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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전
작가: 김인희
유튜브: 댕댕이와 책을 (운영자)
전화벨이 울렸다. 석 달 전, 까닭도 없이 일방적으로 문자도 씹고 전화도 안 받던 영자였다. 전화를 차단할 땐 언제고 새벽 5시에 전화하다니, 예의 없기로는 단연 무법자였다.
영자는 경자를 차단한 게 분명했다. 전화를 걸면 바로 뚜뚜뚜, 소리가 났다. 얼마 전,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새집을 구한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부동산 중개하는 영자에게 소개하려고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되었다. 지켜보던 동료가 말했다.
“상대방이 전화번호를 차단하면 그런 소리가 나요.”
영자가 경자를 차단할 까닭은 없었다. 경자가 영자를 차단한다면 또 몰라도.
오십 대인 영자가 아직도 십 대처럼 굴다니. 자신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사건건 영자는 경자 인생에 시비를 걸었다. 말본새에 품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넌, 나의 찬란한 꿈이었어.”
라고 말할 땐 언제고 경자가 빈털터리 요한과 결혼한 후부터, 아니, 자신이 큰돈을 만지면서부터 영자는 경자를 발뒤꿈치 때만도 여기지 않았다. 친구니까 그럴 수 있다손 쳐도 요한까지 걸고넘어질 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도대체 넌 언제까지 월세를 내고 살 작정이니? 꼴랑 애들 코 묻은 돈 벌어서 월세 내고 저축도 안 하면 늙어서 뭐 먹고 살 건데?”
영자는 경자에게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라고 권했다. 좋은 대학 나와서 학교 선생도 아니고 고작 과외선생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과외선생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어야.”
월세를 내준 적도 없으면서 경자가 매달 내는 월세 65만 원을 영자는 경자보다 더 아까워했다. 사는 형편으로 보면 영자는 경자가 따라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시험성적과는 영 거꾸로 되어버렸다.
법륜스님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 했는데 영자는 법문도 안 듣는 모양이었다. 영자가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오직 백운선생의 점괘였다. 영자에게 백운선생은 하느님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영자가 경자를 차단한 것은 그날부터였다.
“오늘 시간 좀 내라.”
“왜?”
“이유는 묻지 말고.”
경자는 그러겠다고 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깟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는가.
“은행에 가서 빳빳한 신사임당으로 6장 준비해 와.”
“그렇게나 많이? 그런 돈 없어.”
“돈이 없다고? 잔말 말고 과부 땡빚이라도 내, 이것아. 행운은 돈 주고 사는 거야.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구.”
영자를 따라 낯선 동네 산비탈을 올라갔다. 영자는 심하게 헐떡거렸다. 15도쯤 경사가 진 산비탈을 오르는 중에 영자는 몇 번인가 멈춰서서 땀을 닦았다. 절구통 같은 몸으로 남의 집 축대 밑에 걸터앉은 영자가 느닷없이 경자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그러더니 경자 손바닥을 홱 뒤집었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한참을 관찰하던 영자가 혀를 끌끌 찼다.
“손금이 이러니 남편 복이 없지. 너랑 나랑 어쩌면 이렇게 손금이 똑같다니. 난 과부 팔자고 넌 있으나마나한 남편을 뒀으니, 에고. 남편 복 지지리도 없는 팔자들.”
영자는 자신의 죽은 남편과 경자의 살아있는 남편을 도매금으로 같이 팔아넘겼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요한을 대신 욕해주니 가끔은 후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가 넘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요한은 속물들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아득한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뒤뚱거리면서 올라가는 영자를 뒤따라갔다. 영자가 사려고 하는 행운이 강남 도곡동이 아닌 허름한 산비탈 동네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런 동네라면 경자도 어쩌면 행운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사임당 6장으로 살 수 있는 행운이 기대되었다.
택시도 가려고 하지 않는 비탈진 동네 막다른 집에 도착했다. 영자는 녹슨 철 대문을 열고 좁은 개구멍 같은 곳으로 몸을 낮춰 들어갔다. 늘 꼿꼿하던 영자가 몸을 낮추는 걸 처음 보았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는데 이상하게 슬퍼 보였다.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 한 귀퉁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구부러진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대추나무에 걸린 가오리연이 보였다. 가오리연은 대추나무 가지에 걸려 아기 기저귀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영자는 어두운 거실에서도 익숙한 몸놀림을 했다. 방석을 가져다가 경자에게 내밀며 속삭였다.
“여기 앉아.”
“여기가 어디야?”
“쉿! 대한민국 상위 1%들이 찾는 집이야. 운은 타고 나는 게 아니야. 돈으로 사는 거야.”
실내를 둘러보았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흰 장막이 있었다. 어디선가 향냄새가 풍겨왔다. 장막 사이로 구릿빛 나는 부처 좌상이 보였다. 벽면과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사과, 배, 유과, 무지개떡, 등이 차려져 있었다.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젊은 박수무당이 장막을 열고 나타났다. 말로만 들었던 백운선생이었다. 경자는 영자의 억센 손을 뿌리치고 운명철학관을 뛰쳐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영자가 경자 전화를 차단한 것은.
영자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요한의 기부행위였다. 요한이 튀르키에 지진 긴급 구호에 후원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선 내가 잘 살아야 남이 있는 거야. 남들이 속으로 흉봐. 내가 볼 땐 둘이 똑같다고 본다.”
요한이 기아 대책 기관을 통해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는 영자에게 하지 않았다.
6년 전 어느 크리스마스 날, 둘째 딸이 있다면서 요한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베트남 소녀였다. 사진 속 아이는 거무스름한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아이였다. 찢어진 청바지와 핑크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입을 꼭 다문 아이는 속으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요한이 건네준 베트남 소녀의 편지는 읽지 않았다. 지안이 하나도 버거운 살림이었다. 그런데 또 딸아이가 하나 더 있다니. 도무지 말이 안 되었다.
“이 아이 이름은 응웬 티 오아잉이야. 응웬 티 오아잉.”
경자 마음속에서 베트남 소녀가 둘째 딸로 받아들여지는 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응웬 티 오아잉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후원하기로 했다니 이제 7년이 더 남았다. 매월 자동으로 7만 원이 둘째 딸에게로 흘러갔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따로 선물을 보냈다.
“그럴 돈 있으면 나를 후원해 주지. 용돈도 안 주고 등록금도 내가 벌고.”
라고 말했던 지안은 첫 월급을 탔을 때 베트남 소녀에게 보내주라며 십만 원을 내놓았다.
요한은 투잡을 뛰었다. 응웬 티 오아잉은 1년에 한 번씩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사진을 동봉해 왔다. 소녀는 1년마다 쑥쑥 키가 자라고 있었다. 마음속에 흐르는 사랑의 물소리는 새소리처럼 투명하게 경자 가슴 깊은 곳에서 재잘대곤 했다.
전화를 차단할 땐 언제고 제풀에 풀렸는지 영자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보내더니 결국 새벽에 전화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목소리가 컸다.
“새벽에 무슨 일이야? 영자야.”
영자는 여느 때와는 달리 뜸을 들이더니 은밀하게 말문을 열었다.
“음, 너 내가 보낸 유튜브 영상 봤지?”
“아니.”
“넌 왜 매번 거꾸로 사니? 그러니까 돈이 안 붙지. 내가 시간이 남아서 너한테 그걸 보냈다고 생각하니? 나도 손가락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바빠, 이것아. 유튜브로 성경 말씀만 듣지 말고. 말씀이 밥 먹여주니? 안팎 둘 다 말씀만 붙잡고 사니 돈도 질려서 도망가겠다.”
영자가 새벽에 보내준 유튜브 영상은 주식 추천 동영상이었다. 주식, 하면 진절머리가 났다. 영자의 권유로 2년 전에 산 바테리 관련 주식은 거의 반 토막이 나 있었다. 보험을 해약한 돈으로 산 것이다. 애꿎은 보험만 날려버렸다. 이젠 조상이 꿈에 나타나 돕겠다고, 그 어떤 인생 역전 주를 추천한다 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잘 들어 봐. 난 이번에 내 인생 전부를 걸었다. 인생 역전을 하려고. 더 일찍 샀어야 했는데, 간 보느라고 늦었다. 바닥을 놓쳤어. 오래전에 아들 몫으로 사둔 아파트도 팔아서 몰빵하고 싶은데 아파트가 안 팔린다. 집을 사려는 사람을 눈 씻고 찾아도 없어.”
지금도 부자인 영자가 더 부자가 되려고 용을 쓰다니 기가 막혔다.
“주식은 욕심을 내면 안 돼. 매도할 때는 머리 말고 어깨에서 팔아야 한다고. 이따 날 밝으면 사무실로 꼭 와. 꼭.”
발 말고 무릎에서 사서 머리 말고 어깨에서 팔라는 충고였다. 영자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실패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건 늘 남들보다 빨리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았기 때문이었다.
경자는 주식 어플만 보면 머리, 어깨, 무릎이 아팠다. 주식을 추천한 영자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임은 경자 몫이었다. 그날 영자는 경자 눈을 보며 말했다. 선택은 본인 책임이라고.
반 토막 난 어플을 보면서 경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인생까지 바닥을 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았다. 바닥은 아니고 무릎쯤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1년에 4번 꼬박꼬박 배당금이 들어왔다. 치킨값 정도였지만 그걸로 라면과 짜파게티를 샀다. 배당금이 나왔다고 전화했을 때 영자가 말했다.
“넌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니? 리벨런싱을 했어야지. 어깨까지 올라갔을 때 안 팔았니?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가 무릎에서 사라 할 때는 안 사더니 결국 머리에서 사다니. 주식은 본인 결정이고 본인 책임인 거 알지? 난 정보만 줬다. 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영자 사무실에 들어섰다. 영자는 경자를 잡아끌어 소파에 앉혔다. 지금은 외출중입니다, 라는 팻말을 유리문에 걸어놓고 부동산 사무실 문을 잠그고 불을 껐다. 은밀한 미소를 날리며 경자의 손을 잡고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믹스커피를 타며 영자가 말했다.
“여기를 봐. 이게 이번에 몰빵한 주식이야. 가지고 있던 주식 익절하고 여기에 다 쏟아 넣었더니 어제부터 빨간색으로 바뀌더니 오늘부터 고공행진이다.”
경자는 안경을 쓰고 빨간 숫자를 손으로 짚으며 일, 십, 백, 천, 만, 십만, 천만, 을 헤아리다가 억, 하고 탄성을 질렀다. 숫자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영자가 물었다.
“너 내가 보낸 유튜브 영상 보고 왔지? 내가 사라 마라 할 수는 없어. 인생은 테마에 올라타야 할 때가 있어. AI가 인간을 능가할 거야. 이제 시작이야.”
테마 주식을 하면 골로 간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주식은 기업의 펜더멘탈을 보고 투자를 해야 하며, 단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존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조심스러워서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내가 이번에 꿈을 꿨다. 백운선생한테 해몽을 물었더니 대운이 들어온 거라고. 꼭 붙잡으란다.”
영자가 입을 경자 귀에 바짝 붙이고 꿈 얘기를 털어놓았다. 꿈 얘기는 이랬다.
하수도가 막혀 답답해하며 수도관을 살피던 영자가 수도관을 비틀자 막힌 하수도관이 뻥 뚫리고 그곳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맑은 물이었다. 물은 들판을 가득 채웠다. 벼들이 흔들흔들 춤을 추는 사이사이로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떼 지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노랗게 익은 옥수수가 여기저기서 펑펑 팝콘처럼 하늘로 튀어 올랐다.
잔고가 1678원인 통장을 보여준다면 영자는 당장 요한과 황혼이혼을 하라며 법원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영자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자꾸 머리, 어깨, 무릎이 아파왔다. 현관에 요한의 낡은 운동화가 보였다. 식탁에는 모시떡과 블루베리가 있었다. 요한이 퇴근하면서 사 온 모양이었다. 물질이 꽉 막힌 집에 사랑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경자는 조급해졌다. 싱가폴 외국인 회사에 3차 면접까지 합격한 지안은 출국을 몇 달 앞두고 있었다. 영자는 지안이 취직 때 보증을 서 주었다. 친인척, 형제들이 모두가 망설일 때 영자가 해준 것이다. 싱가폴 물가는 한국보다 높다고 했다. 집세는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이번만큼은 경자도 어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방으로 들어온 경자는 문을 걸어 잠갔다. 어플을 열고 거의 반 토막 난 바테리주식을 손절했다. 겨우 건진 돈은 천6백만 원이었다. 그걸로 영자가 추천한 테마주를 샀다. ‘그래 나도 인생역전이라는 걸 해 보자.’ 경자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좋으신 하느님, 제발 이번만은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 다른 걸로 주지 마시고요, 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후다닥 놀라 방금 올린 기도를 취소했다. 경자는 두 손을 꼭 쥐고 낮은 목소리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좋으신 하느님, 하느님 뜻대로 하십시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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