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문단 원고)
봄바람 꽃바람 따라
서 양 순
산과 들이 눈 더미로 가득하다. 절기로는 봄이라지만 봄날 같지 않다.찬 바람이 싱싱 분다. 북쪽지방에선 때 아닌 폭설이 내려 교통이 두절 되고 며칠 째 고립된 마을도 있다. 며칠 전 훈훈한 봄바람에 살며시 얼굴을 내밀던 새싹이며 벌레들도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린다. 사람들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 달래면서 봄에 대한 강한 향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서는 잔설을 비집고 진달래꽃이 수즙은 얼굴을 내민다. 양자 바른 돌담에는 노란 개나리 꽃망울이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북풍한설에 만년설처럼 두툼했던 빙판도 어느새 녹아 졸졸졸 실개천을 이루고 있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시작 되나 보다. 훈훈한 봄바람은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추위에 떨고 있는 북녘 땅 어린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우리의 봄은 슬픈 계절이었다. 지금은 잊어진 이야기가 됐지만 춘궁기(春窮期)니 보릿고개란 말이 있었다. 겨우내 식량이 다 떨어져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 까지 기다려야 했던 암울한 때가 있었다. 일년 동안 지은 곡식을 일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우리는 식량 대신 쑥이며 산나물로 목숨을 이어 갔다.
요즈음 봄철은 사치스런 계절로 변했다. 봄바람 꽃바람 잔치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성황을 이루고 있다. 도시는 말 할 것도 없고 시골에도 상춘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이제 춘궁기니 보릿고개란 말은 잊혀진지 오래다.
봄철이 되면 방방곡곡에 축제들이 열린다. 온 산을 빨갛게 물 드린 철쭉꽃은 장관이다. 철쭉 축제는 단양의 소백산 철쭉제를 비롯하여 영주의 소백산 철쭉제, 장흥의 제암산 철쭉제가 볼만하다. 평생 추위 속에서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는 매화축제는 양산의 원동, 광양, 당진, 보성 섬진강변의 매화축제가 유명하다. 이른 봄 노란 꽃동산을 이루는 산수유 축제는 양평 이천 의성의 산수유 축제가 장관이다. 이 외에도 제주의 유체 꽃 축제며 해바라기 축제, 코스모스 축제, 난 전시, 야생화 전시가 지방마다 열리고 있다. 고양시 꽃 박람회는 전국적인 규모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야생화는 정말 아름답다. 산과 들에 크고 작은 꽃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금수강산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계절에 따라 꽃들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봄에 얼굴을 내미는 꽃을 보자. 봄맞이꽃, 할미꽃, 민들레, 제비꽃, 진달래, 살구꽃, 나도제비란, 엉겅퀴, 초롱꽃, 붓꽃, 제비란, 춘란, 냉이꽃, 벚꽃, 장미, 원추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름에는 강열한 태양처럼 열정적인 꽃이 핀다. 해바라기,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파랭이, 수국, 모란, 메밀, 무궁화, 백일홍, 유자꽃, 접시꽃, 분꽃 등이 핀다. 가을에 핀 꽃들은 더욱 아름답다. 산 전체가 울긋불긋 꽃동산을 이룬다. 특히 국화꽃이며 구절초, 가는옆구절초, 개미취, 감국, 산국, 코스모스 등이 핀다. 겨울 또한 장관이다. 백설이 만건곤(滿乾坤) 할 때 독야청청 하는 낙락장송(落落長松)에 핀 백설화는 꽃 중의 꽃이 아닐까? 겨울엔 동백이며 복수초, 설매화가 아름답다.
봄엔 산과 들에 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여름은 여름대로 싱그러운 녹색물결이 출렁인다. 가을은 불타는 꽃동산이요, 겨울은 흰 꽃의 축제 한마당이 벌어진다.
꽃이 연출하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귀티를 뽐내는 자규나무 꽃에 살포시 앉아 있는 호랑나비 한 마리, 산등성이에 외롭게 피어 있는 개망초 위에 스르르 잠들어 있는 흰나비 한 마리, 아파트 정원 풀밭에 숨었다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 빨간 입술 보다 진하게 단장한 석류꽃, 내가 살던 고향의 꽃 금낭화, 한들한들 꽃 길 따라 걸어보는 코스모스 길이 화사하다.
꽃에 따라 생긴 꽃말 또한 재미있다. 노송의 불멸 불사 정신, 수선화의 자만심, 자존심, 당신을 좋아합니다. 매화의 결백, 철쭉의 정열, 제비꽃의 순진한 사랑, 동백의 겸손, 아름다움, 산유화의 지속, 불변, 진달래의 절제, 황매화의 숭고, 고귀, 완성, 찔레꽃의 온화, 개나리의 희망, 수양버들의 비애, 무궁화의 끈기, 은근, 섬세한 아름다움. 이 모두가 꽃에 대한 이미지의 표현이다.
풀마다 꽃마다 그 이름이 있고 꽃말이 있고 꽃에 대한 전설이 있다. 우리민족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국민이라고 말한다. 산수가 아름답다. 계절 따라 시시각각으로 연출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는 우리의 마음을 착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모습이 다르고 저녁에 노을 진 모습이 다르다. 산과 나무뿐이랴! 하늘의 빛을 보자. 하루에도 시간 따라 다르고 계절 따라 그 빛과 모습이 다르다. 변화무상한 구름의 연출 또한 장관이다.
우리의 국토는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정원이다. 계절 따라 산과 들이 아름답고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태어난 것을 한없이 감사한다.
작가양력
.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회장 역임.
.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 전남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 전남문학 이사.
. 해남문학상수상.
. 전남문학상 수상
. 수필집 “점수인생”펴냄.
. 호남교육신문사 논설위원 역임.
. 해남 송지 교장 역임.
첫댓글 선생님! 잘계시는지요? 넉넉하고 포근하신 모습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