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전시여행 가는 날. 어제 1시쯤이나 잠을 잔 것 같은데 커피를 마신 덕에 아침 일찍 일어나 택견 도장에 누군가 가져 왔다는 추어탕에 대충 밥을 말아 먹고 어제 밤에 최소한으로 간편하게 쌓은 짐을 전 선생하고 같이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가방을 그림 짐과 함께 트렁크에 싣고는 서현역 공항버스 터미널로 가니 막 차 한 대가 떠났지만 곧 이어 다음 차가 와서 나는 공항을 향했다. 작년 미얀마 갔을 때 태국 공항에서 샀지만 아직도 넉넉하게 남은 멀미약 한 개를 먹은 탓인지 전혀 문제없이 공항에 도착을 했다. 멀리 돈쓰고 가는 여행이라 이리저리 심난하기도 하련만 의외로 담담하고 그저 시골 잠시 내려가는 기분이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한 시간 거리의 시골에 잠시 들러 다녀올 때 고속버스 속에서 온갖 상념과 각오에 젖던 때를 생각하면 나이를 먹어서 인지, 외국여행을 여러 번 해서 인지, 올 해는 일본 전시를 벌써 두 번째 다녀오는 것이라서인지 도통 이렇다 할 감정이 개입이 안 된다. 뭔가 기대와 각오가 남달라야 전시성과도 있을 것이고 다녀와서 새로운 맘으로 작업에 임할 법도 하련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은근히 나 자신의 태만의 한 징표가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그저 평온한 마음일 뿐이다. 공항에 도착해 은행에서 13만 엔을 바꿨다. 전시비용 내고 나면 2-3만 엔이 일주일 비용이니 친구네 집에서 기숙을 한다지만 좀 부족할 것 같기만 하다. 어차피 살 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탕 마시고 올 일도 없고 그저 전시만 조용히 하고 올 판이니 뭐 특별히 돈 쓸 일이 있을까 싶다. 거기다 친구네 집은 산 속이니 돈을 쓰려고 발버둥치기 전에야 특별히 쓸게 있을까 싶다. 환전 후에 내 전시에 그저 구경삼아, 응원삼아 일원이 돼서 같이 가게 된 김 선생을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바로 옆자리에 어린애가 혼자 타고 있고 김선생 옆으로는 오랜 만에 미국서 들어왔다가 나간다는 교포아주머니가 있다. 애는 태국이나 필리핀 애 같아서 영어로 인사를 하니 웬걸 의외로 한국애고 그 앞자리에 부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앞자리에서 어떤 아줌마가 고개를 쑥 내밀어 뒤를 보는데 엄마인 모양이다. 그 엄마보다는 인물이 훨씬 나아 보이고 애도 수더분하게만 보인다. 그 옆의 아줌마는 미국 생활이 오랜 모양인데도 아직도 고국이 좋단다. 내 평소의 생각으로는 여자들이 장소 적응력이 강해서 외국에서도 빨리 적응하고 그 곳에 동화가 돼서 고국 같은 거추장스런 추억에 별로 애달파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분은 내 선입관을 뛰어 넘는 좀 남다른 데가 있는 분인가 보다. 김 선생과도 몇 마디 나누다 보니 동경이다. 검사대에서 내 이상한 그림 짐이 무슨 ‘건수잡이’라도 된다는 듯이 달려들던 일본 입국심사원의 코앞에 전시 엽서를 디미니 그냥 통과다. 입국심사장에서 너무 일찍 나온 탓에 우리는 근 30분을 기다려 일본 친구 내외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분들이 벌써 20년 지기이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늘 형제 같기만 하니 내 성격으로나,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나, 한일관계로나 정말로 신기하기만 한 노릇이다. 이번으로 벌써 예닐곱 번째의 전시를 같이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인연치고는 끈질긴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은 의자고 반은 짐칸인 그의 봉고차에 짐을 싣고 자리에 앉아 우리는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오픈이 월요일이라 오늘은 집으로 먼저 갈 줄 알았더니 일요일은 화랑이 문을 닫는 날이라 오늘이 바로 그림을 거는 날이란다. 우연히 온 날치고는 마치 정확하게 스케줄을 알고 온 것처럼 되 버려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가 있게 되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동경은 비가 질척이는 흐린 날씨라서 시야도 안 좋고 길까지 막혔다. 날씨까지 이런 식으로 날 맞는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을 내 기분을 가볍게 할 일이 도통 없을 모양이다. 서다 시피 가는 차 봉고차의 미닫이문을 열고 흐린 동경 시내에 대고 셔터를 누르니 친구내외가 무슨 큰 사고라고 날 것처럼 기겁을 한다. 너무도 잔잔하게만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작은 의외의 상황에도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이들의 삶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삶은 월남 참전용사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시내에 도착하니 길은 막혔어도 아직 그림 걸 시간은 많이 남았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식사를 하고 화랑에 가잔다. 사실 서비스가 엉망인 미국비행기를 탄 탓에 기내식이라는 것이 참으로 볼 폼이 없어서 그저 고양이 식사에 그친 탓에 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친구를 따라서 우리가 들른 식당은 우동이 전문인 그런 곳인가 보다. 그가 시킨 우동을 한 젓가락 드는 순간 고추장 튜브를 깜박 잊고 온 아쉬움이 목 속으로 팍 들어왔다. 국물은 어떤 방식으로 우려냈는지 좀 느끼했다. 대부분의 일본 우동이 이 국물우려내기에다 사활을 거는 것 같다. 따라서 식당마다 그 국물 맛이 다 다르고 나름의 독특한 맛들을 가지고 있다. 이 집의 국물도 기름이 동동 뜨고 약간 구리 구리한 색깔이 먹기 전에 군침을 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시 국물 맛은 좀 느끼한 것 빼고는 아주 맛이 있다. 여기다 고추장만 좀 풀면 금상첨화련만! 하지만 면발은 영 아니다. 약간 덜 익힌 것 같은데다가 국물이 전혀 면속에 박혀 들지를 않아서 그 깊은 국물과는 전혀 따로 노는 맛이다. 여기 사람들도 불은 면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주방에서 지켜보면서 국물에 면을 넣은 후 충분한 시간을 끓이게 하면 더 맛이 날 법하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불은 국수들을 싫어하니 불은 국수 좋아하는 사람 모임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대충 면은 좀 남기고 국물만 열심히 마시고 우리는 화랑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화랑 주인 여자와 인사를 하고 먼저 전시하는 사람이 그림을 다 떼기를 기다려 우리도 작품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늘 하는 식으로 간단히 그림을 걸었지만 일본인 친구는 역시 오래 걸렸다. 내 작품은 평면이지만 그 친구의 작품은 형태가 제각각인 테라코타 작품인데다가 점수도 많고 그가 미리 채집해서 말라비틀어진 채소들과 함께 세트로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인데다 그렇잖아도 늦게 작품을 거는 일본인들의 습성과 함께 늦게 끌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지고 간 작품 중에서 제일 큰 것 두 점을 뺐다. 여기까지 무겁게 가지고 온 것을 창고에 처박아 뒀다가 다시 가져가기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공간도 그렇고 그 작품과 비슷한 것이 작은 것으로 있어서 그리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좀 켕기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진열을 마치고 보니 그런대로 두 사람의 작품이 어울린다는 생각에 좀 마음이 놓였다. 친구의 차를 타고 그의 집에 도착해서 마침 그녀도 오늘 그룹전 전시 그림을 거는 날이라 우리 보다 늦게 도착한 친구의 부인이 차려 준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눈 후 우리의 침소에 들었다. 본채와 바깥채로 구별이 되어 있는 친구의 집은 ‘지바’에서도 근 3-40분은 시골로 들어간 아주 외진 곳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바시내의 아파트가 집이었지만 시골이 좋다고 그 후에 이곳 숲 속에 땅을 사서 조각가인 그가 아름드리나무들을 직접 베고 안채 바깥채를 오랜 시간에 걸쳐 손수 지었다. 안채는 살림집이고 바깥체로 부부의 작업실이다. 안채를 먼저 지어서 인지 아주 인간적이 인 냄새가 물씬 나고 바깥채는 세트 자제를 사다 조립만 했는지 깔끔하다. 그 중 바깥채 2층이 우리의 숙소다. 그의 말로는 나의 일본 개인 호텔이란다. 일본 올 때마다 이용을 하니 그런 말이 붙여진 것이다. 일층은 안쪽으로는 부인의 작업실이고 바깥쪽은 친구의 작업실이다. 한 편에 부엌과 세면실 목욕탕이 있음으로 이 집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살림공간이다. 두 사람의 작업공간을 가르는 나무계단을 딛고 윗 층으로 올라가면 방이 하나 있고 화장실이 있다. 미닫이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니 다다미가 깔려있는 방 한가운데 일본인들이 발을 안에 들이밀고 앉는 이불 덮인 정사각형 앉은뱅이 탁자가 있고 그 위로 온 냉풍기가 달려 있고 한 쪽으로는 일본인 특유의 공간인 무슨 제단 같은 공간이 작게 있다. 그 곳에 언젠가 한국작가한테 선물 받았음 직한 족자 그림이 내려져 있고 그 밑에 도자기 작품이 한 개 놓여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이불이 쌓여 있는데 순전히 우리 둘만 덮기에는 양이 좀 많지만 추위가 은근한 일본의 날씨를 생각한 친구 부인의 자상한 배려더미이다. 누워서 천정을 보면 우리가 흔히 ‘덴조’라고 하는 부분이 없이 바로 지붕 밑의 석가래 나무토막들이 들어난 그런 조금은 썽렁한 구조다. 따라서 온풍기를 아무리 튼다 해도 온기가 그 넓은 지붕공간으로 다 날라 가 는 통에 따뜻함을 느끼기가 힘들다. 나는 자리를 펴고 여행을 위해 특별히 친구의 가게에서 준비한 비단 내복을 꺼내 입고 여러 겹의 이불을 덮은 후 김 선생이 코를 골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귀마개를 막은 후 잠에 드니 바야흐로 나의 8일간의 일본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두어 번을 뒤척이다 잠을 깨니 이른 아침이다. 우리는 대충 이를 닦고 아침 산보에 나섰다. 약간 흐린 날씨로 주변이 안개가 살짝 끼어서 맑은 아침공기와 함께 시골의 한적한 아침 분위기가 그만이다. 개를 끌고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을 지나 당근 밭과 빽빽한 스기나무 숲 사이의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작은 초등학교를 지나 어느 마을 무덤가에 도착을 했다. 어디나 무덤은 숙연함을 준다. 더군다나 이 처럼 함초롬히 젖은 흐린 날의 아침나절에 만나는 먼저 간 이들이 잠자는 공간은, 비록 이국이라도 더욱 그럴 것이다. 무거운 색깔의 반듯한 돌들로 장식이 된 무덤 사이에 자연석으로 묘비명을 새긴 무덤을 보니 군인의 묘지이다. 아마 이 마을에 살다 전쟁터에 나가 죽은 사람의 묘지인 모양이다. 여기도 무슨 국립묘지 같은 공간이 있을 법한데 이처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런 저런 사연이 있을 법하지만 물어 볼 수가 없다. 오솔길을 따라 큰길로 나오니 기찻길도 보인다.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진 집들이 적당한 공간을 차지하며 조용히 아침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런 조용하고 평화스런 모습 속에서 일본인들의 전혀 흔들림 없는 삶의 모습과 나의 수없이 흔들리는 마음과는 극대조감을 이루는 듯해서 한편으로 씁쓰름하다. 우리나라 대장간 같은 집을 지나 이런 곳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꽃집을 지났다. 시골에서 누가 꽃을 살까 싶은데 아마 일인들의 삶이 시골이나 도시나 꽤 꽃과 근접해 있나보다. 잡풀이 아름다운 둑을 지나 이끼가 멋있는 길을 지나니 작년에 왔을 적에 고생을 해서 찾아갔던 시골 주유소가 나오고 친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나온다. 집에 들어오니 이미 아침이 차려져 있다. 간단하지만 정성어린 친구 부인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우리는 지바시내 전시장 구경을 나갔다. 작년에도 들렸던 갤러리에 들르니 예전에 나와 같이 그룹전 전시를 했던 어떤 일본 사람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에 우리와 전시를 같이 했던 사람이라는데 전혀 그 사람의 모습도 눈에 익지 않았다. 그의 작품도 하도 오랜 전이라 도저히 내 둔한 머리로 생각해 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일본의 커다란 전통종이에 채색을 한 작품은 보기가 좋다. 주인이 내놓은 커피와 이상한 맛의 차를 거푸 마시는데 옆의 김 선생은 그 차를 도저히 마시지를 못한다. 차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차가 원래 바다 속에서 나는 무슨 미역 같은 것으로 만든 차라 그렇단다. 워낙이 비위장이 좋은 나는 비린 것과는 관계없이 그저 구수한 맛에 열심히 마셨다. 차라기보다 스프에 가까운 맛이다. 화랑을 나와 몇 군데 전시장을 더 들렸지만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우리는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그가 아는 도자기 대가의 집을 방문했다. 정원이 잘 가꾸어진 한 적한 곳의 꽤 커다란 집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꽤 성공한 작가란다. 나보다 한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분의 작업실이니 나도 10년 후에는 그런 멋진 공간에서 작업한답시고 폼 잡고 있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다시 태어나기나 해야 가능할 것 같다. 그 집을 나와 작년에 그 내외가 한국에 여행을 왔었고 전에 나하고 전시도 같이 했던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갔다. 원래 둘은 친하기도 하지만 나도 올 적마다 만나는 친구이고 작년에는 그 내외를 이끌고 경주 근처를 길 안내를 했으니 나름으로 친분이 있다면 있는 편인데 작년의 수고에 보답한다고 우리를 저녁에 초대했다. 우리가 들어선 식당은 전형적인 일식당이다. 첫 눈에도 나같이 짤짤하게 여행하는 이가 일본 여행 중에는 쉽게 들어 올 수 없는 그런 식당이다. 음식을 굳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이것 저것이 순서에 입각해서 나오는데 이름도 모르는 음식들은 양은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특이하고 맛이 있다. 그 음식을 바쳐 나오는 그릇들도 모두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도자기 들이다. 테라코타와 그 바닥에 유리로 코팅을 해서 구워 만든 도자기는 도저히 재떨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도자기로 그릇을 만들면 종업원이 일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말했다던 어느 식당 주인 말이 생각났다. 그게 무슨 차이일까? 문화 인식의 차이일까? 단순한 생활 습관의 차이일까? 우리가 이제는 배가 불러진 탓일까? 그런 척박한 인식의 밭인 우리나라에 그래도 작품으로만 사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오늘 나와 같이 온 김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다. 난 그래도 운이 좋아 직업이라도 있으니 망정이니 아니면 벌써 난 굶어 죽었을 것이고 마누라는 식당에서 플라스틱 그릇 들고 다니며 나머지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로지 본인의 작업만으로 식구를 훌륭히 보살피는 옆의 김 선생을 난 존경한다. 엄청나게 부른 배를 잡고 이번에는 그 친구 분의 작업실에 들렸다. 잘 가꾸어진 넉넉한 공간의 그의 작업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차도 차지만 탁자에 놓인 온갖 먹을거리가 날 질리게 만든다. 우유 뿌린 딸기를 비롯해서 각종 일본 과자 등이 나의 부른 배를 약 올리고 있는 듯했다. 한두 개 집어 먹어보니 이런 과자들이 있을까 싶다. 주변을 둘러보니 작업실 주인의 취향에 맞게 적당히 수집품들이 작품들 사이 여기저기 장식이 되어 있다. 주인의 전혀 수다스럽지 않은 모습과 작업실의 정돈된 모습이며 그 부인의 잔잔한 움직임들이 역시 나와는 전혀 딴판인 삶의 모습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 잔잔함은 나도 깊이 본받고 싶다. 무 즙내는 동판을 위시한 그가 챙겨준 선물을 안고 늦은 시간 친구의 작업실에 돌아와 잠에 드니 그런대로 알찬 여행의 맛을 느낀 그런 날이 끝났다. 오늘은 전시 오픈이 있는 날이다. 8시에 기상을 하고 친구 부인 모도코가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국과 특별히 신경을 써서 사다 차려놓은 한국산 김치, 만두와 밥 등이 약간 간기가 부족한 것을 빼면 다 맛이 있다. 식사 후 차를 타고 시내 기차역에 도착해서 동경 행 급행기차를 타고 동경에 도착해서 화랑을 6-7개 들렀다. 모두들 나름의 예술 세계를 남에게 알리려 열심인 것은 여기나 한국이나 같다. 언제나 들고 다니며 알리는 전시가 아니고 보러오게 하는 전시가 될 런지...... 그런 날이 오면 몸도 마음도 편하련만 그런 날이 살아생전에 올까싶다. 적당히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화랑에 들르니 아직 오픈 시간은 많이 남았다. 한국의 후배라며 찾아온 권철이란 젊은 작가를 만나 몇 마디 나눈 후 나는 구석에 앉아서 졸기도 하며 시간을 때우고 나니 오픈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화가들이다. 그 대부분이 일본인 친구의 친구들이다. 피곤하기도 하고 말 전달도 어렵고 해서 행여나 말을 거는 사람이 있을까 귀찮아서 이리저리 구석으로 도망 다녀도 좁은 공간이라 역시 말을 거는 이가 걸린다. 한국말로도 더듬거리는 내 그림 설명을 어찌 짧은 영어로 영어듣기가 나보다 역시 더 짧은 사람들에게 이해시킨단 말인가? 그저 머리만 아플 뿐이다. 다행이도 술들이 있어 몇 잔 들이키니 기분은 좋다. 대충 오픈을 끝내니 이제 다시 어느 식당에서의 애프터다. 내 옆자리에는 오픈식 때부터 자기는 미인이라고 떠들던 일본인 여자작가가 앉았다. 한국도 몇 번 다녀온 모양인데 오로지 그 ‘미인’이라는 단어만 배워 온 모양이다. 그림이 자꾸 남에게 보여줌으로 해서 하나의 ‘인정공간’을 확보하는 착시 효과 내지는 최면효과가 있듯이 미인이라는 단어도 자꾸 반복해서 주지시키면 약간은 그 비슷하게 되는지 그녀도 처음 볼 때보다는 나아 보였다. 나는 부른 배를 달래려 가지고 온 소화제를 먹고 피곤한 몸을 기차에 실었다. 기차 속은 이미 하루일과에 지친 일본사람들이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내내 서서 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이니 한국에서의 전시 오픈이나 외국에서의 전시 오픈이나 환쟁이에게는 늘 피곤한 일이란 생각만 각인 시키는 그런 하루가 또 끝났다.
동경시내에 들어가며. 동경의 우동집. 화랑 나침반에서의 전시 장면. 지바에서의 아침 산책.
한국에서도 벼르고 별렸지만 제대로 못 본 동백을 일본에서 보게될 줄이야......
핓물처럼...
친구네 집. 오른 쪽이 잡업실 겸 우리 숙소 왼쪽이 안채. 친구네 집 뜰. 모도꼬 차.
모도꼬가 차린 아침.-또 먹다가 생각나서 찍다보니.....
도자기 작가의 집.
일본 도자기 작가의 개인 전시장. 초대받은 일식집에서. 오른 쪽이 재떨이.
초대받은 식당 간판. 우리를 저녁 초대한 일본인 작가의 작업실. 그의 작업실에서의 차모임. 어떤 것은 골동품 접시다. 어떤 전시장에서. 나침반 전시장에서 화랑주인과 친구와. 어떤 화랑에서의 작품. 가느라단 피복철사로 만든 예수상, 전시 오픈에 어느 친구가 가지고 온 고급사케. 에프터 식당에서 동경의 야경. 모도꼬의 아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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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rtkim 원문보기 글쓴이: 김석환
첫댓글 숲으로 난 길이 참 아름답네요~! 일본은 어딜가나 숲길 마저 정돈된 느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