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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동경지방)에서의 3박4일
충정북도교육청 관리국장 김근학
오랜만에 일본에 공무해외출장을 할 기회가 왔다. 이번 출장은 새로운 문민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의 15개시도 교육청에서 지방교육재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선진 각국의 지방교육제도의 국제비교를 통한 전문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여 담당공무원들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아울러 사기 앙양을 통한 지방교육 예산의 바람직한 편성 방향과 예산 담당 공무원의 안목을 높이고 새로운 시대감각을 갖게 하고자 의욕적으로 계획한 프로젝트인데 이 계획의 처음 방문국이 일본이다.
본 계획은 사전에 치밀하고 현실성 있는 계획을 수립하여 현지 견학 위주가 아닌 과제 해결 중심의 밀도 있는 연수가 실시되게끔 각급 교육행정기관이나 현지 학교를 방문하여 우리의 제도와 운영 실태 및 방문국의 지방교육 재정제도나 교육제도를 비교 분석토록 하여 연수의 내용의 질적인 면에서 향상을 기하는 동시에 문화 유적이나 박물관, 명승지 등을 방문 견문과 안목을 높이도록 하여 연수 효과 거양에 많은 기여를 하도록 계획이 수립 되었다.
출발하기 하루 전인 2월 23일 오후 2시에 서울시 교육청 회의실에서 예산 담당 공무원 현지 국외 연수에 따른 사전 연수를 실시하였는바, 현지 국외 연수에 필요한 출국 준비 점검 및 국외 연수 세부 일정을 확정 하고 시도별 개별 연수 과제와 질의 토론 내용을 확정 하였다.
2월 24일 07:30에 드디어 연수단 일행 34명은 첫 방문국인 일본을 향해 KAL 9702편으로 출발 하였는데 당시 서울의 날씨는 맑고 기온은 영상 1℃를 기록 하고 있었다.
예산담당관 연수 참석자 기념 촬영
이륙 후 약2시간 만에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는데 공항에 도착 전에 일본에서 가장 멋진 경관이며 걸작이라고 하는 후지야마(후지산3776m)가 발아래 다소곳이 그 모습을 나타냈다가 비켜 갔다. 동경에서 66km 상거한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서울보다 약간 높은 기온 7℃에 바람이 약간 부는 쌀쌀한 날씨를 느끼면서 짐을 찾은 후 우치야마(내산)관광 회사의 버스를 이용 동경 시내로 이동 하였다.
일본은 흔히들 우리나라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삼한시대 이래로 역사적인 교류가 많이 있었지만 과거의 역사 때문에 우리 민족의 인식 속에는 좋게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들 표현해 오고 있는 것이다.
동경 시내로 이동하기 전에 나리타에 소재한 일식 음식점인 장명천에서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새우튀김 정식으로 점심을 하였다. 일본 음식은 고춧가루와 마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분량도 먹을 만큼 주기 때문에 남겨지는 음식이 별로 없게끔 하고 있어 이런 점은 우리나라에서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 하였고 식사 후 동경시내로 이동 하였다.
일본을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우선 우리와 교통체계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각종 차량의 운전석이 우리와 다르게 오른쪽에 설치되어 있고 차량 소통은 왼쪽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구미각국 대부분이 차량의 운전석이 왼편, 통행은 사람이 왼쪽으로 하고 차량은 오른쪽으로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이고 통행은 우리와 반대인 것이다. 이런 생소함이 이국적인 정취를 더욱 느끼게끔 하였다.
동경 시내로 이동해서 동경애서 최고로 높다고하는 동경TOWER(333m)에 올라 동경 시내를 사면으로 조망해 보았다. 높고 낮은 빌딩이 도열해 있고 도시 군데군데 우거진 숲이 도시의 적막함과 고독함을 달래주고 있으며, 숲이 길게 우거진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있는 곳이 일본 왕이 거주하고 있는 황거라 한다. 동경타워에서는 빌딩 숲속 사이로 도심에 일본식 무덤도 있고 멀리 동경만이 보였다.
동경타워 관광 후 우에노 공원으로 이동해서 백제의 선지식인 왕인박사 묘소를 참배 했다. 일본에게 1700여 년 전에 문자를 전해 일본 문화가 발전 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한 훌륭한 선조님 앞에서 자랑과 긍지를 갖는 한편 일말의 부끄러움을 갖고 일행은 경건하게 참배하였다. 훌륭한 조상께서는 문화를 전수 했으나 못난 후손들이 일본에게 강점당하는 수난을 당한 것은 후손들이 나태하고 무능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우리도 일본을 능가 할 수 있는 실력 배양을 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다짐 했다.
일본에 문자(천자문)를 전달한
백제 왕인박사 묘소를 참배하고…….
이어서 일본에서 불가사의한 걸작이라는 아사쿠사 신궁을 방문 했으며 뒤이어 신주쿠를 둘러 봤다. 지반이 단단하여 새롭게 건축한 일본 동경도청이 있고 지사가 정치 생명을 걸고 건립한 웅장한 건물들은 일본 번영의 상징인 것 같다.
석식은 동경도 신주쿠 소재한 한식 불고기집인 미선장에서 불고기 뷔페를 하였는바 고국에서 먹던 불고기 맛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한 점이 없었고 미선장 식당은 체인이 3개소라고 하며 동경의 요지에 체인점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체인점의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충북 청원 낭성 출신 송석인씨로 송 씨는 나의 처갓집 동리에 살던 사람으로 우리 처가와는 잘 알고 지내는 친지 분이었다. 이국 만리타향에서 처갓집 동리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만감이 교차되는 묘미라고 하겠다. 송 씨는 도일한지가 3년인데 일본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으며 일본에 정착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석식을 마친 후 일행과 함께 송석인씨와 아쉬운 석별을 하고 숙소인 신주쿠 소재 KE10 PLAJA HOTEL(갱광)에 여장을 풀었다. 고국을 떠난 첫날이지만 이국에서 갖는 첫 밤은 기대에 찬 밤이었다. 같이 간 엄학수 주사와 함께 룸에 들어가 짐을 풀고 몸을 닦고 있을 때 단장인 조영희 대전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본 동경 한국교육원 민경식 원장께서 자기 방에 오셨다고 하여 건너가 만났다. 민 원장을 일본에서 만나 보니 또한 감회가 깊었다.
내가 문교부 과학교육과에 근무할 당시 교육연구관으로 계시면서 KEDI(한국교육개발원)업무와, 교육 방송인 TECOM업무를 담당 하시면서 넘치는 위트와 구김살 없는 대화로 사무실 분위기를 주도 했었던 민 원장을 외국에서 맞나다니 참으로 반가웠다. 민원장과 잠시 옛날 과학교육과 시절의 애기로 꽃을 피운 후 민원장이 동경의 밤에서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서 동경의 야경을 보면서 한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초대를 하여 민원장과 조단장, 동경 교육원 김 부장과 나 넷이 신주쿠 소재한 일본식 술집에 가서 민원장의 특유의 해학과 위트를 즐기면서 산토리 일본 위스키를 마셨다.
나름대로 일본식 안주가 대여섯 가지 나오는 특색 있는 술집으로 일본인 청장년층이 자주 많이 오는 곳으로 민원장의 단골집로 삼고 있는 집인데. 이 집의 특색은 손님이 단골손님이겠지만 마시다 남은 술을 보관증을 주고 보관 했다가 다음에 그 손님이 오면 그 술을 제공하는 스타일로써 일종의 사업 수완이라고 볼 수 있었고 이 술집의 주인은 중년 인사로 일본 특유의 상냥함으로 우리 일행을 맞아 이국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줄여 주었다.
갈 때도 민 원장 차로 갔었지만 민원장이 KE10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민 원장은 일본 근무가 4차례로 우리 교육부에서 일본에 대한 이해와 관심과 조예가 많은 일본통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금년에 5년 만기가 되면 귀국 할 것으로 예정 되었다고 하였다. 민원장과 귀국하면 재회를 다짐하면서 민원장과 헤어졌다. 민 원장을 드리기 위해서 가져 갖던 제천산 오곡밥 세트를 드렸더니 혼자와 있으니 필요한 다른 사람을 주라고 했지만 고국 냄새가 풍기는 오곡밥을 고향이 그리울 때, 고국이 그리울 때 향수를 달래면서 드시라고 맡기고 왔다.
호텔에서 피곤함 때문인지 시차도 있고 해서 편히 쉬고 아침에는 호텔에서 일식인지 양식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먹고서 동경 한국학교를 방문 했다. 동경 한국학교는 초중고를 병설 운영하고 있는바 교장인 김정규 선생님께서 자세한 안내를 해주었다. 동경한국학교는 1954년에 재일 교포인 김재화씨가 이사장으로 취임 초중등부를 개설함으로서 개교 되었고 1956년에 고등부를 설치하여 자체적으로 운영하다가 1962년에 대한민국정부로부터 정식 인가 되었고 1968년부터는 재일 동포 2세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 때문에 본국 정부에서 교장을 파견 해오고 있다고 하며 현재의 학생 수는 초등부 458명, 중등부 204명, 고등부 218명 등 880명 재학에 교직원 수는 교장1, 교감1, 교사 42명 사무직원 7명 등 51명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교실 등 각종 시설은 훌륭하게 가꾸어 놓고 있었다. 운동장은 우레탄으로 포장되어 있고 각종 특별교실, 회의실 등이 잘 가꾸어져 있고 체육관은 5층에 시설하여 최대한 공간과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용지난에 대비 하였다.
김정규 교장 선생님 말씀은" 국제화 시대에 대비한 쓸모 있고 존경 받는 한국인을 육성" 하자는 교육 목표아래 우리 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 하고 세계 문화 이해와 세계시민으로서의 능력 배양과 국제 친선 교류와 외국어 교육의 강화 등 학교의 설립 목적과 특색을 살리도록 전 교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고 하였다
교육 방법으로는 이론 보다는 직접 체험하고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을 함으로서 다양한 능력을 배양하고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어 시대감각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동경한국학교에서 특이하게 보고 느낀 사항은 시설면이 아닌가 생각 된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 하였으며 보통 교실은 물론 각종 특별 교실과 권장 시설을 고루 갖추어 지덕체 교육이나 노작학습에 손색이 없도록 하고 운동장도 우레탄으로 포장하여 학생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고 교실 등 실내가 항상 청결 하게 유지되도록 좋은 교육환경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며 체육관 겸 강당이 5층에 위치하여 전천후로 체육 활동이 이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 하였다.
동경한국학교의 시설 견학 후 09:30분부터 동경한국학교 회의실에서 일본 문부성 소속 예산담당 과장인 구보대와 동경도 교육청 총무부 기획실 기획담당과장 구전유남이 주관하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조직과 운영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대한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 하여 일본의 지방자치제도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에 관한 내용을 듣고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질의 토론하였다. 대체적으로 일본의 교육 자치는 우리의 풍토와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교육 자치는 우리나라의 교육 자치 개념과 많이 달랐다.
종전 후의 교육 이념에 따라 교육, 예술, 문화에 관한 업무는 기본적으로 지방 공공 단체가 하고 있었다. 교육의 특수성인 정치적 중립, 교육행정의 안정, 주민 의사의 반영이 요구되어, 이를 위해 도도부현 및 구시정촌에서는 지사 또는 구시정 촌장으로 부터 독립된 행정위원회인 교육위원회가 설치되어 교육 행정의 방침 및 시책은 교육위원회의 합의에 의해 결정하고 있었다, 동경도의 교육위원회는 도지사가 의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 된다. 임기를 5년이며 비상근이다. 또 교육위원회는 교육장 직이 있어 교육위원회의 지도 감독을 기초로 교육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다. 동경도 교육위원회의 교육장은 동경도 교육위원회가 문부대신의 승인을 받아 임명 한다, 동경도 교육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동경도 교육청은 교육장이 통활 한다.
동경도청 제1본청사 앞에서…….
동경도 교육위원회를 방문해 보니 동경도 청사에 사무실이 있으며, 별도의 교육청 현판은 없었다. 교육청을 방문하고 느낀 것은 교육에 대한 최종 책임은 지방공공단체의 장이 지게 되어 있고 특수성, 전문성 때문에 별도의 교육위원회를 두고 교육장을 임명하여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르며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의 교육이 잘못되어진다고 볼 수 없었고 일본의 전후 복구와 경제개발 등 국가중요 현안 모두가 교육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안정되고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문부성 담당관과 일본 교육재정제도 및
교육 자치에 대한 현황 파악 및 토론 하는 광경
점심은 신주쿠 소재 한식집인 동해원에서 하였다. 이야기를 들으니 동해원의 주인은 일본인으로서 동해원이라는 상호를 갖는 체인점을 동경 시내에 여러 곳에 갖고 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비빔밥을 먹으면서 우리나라 국력의 신장을 피부로 느꼈다, 일본인이 우리나라 음식점을 경영하여 돈을 벌려고 한다는 자체가 우리 국민들이 일본 지역에 많이 거주 할 뿐 아니라 많이 드나들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해마다 관광객이나 업무상 방문하는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을 보는 시각이 좋아지고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대만인들이 일본을 많이 방문하였지만 지금은 우리 국민의 방문 숫자가 대만인을 앞지르고 있다고 한다.
점심 식사 이후 일행은 동경도 신주쿠에 소재한 와세다 소학교를 방문 했다. 와세다 소학교는 개교한지가 105년이나 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서 교사가 낡아서 이를 개수하여 현대화 하는데 6억 엔을 투입 하였고 현대화에는 학교장 의견을 최대한 반영 하였다고 하며, 다시 개축할 수도 있으나 전통과 옛 모습을 살리기 위해서 겉모습은 옛날 모습 그대로 두고 내부를 전면 현대 감각에 맞게 개수 하였는데 교육용 기본 시설은 물론이고 특별 교실이나 권장 시설, 급식 시설 등을 완비하여 일본의 차세대를 이끌어 갈 우수한 인재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통신, 전기 등 각종 시설을 지하화 하여 미관과 안전을 고려하였고 보건장(운동장)도 우레탄으로 포장하고 공간을 최대한 활용 하였을 뿐 아니라 체육관, 예절실, 어린이 회의실(자치실), 상담실, 음악실, 이과실, 도공실, 보건실 등을 구비 하였고 심지어 수영장까지도 운영하고 있었다. 수영장은 수영 철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놀이터로 변경 사용 하고 있었다.
일본은 국력 재력이 풍부한 나라라고 하지만은 소학교에 각종 시설을 구비하여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또한 여러 면에서 균형적인 감각을 갖고 발달 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구비하여 주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더욱 성장 발전하고 교육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투자도 더욱 활발해져서 어린이들 마음껏 뛰어 놀고 성장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절실 하다고 생각 하였다.
와세다 소학교에 방문 시 특히 느꼈던 점은 시설설비를 조성할 때 모든 면에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복도 벽에 나무와 돌은 붙여 놓고 있어 이유를 물으니 어린이들의 심성을 부드럽게 하여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연미가 많은 나무와 돌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교실의 출입문도 비스듬히 하여 공간을 좁은 유리로 처리 내부가 보일 수 있도록 하고 어린이들이 교실에서 문을 열고나올 때 충돌을 예방하도록 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었고, 소화기 는 벽을 파서 거의 편편한 상태에서 비치되도록 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하고 있었다.
와세다 소학교의 방문을 마치고 동경도청 교육위원회 교육청을 방문 견학하였다. 동경도청은 신주쿠에 60층으로 건립하여 그 웅장한 모습이 가히 일품 이었고 일본 교육위원회는 오전에는 교육위원회에서 사용하였으나 오후에는 교장회의를 개최하려고 의자를 다시 배열하였기 때문에 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하여 견학을 생략하고 교육청에 조영희 연수단장과 본인만이 잠깐 들러 인사만 하고 나왔다.
동경에서 공식 일정을 마치고 동경을 출발하여 하코네로 향발 하였다. 하코네로 출발하는 도중에 24일 방문을 하려다 못한 명치 신궁을 둘러보도록 하였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명치유신의 주역인 명치일왕을 모신 명치신궁을 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와의 관계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도 근대화의 시기를 포착하여 정착시켰더라면 일본에 강점당하는 민족적 수난이나 역사의 오점을 남기지 않고 더욱 잘살고 주체적인 지위가 향상되었지 않나 하면서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명치 신궁을 둘러보았다.
명치일왕은 1868년 명치유신을 선포하고 200여 년 동안 집권해오던 도쿠가와 막부를 폐지하고 일왕의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외국의 선진기술 문명을 도입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서구에 유학생을 다수 파견 하였고 국민들의 체질을 개선하여 일본인들의 체위를 향상하여 ‘체력이 국력’이라는 이념아래 쇠고기 덮밥을 개발하여 일왕 내외가 즐겨 먹고 국민들에게도 적극 권장 하였다고 하며 쇠고기 덮밥을 일명 ‘명치일왕의 밥’이라고도 하였다고 하였다.
명치신궁을 관광하고 난 후 16:30분경 일행은 uchiyama관광회사에서 나온 전용 버스를 타고 하코네를 향하여 출발 하였다. 일본의 국립공원 37개 중 하나로 동경에서 시간만 잘 활용하면 하루에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명소이다.
하코네는 일본수도인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90km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의 하나이다. 항구 요코하마와 고도인 가마쿠라에 가까우며 일본 최고의 걸작이며 명산인 후지산이 하코네 곳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볼 수 있고 그 모습을 거울과 같이 비추어 주는 호수 아시노호를 비롯하여 화산 활동이 낳은 아름다운 풍광과 곳곳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온천과 군데군데 일본 고대인과 현대인의 체취와 정치가 깃들여 있는 역사적 명소와 현대적인 관광시설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국립공원 이라고 한다.
현재도 하코네 일대에는 다수의 역사적 유적이 오랜 역사와 전설을 말해 주고 있었고 동시에 근대적인 호텔과 여관, 관광시설, 공원, 미술관, 과학관, 식물원, 향토자료관 등이 있다고 한다.
기후는 비교적 온난하며 특히 여름의 피서지로서 유명하다. 교통은 국도와 잘 정비된 드라이브 웨이가 일본 전국에 사방으로 뻗어 연결되고 있으며,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년 2,0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재스퍼 국립공원과 뉴질랜드의 타우포시와는 자매 도시로서 맺어져 있다고 한다.
하코네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만 년 전 하코네 화산에서 최초의 분화가 일어나서 원추형의 거대한 성충화산(해발3000m)이 생겼다가 그 후 화산 활동이 그치고 중앙부가 함몰되어 칼데라가 생겼었고 이어서 제2기 화산 활동을 거쳐 제3기 활동 시기에 하코네에서 가장 높은 카미야마(해발1438m)와 고마가타케(해발1357m) 등의 산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하코네 화산 활동의 최후를 대표하는 대폭발이 현재의 오와쿠다니 지역에서 일어났으며 산사태가 크게 일어난 하야카와 강의 상류를 막아 아시노호가 생기게 되었고 화산 중심부였던 오와쿠다니에서는 지금도 연기를 내뿜고 있어 세계 각지에서 이를 보려고 관광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하코네 지역 일대에는 더운 물이 풍부한 온천이 헤이안 시대(794 ~ 1192)로부터 개발 이용되어 그에 따라 교통망도 거미줄과 같이 발달되고 일본의 온천 문화가 정착되게 하였다. 따라서 역사유적이며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고 또한 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후지하코네상근 국립공원은 일본인들이 평생에 한번 다녀가기를 열망하는 명승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숙소를 정하려면 반년 전에 예약 하여야만 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하코네가 가까워지면서 일본 제일의 명소, 제일의 경관이라고 하는 후지산의 위용이 시야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나타났다가 커브를 돌 때는 앞산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또 커브를 돌면 나타나고 하였다. 하코네 지역은 웬만한 곳을 파면 수질이 좋은 온천이 될 정도로 온천이 많기도 하고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일본인들은 목욕을 매우 좋아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다.
우리가 가는 지역은 해발 800M에 위치한 화월원으로 산이 높기 때문에 기온이 낮고 눈이 약간 쌓였고 발아래는 호수가 옅은 안개 속에 누워 있는 경관이 아주 좋은 곳 이었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로 하코네 숙소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는데 차창 밖으로는 이국적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이 곳 일본 땅은 우리 민족에게는 많은 사연과 회한을 안겨 주는 땅이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많은 관계, 선린 관계를 갖고 있지만은 또 많은 이상한 관계,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지내 왔던 이 땅, 개인적으로 50여 년 전 일본이 우리 강토를 강점 했을 때 부모님께서 큰아버지를 찾기 위해 도일하신 후 순자 정자 근학 우리 3남매를 이 곳 일본 교오도(경도)에서 낳은 곳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상념들이 차창 밖으로 나타나는 이국 풍경에 어우러져 나타났다 없어지곤 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재일한국인 관광가이드 홍옥화씨는 하코네 지역 구석구석 널려 있는 전설들을 재미있고 실감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러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버스는 어느 덧 우리의 숙소인 하월천에 당도 했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를 배치 받은 후 짐을 풀고 침상에 있는 일본식 욕의인 유까다를 입고 간단히 소세를 하고서 일본 정종을 곁들인 일본 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곳은 온천 지역이기 때문에 욕의 위에 검은 천으로 만든 하오리(탄테)를 입고서 실내 뿐 아니라 복도나 로비 층을 나가도 괜찮고 대중이 있는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해도 괜찮다고 해서 일행은 대부분 이 차림으로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한 후 바로 온천 목욕을 하면은 혹여 신체에 무리한 부담을 줄 것 같아서 약 30분 후에 목욕 하도록 일행에게 주지를 하였다. 이곳은 수질이 좋고 조용한 곳으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일행 이외에도 밤늦게 일본인 관광객들이 부부동반, 연인동반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 화산대 화산 지역에위치 해있기 때문에 양질의 온천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일본인들의 문화를 목욕 문화라고도 흔히들 이야기 하고 있다.
언젠가 일본의 3대 신문사 중의 하나인 요미우리(독매)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즐거움에 대한 설문을 조사 했다고 한다. 이 때 제일 즐거운 일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부의 낙이고, 세 번째는 온천에 와서 피로를 해소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고 할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목욕은 그 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인들에게 목욕이 생활화 되어 있기 때문에 목욕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있다. 온천장에 와서 하룻밤을 자면서 목욕을 한번만 하는 사람은 그저 그러한 보통 사람이고, 두 번 하는 사람은 깔끔한 사람이라고 하며, 3번을 하는 사람은 깍쟁이라고 한다고 한다. 나는 5번을 하였는데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저녁에 목욕을 하고서 1층 로비에 와서 TV를 틀었더니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고 중간에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식 광경을 보도하고 있었다. 신한국 창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께서 국민 앞에 선서하는 광경과 취임사의 요지 및 취임식 참석자에 대한 내용을 보도 하고 있었다.
1층에 있는 매점에서 무슨 기념품 살 것이 없는가 하고 관찰해 보았으나 일본 물품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어서 동경만에 연해 있는 이두(伊頭)반도에서 나는 자연석으로 된 목걸이와 반지를 눈여겨보다가 구입하지는 않았다. 다시 룸에 올라갔다가 탕에 들어가면서 탕 입구를 눈여겨보았다. 목욕 문화가 발달하고 목욕을 생활의 중요 부분으로 인정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남탕 입구에는 남자 대욕장 어전방(男子 大浴場 御前方)이라고 쓰여 있고 여탕에는 부인 대욕장 어전방(婦人 大浴場 御前方, ladies hot spring bath)라고 쓰여 있었다. 탕을 4단 폭포 형태로 되어 있어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시원하게 들리고 물은 목욕하기 알맞게 따뜻하였다.
하코네 하월천 온천호텔 옥상에서…….
멀리 후지산 정상이 보인다.
온천욕을 하여서 그런지 비교적 숙면을 하고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주위를 돌아보니 동편 하늘에는 붉은 해가 떠오르는 노을이 비친 가운데 한쪽에 검으면서 흰 구름 덩어리가 있는 것 같아 구름이 참 멋있게 드리워졌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간 엄선생과 그 쪽을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을 찍다보니 휜 구름의 검은 띠가 사라지면서 후지산 상층부의 만년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전날 우리 일행 중의 몇몇은 이곳 KAGETSUEN HOTEL에서 후지산이 보일 것인가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아스라이 후지산의 정상이 나타나자 가벼운 흥분을 느낄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그래서 일행들은 일찍 일어나서 나온 분들과 더불어 후지산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사진촬영을 하였다.
아침에 온천욕을 하고 호텔 내에 있는 식당인 하월원에서 초밥으로 조식을 하였다. 일본 음식은 먹기에 알맞게 개인 별로 배식을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면 남기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낭비가 없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 할 수 잇도록 조리가 되었다. 특히 일본 음식은 영양이 고루 배합된 건강식 일 뿐 아니라 미용식으로 개발 되었다고 한다. 음식은 어느 나라나 특색이 있다. 음식은 조립법에 따라 같은 재료를 사용했더라도 맛이나 영양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또 같은 음식의 양을 먹더라도 먹는 순서에 따라 영양의 섭취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여행 3일째인 26일 일행은 조식 후 UCHIYAMA 관광버스에 올라 일행은 현지 학교 시찰을 위해 하코네 온천소학교를 향하였다. 하코네 온천소학교로 가는 길은 계곡을 굽이굽이 돌고 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곳곳에 온천이 산재 있고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각종 편의시설과 어울려져 모습을 나타냈다 사라지곤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국의 산하에서 전개되는 풍경들을 감상하고 안내원의 실감 있는 설명을 들으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이 곳 하코네 일대 산하에는 아직은 2월 말이라 다소 이른 편이지만 3월 중순경에는 매화, 진달래꽃 등이 흐드러지게 만발하여 더욱더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곤 한다고 한다. 일행이 목적지에 가까이 올 무렵에는 출발할 즈음에 짙게 끼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하코네 온천소학교 방문
드디어 일행은 하코네 온천소학교 입구에 도착하였다. 학교 입구에서 하차한 일행은 약300M 정도 도보로 학교에 도착해 보니 일행을 영접하기 위한 학교 교무직원과 길이 어긋난 것을 알았다. 입구가 2곳인데 교무 주임은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았다. 일행은 학교에 도착하여 大橋勝二 校長 선생님으로부터 학교 현황을 설명 듣고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문의 하였다.
하코네 온천소학교는 1873년에 설립된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로 학생 120명에 학부모는 84명, 교직원 12명으로 구성 되었으며, 그동안 2차례의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최근 1987년에 개축할 당시에는 종전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도록 설계 하였다고 하며 구교사 현관을 운동장 일각에 보존하여 동창회나 지역 사회 주민들의 정서에 보답하고 있었다. 학교 운영에는 지역 사회 주민이나 학부모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 후원 하고 있어 학부모 총회(PTA)시는 90% 이상이 참여 하는 열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도 전통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곳 온천소학교는 일본에서 교내에 온천 목욕탕이 있는 2개 학교 중의 하나라고 한다. 교내에 온천목욕탕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온천에서 온천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온천탕을 시설하고 학생들에게 온천 입욕 예법을 지도하고 있고 친구들끼리 알몸 교류를 통한 우정을 돈독히 하고 온천 목욕 때문에 분위기도 느긋하고 성격도 느긋하게 정서적으로 순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곳 온천소학교에도 예절실과 급식실이 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그 달에 생일인 어린이는 별도로 초청 하여 같이 식사하는 날을 운영하는 것이 특색인 것 같았다. 이 곳 온천소학교 대교승이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은 우리나라 어린이와 교류 갖기를 희망해 오셨다.
하코네 온천소학교에서 체육관을 관찰해보니 전천후로 체육행사를 실시하고 있었고 행사시에는 연단 밑으로 의자를 밀어 놓도록 설계한 것이 관심을 끌었다. 온천소학교에서는 하코네 교육위원회 직원이 나와서 하코네 교육 현황을 브리핑해주고 일본의 지방교육 예산의 운영 현황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학교 운영비 문제, 당직 문제, 학교 보수 문제, PAT구성과 운영 문제, 학교 설립 문제 등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고 의견을 교환 하였다.
이곳 PTA활동이 활발하여 학부모들이 학교 후원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PTA예산은 년 115만 엔 정도 인데 운영비, 어린이 활동비, 교육 징계비 등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하코네 온천 소학교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은 오와쿠다니(大湧谷)로 향하였다.
오와쿠다니 계곡은 약 40만 년 전에 시작된 하코네 화산 최후의 폭렬 화구로서 현재도 계곡에서 계속 유황 연기를 내뿜고 있으며 분출하는 백연을 배경으로 후지산을 바라 볼 수 있으며 그야말로 화산국 일본을 대표하는 풍광이다. 이 곳 대용곡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에 익힌 계란은 黑玉子라고 하는데 이곳은 뜨거운 유황 성분을 함유한 물에 계란을 삶을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 때문에 계란 껍데기가 검게 변하는 것 같았는데 이 검게 삶아진 계란을 한 알 먹으면 7년을 더 산다고 하고 욕심을 내서 하나 더 먹으면 3년을 감수한다는 안내원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 3년 고개 전설을 슬그머니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대용곡(오타구니) 화산 앞에서…….
뒤에 화산 연기가 보인다.
흑옥자를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어서 관광객들이 호기심에서 사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흑옥자도 진짜 가짜가 있다고 하였다. 오와쿠다니 바로 밑에 초막 비슷한 건물이 있는데 그 곳에서 파는 것은 진짜이고 버스 주차장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파는 흑옥자는 믿기가 어렵다는 얘기 같았다.
오와쿠다니 관광을 오르내리면서 그 멋진 웅자를 뽐내는 후지산은 아스라이 그 자태를 나타내고 있어 전체적인 풍광이 극히 아름다웠다. 오와쿠다니 관광을 마치고 일행은 아시노호수를 향하여 출발 하였다. 아시노호는 하코네 화산의 대폭발 시 산사태가 하야카와 강의 상류를 막아서 해발 723m 지역에 생긴 호수로 최심부는 43.5m이고 주위는 19km이고 호면적은 7k㎡, 연간 수온은 4.5℃를 밑도는 일이 없는 열대호로 투명도는 10m가 된다고 한다.
아시노호는 4계절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치가 다르게 전개되는바 봄에는 아시노호 안을 장식하는 진달래꽃과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며 가을에는 참억새와 단풍이 호안을 물들이고 호면에 드리운 후지산의 모습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다고 한다. 호상에는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보트놀이와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일행은 아시노호 안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고마가타케산(해발1357m)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고마가타케산의 정상에 오르는 ropeway의 곤드라는 100명이 동시에 탈 수 있으며 로프웨이가 오르내릴 때 전개되는 아시노호 주위 경관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마가타게 정상에서 본 후지산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웅대한 자태를 마음껏 보여주고 있었다. 스노우랜드쪽에서 보는 후지산과 눈앞에 벌어지는 아시노호의 조망은 아름답고 장대한 한 폭의 그림이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가타케 정상에서 후지산과 아시노호, 주위의 경관을 감상한 후 일본에서 담수어 수족관으로는 제일 큰 하코네센 수족관으로 내려와서 유람선을 타고 하코네로 와서 하코네 소재 유미아 식당에서 스키 야키(전골)로 식사를 하였다. 일본은 물가도 비싸고 반찬도 정량만 주기 때문에 일행 중에 김치를 한 접시 더 달라고 했더니 500엔(약3500원)이 추가 된다고 하였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고 이런 면에서는 너무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중식을 마친 후 일행은 하코네 관문을 거쳐 도오메이(동경)고속도로를 거쳐 도쿄로 귀환 했다. 하코네 관문은 젠나5년(1619년) 도쿠가와 장군에 의해 설치되어 메이지 2년(1869년)에 폐지 될 때까지 에도의 수비를 견고하기 위하여 개설된 것이라고 한다. 관문을 설치한 목적은 막부의 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각지 영주부인들을 인질로 에도에 거주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인들이 몰래 에도를 빠져나가는 것(데온나)과 소총 등의 무기가 에도로 밀반입되는 일이 없도록(이렛테포오) 단속하기 위하여 설치했다고 한다.
1965년에 옛 모습을 살려 옛날자리 가까이에 재건하였으며 병설된 자료관에는 관무에 관련되는 고문서, 무기류, 민속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고 했다. 이 관문을 통해각지의 다이묘들이 등급에 따라 부하들을 데리고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동경에 도착하여 도쿄역 근처에 잇는 동해원에서 불고기 정식으로 석식을 하였다. 식당 동해원은 동경 시내에 프랜차이즈가 7곳 군데나 있는 음식점으로 일인이 경영하고 있다. 일행은 고국을 떠난 지 며칠 안 되었고 도착 당일에도 미선장에서 소고기 뷔페로 식사를 하고 25일에도 신주쿠 소재 동해원에서 비빔밥으로 식사를 해서 나름대로 한식을 먹었지만 이날 저녁은 더욱 맛있게 식사를 하고 숙소인 나리타 소재 한 호텔인 Holiday inn TOBU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3박4일 동안의 일본의 연수 일정 마지막 날 일본에서의 연수 과정을 되씹어 보았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는 일의대수의 관계가 있다. 고대에는 우리가 문화 우월 민족으로서 일본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었다. 문자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현 일왕일가도 그 근원이 백제 왕족의 후예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이 서구문명을 일찍 받아 들여서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20세기 초에는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식민지로 개척한 것을 볼 때 우리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본분을 다할 것은 물론, 특히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이기 때문에 교육을 맡고 있는 우리교육자들이 사명감과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더욱 분발하여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앞당기도록 하여야한다.
여러 가지 소식이 궁금해서 집에 전화 했더니 문민정부 제1기 조각이 끝났다고 한다. 교육부장관에 오병문 전 전남대 총장을 역임하신 분이 임명 되었다고 한다. 일행은 문민정부 출범에 따른 조각에 대한 소식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이번 동경 일정의 마지막 밤을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TV도 보곤 하였다.
2월 27일 05:30분경에 기상하여 유럽여행의 일정을 점검하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식사는 Holiday inn TOBU HOTEL 1층에 있는 양식부에서 아메리카 breakfast로 하고 가방을 내어 버스에 실었다. 가방을 실으면서 일기를 보니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어 있고 기온은 약10℃가 되는 비교적 좋은 날씨 이었다.
나리타공항을 약20분 정도 걸려 도착해서07:30분발 서울행 KE705편에 탑승했다. 공무원들은 국가 시책 상 GTR로 여행하여야하기 때문에 김포에서 LONDON으로 가는 KE907편으로 바꾸어 타려고 서울행 KAL비행기에 탑승 했다.
( 1993,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