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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3B 하나님 아버지를 뵈옵는 길(요14_7~11)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7절 말씀에서 11절까지 봉독합니다.
요한복음 14장 7절 찾았으면 이 시간 제가 봉독합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영광의 보좌에 계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찬양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찬양합니다. 영광을 받으시고 또 이 시간 사랑하는 찬양대위에 또 찬양으로 하나님께 그 영혼들이 함께 드리는 모든 주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소서 또 이 시간 주신 말씀에 은혜가 되고 먼 데 있는 사람과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 이 평강의 진리를 전해주시며 또한 두 사람이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그런 진리의 시간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종은 가리우시고 주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옵고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요한복음 14장 7절 말씀에서 11절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비결이라 할까 비결이라는 말을 잘 안 쓴답니다마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해달라는 빌립의 그 간청을 제목으로 삼습니다. 9절 말씀 가운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한번 다같이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 말씀의 제목이 그 말씀입니다. 나를 본 자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이 말씀 오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지난 시간에 드린 말씀을 잠깐 다시금 되풀이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잡수시는 가운데에 중요한 진리를 질문 물음과 물음을 유도하시고 그리고 그 진리를 계시하시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첫째 질문을 한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질문은 예수님이 앞서 너희가 조금 있다가 나를 보지 못하겠다. 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물음에 답으로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있을 곳 예비하면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그렇게 예수님이 답을 하셨어요. 어디 갑니까? 아버지 집으로 그러면서 예수님이 다음 질문을 유도하십니다. 너희가 내 가는 길 알겠다. 이랬습니다. 너희가 내 가는 길을 안다니까 이 도마라는 사람은 상당히 믿기 위하여 의심하는 사람인데, 주여! 우리가 가는 길을 모릅니다. 당신이 안다하지만 우리가 잘 모릅니다. 거기에 대한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느니라. 그렇게 예수님이 아주 가시는 그 길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또 예수님께서 다음 질문을 하도록 예수님이 유도해 가십니다.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를 너희가 알리라 내 아버지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느니라. 그래 놓고 끝나지 아니하시고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를 너희가 알리라.
그리고 빌립이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 말은 쉽게 말하면 우리는 아버지를 못 봤는데요. 아버지를 보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아버지 봤다니까 너희가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 하나님을 뵈웠다니까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언제 봤는데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에게 세 번째 질문을 드리니까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 이랬어요.
한번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어떤 성경을 해석한 학자가 이 말은 참 어렵다. 그랬습니다. 아주 어려운 말씀이다. 예수님 본 사람이 하나님 보았다. 그렇게 말씀하는 건 아주 어렵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은 어렵다기보다는 아주 그 말이 기쁘다. 그랬어요. 아주 기쁘다. 힘이 된다. 이랬습니다. 능력이 된다. 어렵게 들리지 않고 오늘 말씀이 어렵게 들리지 않고 기쁨을 갖고 위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참 어렵다. 그랬습니다. 어렵다. 나를 본 사람은 한번더 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그것이 그냥 받아들이면 어렵다. 이겁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지금까지 강해 가운데 거듭나고 은혜를 얻은 사람은 기쁘다. 이겁니다. 기쁘다. 기쁘고 감격스러움을 주는 말씀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이 기쁜 말씀을 오늘 제가 한 세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가지고 말씀을 드려봅니다.
첫째로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거 어느 정도 볼 수 있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은 볼 수 있어도 하나님 자신은 볼 수 없다. 이 성경의 가르침이십니다.
한번더 말씀합니다. 성경에 가르치는 신구약 66권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은 볼 수 있어도 하나님 자신은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성경에서 우리가 예화를 몇 군데에 듭니다.
구약 성경에 모세라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 모세는 아마 신구약 66권 그 하나님의 인물 예수님 빼고는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 위대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의 율법입니다. 주로 그 말씀은 계명에 관계되는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십계명을 위시해 가지고 613가지의 계명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 말씀을 다 받는 시간에 마지막에 가서 마지막에 가서 모세가 하나님 한번 뵈옵시다. 그랬어요. 하나님을 한번 뵈옵시다. 말씀만 하지 말고 하나님 모습을 한번 봅시다. 이랬단 말이죠.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했는가 하면은 출애굽기 33장 19절에서 33절을 요약하면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할지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할지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 모세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고 자꾸만 뵈옵자니까 하나님의 영광만 보였다고 그랬어요. 거기에 대한 설명을 제가 간단히 합니다. 모세가 자꾸 하나님을 보자는 게요 보면 죽는다. 이랬어요. 죽어도 좋으니 하면 뵈옵시다. 그랬습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은 뵈올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은 보여주겠다. 그리고 나서는 네 앞에 있는 그 반석 속에 들어가거라 그랬어요.
반석 속에 들어가서 내가 지나가거든 머리를 들어서 내 뒷모습을 보아라. 그게 영광이에요. 그 모세가 뒷모습을 보고 뭐라 그랬습니까? 아 오늘 죽지 아니하여서 다행입니다. 영광입니다. 영광,
그 반석에 대한 바울 사도께서 반석을 해석을 해 두었어요. 반석이 뭐냐 이 단순한 반석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반석이겠지만 그 반석에 대한 신령한 뜻을 고린도전서 10장 4절 말씀 가운데 다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라다니는 반석에서 마셨으며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뵈옵는 것도 예수 밖에서는 볼 수 없다. 이겁니다. 예수 안에 만세반석 열리니 토프레이디가 작시한 그 찬송가 시 가운데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쏟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가 씻음을 받아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예수님이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한번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이 모세 같은 이런 어른에게 대해서도 절대로 내 자신을 볼 수 없고 내 영광만 보겠다고 하셔서 영광도 반석 속에 장차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뵈옵도록 했어요.
출애굽기 14장 10절 말씀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이스라엘의 70인 장로들이 그 발아래서 하나님의 발아래서 하나님의 발등상을 보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랬어요. 그런데 그 발등상이 청옥같이 푸르더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그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그 영광은 봐도 하나님 자신을 볼 수 없었더라.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하나님을 섬기고 모셨던 그분에게 대해서도 엘리야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음성으로 나타났지 모습으로 나타난 건 아니다. 이겁니다. 가늘고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났다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4장 2절 3절에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좌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더라. 하나님의 모습을 봤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보석 같더라. 이겁니다. 찬란한 보석과 같이 홍보석과 벽옥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 모습을 하고 벽옥 같고 홍보석 같은 찬란한 빛을 바라는 하나님의 얼굴 모습을 봤는데 번역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런 거 아니라 이건 헬라말 가운데 호라세이 그건 환상으로 본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본 것이지 진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이런 모세나 엘리야나 사도요한 같은 이런 위대한 훌륭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은 봤어도 하나님 자신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볼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을 보여준 적도 없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상이라는 말은 히브리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에 이어져 가는 말로 이디오트 닮았다. 이겁니다. 닮았다. 하나님을 닮았다. 이겁니다. 그러나 닮지 안 했어요.
절간에 가가 있는 그 부처가 절대로 하나님을 닮은 건 아니거든 암만 정교한 이와 같은 영감이 넘치는 이와 같은 미켈란젤로나 라파일 같은 이런 조각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형상화한다해도 절대로 하나님 자신의 형상은 나타낼 수가 없는 게요. 그거는 죄가 되는 게요.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절 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의 물속에 있는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는 너의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는 그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천 대까지 복을 주시리라.
그래서 칼빈 기독교 강요의 글을 읽어보면 하나님 자신을 보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라 그랬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 많으면 눈이 흐려집니다. 글자 잔글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돋보기가 필요하듯이 칼뱅 선생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죄악으로 흐려진 이 눈이 하나님의 자신은 놔두고 영광도 볼 수 없다고 그랬어요. 영광도 볼 수 없지만은 볼 수 있는 돋보기를 하나 주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성경을 끼고 보면 이 성경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영광에 전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랬어요. 그러므로 절대로 우상 섬기지 말고 말씀주의로 나가는 신앙을 가져라 믿습니까? 그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거는 옆으로 나가는 얘기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에 대한 전기를 읽어가는 가운데 어떻게 이렇게 머리가 좋은고 그 전기를 쓴 사람의 얘기입니다. 거기서 종교 문제를 걸고 들어왔어요. 하나님을 형상화한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은 머리가 나빠진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마라고 했지만은 빌립이 말하듯이 모세가 말하듯이 항상 하나님을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었는가? 알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 그래서 이 히브리 사람들은 이 머리가 이 생각이 무한대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우상 만들지 마라 우상을 만들지 마라고 한다면 그래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머리가 무한대로 무한대로 뻗어나가다 보니 머리가 좋아졌다. 하는거라. 그 일리가 있는 진리를 말했어요. 우상은 눈에 탁 받히는 때문에 더 이상 사고를 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인 어른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절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항상 영감으로 하나님을 상상해 가다보니 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민족은 머리가 나빠지고 망하고 우상을 섬기지 않는 유대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아니하고 그 민족 가운데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쏟아진다고 말씀한 거, 우리 귀담아 들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상 섬기면 가문이 망해요 집안이 망해요. 망하고 전부 다 가문에 모두 머리 병신 나고 그리고 미친 자 나오고 점쟁이 나오고 무당 나오고 망하는 게요. 절대로 하나님 상상하지 마라 영광만 보고 여호와를 영광을 보고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나 그 중에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를 영접하면 예수 안에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계시는 줄을 믿습니다. 받아하세요.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할렐루야 아멘.
그러면 다음에는 두 번째로 말씀합니다.
빌립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을 말합니다. 자 그러면 빌립이 예수님 보고 예수님 보고 너희 아버지 내 아버지 너희가 보았다.
보기는 언제 봤습니까? 빌립이 생각해보니 그 좀 억보거든 억지소리 아닙니까? 너희가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를 너희가 보았느니라하니까 빌립이 숨이 콱 막혀가지고 아니 언제 봤단 말입니까? 그 뜻이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받아하세요. 너희 아버지 내 아버지를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러면 언제 보았습니까? 언제 봤습니까? 언제 보여 아버지를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물음에 대해가지고 예수님께서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답이 간단히 나갑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성경 신약 주석가, 요한복음에 대해서 가장 잘 썼다고 말하는 덴스키라는 분이 말하기를 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거는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 말이다. 육신으로 하나님 봐서 무슨 유익을 얻느냐 하는 게요.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답은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하셨는데 이는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말고 나를 믿고 내 말을 듣고 내 행한 일을 보면은, 보고 믿으면은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그렇게 덴스키는 해석을 했어요. 육신으로 빌립이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 보려했다.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 보면 무슨 유익이 있나? 유대나라 사람들이 예수 많이 봤지만은 육신으로 본 그들이 무슨 유익을 얻었느냐 하는 게요.
예수님을 볼 때 믿음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그들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덴스키의 말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아서
네게 무슨 유익이 있나? 믿음의 눈으로 봐야 영광이 되고 너희에게 축복이 있지 않겠느냐?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의미의 해석을 했답니다. 그러면 본다는 말에 대해가지고 제가 헬라어 말을 조금 저 헬라어 잘 못해요 못하지만은 이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본다는 말에 요한복음에 너희가 나를 보았느니라. 이 말은 독특한 용어입니다. 우리 한국말은 뭐 전부 다 만날 보면 다 본다. 본다. 하지만 그런데 헬라 말은 읽어보면 성경 읽어보면 그냥 보통 아무렇게나 보는 눈, 아무렇게나 보는 거 하고, 과학적으로 보는 거 하고, 믿음으로 보는 거 하고 전부다 언어가 달라요. 언어가 다르다. 그걸 내가 예화를 하나 듭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죽어가지고 3일 만에 무덤 3일 동안 무덤에 계실 때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에다가 기름을 바르려고 갔잖아요. 가보니 천만 뜻밖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요. 깜짝 놀라 가지고 막달라 마리아가 돌아와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했더니 그만 그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오는데 이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늙어서 발걸음 거리가 느리고, 요한은 젊어서 달리다시피 해가지고 막 달려 가가지고 무덤으로 가서 또 젊은 사람은 무덤 속에 쏙 들어가는 게 좀 무서웠던 모양인지 바깥에 으름 잡아가지고 안으로 쓱 보니 보고 있는데 베드로가 뒤따라 헐래 벌래 쫓아 들어와가지고 안에 들어가서 보았다.
요한이 무덤 밖에서 보았다는 본다는 말하고, 베드로가 안에 들어가서 본다는 말이 달라요.
요한이 무덤 밖에서 보았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보는 것 아무렇게나 보았다. 아이고 예수님이 시신이 없어졌는데 하는데 그 차이에 베드로가 달려 들어가 가지고 무덤 안에 들어가 가지고 예수님이 누웠던 자리를 보는 눈은 그거는 또 달라요.
그 눈은 데오레오라는 말을 쓰는데, 찬찬히 살펴가면서 까우뚱 거리면서 뚫어지게 보았다. 이겁니다. 과학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어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경건한 성도든지 누가 또 반대편에 서있는 나쁜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 갈 때, 엉겁결에 가져 가면은 그 수의가 쌓여져 있는 데로 갔다면 수의가 없을 테고, 그 수의는 몸에 피가 젖어 있었으니까? 그것을 벗기고 새것을 가지고 감아가지고 갔다면 수의가 여기 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 머리에 썼던 수의 가슴에 쌌던 수의, 하체에 쌌던 수의가 그냥 그대로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마치 공기가 빠져나가듯 싹 빠져나가고 머리에 쌌던 수건도 그대로, 가슴에 쌌던 수건도, 형상 그대로 하체에 쌌던 수건도도 그대로 수의가 있는 거 보니 깜짝 놀라고 뒤에 들어온 요한이 보고 곧 본다는 말은 3일 만에 부활하리라. 그때야 그 말씀이 회상이 되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는 걸 말하고 하하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요한이 믿더라하더라. 요한이 믿더라. 그래서 여기에 말씀 가운데 빌립이 하는 말씀 뭔가 하면 그냥 아무렇게나 보지 않고 네가 믿음으로 지금까지 삼 년 동안 나를 봤다면 너 날 하나님 봤잖아. 하나님 봤잖나. 삼 년 동안 지내면서 너 나를 통해서 하나님 봤잖아.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조금 합니다. 어떤 성경학자가 하는 말을 한번 새겨봅니다. 빌립아 네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 말이 이상하구나. 왜냐하면 몇 년 동안 너희들과 함께 있었는데 너희가 내 말하는 것이나 또 내가 행한 일을 지켜보았구나. 그래 내가 한 말이나 또는 일이 단순히 목수의 아들이 하는 것으로 보았더냐? 아니면 내 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보았더냐? 아무렇게나 봤더냐? 믿음으로 봤더냐? 이거예요.
그래 한번 생각해 봐라. 잔칫집에 가가지고 포도주가 딱 떨어졌는데 포도주가 딱 떨어졌는데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는 그 마리아를 보고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수종드는 사람보고 하는 말이 물을 길러서 독에다 갖다 붓고 그리고 다음에는 갖다 주어라 순간적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거 그 목수의 아들이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하는 것인가? 하나님 봤잖아. 내 물과 포도주 만들 때 그때 너 하나님 봤잖아.
그리고 다음에는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 있으면서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30리 바깥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와 가지고 주여!
내 아들이 죽어갑니다. 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적을 보지 아니하고는 나를 믿지 못할 텐데, 주여!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예수님이 뭐 가 봤습니까? 아이를 봤습니까?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하는데 살았는게요. 그건 너 사람이 하는 것이냐? 사람이 하는 것이냐? 목수의 아들이 하는 것이냐? 너 그때 하나님 봤잖아
또 38년 동안에 벳세다 그 호숫가에 천사가 내려와서 목욕하면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는 병이 낫는다고 하는 그 호숫가에 많은 환자가 있는데 38년 된 반신불수, 약도 많이 써 받겠고, 의원도 훌륭한 의원도 다 만나 봤을 텐데, 누워가지고 도무지 낫지 않아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데 그 중에 천사가 내려올 때 그 물속에 먼저 들어가면 낫는다는 혹이나 싶어서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보고 낫고 싶나? 보세요. 낫고 싶나?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상을 들고 가라 할 때 벌떡 일어나서 상을 들고 일어나가는 거 사람이 하는 거가? 너 하나님 봤잖아. 하나님 봤잖아
보리떡 다섯,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여자 빼고 부인들 빼고 어린아이 빼고 남자만 5천 명을 먹이고 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부스러기를 열두 광주를 거뒀다는데 그 거두고 할 때 그 다섯 덩어리 5천 명 만 명, 이만 명을 먹일 때, 너 하나님 봤잖아. 봤잖아.
또 나면서부터 소경돼가지고 소경노릇하고 거지 노릇 하는 거 당신이 그 능력으로 진흙으로 흙을 가지고 진흙을 눈에 발라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할때 가서 씻고 나서 담방 보지 아니했던가? 그때 유대인들이 많이 믿었잖아. 그게 목수의 아들이 하는 기가? 하나님이 하는 기가? 아니 유대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금방 썩어요. 왜, 하도 더운 기후의 나라인 때문에 시체가 무덤 돌무덤에 들어가면 담방 부패하는데, 4일 동안 무덤 속에 들어서 썩어서 지금 부패해가지고 코가 썩어 내리는 그 판에 주여! 4일이나 돼서 시체에서 냄새가 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는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다고 하며 믿어라. 믿으면 영광 본다.
무덤 문을 열라 하시고 기도를 하시고는 나사로여 일어나 걸어 나오라 할 때, 벌떡 일어나 걸어 나오는 거, 사람이 하는 기가? 하나님이 하는 기가? 하나님 봤지 않나 하나님 봤지 않나? 나를 통해서 하나님 봤지 않나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내 속에 아버지께서 내 속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아버지로 반신불수를 일으키시고 아버지가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풀고 그 아버지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너 하나님 봤잖아. 와 믿음의 눈으로 못 보느냐? 와 믿음의 눈으로 못 보느냐?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는데
다같이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라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보라 아무렇게 보지 마라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공중에 나는 새를, 야 아 이거 새가 나르는구나. 아이고 새가 나르는구나. 또 뭡니까? 들의 백합화가 아름답구나. 꽃을 찬양하고 공중의 새를 찬양하는 그것으로 끝나나? 배고픈 어떤 성도가 배가 고파서 엎드려 기도하는데 공중에 새가 포르르 날아가는 걸 봐도 안 먹으면 새가 날아갑니까? 길쌈을 했습니까? 무엇을 했습니까? 아름답게 백합화가 피었는데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내게 양식 주지 아니하겠느냐?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엘리야를 먹이시는 그 하나님이 오늘날도 먹이시는 그냥 보지 말고 믿음의 눈을 보았으면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믿음의 눈을 봤으면 너희가 믿음이 생겼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텐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며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음과 보는 거하고 연결시켜 놨습니다.
받아하세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며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러분에게 자녀들에게 돈을 남겨주려 하지 말고 철저히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 자녀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면 절대로 굶어 죽는 법 없습니다.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르포터 테니슨이라는 분이 시를 자기 친구가 하나 죽었을 때 친구가 너무 슬퍼하고 괴로워할 때에 그 시 메모리아라는 시를 쓰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너무 슬퍼하지만 이 스롱 소노버가 이모탈 러브 네 굳센 하나님의 사람이요 너 불멸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왜 두려하고 왜 슬퍼하느냐 왜 두려워하고 왜 슬퍼하느냐 이 나를 보고 이적 베풀 때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 때, 죽은 사람 살렸을 때에 오병이어 이적 베풀 때 그때 하나님 봤잖아. 목수의 아들이 할 수 있나? 목수의 아들이 보통 사람이 그 할 수 있나? 철학자가 하더냐? 종교인이 하더냐? 누가 하나? 아무도 할 수 없는데 그거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한번 받아합시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그래서 주석상 기쁘다는 이게 어렵다. 안 믿는 사람은 어렵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사람은 예수 영접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영광 볼 수 있으니 기쁘다. 기쁘다. 기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되기를 축원합니다. 영광스러움을 느끼기를 우리는 축원합니다. 이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소개하신 것을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10절에서부터 11절 한번 우리 다같이 같이 봉독하십시다.
10절서부터 11절까지 은혜로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우리 다같이 믿음으로 한 목소리 읽습니다. 시작.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한번더 11절 한번더 읽습니다. 시작.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결론을 맺습니다. 받아합시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믿음을 가지면 믿음의 신령한 눈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한번더 공부합니다.
받아하세요.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원을 얻었나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가장 아름다운 선물 믿음인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조건부가 있어요. 그냥 주는 게 아니에요. 다같이 받아합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들어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중에 여러분 심령 속에 믿음이 창조되고 자라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믿음이 오면 받아하세요. 믿음이 오면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요
쉽게 말하면 믿음은 대상은 눈에 안 보이지만은 대상은 눈에 안 보이지만 믿었더니 그 영광은 볼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무엇이 많도다. 예수 예수 구주 예수 1절만 구주 예수 의지하니 심히 기쁜 일일세 .....
할렐루야. 믿음의 눈도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박사 하듯이 우리가 지식에 층하가 있듯이 믿음의 세계도 그런 순서가 있습니다. 층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자꾸만 자꾸만 자라나기를 축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믿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안 믿으면 끝나는 깁니다.
저는 구약 성경 읽다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받아하세요.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증거 무슨 증거, 영광 무슨 영광, 죽지 아니하고 산 채로 승천하였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우리가 그 성경 한번 생각해 보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람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면 이 자식을 낳으면 이상합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게, 저는 그래서 제 이 얘기에서 용서하세요.
이 목사가 자기 말 많이 해서 미안합니다. 우리집에도 식구들도 있는데 말하려고 하니 좀 미안하지만도 6.25 사변 때 우리 집 딸아이 하나 낳았어요. 딸아이가 났는데 제가 있었던 교회에 그 집사 하나가 자꾸 무엇이 잘못됐는지 나보고 나가라 하는게요. 교회에서 나가라 보소 목사님도 아무 말 안하고, 장로님도 아무 말 안하는데 당신이 자꾸 나가라 하나? 하지만 하도 애를 먹여서 몸서리가 나서 치워라. 내 나갈게 나갈라고 하니 갈 데가 있나 사택에 있다가 나온 그래가지고 우리집에는 단칸방이고 그래 우리 처가집에 갔어요. 장모님 방 한 칸 빌려주세요. 아이고 이 사람아 식구들이 다 지내고 피란민들이 와 가지고 뭐 방을 어쩌고 뭐 저자고 해가 다락방 하나 있네. 그거 할래. 다락방도 감사합니다. 다락방도 감사합니다. 예 예수님 말구유에 났는데 뭐 다락방이 어떠냐. 그래 다락방에서 아를 놓는데 저사람 다락방에서 애기 놓고 나는 밤새도록 교회가가 그때 기도를 배웠는게요. 철야기도를 배웠는거라. 하나님이 나를 목사 되게 하려고 목사, 기도하는 목사 만들려고 밤새도록 기도하는데 무식한 기도를 드렸어요. 그때는 또 기도가 그래 나오되 아이고 아버지여! 애를 놓는데 방도 없고 기저귀도 없고 미역도 없고 두더기도 없고 이거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밤새도록 기도하다가 졸리면 눈뜨고 기도하고, 일어서가 기도하고 나중에는 그래도 졸리데요. 그래가 물고나무 서가 기도 다하고 이랬어요.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나는 그 므두셀라를 낳고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기도를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므두셀라를 낳고 믿음을 얻었다. 하는게요. 아마 에녹도 무드셀라를 낳을때 다락방에서 낳았는 모양이라 그래 가지고 하나님께 아버지여! 기저귀도 주시고 미역도 주시고 달라고 부르짖는 가운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축복해가지고 그 자식들 4남매 다 키우는 가운데 대학을 다나오고 그들에게 별로 공납금 준 일도 없고, 다 하나님이 축복한 경험을 해봤어요.
하나님 너 하나님 봤잖아. 그걸 말하는 게요. 하나님은 니 봤잖아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봤잖아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는데 사랑하신 성도 여러분들이여 받아합시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누구를 바라봅니까? 능력이 많으신 그 하나님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자격이 없어, 죄가 많아서 자격이 없어.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주신 그 분의 그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한다면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부르짖으면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입히신 하나님이 우리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며 마지막에 종착역인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십시다.
다같이 우리 한 목소리로 기도하실 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며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귀한 말씀을 해소할 이 근심을 해소할 수 있는 거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이 될 줄을 믿습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주여! 이 시간도 우리가 주님의 제단에 나와서 부르짖습니다. 주의 거룩한 은혜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축복하시고 모든 일에 모든 것이 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줄을 믿고 주의 거룩하신 성령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신앙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가난뱅이를 부자가 되게 하시고 교만한 자를 공수로 보내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물로 포도주 만드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영광 나타나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문동병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역사 오병이어로 5천 명 4천 명 나누어 먹이는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는 영광을 봤습니다. 우리 교회 지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거 봤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겸손을 배우게 하여 주시고,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애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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