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꽃은 광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고가 주입시키려는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은 “불가능은 없다”, “너는 할 수 있다”와 같은 거죠. 그건 상품광고 뿐 아니라 정부의 홍보, 학원 광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기야 우리도 집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아이의 잠재력을 인정한다는 격려이기도 하니 필요하기도 합니다. 매혹적이기까지 하죠. 나 스스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 데 ‘불가능은 없다’니요. 문제는 과도한 환상입니다. 정말로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은 환상.
그래도 예전에는 불가능의 영역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타고난 몸이야 어떻게 바꾸겠어”. “늙는 걸 어떻게 하겠어, 나이 들면 저절로 늙는 거지” 식의 인정 내지 포기 영역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영역을 깬 것은 아마도 ‘육체의 상업화(전략)’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기업에 의해 주도되었고요. 물론 그것의 바탕은 과학과 의학이 마련해주지요. 복제양을 만들고, 유전자 조작으로 식품을 크고 멋있게 만들고요. 그러자 영화에서는 인간 복제를 전제로 한 스토리들이 전개됩니다.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서 불가능의 영역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욕망의 영역은 급격히 커지고, ‘의학적 환상’ 또한 극대화됩니다. 이 욕망이 기업의 장삿속과 결합되면 조그마한 의학적 발견은 세상의 모든 병을 없애는 만능약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늙지 않을 수 있을 듯합니다. 모두 영화배우처럼 변신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우리 아이는 모두 천재가 될 듯도 하고요. 성형외과는 광고합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당신의 이전 모습은 잊으세요.” 학원은 어떻습니까? “불가능은 없다. 서울대 정도는 목표도 아니다.” 선거전에도 이런 식의 약속은 난무하지요.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꼭 더 붙습니다. “너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함정은 여기에 있습니다. “너의 노력”이라는 것. 노인이 노인처럼 보이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예쁘지 않은 것도, 노인이 청년 같은 육체를 지니지 못한 것도 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고요. 당연히 시험 성적이 안 좋은 것도 노력하지 않아서죠. "노력"은 책임 회피 전략 중 하나입니다. 그건 마치 교회에서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하고는,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유를 기도 부족으로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불가능의 가능을 약속한 학원이나 건강 상품, 성형외과 원장, 헬스 센터가 아니라 본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결국 광고를 믿고 그것에 빠진 것도 자신의 책임이 되죠. 그런데 사기꾼에게 사기 당하면 당한 사람만 책임인가요?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사기라 해도 그것을 판단하는 공적 기관이 사기로 규정하고 벌을 주지 않는 한 사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더군다나 정부 같은 기관이 앞장서 사기를 치면 그것이 사기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왜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부자들만 사람으로 아는 당에 표를 줄까요? 한마디로 광고와 선동에 취약하기 때문이죠. ‘모든 것을 약속해놓고도 네가 잘못된 것은 너의 노력 부족 탓’이라는 광고와 선동 말입니다. 약속은 그들을 ‘불가능은 없다’는 환상으로 인도합니다. 불가능이 없는 사회에서 불가능 속에 사는 이유는 노력 부족 밖에 없습니다. 김연아도 노력, 박지성도 노력, 손소희도 노력. 노력, 노력.... 그렇게 홍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노력해서 된 게 아니라, 되니까 노력한거죠. 여러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광고에 현혹되면 모든 불가능의 원인은 노력이기에 가령 무상급식 같은 건 자신이 혜택을 받아도 스스로 죄악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의 의식 속엔 개인의 권리나 정부의 의무, 인간 자체의 존엄성 같은 건 없습니다. ‘모두가 내 탓이요’가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집단적 자기비하’의 수준에 이르게 하는 건 국가적 범죄입니다.
사람이 늙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없죠. 죽지 않을 가능성은 죽어도 없고요. 예뻐지는 것이요? 그런데 예쁨의 기준이 상업적으로 결정된다는 것, 모르진 않겠죠? 그리고 예쁘면 밥 안 먹고 매일 쌈만 해도 행복해지나요? 좋은 것이 좋은 거라는 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슈퍼맨 신화라는 것도 생각해야죠. 물론 노력은 미덕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미덕을 넘어 강박증의 단계로까지 절대화되는 거죠. 특정한 것을 신화화하여 그것에 목숨을 걸도록 하는 광고와 홍보, 그것은 문제죠. 그것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는 왜곡 속에 삽니다. 특정한 곳에는 과도하게 집중하고 다른 곳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왜곡 말이죠. 성공에 대한 집착, 학교에 대한, 돈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권력에 대한 집착 등등.
무엇이든 지나친 결핍은 그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낳는 듯합니다. 가난할수록 돈에 대한 환상이 커지지요. 더불어 돈 가진 자에 대한 환상도 커지겠죠. 불가능은 없다는 사회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마찬가지로 저학력일수록 학력에 대한 환상은 크겠죠. 그래서 더욱 더 자신과 아이를 학대하게 되고요.
돈을 가져본 사람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하겠죠. 그럼에도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이 그들의 유일한 힘이라 믿기에, 계속 돈을 쌓고 지키기 위해 권력을 탐하죠. 어쩌면 그들 역시 천박한 사회의 희생자들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누가 빼앗아 가리라는 불안 때문에 평생 인간적 관계란 경험해보지 못하고 살게 될 테니까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강단의 지식이란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알겠죠. 비록 부족하더라도 모든 지식은 건강한 삶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런 삶에 기여하는 지식은 응당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불의를 불의로, 그리고 한계를 한계로 규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인간적 삶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일 것입니다.
대중이 있어야 대표자도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민주적 의식의 초보입니다. 소비가 있어야 생산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식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의 초보입니다. 사람을 특정 기능에 따라 어느 한 쪽은 없어도 되는 듯 느끼게 하는 태도는 조작에 의한 인식의 왜곡에서 나옵니다, 인간에 대한 그런 왜곡을 조장하는 정부와 사회, 그것은 나쁜 정부요, 나쁜 사회입니다. 선동과 조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환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늙지 않음이 환상이듯, 창조적인 소수가 백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말 무책임한 선동입니다. IT 때문에 줄어든 일자리수가 그것으로 늘어난 것보다 많다는 것 알아야 합니다. 매체의 발달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의 육체적 능력은 퇴화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불가능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인식, 더 적극적으로는 매우 필요하다는 인식이죠. 오히려 문제는 불가능은 없다는, 그리고 나쁜 것이라는 광고와 선동에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죽는 것은 생명체의 순환에 필수적인 기능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험을 잘못 볼 수 있습니다. 시험을 잘못 보는 것도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필수적인 기능입니다. 그래요. 시험 잘 못 보는 것, ... 중요한 기능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어 사회가 구성되고 유지되고 또 순환합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죠. 시험 잘 못 보는 사람이 없는 세상....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처럼 저주받은 지옥일 겁니다.
첫댓글 얼마전 본 <리얼리티>라는 영화에서 오디션을 앞둔 사람에게 이미 스타가 된 사람이 "네버 기브업!"을 외치는 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희망고문이라는 말도 생각나는 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이유가 그러면 나도 저 부자처럼 잘 살 수 있구나 라고 착각하는 거군요.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슈퍼맨신화!
불가능은 있다!
역시 전교수님 말씀은 언제나 영양주사 맞은 느낌 입니다!
아프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기운 복돋우시는 말씀에 늘 감사 드려요~^^
이러다 전교수님 팬클럽 생길거 같아요~ㅋ
무지를 깨우치게 해주시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들에게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 이런말 자주하는데 이것도 무책임한 선동인가요?
에이 설마요!~ㅋ
교수님 글을 볼때면 항상 인간에 대한 사랑이 따뜻하게 담겨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게 기본이 되어야 할텐데..점점 물질주의가 우선이 되고 더 확대되는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마지막 시험 얘기 너무 위안됩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 공부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그런데 성적은 정말 같이 공부한 친구들에 비해 안나오더라고요 ㅋㅋ 그래서 나름 열심히 하고, 배웠다는 데 의미를 두려고 했답니다..그래도 노력한다고 다 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중요시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 좋은 글 감사드려요..제가 이거 퍼가도 될까요?
그럼요. 사회시스템뿐 아니라 사람들 의식도 기초부터 무너진 세상이라 세월호 사건도 터지는 듯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더 기본이고 기초인지를 생각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괴감이 종종 평범한 일상에 균열을 만들때가 있는데 교수님 말씀 읽으니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