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양계장을 예의주시하던 어느 날이었다. 미란은 잔뜩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치환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치환이 깜박했는지 계사 문은 닫혀 있고 잠기지 않았다. 순간 계사 문을 연 미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황색 전구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닭이 철창 밖으로 길게 목을 빼고 있었다. 황급히 스마트워치 손전등 모드를 활성화하고, 스파이 카메라 폰을 켰다. 케이지는 3단으로 쌓여 있었는데, 일곱에서 여덟 줄로 계사 끝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케이지 위로는 뿌연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고, 닭들은 괴성을 질렀다. 케이지 가까이에 가니 메스꺼운 노린내와 닭똥 썩는 냄새가 코로 확 올라왔다. 미란은 미간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불현 듯 한 문구가 미란의 머리를 스쳤다. 서기 1세기 로마 농학자 루시우스 콜루멜라의 말.
“닭을 살찌우려면 땅을 밟지 못하게 하고 매우 덥고 어두운 곳에서 길러야 하며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칸막이나 바구니에서 자게 하라”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1세기 고릿적 학자의 말이 아직도 먹힌다니 어이없었다.
‘이런 곳에 파란이 있다니! 어디 있니, 파란아?’
“파란아, 파란!”
미란은 간절하고 애타는 심정을 담아 최대한 크게 파란의 이름을 외쳤다. 먼지 가득한 계사 안, 수많은 닭 중에 미란의 소리가 파란에게 전달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란아, 언니야.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파란아, 어디 있니? 미란 언니야.”
미란은 계사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파란의 이름을 불렀다.
“야, 너 인간이었어? 네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는 인간이 왔다고!”
발로가 파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인간이 내 이름을 부른다고? 대체 무슨 일로?’
“남의 이름은 왜 불러요?”
볼멘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쳐대는 인간을 파란이 불러 세웠다.
“너...네가 정말 파란? 파란이... 맞니? 살아있었구나. 미란언니야.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지···아니, 됐고.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으니 당장 나가요.”
“다 설명해줄게. 일단 빠져나가자. 시간 없어, 파란아.”
“내가 왜요? 안 믿어요! 인간이란 족속들.”
“못 믿는 게 당연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 사달이 났으니. 하지만 넌 인간이야. 무엇보다 내 동생이고.”
“지나가는 소가웃겠네. 그럼 당신 능력으로 모두 탈출시켜 봐요. 그러면 믿을게요.”
“억지 그만 부려. 어떻게 다 데리고 나가? 당장 나가자, 제발.”
파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란은 눈물을 머금고 홀로 계사를 빠져나왔다. 그제야 지워지지 않은 숫자 1의 향방이 파란임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