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황룡사구층목탑의 위력
가우디가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44년 만에 탑이 완성되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다. 높이가 172.5m나 된다. 100년하고도 한참 지난 세월 동안 계속해서 공사를 이어온 스페인 사람들의 저력과 일관성에 감탄이 나온다. 이 탑에는 스페인 사람들의 기독교 신앙과 역사 그리고 문화가 총집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기념비적인 탑은 그 나라의 민심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집트 피라미드를 138m 높이의 거대한 탑으로 본다면 이 피라미드가 이집트의 역사와 민심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역할을 해 왔다. 파리의 에펠탑도 같은 맥락에 있다. 파리는 높은 산이 없는 평평한 지형이다. 330m 높이의 우뚝 솟은 철제 탑은 파리의 평평한 지형을 보강해 주는 풍수비보적(風水裨補的)인 양물(陽物)에 해당한다. 파리 시민들의 정신을 모아주는 탑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탑은 아니지만, 193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완공된 38m 높이의 ‘예수상’도 그렇다. 이 지역 사람들의 민심을 묶고 정신을 모아주는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해발 704m의 코르코바두산 정상에 38m의 예수상이 서 있기 때문에 시내 전체를 굽어보는 모습이다. 이 예수상을 쳐다볼 때마다 리우의 시민들이 그 어떤 안도감을 느끼지 않나 싶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산 정상의 예수상 신라의 경주에는 황룡사구층탑이 있었다. 높이는 대략 80m.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착공하여 645년에 완공되었다. 당시에 단층 주택이 대부분이었던 경주에서 80m 높이의 구층탑은 어마어마한 목조 건축물이었다. 신라의 국사였던 자장율사의 주도로 이 탑이 세워졌다. 당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목조 건축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신라의 국력에 비해서는 좀 과분한 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상당한 반대 의견도 있었을 법한데, 그걸 선덕여왕과 자장율사가 한 팀이 되어 밀어붙인 것 같다. 신라의 건축 기술이 80m 높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는 점도 놀랍다. 황룡사구층탑 모형 이 탑을 세운 의도는 무엇인가? 신라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9개 적대세력'은 삼국유사의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 설화에 등장하는 국가 및 세력이다. 선덕여왕 당시 신라를 위협하던 주변국들을 불교의 힘으로 제압하고자 탑의 각 층에 이름을 새겼다. 1층은 왜국(倭, 현재의 일본), 2층은 중화(中華, 당나라), 3층은 오월(吳越, 중국 남부 지역), 4층은 탁라(托羅, 제주도의 탐라국), 5층은 응유(鷹遊, 신라가 백제를 낮춰 부르던 명칭),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契丹), 8층은 여진(女眞), 9층은 예맥(穢貊, 고구려를 상징)이라고 하였다. 신라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9개 적대세력이 조공을 바치고 신라가 번창한다는 불교 신앙이었다. 그래서 구층탑은 신라의 민심을 통합하고 자긍심을 주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 탑을 세우고 신라는 번창했다. 그러나 1238년 몽고 침입 때 이 탑이 불에 타 사라졌다. 반도체 수출로 한국의 국력이 상승가도에 있는 이 시기에 재벌들이 돈을 대가며, 구층탑을 복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