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 강아지를 보면서
버드나무 열전-바이칼에서 천안 삼거리까지
꽃 샘 추위 속에서도 봄의 전령은 바쁘다. 시냇가 양지쪽에는 벌써 버들강아지가 윙크를 한다. 언제 이었던가,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1950년대 말까지도 서대문과 신촌이 연결되는 굴다리 변에 쌍과부집도 있었고 버드나무집도 있었다. 두 집 모두 나름대로의 상술이지만 대포 장사가 잘되었다. 살구나무집에는 살구나무가 있고, 은행나무집에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버드나무집에는 버드나무도 없었다. 아마 쌍과부집에 어울리게 버드나무집이라 붙였을 이름인지 모를 일이다.
버드나무 중에 신화에 나오는 붉은 버드나무는 형이상학적이지만 일상에서는 뭐라 해도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이 이야깃거리가 많다. 버드나무도 참 종류도 많고 이름도 많다. 버드나뭇과는 온대에서 한 대까지 약 35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39종이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필자의 관심은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이다. 수양버들은 흔히 수나라(隋)의 양제(煬帝)가 대운하를 완성하고 운하 양편에 버드나무를 심도록 했다는 데서 수양버들이라고 한다고 여기저기 적혀있다. 그리고 버들을 수류(隨柳), 또는 양류(楊柳), 수양(水楊), 수양(垂楊)이라 하는 것을 보면 언 듯 수양제에서 연유된 이름인 것 같다. 그런데 수양이란 두 글자, 수(隋, 隨)와 양(煬, 楊)에서 수나라의 양제라는 수양(隋煬)과 수양버들에서의 수양(垂楊)은 전혀 다른 글자이다. 이것도 사대주의이고 모화사상의 부회(附會)는 아닐는지?
붉은 버드나무
버드나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수양과 능수에 앞서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고주몽과 유화부인에 얽혀 있는 붉은 버드나무, 바이칼 홍류(紅柳 Siberia purple willow, 주채혁)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주몽의 설화를 보면 '저는 하백(河伯), 곧 강신(江神)의 딸 버들 꽃(柳花)입니다. 압록강의 ‘곰 마음 못(熊心淵)’에서 놀다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만났습니다.' 여기서 버들 꽃(柳花)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이다. 고주몽 설화는 유화(柳花) 부인을 성모(聖母)로 받드는 붉은 버드나무(부르한 不咸) 신앙으로 연결된다.
설화에 나오는 붉은 버드나무의 시원은 바이칼호로 연결된다. 알타이산맥에서 바이칼호로 길게 뻗은 거대한 사얀산맥이 이르쿠츠크가 있는 그 서남단을 감싸 안고 있으며 이어서 바이칼호 남동부로 이어지는 붉은 버드나무(紅柳) 산맥이 있다. 이르크츠그의 바이칼 대안 도시 이기도 한 러시아 부리야트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는 셀렝가 강(Selenge River)과 우다 강(Үдэ гол, Uda River)이 만나는 곳에서 우다 강 위쪽 분지에 위치하고 붉은 버드나무 산맥(울란 부르칸, Ulan-Burgas)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부르칸(бургааhан, Burqan)은 몽골말로 버드나무(Верба, Verba), 불교용어 부다(Budda)와 유사한 ‘하느님’을 뜻을 가진다. 이 지역의 나나이족(那乃族)의 말로 버드나무를 부르칸(Burqan, 不咸, 하느님)이라고 한다. 불함(不咸)-부르한 신앙은 스키토·시베리안 원주민 사회에 보편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분포돼 왔다. 바이칼 호수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물이 있는 곳이면 버드나무가 있고, 대개 수렵-유목민들이 살아왔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흰색, 누런색, 그리고 붉은색이 있는데 저습 지대의 붉은 가지 버드나무인 홍류 떼는 고원 지대의 자작나무 떼와 함께 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됐다.
만주 지역에서 보드마마(柳母) 신앙은 버들아기(柳花)에서 버들어미(紅柳花)가 되어 하늘 자손을 잉태하는 모태로서 하느님을 말한다. 불함(不咸)-부르한 신앙에서 불함(不咸)은 육당이 ‘밝음’으로 해석한 것과는 달리, ‘몽골비사’ 초두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 관련 기사에 나오는 ‘부르한 칼둔’의 ‘칼둔’을 일종의 버드나무로 보아 ‘부르한(不咸)’을 ‘붉음’과 연관 시킬 수 있다. ‘버드나무’ 자체를 ‘부르칸(Purkan)’이라고 하는 나나이족의 말은 ‘부르칸’과 ‘버드나무-보드마마 신앙’이 직접 접맥될 수 있으며 ‘부르한’은 천손의 모태가 된다. ‘조선류(朝鮮柳)’라고도 불린 홍류의 상징은 보드마마인데, 바로 이 ‘보드마마(柳母)’가 ‘부르한’인 사람들의 모성 하느님이 된다. 해(태양)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한 여인의 몸과 맘에 내재화해 회임한 모태로 다시 태어난, 모성적 사랑의 주체가 그들의 하느님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의 ‘부르한’은 ‘밝음’이 아닌 붉은 버드나무에서의 ‘붉음’의 뜻을 갖는다(주채혁).
연길시 부루하통하의 버드나무
붉은 버드나무는 오늘날에도 연변에 살아있다. 버드나무는 만주와 고구려의 신목(神木)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중심도시인 연길시의 도심지를 가로지르는 강이 "부르하통하(布尔哈通河, 전장 424km)이다. 부르하통은 여진족 말로 ‘버드나무 강’이란 뜻이다. 버드나무는 곧 버들꽃 아씨의 상징이고 바로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柳花夫人)이다. 버들꽃 아씨는 강의 신 하백의 딸이다. 천손 해모수와 사이에서 주몽을 낳았다. 강의 신 혹은 물의 신의 딸이니 이는 곧 농경 세력을 뜻한다. 그리고 해모수는 북방 기마 유목 부족이다. 북방 기마 유목 부족과 정착 농경 부족이 연합한 것이다. 이 두 세력의 연합과 다툼에서 유화부인의 세력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겠다. 버들꽃 아씨는 다시 부여왕 금와에게 쇠그물로 사로잡힌다. 이는 곧 철기세력인 부여세력에게 버들꽃 아씨 세력이 지배당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주몽이 성장하여 부여를 벗어나니 곧 고구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경호텔과 유경정주영체육관
평양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평양을 ‘버드나무 수도’라는 뜻의 ‘류경(柳京)’이라 부르는 이유다. 고구려의 서울이었던 평양, 당연히 버드나무의 도시가 된다.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 ‘조선류’의 상징이 보드마마인데 고래로 평양은 버드나무 도시이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도시가 바로 평양의 옛 이름이 유경(柳京)이다, 근간의 버드나무와 얽힌 사연은 유경호텔이 있다. 유경호텔은 피라미드식으로 건설되는 105층 규모의 북한 최대의 호텔이다.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 언덕에 있다. 이 호텔은 1987년 8월 28일에 착공되었다가 1989년 5월 31일 외부 골조 공사만 완료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후 2008년 이집트의 통신회사인 오라스콤(Orascom) 그룹이 2011년에 완공하였다.
유경을 이름으로 붙인 기념비적인 또 하나의 건물이 있다. 바로 유경정주영체육관이다. 이 건물은 평양 보통강 구역 유경동에 세워진 1만 2309석의 대규모 종합체육관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측의 민간 기업이 평양 시내에 건설한 현대식 체육관이며 남측의 자본과 기술력, 북측의 노동력이 합쳐진 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 체육관은 현대건설 정주영 명예회장의 의지에 따라 1999년 9월 29일 착공식을 하고 2003년 5월에 공사를 최종 마무리했으며 2003년 10월 6일에 개관식 행사하였다.
평양의 버드나무와 관련된 또 다른 사례는 남북정상회담과 '푸른 버드나무'의 이야기다.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공연-우리는 하나'는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호 공연단 방문공연이 있었다. ‘우리는 하나’는 두 번째 평양공연이지만 앞서 ‘봄이 온다’가 남측 공연단의 단독무대였던 것과 달리 남북합동공연이었다. 우리 예술단이 평양 '봄이 온다.' 공연에서 부른 북한 노래 '푸른 버드나무'가 화제이었다. 이 공연에서 사회자로도 활약한 그룹 소녀시대의 서 현이 열창한 '푸른 버드나무'가 주목받았다.
대중의 삶에 녹아 있는 버드나무 노래
앞에서 보았듯이 붉은 버드나무에 대한 신화적 해석인 ‘밝음’과 ‘붉음’은 연길과 유경이란 두 곳에 어떻게든 녹아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인 서울에도 버드나무는 엄연히 살아있다. 남쪽에서 생활 속의 버드나무는 양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후 민둥산을 녹화할 때 외래종인 아카시아와 미루나무가 속성수로 선택되면서, 거꾸로 꽂아도 살아나는 버드나무를 외면당했지만, 버드나무는 실개천에서라도 자리를 지켜오며 풍성해졌다. 산업화 과정에서 버드나무는 꽃가루 앨러지 문제로 가로수 식재로는 천대(?)받았다. 그러나 이농과 도시화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의 향수를 달래는 소재로는 버드나무만 한 것이 없다. 특히 대중가요에서 버드나무는 엄연히 우리의 향수를 달래고 마음을 감싸주고 있다.
우리는 노래 속에 ‘버드나무’는 사랑과 얽혀있다. 이 도령이 성춘향과 처음 만난 곳도 버드나무 숲이고, 사랑하는 사이에 정분을 나누고 헤어지는 장소도 버드나무 아래가 많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이고, 현대시, 시조, 민요에서도 소나무가 많지만, 풍류적인 한시, 판소리, 대중가요와 가곡에서는 버드나무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버드나무’가 들어간 노래 제목들로는 강버들, 능수버들, 수양버들, 버드나무, 버들잎, 버들피리, 실버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앞뒤에 한마디씩 붙여서 제목을 정한 것이 많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추억이 많고 공유할 사연을 남기고 싶어서 그렇게 제목을 정했는가 보다.
제목뿐만 아니라 노랫말에도 ‘버드나무’ ‘버들’이 들어간 노래는 수없이 많다.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노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박단마, 열일곱 살이예요),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고복수, 타향살이),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가에 기대어’(백년설, 번지 없는 주막),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백년설, 대지의 항구), ‘수양버들이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한명숙, 우리 마을),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심연옥, 한강) ‘아 가을인가 물동에 떨어진 버들잎을 보고요’(나운영, 아, 가을인가) 등 귀에 익은 노랫말 들이 있다.
[참고: ' 버드나무 열전-바이칼에서 천안 삼거리까지' ,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隨想 3, 우민화의 떡밥, 노답의 타령, 한국문학방송, 2021.10.5.: 18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