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권의 독서 / 조선 첫 세계일주기 나혜석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나혜석
그녀는 목이 말랐다.
그림에 목이 마르고 배우지 못한 설움에 목이 말랐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나라 억압된 조선
큰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는 남성 중심사회
마침내 그녀는 떠났다.
변호사인 남편의 인맥덕분이지만 그녀는 세계 일주를 떠나서 많은 경험을 쌓는다.
파리 박물관의 명화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자신을 본다.
각 나라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태평양을 횡단하던 17일간의 크루즈 여행은 나조차 해보지 못한 부러움의 항해였다.
그녀는 1927년도에 세계 일주를 떠났고 나는 2014년도에 오토바이 세계 일주를 꿈꾸며 떠났다.
87년 전에 떠난 그녀의 세계일주기가 나의 일주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깜짝 놀랐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명화는 명화고 명시는 명시였구나…….’
그녀는 외쳤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그녀는 각지를 떠돌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남기고 싶다.
‘거리를 나선 자 거리에 눕다.’
나는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