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편67- 71 사 53장 4- 6절 우리의 고난 예수의 고난 원주희목사 180325 종려주일
https://youtu.be/X3bZ-ODQpok
구술원고링크
https://cafe.daum.net/bless-ch/DjAM/23?svc=cafeapi
서론: 본문의 선포 - 고난받는 종의 노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수백 년 전, 장차 오실 메시아가 겪으실 고난을 예표한 ‘고난받는 종의 노래’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사 53:3-5)
우리는 흔히 고난을 피해야 할 저주로 생각하지만, 오늘 성경은 고난이 우리를 낫게 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신비로운 통로임을 말해줍니다.
1. 로키산맥의 '무릎 꿇는 나무'가 들려주는 고난의 신비
북아메리카 캐나다에서부터 길게 뻗어 내려오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은 해발 4,000m가 넘는 웅장한 산맥입니다. 이곳에는 나무가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지점인 '수목 한계선(Timberline)'이 존재합니다. 대략 해발 3,000m를 넘어서면 매서운 바람과 혹독한 추위 때문에 나무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극한의 수목 한계선 위쪽에서 자라나는 기이한 나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매서운 바람을 견디기 위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땅에 바짝 엎드려 옆으로 삐쭉하게 누운 채 자라납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가리켜 **'무릎 꿇는 나무'**라고 부릅니다. 겉보기에 이 나무는 비틀리고 볼품없어 보입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쓸데없는 나무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나무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혹한과 강풍을 불굴의 투지로 이겨내며 자란 이 나무의 목질을 조사해보니, 그 밀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단단했습니다. 고난을 견뎌낸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야무진 목질입니다. 전 세계의 악기 제작자들은 이 나무를 찾아내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듭니다.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얇게 깎을 수 있어 소리의 공명(Resonance)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의 혹독한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약초들이 세계 최고의 약성을 지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려는 생명력이 그 안에 엄청난 에너지를 응축시키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결코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생명은 가장 귀한 소리를 내는 명품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됩니다.
2. 인생의 필수 여정인 고난, 하나님은 왜 허락하시는가?
여러분,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고난'입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우리 인생 여정의 필수 과목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고달픈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고난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나뉩니다. 어떤 이는 고난에 짓눌려 인생이 피폐해지고 원망 속에 죽어갑니다. 또 어떤 이는 고난과 싸워 승리했지만, 그 승리가 ‘자기 의(Self-righteousness)’가 되어 교만의 낭패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다듬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의 네 가지 이유와 그 너머에 있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3. 고난의 목적 (1): 기도를 배우게 하심
고난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배우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도움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세상의 인맥과 돈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늘을 바라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기도 초대장'입니다. 성도에게도 질병이 찾아오고, 노환이 오고, 경제적 시련이 닥칩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사사기 역사를 보십시오. 그들은 평안할 때 타락하고, 고난이 닥칠 때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 구원하셨습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이스라엘은 고난 중의 기도가 회복의 유일한 길임을 배웠습니다. 혹시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기도의 무릎을 꿇으라는 사인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4. 고난의 목적 (2): 말씀을 붙들고 자기를 돌아보게 하심
두 번째로 고난은 말씀을 지키는 삶으로 우리를 유턴(U-turn)시킵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우리의 많은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그릇된 행실'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고난이라는 '사랑의 매'를 들어 우리를 다루십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남의 탓을 하기보다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교정할 때, 인생의 근본적인 회복이 시작됩니다. 말씀을 지키는 삶은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열쇠입니다.
5. 고난의 목적 (3, 4, 5): 하늘 소망, 타인 이해, 그리고 십자가 연합
세 번째로 고난은 우리에게 하늘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우리 민족의 신앙이 가장 뜨거웠을 때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직후였습니다. 이 땅에 소망이 없을 때,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난은 땅에 붙은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립니다.
네 번째로 고난은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Compassion)**을 갖게 합니다. 자신이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본 부모만이 그 간절함을 알 듯,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성도는 고난받는 이웃을 품는 따뜻한 가슴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고난은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하게 합니다. 이것이 고난의 가장 깊은 신비입니다. 나의 고난이 깊어질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6. 종려주일: 왕의 위엄과 유월절 양의 희생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고 이 땅에 강력한 왕국을 세울 '정치적 메시아'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성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제사 지낼 양을 기다리며 서 있던 '양문(Sheep Gate)'을 통해,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히 들어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왕으로 환호했지만,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갖추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입을 열지 않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선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7. 십자가와 눈높이를 맞출 때 일어나는 회복의 역사
성도에게 있어 고난의 가장 큰 축복은 십자가와 눈높이를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밑바닥에 처할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우리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주님의 눈동자를 고난의 현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양선희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봄이 오는 길은 구불구불하다... 꽃들은 그 길을 맨발로 온다."
봄이 오기 위해 겨울의 추위를 맨발로 견디듯,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고난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에 칼을 휘둘렀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했을 때에야 비로소 주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환자들에게 "질병의 근본 원인은 신(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힐 때 인간의 영혼은 치유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게 만드는 강한 자극제입니다.
결론: 십자가와 연합하는 고난 주간을 위하여
이제 내일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이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바쁜 일상과 농사일에 매몰되어 주님의 고난을 잊고 살지는 않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며 의도적으로 고난을 체험했듯이, 우리도 이 한 주간 스스로를 경건의 고난 속에 밀어 넣어야 합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우리의 고난이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딱 마주칠 때 하늘의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그때 사단의 권세가 끊어지고, 우리의 영혼에 부활의 생명력이 쏟아집니다. 남 탓을 멈추고 주님께 집중하십시오. 십자가와 눈높이를 맞추는 이 한 주간이 될 때, 여러분의 인생은 로키산맥의 나무처럼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명품으로 빚어질 것입니다.
마침 기도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고난 앞에 떨고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고난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와 눈높이를 맞추게 하는 유익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고난 주간 동안 주님과 깊이 연합하여 부활의 생명을 충만히 누리는 내남제일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대신 질고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