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세간의 물질 형성
이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滿慈子)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일어나 석가모니불게 경례하고는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 자성 형이상의 제일의제의 지극한 이치를 가장 잘 열어 보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설법인 중에서는 제가 제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이상의 미묘한 강해를 듣고 보니 마치 어떤 귀머거리가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마리의 모기 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 아예 보이지도 않은데 어디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비록 명백하게 말씀하셔서 저희들이 의혹을 없애도록 하셨지만 저는 지금도 여전히 이 도리를 자세히 깨닫지 못해서 완전히 의혹이 없는 정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아난 등도 단지 이해수준에서 깨달은 바가 있을 뿐입니다. 설사 이 법회에 있는 사람이 이미 번뇌가 다한 무루 경계를 얻었다할지라도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도리를 들으면 뒤엉켜 똑똑하지 않는 의문점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세간의 일체의 육근·육진·오음·십이처·십팔계 등(생리·물리·심리 등)이 모두 자성본체가 청정하며 본래 그러한[淸淨本然] 공능이라면, 본체가 이미 본래 그러하면서 청정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 등의 만유인 세계물상이 산생 출현하는 겁니까?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적인 차제천류(次第遷流)가 있어서 끝났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까? 또 위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지·수·화·풍 등 4대종성도 모두 자성본체의 공능으로서 원융무애하고 온 허공 우주 간에 충만하면서 담연 상주한다면, 만약 지(고체)의 성능이 허공 간에 두루 가득할 경우 어찌하여 수의 존재를 용납합니까? 만약 수의 성능이 허공 간에 두루 가득하다면 화의 성능이 아예 일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또 수화 두 종의 성능이 모두 허공에 두루 가득하면서도 결코 충돌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의 성능은 가로막는[障碍] 것이요 허공의 성능은 막힘없이 통하는[通達] 것으로 두 가지의 성능은 절대적으로 상반되는데 어떻게 모두 우주 간에 충만합니까? 저는 이 원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를 베푸셔서 명백하게 개시함으로써 저의 마음속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주십시오 아울러 대중도 갈앙기구하는 바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대중을 위해 우주만유의 근원 원인과 어떻게 만유를 발생시키는지 그 성능에 대한 진리(불경에서는 원래 승의유라고 부르는데 자성본체가 만유를 낳을 수 있는 공능을 가리킨다. 승의성이라고도 한다)를 명백하게 열어 보이겠다. 그리고 이미 그 본성이 결정적으로[定性] 소승성문과로 향하는 일반과 아직 아공 법공을 얻은 적이 없는 일반인들, 그리고 소승과를 얻었더라도 마음을 돌려 대승으로 향하는 아라한들이 오직 일승의 적멸장지(寂滅場地:불생불멸의 심지)를 얻어 진정한 적정에 이르는 바른 수행처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 여러분들은 자세히 듣기 바란다.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강해하겠다.”
부처님이 이 문제를 자세히 풀이하려고 또 만자자에게 물었다. “네가 질문한 대로 자성본체가 이미 청정하여 본래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 등의 만유의 세계물상이 생겨 나오느냐? 너는 평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늘 듣지 않았느냐 ‘네가 자성의 묘명을 깨닫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성이 원래 본각불매하여서 영명한 공능을 갖추고 있음을 아느냐’고 말이다”
만자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 이 도리를 설하시는 것을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말하기를 자성의 영명을 깨달을 때 자성이 본래 영명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에 각성이라고 이름하느냐, 아니면 본각 자성이 원래는 영명이 없다가 자신이 이제 깨달으니 비로소 영명의 정각을 얻었다고 이름하느냐?” 만자자가 대답했다. “ 만약 각성이라고 불리는 이것이 본래 영명함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무슨 까닭이 없게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이해할 수 있는 무슨 까닭이 없다면 아예 밝히고 깨닫지 못한다. 만약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 있다면 도리어 원래 자성의 본각이 아니다.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 없다면 밝힐 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게 된다. 저 무명은 혼탁하니 맑디맑고 투명한 본각영명의 자성도 아니다. 반드시 알아야한다. 자성본각은 원래 스스로 영명하다. 그 밝음이 극에 달하면 망동을 낳기 때문에 비로소 조명감각의 작용을 발생한다. 그러나 각조는 결코 본래 각성의 성명(性明)이 아니다. 이 후천적인 망동의 감각조명이 유소위(有所爲)의 공용(功用)을 형성한다. 이 유소위의 망동공용이 성립한 뒤에는 각종 망성(妄性)의 본능을 생겨나오게 한다(여기서 말하는 바는 형이상의 체성이 형이하의 물리 기세간을 발생시키는 본능을 설명하는 것이다. 반드시 가장 깊고 고요한 영명의 지혜로 이해 체험해야 한다. 문자로는 설명하기 지극히 어렵다. 만약 선천과 후천이라는 두 가지 명사를 빌려서 설명하면 또 사람들의 의식상에 뚜렷이 두 개로 나누어지게 하겠지만 잠시 빌려서 말하겠다. 선천의 자성본능은 적연부동하고 영명청허한 것이다. 영명청허한 공능은 자연히 변동을 망생한다. 그리하여 곧 후천의 성능을 산생하여 각종 작용을 발생하여 나오게 함으로써 물리세계를 형성하는 본능을 형성한다). 원래의 자성본체 상에서는 본각영명과 발생하여 나오는 망동 조용작용은 본래 동일한 체의 소생으로 같고 다름이 없다. 다만 망동공능이 발생한 후에는 다른 공용을 산생하므로 다른 변화가 있다. 다시 각자 다른 성능 내로부터 다른 가운데 서로 같은 점을 갖추고 있다. 같고 다름이 서로 변화하기 때문에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을 세운다(논리상으로 보면 상호 대립하지만 또 절대로 귀납될 수 있다. 절대 속에서는 다시 상호 대립하는 존재가 있다. 모순은 통일될 수 있고 통일은 또 모순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망동이 상반상성(相反相成)하는 같고 다름의 대립 변화들 가운데에서 서로 상호 요란하므로 상대적으로 물리의 변태현상을 산생한다(이런 변태 역량은 또 상반하고 상성한다). 물리적인 변태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 물질본능의 진로(塵勞)운동을 발생시켜서 자연히 상호 혼돈(渾沌)함으로써 혼돈혼탁(混沌混濁)의 상태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물리 본능의 변태작용을 일으키는 동시에 심리 지각 감각 상의 진로 번뇌를 일으켜서 세계를 형성한다(부처님이 말한 자성본체는 담연명각湛然明覺하다. 담연명각의 동성動性으로 인해 상반상성이라는 두 가지 공능을 발생시킨다. 상호 혼돈 요란함[昏擾]은 물리세계 형성의 본능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자성본능을 떠나지 않으므로 그 근본은 동일 체성이다. 상반상성의 동능이 서로 배제하기를 오래하면 두 역량이 폭발하면서 또다시 상대적인 본능을 산생하기 때문이다. 구심력이 수축하여 극한점에 이르면 원심력이 발생하고 원심력이 방사하여 극한점에 이르면 다시 구심력이 산생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능력의 분화 · 수축작용은 모두 자성공능이 그 중심점이 된다. 그 중심점은 진공(眞空) 무형의 진성(眞性)공능으로서 절대적으로 영명하면서 독립적이다. 그러므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 또 같고 다름이 있고, 같고 다른 가운데 또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전의 이 부분에서 자주 말하는 진로塵勞라는 두 글자는 바로 우주간의 물질 운동 현상으로서, 물리본능이 발생하려 하면서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역량이요 다하려고 해도 다하지 않는 유형의 변화 현상이다. 그 형용形容이 지극히 절묘하여 사실 다른 글자로 대신할 수 없으므로 우선 이상과 같이 나름대로 말해 설명해본 것이다. 하지만 역시 경전원문에 따르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역경易經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한다. 동양의 성인이나 서양의 성인이나 이 마음은 동일하고 그 이치도 같아서 실로 서로 속이지 않는다. 역경은 태극太極으로써 본체를 표시한다. 태극은 적연부동하면서 감이수통感而遂通한다. 태극 자체는 음양陰陽이라는 두 가지 상생상극相生相剋의 공능을 갖추고 있다. 음양 역시 동적 에너지를 말하는 일종의 대명사이다. 생生과 극剋은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작용이다. 그리고 태극은 또 혼연한 일체이다. 음양이 움직인 다음에는 만물을 낳고 일사일물(一事一物)은 또 저마다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다. 태극은 또 음양으로 나뉜다. 이렇게 중첩적으로 발전하여 무궁무진한 만물[萬類]에 이르지만 총체는 단지 하나일 뿐이다. 그 속의 진리의 의의와 취지는 모두 상통하지만 간략히 그 논리를 끌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치에 대한 참고로 삼는다. 자성본체가 망동변화의 공능을 일으킨 후에는 물리본능의 작용이 산생하여 세계를 형성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정태적인 것은 허공현상을 형성한다. 허공의 체성은 모두 동일하며, 세계만유의 형상은 저마다 같지 않게 된다. 이 자성본체만은 같고 다름의 차별이 없다. 이 본체의 공능이야말로 진정으로 각종 만물만상의 유위의 법칙을 생기한다. 자성본체는 본래 각성과 광명공허한 공능을 다 갖추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동요현상을 형성하기 때문에, 풍륜성인 대기층의 본능을 산생하여 이 세계를 붙들어 유지[執持])한다. 허공이 동요현상을 형성하고 자성본체의 광명이 굳어 응결되어 고체물질을 형성하기 때문에 금속성능의 물질 보장(寶藏)이 대지의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대지의 중심과 지각에는 금륜성의 고체가 국토를 유지한다. 각성의 공능이 응결하여 고체인 대지의 물질 보장으로 변하고 나서는 허공 광명중에서 동요하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풍성(風性)인 공기가 산생한다. 풍성의 공기와 고체인 지질이 상호 마찰하므로 화성(火性)인 빛과 열이 일체변화의 본능을 발생시킨다. 대지 중심의 물질보장과 빛과 열은 상성(相成)하여 습윤(濕潤)의 본능을 산생한다. 화성인 빛과 열이 위로 증발하므로 수륜(水輪)이 형성되어 시방세계 중에 둘러싼다. 화성인 빛과 열이 상승하고 수성인 습윤은 하강하여 교호함으로써 작용을 발생하여 견고성인 물질세간을 성립시킨다. 습한 것은 대해가 되고 건조한 것은 대륙 육지 토지로 변한다. 바로 이런 이치 때문에 대해 가운데에서는 항상 화광이 폭발하고 대륙 육지 토지 사이에는 또 강하가 있어 흐른다. 수의 세력이 부딪치는 힘이 강하고 화성인 열력이 약하면 지각이 점점 응결 형성되어 높은 산이 된다. 그러므로 산의 돌을 힘껏 치면 화염이 발생하고 암석이 녹으면 물이 된다. 땅의 응결력이 크고 수성인 습윤의 힘이 약하면 초목을 생장한다. 그러므로 수림초목은 태울 경우 토질로 변하고 힘껏 비틀어 짤 경우 걸쭉한 물로 된다. 이런 물질종성의 본능이 망동 교호하여 작용을 발생시킨다. 에너지와 질량이 번갈아 바뀌면서 상호 종인(種因)이 되고 이런 인연으로 물질세계는 끊임없이 상속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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