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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똥'이라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똥' 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그리하여 시는 '똥' 이라는 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움까지 독자에게 되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모름지기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똥'에 유의해야 한다. 절대로 '똥'을 무시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되며, '똥'이라는 말만 듣고 코를 싸쥐어서도 안 된다. 똥을 눌 시간을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똥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똥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똥을 괄시했다가는 얼굴에 똥칠 당하기 쉽다).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서 한 보름 지낸 적이 있다.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세상의 일들을 뒤로 밀쳐 두고 싶은 속셈도 없지 않았다. 내가 묵은 곳은 산 중턱의 외딴집이었다. 그 집 뒤로는 인가가 한 채도 없었다. 지리산의 한 능선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방 안의 가재도구라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휴지통 하나가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전화도 없었다. 방 한 칸이 집 한 채인 집이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서 밤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마당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외딴집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밤늦게 글을 쓰다보면 늦잠을 자게 마련이어서 아침밥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은 실상사 공양간에서 얻어먹었다. 그렇게 하루 두 끼를 먹고 이튿날 눈을 뜨면 어김없이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까지 한참을 걸어내려가야하는게 귀찮아서 매일 뒷산에서 '큰일'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밥을 먹었으니 땅에게 똥을 돌려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삽한자루와 휴지만 달랑 들고 숲 속으로 가면 곳곳에 내 똥을 받아줄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산에서 똥을 누는 사람이 되었다. 아, 나는 그 아침의 오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똥 혼자서만 풍기는 냄새가 아니었다. 흙과 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기막힌 화음이었다. 도시의 화장실은 똥을 감추고 그 냄새를 지워버리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숨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양변기에 눈 죽은 똥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흙 속에 눈 똥은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흙 속에서 똥은 오롯이 살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시 한 편을 얻었다.
뒷산에 들어가 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한 뼘이다
쭈그리고 앉아 한 뼘 안에 똥을 누고 비밀의 문을 마개로 잠그듯 흙한 삽을 덮었다 말 많이 하는 것보다 입 다물고 사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감쪽같이 똥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똥은 무엇하고 지내나?
하루 내내 똥이 궁금해
생각을 한 뼘 늘였다 줄였다가 나는 사라진 똥이 궁금해 생각의 구덩이를 한 뼘 팠다가 덮었다가 했다
「사라진 똥」 전문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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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8, 28쪽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4. 9. 2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