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은 욥이 엘리바스의 세 번째 하는 말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 죄악이 끝이 없다”(22:5),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헛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않았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 보냈고 고아의 팔을 꺾었다”(6-9)는 모함을 하였습니다. 욥은 그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로인해 욥은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2)고 말하면서 엘리바스를 욕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곧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3-7)고 하였습니다.
욥은 세 친구들로부터 모함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변명할수록 그들은 더욱 강하게 욥을 책망하였고 모함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고 하였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찾아가 만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욥은 비로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10)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성경) 가운데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1,12절에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고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며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3,14)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욥은 자신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아뢰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제와 기도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4,18)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연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욥이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께 만나 주지 않으신 이유는 욥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마침내 정금 같이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4)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으리는 줄 앎이로다”(롬5:3-4)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한 음식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믿는자 속에서 역사하십니다(살전2:13).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