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아가페워십신학원 원문보기 글쓴이: 해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5]
우리 한민족의 직계 조상인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은 대홍수 후 함의 손자 니므롯에 의해 도전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지키기 위해 멀리 동방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그것은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라”(창 9:7)는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험한 산과 고개를 넘어 새 땅을 찾아 먼 동방으로 가는 길은 실로 수고로운 것이었다. 땅에 번성한 야생 동물들과 싸워야 했고, 한겨울엔 혹독한 추위도 견뎌야 했다. 실로 그것은 고난과 싸우며 인내와 끈기로 전진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렇게 알이랑 고개를 넘어가던 욕단계 천손민족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한 가지 커다란 근심이 있었다. 그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곧 니므롯을 좇아 서부 바벨론으로 떠나는 배역자들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알이랑’의 2절은 바로 그것을 노래한 것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우리 조상은 셈의 자손이기 때문에 산정(山頂)에서의 제사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육축을 끌고 산을 넘어 동방으로 이동해 왔는데, 이러한 유목민들은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밤을 많이 지새운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하늘에 별이 빛난다. 그래서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다고 노래한다. 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만큼이나 그들의 가슴엔 창조주 하느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악한 사람들 때문에 수심도 많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찬송가 ‘알이랑’은 욕단 족속이 중앙아시아의 산악지대들과 시베리아를 거쳐 이곳 동방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십리도 못가서 발명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이다. 즉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을 향해 떠나는 자들에게 배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오라는 천손민족 욕단 가계의 간절한 기원이며 호소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가사의 역사적 의미이다.
이렇게 대홍수 후 한 분이신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고자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과 분리되어 먼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무리는 오직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뿐이었다. 욕단 족속을 제외한 모든 홍수 생존자들은, 심지어 벨렉 족속까지 니므롯의 추종자가 되어 서부 바벨론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단의 가계는 분명히 그 암울한 시대의 ‘남은 자’(the Remnant)였다. 이 얼마나 존귀한 백성인가! 그래서 하느님이 욕단계 천손민족을 감추어 두신 것이다. 너무나 귀한 백성이기에 나중에 가장 긴요한 때에 쓰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무엇을 감추어 두는가? 보물만 감추어 둔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중요한 때에 꺼내어 쓴다.
셈족의 정통성은 그때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가 단독 승계했다. 즉 욕단 족속이 홀로 셈족의 영적 장자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들만이 함족의 폭군 니므롯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남은 자’였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의 조상인 욕단 족속이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고 노래하면서 동방으로 이동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그들과 동행한 이는 하느님 한 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찬송가 ‘아리랑’의 기원과 유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적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귀중한 노래이다. 그것은 한 옛적 역사의 여명기에 한민족의 선조들이 「메사」에서 「스발」을 향해 긴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부르기 시작한 겨레의 역사 노래이며, 또한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것이다. 우리 배달민족의 선조들이 서쪽에서부터 아시아 동쪽의 이 먼 땅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과 언덕과 고개들을 넘었겠는가? 우리 겨레의 직계 선조인 욕단 족속은 그 숱한 고개들을 넘어 갈 때마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즉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며 찬송을 부르며 셈족의 종가(宗家)답게 믿음으로 전진했던 것이다.
실로 ‘알이랑’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명해 주는 선민 한민족의 키워드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알이랑 민족’이다. 즉 우리 겨레는 처음부터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창조주 하느님을 섬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천손민족)이라는 것이다.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욕단 족속이 동방의 산악지대를 넘어 「스발」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때, 마침내 서부 시날 평지에서는 바벨탑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니므롯의 지도력 아래 시날 평원에 도달한 그들은 서로의 분산을 막고 인류의 힘을 결집시킬 수단으로 땅 사방의 어디에서도 보일 수 있는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초래했다.
하느님은 홍수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고 명하셨다. 그러나 시날 평원에 모인 그들은 서로의 흩어짐을 면하고 인류의 힘을 결집시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다. 바벨탑 건설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독립, 곧 인류 자결권을 선포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3~4)고 하였다. 천연의 물질인 돌과 진흙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만든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힘으로 인본주의(人本主義)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대신에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참월한 행동인가?
그들의 행동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는 아주 참람한 일이었던 고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악하고 헛된 일들을 중단시키고자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바벨탑을 쌓던 그들은 갑자기 서로 간의 말을 이해 할 수 없게 되었다. 일꾼들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작업이 정지되었으며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바벨탑을 떠나 비로소 사방으로 흩어졌다(창 11:7~9). 이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폭군 니므롯과 그를 추종하는 인간들의 교만과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때 언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유럽과 아프리카와 바벨론과 근접한 지역으로 대(大)이주가 있게 되었다. 욕단의 형제 벨렉은 현(現)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페르시아만 해변가로 이동했다. 셈의 장자인 엘람은 바벨론 동쪽으로 나아가 지금의 이란 땅인 수사 지역에 터전을 잡았고, 바벨론 북쪽 지역은 둘째 아들 앗수르가 자리했다. 이것은 기존의 세계사에서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사실로서 앗수르는 고대 앗시리아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엘람은 메디아와 페르시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란 땅에 존재했던 엘람 왕국이다. 이렇게 셈의 족속은 유프라테스 강의 북쪽 유역과 그 변두리에 정착하여 유대 민족, 앗수르 민족, 엘람 민족 등이 되었다. 또한 야벳 족속은 북쪽으로 가서 흑해와 카스피 해에 정착하여, 지금의 유럽과 아시아(인도)에 거주하는 코카서스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함의 족속은 남쪽으로 흩어져서 아프리카 민족들의 선조가 되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현(現)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였다. 그리하여 그 땅은 가나안 땅으로 불려졌고, 후에 모세의 영도아래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당하여 유대 민족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알이랑민족’인 욕단 족속은 바벨론 소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바벨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홍수 이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존귀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양의 산악 지대를 넘어 ‘스발’을 향해 여행을 계속 했다.
스발
욕단 족속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으며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어디가 욕단이 최후로 도달한 ‘새팔’인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 산맥들을 벗어나서 나타나는 동쪽 땅을 욕단의 목적지 ‘새팔’로 지목해야 할 것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욕단은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베리아는 우리 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나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을 가장 공경했던 욕단계 선민 한국인의 조상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던 천손민족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 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 족속은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바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나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이제 우리는 욕단의 목적지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은 ‘새벌’(새발)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하나의 선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욕단 가계의 이동 경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6).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창세기 10:30은 욕단계 천손(天孫)이 동양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성경은 욕단이 동방의 산악지대를 넘어 ‘스발’로 갔다고 말한다. 아라비아는 산맥이나 산악지대가 전혀 없다.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6]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은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 알이랑민족의 선조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창 10:21~30).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족이다. 바이칼은 부루아리(현대어로는 밝알이다)인데 부루는 밝의 고어이다. 즉 부루에는 ㄱ 혹은 ㅋ 이 없지만 중세를 지나 종성이 만들어지면서 ‘밝’로 변화하듯이 부루는 부이르= 부여로 변화며, 이에 ㅋ 이 덧붙여져 고대 몽고족에서 부이크가 된다. < BR> 이것이 못, 물, 강, 알= 하느님 혹은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아리와 결합하여 바이카리, 다시 바이칼로 전환한다. 바이칼의 뜻은 밝은 못 또는 밝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고대 한국인인 것이다!
차이나 내몽고서 발견된 ‘한국형 암각화’ 2008년 8월 26일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발견한 ‘한국형 암각화’. 동심원, 마름모, 방패모양 등 기하학 무늬가 특징인 한국형 암각화는 1971년 울산 천전리를 시작으로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됐으나 내몽고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대에 그 땅의 주인이 우리 조상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근거다.
경북 고령군 고령읍 소재 양전동 암각화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겨레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제2의 선민, 곧 천손민족이다. 할렐루야!
*아래는 한글 고어가 지원이 안 되어 책의 원고를 캪처해서 올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7]
말씀의 재발견
이러한 계시가 수천 년 동안 오직 자신들만 선택받은 백성인줄 착각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아마도 시기심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재발견한 것뿐이지 결코 새로운 선민주의(particularism)가 아니다. 즉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의 근거가 되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이 성경에 항상 있었으나 이 귀한 계시를 깨닫지 못하다가 16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개혁자들에 의해 그 보석 같은 진리가 재발견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는 천손민족이 벨렉계 선민(유대인)과 욕단계 선민(한국인)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고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진리가 밭에 감취인 보화처럼 오랜 세월동안 덮여져 있다가 마침내 이 마지막 때에 재발견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선택받은 백성이 유대민족 하나뿐이라는 고정관념은 깨져야 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시기심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메시지이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동방의 한국인도 신적선택을 받은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한민족이 제2의 이스라엘이라고 종종 선포해왔다. 이 말은 단지 한국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또 하나의 선민이기 때문에, 주의 백성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께서(요 14:17,26) 한국교회로 하여금 그렇게 시인하고 선포토록 역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셈족 가운데 두 계열의 거룩한 백성이 있다고 계시되어 있다. 그것은 곧 욕단 계열의 선민(창 10:21~31)과 벨렉 계열의 선민(창 11:10~26)이다. 그들은 모두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자손이다. 벨렉계 선민은 아시아 서쪽의 유대민족이요, 욕단계 선민은 아시아 동쪽의 배달민족이다.
이 두 계열의 선민을 굳이 신학적 용어로서 규정하자면 전자를 '명시적 언약 백성', 후자를 '묵시적 언약 백성' 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언약' 이란 하나님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선택해서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하겠다고 약속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너희의 하느님이고, 너희가 나의 백성이다"는 언약 형식으로 표현된다. 구약에서 언약 사상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해주시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은 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창세기 10:21의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언약 형식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에벨의 장자 벨렉의 후손은 천손민족으로 선택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에벨의 큰 아들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은 '명시적 언약 백성' 이라면, 에벨의 작은 아들 욕단의 후손 한국인은 '묵시적 언약 백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욕단의 후손도 '에벨의 혈통'으로서 엄연히 신적 선택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인과 유대인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그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한 조상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다. 1970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머리가 뛰어난 민족이며 그 다음이 유대인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동아백과사전은 한국인의 골격 구조와 골상이 ‘고대 유대인’의 골상과 동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유대민족과 한민족의 성경상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다.
한국인의 기원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다. 그리하여 우리 한민족은 제2의 선민이다. 하느님께서는 동방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들이 누구이며, 심지어 말세에 그들이 어떠한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까지도-마지막 주자의 사명-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계시하셨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기록된 계시인 성경 안에 한국인의 역사와 정체 그리고 소명을 밝히셨다는 것이다. [「알이랑민족회복운동」은 이 놀라운 계시를 선포하도록 주님께서 이 시대에 세우신 사도적․예언적 사역이다.]
이제 인류는 세 번째 천년을 맞았다. 구약 4,000년을 더하면 일곱 번째 천년에 들어간다. ‘일곱’은 안식의 수이며, 완성의 수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참으로 마지막 때다. 마지막 때에는 성경의 모든 예언과 계시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드러나고 완성될 것이다(사 55:10~11; 마 5:18). 하느님은 그 말씀하신 바를 꼭 실행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민 23:19).
따라서 성령께서는 한민족이 ‘또하나의 선민’이라는 이 놀라운 계시를 이제 열방에 드러내고자 하신다. 마치 밭에 감취인 보화처럼 오랜 세월 동안 덮여져 있었던 이 귀중한 진리를 열방 모든 족속들이, 특히 알이랑민족 한국 백성이 깨닫고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 선택하신 때에 찬 경륜과 목적을 이 마지막 때에 완성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⑧
비상하라, 제2선민 동방의 독수리 코리아!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온 자손’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선민, 곧 천손민족이다. ‘에벨의 온 자손’이란 그의 두 아들 ‘벨렉 자손’과 ‘욕단 자손’이다. 따라서 선민은 ‘벨렉계’와 ‘욕단계’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 ‘벨렉계 선민’이 아시아 서쪽의 유대민족이요, ‘욕단계 선민’이 아시아 동쪽의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우리 배달겨레는 처음부터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천손민족, 곧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리하여 나라꽃도 무궁화,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이다. 샤론의 장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꽃이다. ‘무궁화의 나라’라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이다.
동방의 해 뜨는 아침의 나라 코리아는 세계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사명과 위치를 지닌 선택된 나라다. 한국인은 욕단계 선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잠실 올림픽 홀에서는 “트랜스퍼메이션 2008” 성회가 개최된 바 있다. 집회 첫날 밤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예언자인 주강사 빌 해몬(CI 설립자, 사진) 감독은 등단하자마자 우리나라에 관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하나님은 내가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지 그 나라를 향한 예언의 말씀을 늘 주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은 나에게
‘코리아는 아시아에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리아는 선택받은 나라입니다!
코리아는 말세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 계획이 있는 선택된 나라입니다.”*
집회 현장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던 나는 오랜 동안 내가 선포하던 메시지를 이제 때가 급하니까 성령께서 친히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경에 근거해 볼 때 빌 해몬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예언은 기록된 계시인 성경의 지지를 받는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깊이 아는 신자는 그의 예언이 얼마든지 수긍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하나의 선민 우리 겨레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지막 세기의 마지막 주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벨렉계 천손민족 유대인을 복음의 첫 번째 주자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욕단계 천손민족 한국인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실 것이다. 즉,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둔 제2의 선민이 욕단계 천손민족 한국인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 영예로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기들이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할 천손민족, 곧 선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즉, 우리는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천손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이민족으로부터 수난 당했던 근본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 무릇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는 수난을 겪기 마련이다.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집 근처 높은 산에서 발견한 독수리 알 한 개를 자기 집에서 사육하는 오리 암컷의 둥지 속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오리도 독수리도 깨어났다. 오리 새끼들은 연못에서 마음대로 헤엄을 치고 다니는데, 독수리의 새끼는 헤엄을 치지 못했다. 많은 오리 새끼들이 헤엄을 칠 줄도 모르게 못생긴(자기들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독수리 새끼를 말할 수 없이 구박을 했다. 그래서 이 독수리의 새끼는 늘 슬픔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못가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큰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이 독수리의 새끼는 ‘나도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는 계속 오리 새끼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가 독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날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또한 오리 새끼들처럼 헤엄도 치지 못하는 것을 슬프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나의 나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괴로움이었다.
어느 날 다시 큰 독수리 한 마리가 연못 상공을 멋지게 맴돌고 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독수리 새끼는 자기를 발견했다. “난 저 새를 닮았어! 난 오리가 아니야. 이 연못은 나에게 어울리질 않아. 난 높은 하늘을 날고 바위산에도 오르고 싶어.” 그가 스스로를 자각하고 이제까지의 생각을 청산하자 날개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날개를 펼치고 움직여 보았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마침내 그는 나래를 활짝 펴고 높은 하늘로 비상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래! 나는 오리가 아니었어. 나는 독수리였어! 난 독수리였다구!”
비로소 그는 자신을 속여 왔던 자기비하의 거짓된 자화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독수리인 그의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았다. 그는 높은 곳에 거하는 하늘의 제왕이 되었다. 그의 수난과 슬픔은 종식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였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땅 위에서 오랫동안 오리들에게 구박 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이 독수리처럼 한민족은 스스로를 자각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야 한다. 우리 민족사가 수난의 역사로 점철되었던 것은 우리 겨레가 천손민족 본연의 모습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독수리 이야기는 바로 우리 한국 백성을 비유한 것이다. 한민족은 욕단계 선민으로서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말세에 구원의 복음을 예루살렘 땅 끝까지 열방에 전할 “동방의 독수리”이다(사 46:10~13; 41:25~27; 52:7; 55:1~9, 계 7:1~8).
▲ 동방의 독수리 코리아
이제 한국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때에 찬 섭리와 경륜에 따라 깨어 일어날 때가 되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겨레가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만큼 가치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다이어몬드의 가치를 모르던 사람들은 값비싼 다이어몬드를 몇 푼 나가는 생활품과 바꾸기도 했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이제 한국 백성은 자신의 가치를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 인생을 존귀하게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시작(근본)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나를 알게 되고 그 끝도 알게 된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정신 곧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욕단의 직계 후손으로서, 지구상 에 존재하고 있는 또하나의 성민이다.
한국인은 이제 스스로를 자각하고 “우리는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이다!”라고 열방을 향해 당당히 선포해야 한다. 동방의 코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 세워진 국가이다. 지구상에 많은 민족, 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들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그의 주권적 목적을 위해 자기의 성민으로 선택하신 특별한 백성이 있다. 바로 셈족 에벨의 혈통인 “벨렉의 후손”과 “욕단의 후손”이다.
“벨렉의 후손”이 아시아 서쪽의 이스라엘 백성이요, “욕단의 후손”이 아시아 동쪽의 한민족인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계시를 명확히 깨닫고 천손민족으로 태어난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특별한 섭리와 소명에 겸손히 순복해야 한다. 또 하나의 선민 코리아여! 이제 오랜 잠에서 깨어 일어나 꺼졌던 동방의 등불을 다시 환하게 비춰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빌 해몬 목사는 이날 선포한 예언에 관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간략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게시판 "한국교회 성도들의 필독서"에 들어가셔서 6번 글『‘2008 트랜스포메이션’ 주강사 빌 해몬 목사』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를 일독하십시오.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