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표현의 이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좋지 못한 관습적 표현들
7. 철학적 내용과 철학적 언어
「길」과 같은 유형의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시란 시인의 철학이 언어로 구상화되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시란 철학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란 물론 시인의 철학을 포함하고 있지만, 반드시 시가 철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는 언어 예술인 만큼 철학적인 또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지닌 개념적 의미나 추상성을 회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는 언어군과 유사한 전문어로 써야만 좋은 시가 된다는 착각 또는 오해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기는 하다. 이른바 형이상학적 시meta-physical poem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그것이다. 던John Donne을 비롯한 일군의 17세기 시인들이 “형이상학을 즐겨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은 시풍은, 엘리어트나 미국의 신비평가들에 의해 통합된 감수성을 가진 시의 모델로 재평가되면서, 현대시에 큰 영향을 끼친바 있다. 형이상학파의 시가 어떤 면을 지니는가는 던과 동시대의 시인의 작품을 함께 고찰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A)
우리의 영혼이 둘이라면, 한 데 붙은
콤파스의 다리가 둘인 뜻에서 둘이다.
당신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라서, 상대방 다리가 움직이면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것은 사실.
그리고 그것은 중심에 서 있으나,
상대방이 멀리 움직여 떠날 때엔
몸을 기울이고, 그쪽으로 귀 기울인다,
그리고서 그쪽이 돌아와야 곧게 일어선다.
당신은 나에게 그러하리다, 분명히.
서 있는 다리처럼 비스듬히 움직이겠지만,
당신이 굳게 서 있어야 내가 그리는 원이 바르고,
내가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리라. -「이별 슬퍼하지 마라」¹⁷⁾
B)
고운 水仙花여, 네가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것을 보니 슬프구나.
일찍 솟은 태양이 아직
牛正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머물러라, 머물러라,
서두는 해가
달려서
저녁 기도 시간 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같이 기도하고서
너와 함께 가련다. -「水仙花에게」¹⁸⁾
A)는 던의 작품 일부이고, B)는 당시 왕당파(王黨派) 시인의 제1인자로 알려진 헤릭Robert Herrick의 작품 일부이다. B)는 꽃잎이 지는 수선화를 보며 그 짧은 영광의 순간을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잘 드러나 있다기보다 안타까워하는 감정 그 자체가 시적 내용의 핵심이다. 그러나 A)는 이별에 관한 감정의 직접적인 드러냄이 없이, 콤파스를 비유로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은 둘이면서도 함께 움직이는 하나라는 시적 인식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영혼은 콤파스와 같다는 이러한 기지wit를 통한 대상의 새로운 인식은 「수선화에게」와 같은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형이상학적 세계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작시법 또는 문체는 상징주의 이후 현대시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길」과 같이 전문어나 어려운 단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시속의 언어가 철학적인 것과 시가 철학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A)의 작품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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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창배 옮김, 『영미명시선』, 동화출판공사, 1974, pp. 13~14.
18 같은 책. pp 19-20.
『현대시작법』 오규원
2024. 4. 23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