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양지

[호수지기]

                                                              젊은이들의 양지

                                                                                                                                     박 종 숙

   여행은 장기간 쉴 수 있는 탈출구가 되지만 하루의 일탈은 가까운 쉼터가 될 수 있다. 요즘 도시 외곽에 들어서 있는 카페들은 젊은이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하는 양지가 아닐까. 차만 팔던 카페에서 눈과 입을 즐길 수 있는 메뉴까지 개발하여 커피 + 빵 또는 샐러드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콧바람이라도 쏘이고 싶거나 머리라도 식힐 겸 도시를 벗어나고 싶으면 드라이브 삼아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변두리 카페일지 모른다.

   지난 여름엔 휴가 차 내려온 막내딸과 외손자를 데리고 고탄에 있는 해피 농장을 찾아갔다가 근처의 카페를 들리게 되었다. 흰 천으로 햇빛 가림막을 친 야외 공간은 이색적인데다 보랏빛 수국 화분이 일렬로 진열되어 있고 그 옆으로 메리골드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마치 꽃 축제장을 찾아간 느낌이었다. 실내가 아닌 실외의 공간을 활용한 카페는 마치 내 집 뜰에 앉아 화초와 눈 맞춤하며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옆에 있는 저수지로 올라가니 헙수룩한 중년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외손자는 신기하다는 듯 “아저씨 고기 많이 잡았나요?” 하고 묻자 “별로 못 잡았다” 하는 대화가 내 귀엔 메아리처럼 들렸다. 나는 저수지 둑에 듬성듬성 놓여있는 미니 그네를 타면서 딸네 모자와 함께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시골 농가의 자연풍경은 내가 그리워하던 어린 날의 뜰 못지 않았다.

   카페주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개발하여 예쁜 건물을 짓고 백일홍, 핑크뮬리, 해바라기, 칸나, 등 3천여 평 되는 땅에다 꽃밭을 가꾸느라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땀 흘려 가꾼 정원을 보여주려고 가슴이 부풀었을 수도 있다. 며칠 전에는 숲 카페를 찾아갔는데 메타세퀘이어가 들어선 넓은 정원에 여름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그 사잇길로 들어서니 연륜이 깊은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늠름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20여 년 전 카페주인이 심었다는 그 나무들은 도시 속의 명소를 만들고 있었다.

   커피 하면 강릉을 떠올리게 되는데 춘천에서도 커피 축제를 한다는 소문 때문인지 근교에 새록새록 멋진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분위기 좋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카페를 대화 장소로 찾아간다. 문협 일을 맡았을 때도 사무실이 없어서 임원들과 회의를 하거나 업무일을 볼 때면 변두리 카페를 이용하곤 하였다.

   카페는 젊은이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쉼터가 되기 충분하다. 날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다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면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는 일 중독자에겐 쉼 자체가 사치라고 여겨지겠지만 쉼은 곧 충전이다. 언젠가 지인이 시골 농가 옆에 지은 카페가 괜찮다고 하여 네비의 안내를 받아 찾아갔더니 입구 가까이 가자 남편은 생뚱맞게 말했다. “ 난 안 들어 갈 거야. 이다음에 당신 친구들 하고나 오던지 ” 하는 게 아닌가. 지루한 일상을 털어내기 위해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을 때면 딱히 찾아갈 곳이 없어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남편의 거부반응은 모처럼의 외출을 싱겁게 끝내곤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여유를 즐기다 보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예전엔 젊은이들의 전용 공간이 카페인 줄 알고 60대 노인들이 찻집에 들어오면 “ 어머머! 저 나이에 이런 곳을 찾다니~ ” 하며 비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삶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 카페가 되어주고 이웃과 정담을 나눌 장소로 인식되어 있어서 별 부담이 없이 찾을 수있다. 특히 변두리 카페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힐링 장소가 될뿐 아니라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가, 비록 타인의 소유지만 차 한잔으로 선심을 쓸 수 있고, 손님으로 대우받으면서 자연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사람은 원래 유목 생활을 하다가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했듯이 누구나 말을 안 할 뿐 유랑을 꿈꾸며 사는지도 모른다. 공항에 가면 국내나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붐비는 것도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푸른 호수를 맘껏 바라볼 수 있는 강가나 숲속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는 정원,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테리어로 장식된 멋진 공간에서 젊은이들의 시각과 미각,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양지가 있어서 경치 좋은 카페들은 항상 붐비고 있는듯 하다. 나이 들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억에 넘친 재물을 소유하기보다 언제든지 마음을 의탁할 편안한 곳에 가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눌 쉼터를 자주 찾는 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