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져라 너의 자손이 저 별들
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을 믿고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여기시고 그에게 자손을 주
었습니다. 그것이 이삭이고 오늘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신약시대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꿈을 꾸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예
수님께서 그 고향 땅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 모인 사람들
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25절로 27절에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
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등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
람 나아만 뿐이니라" 이 말을 들은 나사렛 회당에 모인 사
람들은 분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낭떠러지까지 끌
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꾸짖은 의미가 어디에 있
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문둥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 한 사람의 문둥이도 엘리야에게서 치료함
을 받지 않고 오직 이방사람인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 수
리아 아람왕의 군대장관 문둥이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습니
다. 왜 그러냐? 이 문둥이 나아만은 그들 병사들이 국경에
나아가서 잡아온 이스라엘의 여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여종이 우리 주인이 선지자 엘리사에 곁에 있었으면 좋았
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문둥병이 고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 마음속에 희망을 가졌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 마음속에 꿈이 불타오르
고 인생에 대한 사랑과 신념이 끓어올랐습니다. 그 왕의 허
락을 얻어서 그는 이스라엘에 갔고 그리고 엘리사를 만나
서 문둥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문둥이가 이스라엘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저버렸습니다. 꿈도
없었습니다. 사랑과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저버렸지만 비록 원수의 나라 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을지라도 그 마음속에 이
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그 마음속에 꿈을
갖고 사랑과 믿음으로 올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
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과부가 굉장히 많았으나 하나님은 아
무에게도 엘리사를 그들에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러나 이방나라 시돈 땅 사렙다의 과부는 바로 엘리야의 말
을 듣고 3년 6개월 동안 가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복을 받
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희망과 꿈과 사랑을 믿
음으로 받아들인 사렙다의 과부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과부들은 희망을 저버렸습니
다. 하나님에 대한 꿈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사랑도 신념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저들을
버렸지요. 그러나 비록 이방인 여자라도 시돈 땅의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듣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가
지고 하나님이 그들 도와준다는 꿈을 가지고 그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과자를 구워서 엘리야에게
대접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이 사렙다의 과부에
게 가뭄이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 있는 밀가루가 사라지
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
스라엘 선민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 하나님
에 대한 꿈을 저버리고 사랑과 신념이 없는 그런 사람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원수가 되고 이방
인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 하나님에 대한 희
망을 가진 사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념을 가진 사람은
주께서 자기의 종을 보내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5절에서 6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고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
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희망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
은 중대한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
성은 망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저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버리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희망은 저버
리면 우리의 삶 속에 광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
러분 모세를 따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
왔었을 때 모세가 12정탐꾼을 택해서 40주 40야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보고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10
명은 돌아와서 희망을 저버린 보고를 했습니다. 희망을 저
버리니 꿈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다 버리게
된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
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
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
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완전히
희망을 저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꿈이 전혀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도 저버렸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다
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시에 하나님의 대한 희망과
꿈을 저버리고 사랑과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
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다 광야로 보내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그 몸이 광야에서 죽도록 기다린
것입니다. 여러분 꿈을 저버린 사람에게 기다리는 것은 광
야밖에 없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 희망이 없는 사람은 메
마른 광야가 기다립니다. 그러나 희망이 넘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오. 그들은 똑같이 40중 40야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들은 희망이 넘치고 가슴속에 꿈이
끓어오르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넘쳐 났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10절에 보면은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
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
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이렇게 담대하게 그들은 선언하고 희망을 가
지고 꿈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념을 굳게 가졌
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를 다 이기고 극복
하고 그들은 80이 되어도 40대 청춘의 힘을 가지고 이스라
엘 백성의 후손을 거느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희망과 꿈, 사랑과 믿음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의 앞날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광야에서 지내느냐 그렇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른 땅으로 들어가느냐는 우리의 가슴속에 희망이 있느냐
꿈이 있느냐 사랑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서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
실이 너무나 어둡고 캄캄한데 이 어둡고 캄캄한 하늘에 어
떠한 별들을 우리가 헤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에게 어디에 희망이 있느냐 여러분 세상에 주를 믿지 않는
사람도 아무리 밤이 어둡고 캄캄해도 하늘을 처다보면 별
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의 운명과 환경이 어둡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쳐다볼 때에 희망의 별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갑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가 있는
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갈보리산 십자가에 위에 매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의 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절대 절망을 이기시고 절대 희망을 주
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 절대 희망을 주신 분이 갈보리 십
자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쳐다볼 때에 죄
의 용서를 얻고 의로움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별을 바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로 34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
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
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
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
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
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는 갈보리 십자가를 쳐다볼 때에 내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넝마같은 인
생을 살았어도 희망의 별빛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갈보
리 십자가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죄가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별빛이 그곳에 비춥니다. 죄악의 어둡고 캄캄
함 밤이라도 고개를 들어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의롭
게 되는 희망의 별빛을 헤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풍속을 좇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귀
와 탐욕만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에 묶여 살고
시기 분노 질투 미움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지금 코소보 전쟁을 보십시오. 정치인들의 마음속의 탐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짓밟히고 생명을 잃어가는 비극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
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희망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둡고 캄캄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그
리스도는 그 십자가에서 세상과 마귀를 멸하고 우리에게
천국과 성령을 가져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희망의 별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정치
나 현실을 바라볼 때에 어둡고 캄캄해도 여기에 별빛이 있
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비치는 희망의 별빛이 있습니
다. 그 희망을 헤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 구주
가 되어 주시고 성령이 우리의 보혜사가 되어 주시고 그곳
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양식으로 주어지고 그를 통해
서 천군과 천사들이 와서 우리를 둘러 진칩니다. 천국이 우
리 속에 들어오고 우리가 천국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영
광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로 8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
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
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
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 종 된 삶에
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찬란한 희망과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별빛은 그 곳에 항상 비추는 있습니
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슬픔이 많아요. 오늘날 세계에 우울
증 환자가 3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삶이 어두워지니까 사람
들은 삶에 우울증이 걸리고 마음이 침울해 집니다. 삶의 기
쁨이 없어 그래서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살한 사람도
많고 이웃에 상해를 끼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
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육체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서 어느 곳에 가나 고통이 꽉 들어찹니다. 어둡고 캄
캄한 고통의 밤중에서 우리는 어디에 희망의 별빛을 바라
볼 수가 있습니까?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에 우리
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린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희망의 별빛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슬픔은 우
리의 슬픔이요 우리의 슬픔을 걸머진 그는 당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
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
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
가를 바라보고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의 별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얻어야 됩니다. 기쁨이 우리의
삶에 힘이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리
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망이 없는 곳
에 기쁨이 있을 리 없습니다. 소망이 있는 곳에 꿈이 있고
꿈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
고 믿음이 있는 곳에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치료의 소망
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처참한 병고에
시달린다 할지라도 의사들이 다 버리고 약으로 치료함 받
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소망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왜 이 세상이 어둡고 캄캄해서 소망을 얻지 못해
도 갈보리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예수님은 그곳에서 매달
려서 말합니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
느니라 내가 너희 연약한 것은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고 갔느니라 주의 말씀을 바라볼 때에 소망의 별빛이 반
짝입니다. 그 소망의 별을 헤아리는 사람만이 병에서 놓여
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병을 바라보고 그곳
에 묶여서 참담한 심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그는 질병의 광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치료의
별빛을 바라보고 치료의 별을 헤아리는 사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
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
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
라" 우리는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치료함을 받을
희망의 별을 헤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북한의 굶주림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북한
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
에는 전봇대도 다 베어 가지고서 땔감으로 쓰고 전기줄의
동선을 다 잘라가지고 팔아먹었기 때문에 동선이 없어서
이젠 쇠줄로 전선을 만든다고 합니다. 삶이 말로 다 할 수
가 없습니다. 적어도 30만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이 중국 국
경을 넘어가서 중국에서 방황하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북한
2천만이 온통 다 난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소련이 무너질 때 소련 과학자 천명을 데리고 와서 그들에
게 일류 대접을 해주면서 최신의 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
다. 이스라엘 전문가는 말하기를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무기
는 한국보다 10배나 더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무기를 개발하고 오직 그로써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하려는 야욕에 불타고 있으면서 국민들은 완전히 돼지
굴로 집어넣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림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남북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이 도저히 북한을 끓어 안을 도리가 없어요.
2천만 거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이 쉬워 그렇지 지금
당장 통일이 되어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옥수수라도 심어서 경제적
인 자립을 하도록 도와 드리고 근본적인 생활 대책을 세워
주고 난 다음 서서히 통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땅을
바라볼 때에 우리가 희망을 바라볼 수가 없지만 그러나 갈
보리 십자가를 바라볼 때 희망의 별빛이 비추고 있는 것입
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
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
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람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
려 하셨습니다. 통일이 되고 난 다음 북한에 예수만 전도하
면 아브람의 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힘으로는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곳에 전파되
면 북한 땅에 임하여 있는 저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주
가 살아지면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면 이삭이 한 해에 농사
지어 100배 추수를 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역사하
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
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
심이니라" 여기에 별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9
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
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별빛이 비추
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둡고 캄캄할지라도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위에 있는 예수를 바라
볼 때에 별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희망의 별빛이 비추고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됩니
다. 그곳에 희망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고 신념
이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남북한 통일을 기대할 수 없
고 인간적으로 볼 때에 통일이 되어도 낭패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그곳에 희망의
불빛이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가 복음을 전하
고 예수가 북한 땅을 점령하면 북한 땅이 화초 동산이 되
고 쁄라 땅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사랑이 있고 신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가장 처절한 절망인 죽음의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움이 다가와도 우리에게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
라볼 때에 찬란한 별빛을 발견하고 희망을 헤아릴 수가 있
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도 우리는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면 그곳에 희망이 별빛이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신 것입
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음의 기나긴 동굴이 저 편으로
건너가는 터널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굴에서 녹아져 버린
것이 아니라 터널을 통하여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입
니다. 죽음은 건너가는 하나의 터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
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
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
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
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
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
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
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
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
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
하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희망의 별빛이 비칩니다. 우리는 그 별빛
을 바라보고 희망을 헤아리면서 살 때에 우리는 천국의 꿈
이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해지고 천국에 대한 내일의 사랑
과 신념이 우리 마음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에 매달린 예수를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의 가슴속에는 천지
를 바라보아도 죽음의 가장 어둡고 캄캄한 절망만 꽉 들어
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저버린 사람은 광야로 내
몰아쳐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내일에 대한 꿈과 사랑과 믿음을 주시는 것입
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사람은
절대로 희망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별빛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아브라함을 보고 고개를 들어 별들을 헤아릴 수 있는가
보라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보고 말합니다. 고개를
들어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너희를 위해서 이룩한
희망의 별들을 헤아려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희망을 줄기차게 바라보고 헤아리면서 살 때에 우리의
가슴속에 찬란한 꿈이 사라지지 않고 인생과 하나님에 대
한 사랑,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지 아니할 것
입니다.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
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오늘날 보다 더 찬란한 삶이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은 절망의 시대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사회
온갖 것을 바라보아도 절망의 회오리바람이 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럴 때에 우리들은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나님이 세우신 갈보리 십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희망의 별을 헤아리는 우리들이 되도록 도와 주옵
소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이 되고 그 아내의 나이 90이
되어서 인간적인 나이로 밤일 맞이했으나 그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별들을 헤아렸습니다. 하나님은 별들
을 헤아리라고 말했고 별을 헤아리는 그들에게 별 같은 아
들 이삭을 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가슴속에 별
을 다 헤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는 땅을 바라보지 말
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높이 달리신 갈보리 십자
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희망의 별을 헤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희망을 헤아리고 꿈을 먹으며 사랑과 신념을
가지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
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