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에서 길을 건너 인일여고 방향으로 50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인천 본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벽돌로 지은 수도회 건물은 전통 가옥처럼 지붕과 담장에 기와를 얹고 한식대문을 달아 한옥 느낌을 살렸다. 건물 뼈대는 양식으로 지어 기능성을 살리되 한옥 분위기를 내려고 고민한 듯싶다.
수도원 1층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수사 몇 명이 한식창호에 한지를 바르느라 분주하다. 한국 진출 25주년을 맞아 로마 총원과 다른 관구에서 방문하는 외국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왼편에 한옥처럼 목재로 꾸민 넓은 방이 있다. 아우구스띠노수도회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이다. 오른쪽에는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회의를 할 수 있는 방이 있다.
"우리 수도회는 형제애와 공동체 생활을 특히 강조합니다. 공동체 생활 자체가 우리의 첫 번째 사도직이라 할 수 있지요."
한국지부장 김정덕(바르나바) 수사의 설명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아우구스띠노수도회는 하루 네 번 정해진 시간에 공동기도를 드린다. 이기훈(살레시오) 수사는 "아마 우리가 남자수도회 중에서 공동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도생활만 보면 반 관상수도회나 다름없을 정도다.
김 수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강조했듯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유한 사도직이 따로 없고 '어느 곳에 가든지 교회 부름에 응답하라'는 것이 아우구스띠노수도회의 기본 모토다. 한국 진출 역사가 짧고 아직 회원 수도 많지 않지만 원목활동과 피정지도, 신학교 영어 강의, 영성상담 및 상설고해소 운영, 군부대 미사, 결손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운영 등을 통해 성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전통을 뿌리내려가고 있다.
특히 IMF 금융위기 이후 가정해체로 속출하는 결손가정 청소년들을 위해 2000년 본원 옆에 마련한 '너랑 나랑의 집'을 운영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찜질방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중 찾아온 연년생 형제 민호(11, 이하 가명)ㆍ민욱(10)이, 어려서부터 부모와 형에게 매일 맞고 자라 명절에도 집에 가기 싫어하는 지훈(중2)이….
가난과 부모 이혼, 학대로 어린 나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자 청소년 7명이 '삼촌들'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웃음을 되찾고 구김살없이 밝게 자라고 있다. 제각기 아픈 사연을 안고 왔지만 이곳 식구가 된 뒤 웃음을 되찾았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로부터 긴급 구조돼 온 기철이, 친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은 떠난 뒤 새 어머니와 살기 힘들어 집을 나온 상훈이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다. 틈틈이 동생들 공부를 봐주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때로는 아이들이 가출해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고, 도벽으로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는 일도 있어 한밤 중에 경찰서에 불려가는 일도 있지만 김 수사는 그런 일상의 고생은 이미 초월한 표정이다.
"남부럽지 않게 돌봐준다고 해도 다른 아이들처럼 용돈을 넉넉히 줄 수도 없고…. 오히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조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옆에 있던 이 수사가 경기도 연천 분원에 있는 '착한 의견의 성모 피정의 집'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민통선 바로 아래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한 '착한 의견의 성모 피정의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소규모(3~6인) 피정집이다. 특별한 테마 없이 자유롭게 와서 수도자들과 함께 매일 미사와 공동기도(성무일도), 묵상을 하며 일상에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쉼터로 신자들 사이에 조용히 입소문이 돌고 있다.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과 작은 방 3개, 취사시설을 갖춘 펜션형으로 여름에는 특히 가족 단위 피정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낮 12시, 작은 종소리와 함께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하던 수사들이 차례로 성당으로 들어와 양쪽 벽을 따라 놓인 의자에 앉는다. 깊숙이 고개 숙여 하느님께 절하고 기도하는 수사들. 수도원 안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성무일도 소리는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로 초대하는 듯하다.
▨ 수도회 영성과 역사"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이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첫째가는 계명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로 모여 있는 첫째 목적은 한 집 안에서 화목하게 살며,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다"(아우구스티노 규칙서 1).
대표적 교부신학자이며 영성가인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 사진)는 '하느님의 종'은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먹고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아무리 가깝게 있다고 해도 생각하는 바, 지향하는 바, 마음먹은 바가 다를 때는 엄격한 의미에서 공동체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북아프리카 소도시 타가스테(지금의 알제리)에서 태어난 성 아우구스티노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 중 한 사람으로, 「고백록」, 「신국론」, 「삼위일체론」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긴 위대한 신학자요 철학자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400년에 집필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서방교회에서 수도생활에 관한 가장 오래된 규칙서다. 「체사리오 규칙서」,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가톨릭교회 수도 전통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규칙서에 비해 엄격하지 않고, A4용지 5장 정도의 간결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으나 영적으로 깊고 풍부한 사상이 함축돼 있어 '수도규칙의 복음'이라고 불린다.
'한마음 한뜻'으로 대표되는 아우구스띠노수도회 영성은 이 같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수도생활의 궁극적 모범이자 삶의 표본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교회 필요에 따라 봉사하며 자기 자신, 이웃, 형제들, 더 나아가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우구스띠노수도회는 공식적으로는 1244~1256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와 알렉산델 4세의 대칙서에 따라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성과 수도규칙을 따르던 수 천 명의 수도자들이 '대통합'을 이루면서 시작됐다. 즉 작고 다양한 개별 수도단체를 일치시켜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갈 교회 봉사자로 일하게 하려는 교황 뜻에 따라 설립된 수도회다. 세계 46개국에서 회원 30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한국지부는 1983년 당시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 요청으로 1985년 호주관구와 영국ㆍ스코틀랜드관구에서 수도자 4명을 파견하면서 시작됐다. 서울 뚝섬에 집을 얻어 공동체생활을 하다 1994년 인천 중구 전동에 수도원을 건립, 본원을 이전했다. 강화 수도원(양성소)과 의정부교구 연천(피정의 집), 서울 뚝섬에 분원을 두고 있다. 한국지부 회원은 종신서원자 12명(한국인 9명, 외국인 3명)을 포함해 18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