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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로마서 3장은 2장에서 이방인의 죄와 함께 유대인의 죄를 언급하여 다루는 것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여실히 알게 하면서, 그 절대 절망에 있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다룬다. 이는‘이신칭의’ 또는‘이신득의’로 불린다. 로마서 3장은 이 이신칭의를 다루는 것에서‘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데, 4장 25절까지 계속된다. 이곳 3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 구분에 의해 단락이 나누어진다. 이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①(3:1-31)
1. 1-8절 / 바울의 자문자답 형식에 의한 예상되는 네 가지 질문과 답변
(1) 유대인이 이방인과 비교하여 그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1-2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3-4절)
(2)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유대인의 궤변에 대한 설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5-6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7-8절)
2. 9-20절 /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
3. 21-31절 / 율법의 특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오용하여 율법의 정죄아래 있음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의①(3:1-31)
1. 바울의 자문자답 형식에 의한 예상되는 네 가지 질문과 답변(3:1-8)
1-1. 유대인이 이방인과 비교하여 그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1-4절)
3:1-8 / 1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이방인이 그렇듯이 유대인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있는가 하면 전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방인과 구별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이 있게 하셨으며,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하셨는지 의문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유대인이 바울을 비롯하여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답변의 형식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를 1-8절에서 스스로 네 번에 걸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하여 스스로 답변하는 것을 통해서 진술해 나간다.
첫 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1-2절이다.
질문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1절)
답변 :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2절)
이 질문에서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방인에 비해 유대인이 뛰어난 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두 번에 걸쳐 묻는 듯한 형식이지만 질문의 내용은 하나이다. 이는 현대어성경에서의 번역을 통해서 본다. “그러면 유대인이 나은 점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무슨 특전이라도 받고 있습니까? 유대인의 할례의식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유대인이 나은 점으로 할례가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해서, 유대인이 이방인에게는 없는 할례를 행하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범사에 많다”고 답변을 준다. 모든 면에서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많다는 의미이다. 로마서 9:4-5에서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1)양자됨과 (2)영광과 (3)언약들과 (4)율법을 세우신 것과 (5)예배와 (6)약속들이 있고, (7)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8)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라고 나열하여 많은 유익을 열거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범사에 많다고 답변하면서 그 유익된 점으로 대표적인 한 가지만 말한다.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이는 “범사에 – 여러 가지로 또는 모든 면에서 - 유익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신탁1), 곧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뜻을 맡은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신탁의 위임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지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바울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명백하고도 선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아는 특권을 누렸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대로 살 책임이 있었으며, 또한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신정 국가를 이루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성을 보여 유대인들이 섬기는 참신이신 하나님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신탁의 위임을 특별한 권리를 보장받은 것으로만 이해하였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내신 뜻을 좇아 순종하는 것에 있지는 않았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할례의 언약이다. 유대인들은 개종하려는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할례를 똑같이 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할례를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 구원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으로 삼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음에서 유대인의 특별한 권리를 말한다. 할례를 행할 것을 말씀하신 것에 의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여 안다면 유대인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천하 모든 민족을 아브라함이 받은 복으로 함께 복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에 있어야 했다. 바울이 유대인의 나은 점 곧 특권으로 할례를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케 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구원의 능력인 하나님의 의, 곧 그리스도를 말하며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을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비교하여 그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를 두 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3-4절에서는
질문 :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답변 :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한다. 이는 유대인 중 어떤 자들이 보이는 말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선택하셨던 유대인의 불신앙이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시킬 수 있겠는지를 묻는 것이며, 결코 그럴 수 없으니 사람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답변하고 있다. 시편 51:4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며 옳으시니 결코 약속을 변개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을 순전한 신앙에 있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 반대의 길로 가는 불신앙에 있었다. 하나님에게는 변개가 없는데, 유대인에게서는 변개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유대인은 비록 그럴지라도 유대인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파기되지 않고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참되신 것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며 옳으신 것으로 말미암는다. 그 하나님을 섬김에 있는 신앙에 있도록 유대인을 택하심에 있으신 것은 이방인은 받지 못한 특권을 유대인이 받은 것이니, 이는 유대인이 이방인과 비교하여 그들보다 나은 점이며, 이 사실은 확고하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 유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특권 의식 속에서 자만함으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 막는 자들이 되었다(마 23:13).
1-2.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유대인의 궤변에 대한 설파(5-8절)
3:5-8 /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이 자문자답의 형식을 사용하여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서 예상되는 궤변의 질문을 할 것에 답변하는 것으로 계속된다. 그 첫 번째 질문과 답변을 5-6절에서 보게 된다.
질문 :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 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답변 :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바울이 이러한 질문과 함께 답변에 있는 것은 앞서에서 불신앙에 있는 유대인의 불의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를 무효화시킬 수 없음에 대해서 유대인으로부터 공격 받게 될 예상되는 질문을 생각해서 이다. “과연 당신(바울) 말 – 사람의 말하는 : 사람의 논리 - 대로 한다면,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에 있다는 것인데 정말 잘 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여 저주를 내리실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그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과연 불의하신가?”2)
이에 대하여 바울은 거룩한 분노에 가득차서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함으로써 그 사악한 생각을 타파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겠는가?” 현대어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눈감아 줄 리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심판하시겠습니까?”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하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니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자격이 있으시며, 또한 실제로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이 불의하실 수 있느냐? 온 세상의 심판주가 정의로 모든 것을 심판하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니, 일체의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므로 그분의 재판 또한 불의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공의에 입각해 있으며 대상에 따라 전혀 차별이 없으므로 유대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혈통이나 선민으로서의 신분을 불의를 용납할 수 있는 것으로 내세울 수 없다. 이들이 비록 하나님의 계시를 먼저 받은 축복을 누리는 선민이라고 할지라도 불의를 엄정하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는 어떤 특권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 있어 불의라든지 악행과 같은 불순종은 이방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도 그 대상을 불문하고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불의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따른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에 있는 불의는 선민 의식의 잘못된 우월감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 율법의 언약 –을 곡해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시행하시는 것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거부하고 배척함에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첫 번째 질문과 답변에 이어 7-8절에서 두 번째 질문과 그 답변을 준다.
질문 :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 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 겠느냐?
답변 :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질문의 문자적인 뜻은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진리가 나의 거짓말로 인해 그의 영광을 위하여 풍성했다면, 왜 여전히 나 또한 마치 죄인처럼 판단받겠느냐?”이다. 이에 대해 새번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이해를 돕는다.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이는 앞서 5절에서 “우리가 불의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설 수 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이고, 여기 7절에서는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더 크게 드러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하나님이 나를 죄인으로 심판하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 아니냐?”라고 하며,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라고 한다. 이는 5절과 같은 식의 논리를 펼쳐 궤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악을 행함에 있는 불의에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갖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내세우며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한 자들은 심판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으며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러기에 바울은 질문의 형식을 취하여 유대인이 가진 생각을 끄집어내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불의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여 주는 것으로, 유대인의 잘못된 선민 의식에 의한 불의에 있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주고 있다.
바울이 이렇게 예상되는 질문을 하며 그에 대한 답변에 있은 것은 유대인 중에서 어떤 자들이 마치 바울이 질문에서 보는 그런 설교를 하고 있는 양 소문내며 사람들을 충동하여 미혹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처럼 거짓말을 지어 서슴없이 해댐으로써 바울과 그의 일행을 훼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8절에서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정죄 받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파멸을 당함이 마땅하다고 단호히 말한다.
2.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보편성(3:9-20)
3:9-20/ 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곳 9-20절은 앞서 1-8절에서의 진술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해 주는 것이자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는 전적 타락하여 부패한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처한 비참한 모습의 상황을 선언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죄인이다(9절).
둘째,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이다(10-18절).
(1)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
하는 자는 없으니 하나도 없다(시 14:1-3, 53:1-3, 143:2; 전 7:20).
(2)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시 5:9, 140:3).
(3) 입에는 저주와 악독(독설)이 가득하다(시 10:7).
(4)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므로 가는 길 곳곳마다 파멸과 비참함이 있어 평화 를 알지 못한다(사 59:7; 8).
(5)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시 36:1).
셋째,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악한 죄에 유대인이 있는 까닭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에게 내려진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또한 유대인에게도 무겁게 내려진 것이다. 유대인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에 있지 않은 죄인인 사실이 드러나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에 누구도 변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하고 죄인임을 깨달을 뿐이다(시 143:2).
3. 율법의 특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오용하여 율법의 정죄아래 있음(3:21-31)
3:21-31 /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앞서 9-20절에서 다룬 인간의 전적 타락에 의한 죄의 부패성은 오래전 옛날부터인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니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1-31절은 그 죄인에게 미친 그리스도에 의한 차별 없는 하나님의 의를 설명해 준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죄 없다 함을 받게 하였으므로 차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 죄인을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심으로 그의 피로써 죄를 용서하실 것에 믿음을 가지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을 벌하지 않고 계셨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앞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실 것에서 이다. 그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죄 없이 함을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에 있게 되니,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자랑할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죄 없다 선언하시고 그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사람이 죄 없음을 선언 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선한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신다. 따라서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 받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또한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신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도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움에 있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 계시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메시야)를 믿는 믿음에 의한 의를 입음에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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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계명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인 구약을 가리킨다.
2) 현대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은 잘된 일입니다. 우리의 죄가 선한 목적에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도 악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연히 알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도움을 주는 마당에 우리를 벌하신다면 그게 정당한 일이겠습니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