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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부님은 탐정》
## 제22화 ― 「버스 종점에 놓인 생일 케이크」
은솔시 외곽에 있는 버스 종점은 밤이 되면 무척 조용했다.
낮에는 장을 보러 나온 어르신들과 학교를 마친 학생들로 북적였지만, 밤 열 시 오십 분에 막차가 떠나면 정류장에는 가로등 두 개와 낡은 의자만 남았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다.
막차가 떠난 뒤 정류장 의자 위에 생일 케이크 하나가 놓였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
그 위에는 분홍색 촛불 열 개가 꽂혀 있었다.
이름도, 축하 문구도 없었다.
첫날에는 버스 기사가 케이크를 종점 관리실로 옮겼다.
둘째 날에도 같은 자리에 똑같은 케이크가 놓였다.
셋째 날부터는 케이크 한 조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가 케이크를 가져오는지, 누가 한 조각씩 먹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버스 기사 박상철이 말했다.
“막차를 출발시킬 때까지만 해도 의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스를 돌려 차고지에 세우고 다시 와보면 케이크가 놓여 있어요.”
이 이야기는 곧 은솔신문사 한서윤 세실리아 기자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서윤이 취재를 시작한 날, 케이크 상자 안에서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다.
은솔성당 주일학교 출석표였다.
명단 맨 아래에는 연필로 적힌 아이의 이름 하나가 있었다.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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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당 교적에는 윤별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최병철 베드로 사무장이 오래된 교적 서류를 넘겼다.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는 빛바랜 출석표를 살폈다.
‘1998년 은솔성당 여름 신앙학교.’
출석표에는 아이 열아홉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열여덟 명은 잉크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윤별이라는 이름만 연필로 추가되어 있었다.
오미자 안나가 물었다.
“세례받지 않은 아이였던 것 아닐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에는 세례받기 전부터 나오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복례가 출석표를 보다가 말했다.
“이 글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요.”
“누구 글씨입니까?”
“생각이 날 듯하면서 안 나네요.”
오미자가 말했다.
“연세가 드시면 원래 그래요.”
복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오 회장님도 나랑 다섯 살밖에 차이 안 나요.”
“다섯 살이면 기억력에는 큰 차이죠.”
“어제 우산을 어디 두셨는지도 잊은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오미자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우산 못 보셨어요?”
최병철이 사무실 문 옆을 가리켰다.
오미자의 우산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었다.
“저기 있었네. 일부러 확인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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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김맑음 신부는 한서윤과 함께 버스 종점으로 향했다.
한서윤이 물었다.
“신부님, 생일을 맞은 아이를 찾으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한 기자님. 이 케이크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놓인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촛불도 열 개나 꽂혀 있는데요?”
“축하를 위한 케이크라면 주인이 가져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케이크는 매일 같은 자리에 남겨져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시라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종점에 도착했을 때 막차는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도현 형사도 버스 회사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와 있었다.
사람들 앞이었기에 그는 김맑음 신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신부님, 이번에는 막차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이 형사님, 저는 버스를 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이후에는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가 없습니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한서윤이 말했다.
“신부님 차는 성당에 있잖아요.”
김맑음 신부가 잠시 멈췄다.
“한 기자님 차를 함께 타고 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왔는데요.”
그 순간 버스 기사가 문을 닫았다.
“잠시만요.”
김맑음 신부가 버스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막차는 이미 출발했다.
정류장에 홀로 남은 김맑음 신부가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타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도현이 한숨을 쉬었다.
“신부님께서 사건의 수수께끼는 잘 보시면서 교통편은 왜 확인하지 않으십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서윤이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명탐정 신부, 막차를 놓치다.’ 기사 제목으로 괜찮겠는데요?”
“그 기사는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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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가 떠난 지 십 분이 지나자 종점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불을 끄고 관리실 안에서 정류장을 지켜보았다.
밤 열한 시.
가로등 아래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키가 작은 아이였다.
후드가 달린 외투를 입은 아이는 주변을 살피더니 정류장 의자 아래로 몸을 숙였다.
의자 아래에는 케이크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한서윤이 카메라를 들려 하자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막았다.
“아이의 얼굴은 찍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아이는 케이크에서 한 조각을 덜어 작은 종이 접시에 담았다.
그러고는 다시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도현이 관리실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이는 놀라 달아나려다 멈췄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김맑음 신부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임서아예요.”
“케이크는 서아 양이 가져온 겁니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놓은 거예요.”
“한 조각은 누구에게 가져가는 겁니까?”
“할머니요.”
“할머니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서아가 종점 뒤편의 작은 관리실을 가리켰다.
“저기에서 청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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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 청소를 맡은 사람은 임정애 아녜스였다.
일흔두 살의 임정애는 오래전 은솔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교우였다.
복례가 출석표에서 본 익숙한 글씨도 임정애의 것이었다.
임정애는 서아가 가져온 케이크 조각을 보고 놀랐다.
“서아야, 그걸 또 가져왔니?”
“할머니는 매일 케이크를 놓으면서 한 번도 못 드셨잖아요.”
임정애는 손녀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의자를 내주었다.
김맑음 신부가 출석표를 보여주었다.
“이 출석표를 케이크 상자에 넣으신 분이 어르신입니까?”
“네.”
“윤별이라는 아이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임정애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낡은 출석표의 이름을 손끝으로 만졌다.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이제 서른여덟쯤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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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 년 전 여름.
열 살쯤 된 여자아이가 은솔버스 종점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못했다. 가정 사정으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고, 보호자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임정애는 경찰과 복지기관이 아이의 보호자를 찾는 동안 아이를 은솔성당 주일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별’이라고만 했어요.”
그래서 임정애는 출석표에 ‘윤별’이라고 적었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에 ‘윤’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윤별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케이크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정확한 생일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아이들과 윤별이의 생일을 정해주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을 생일로 삼았지요.”
아이들은 촛불 열 개를 꽂은 케이크를 준비했다.
그러나 생일잔치를 하기로 한 날 아침, 윤별은 은솔을 떠났다.
보호시설이 있는 다른 도시로 옮겨진 것이다.
임정애는 종점까지 아이를 배웅했다.
“선생님, 나중에 다시 오면 여기에서 기다리면 돼요?”
“그래. 선생님이 기다릴게.”
“그때도 생일 케이크 해줄 거예요?”
“그럼. 촛불 열 개를 꽂아줄게.”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약속이었다.
“윤별이가 탄 버스가 떠난 뒤에야 생일 케이크가 성당 냉장고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정애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 뒤로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어요. 보호시설도 문을 닫았고, 이름도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최근에 매일 케이크를 놓으셨습니까?”
“이 버스 노선이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폐지됩니다.”
은솔시 교통편이 개편되면서 외곽 종점은 사라질 예정이었다.
임정애는 약속의 장소가 없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윤별을 기다리고 싶었다.
“밤마다 케이크를 놓으면 누군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윤별이가 보게 될까 해서요.”
한서윤이 물었다.
“그렇다면 저에게 직접 제보하셔도 됐잖아요.”
“내가 유명해지려고 그러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부끄러웠어요.”
“버스 기사가 아무도 케이크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이유는요?”
임정애가 작은 창고 문을 가리켰다.
“막차가 떠나기 전에 의자 아래 수납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한 뒤 청소하러 나오면서 의자 위에 올려놓았고요.”
“매일 케이크 한 조각이 사라진 것은 서아 양이 가져갔기 때문입니까?”
서아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먹는 줄 알고 한 조각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케이크를 한 번도 못 드셔서 그다음부터는 할머니께 드렸어요.”
김맑음 신부가 빈 케이크 상자를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잊지 못한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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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한서윤의 기사가 은솔신문과 인터넷에 실렸다.
제목은 ‘촛불 열 개를 켜고 이십팔 년을 기다린 선생님’이었다.
기사에는 윤별의 얼굴이나 정확한 개인정보를 싣지 않았다. 대신 출석표의 이름과 은솔성당 주일학교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 제목, 종점 사진만 소개했다.
은솔성당 교우들도 소식을 널리 알렸다.
오미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 삼백 명에게 보냈어요.”
최병철이 놀랐다.
“연락처가 삼백 명이나 있으십니까?”
“나를 거쳐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복례가 물었다.
“그분들이 모두 회장님 연락을 반가워하세요?”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사흘이 지나도 윤별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버스 노선이 폐지되는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임정애는 평소처럼 정류장 의자 위에 케이크를 놓았다.
촛불은 열 개였다.
김맑음 신부와 한서윤, 이도현, 성당 식구들도 종점에 모였다.
복례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차와 김밥을 준비했다.
“케이크를 기다리는데 김밥을 왜 준비하셨어요?”
오미자가 묻자 복례가 대답했다.
“케이크만 먹으면 속이 허해요.”
최병철이 참석자 수를 세었다.
“현재 열두 명입니다. 김밥은 몇 줄입니까?”
“스무 줄이요.”
“너무 많지 않습니까?”
“신부님이 계시잖아요.”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저를 기준으로 식사량을 계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항상 모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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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 오십 분.
마지막 버스가 종점으로 들어왔다.
승객들이 하나둘 내렸지만 윤별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뒷자리에서 중년 여성이 천천히 일어났다.
여자는 작은 여행가방과 오래된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정류장 의자에 놓인 케이크를 본 여자의 걸음이 멈췄다.
“정말 촛불이 열 개네요.”
임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여자는 종이봉투에서 낡은 손수건을 꺼냈다.
한쪽 모서리에 ‘윤’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선생님, 저 별이에요.”
임정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는 눈물을 참으며 웃었다.
“제 이름은 지금 윤서진이에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별이라고 불러주셨죠.”
“별아…….”
“너무 늦게 왔어요.”
“그래도 왔구나.”
“기사를 어제 봤어요. 처음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석표와 종점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윤서진은 임정애 앞에 섰다.
“제가 선생님을 잊은 줄 아셨어요?”
“소식이 없으니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잘 살았어요. 좋은 분들을 만나 공부도 하고, 가정도 꾸렸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려워서 은솔에 오지 못했어요.”
임정애가 서진의 손을 잡았다.
“잘 살았으면 됐다. 그것만으로 됐어.”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약속을 지켜야죠.”
그녀는 케이크 앞에 앉았다.
서아가 촛불 열 개에 불을 붙였다.
“이모, 지금도 열 살이에요?”
서진이 웃었다.
“오늘만은 열 살이야.”
모두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짧게 불렀다.
서진이 촛불을 끄자 종점 관리실의 불도 동시에 꺼졌다.
버스 노선의 마지막 운행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어둡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십팔 년 동안 기다렸던 약속이 마침내 밝은 불을 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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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애와 윤서진은 다음 날 은솔성당의 감사미사에 함께 참석했다.
강론에서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기다림은 상대방을 붙잡아두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한자리를 비워두는 일입니다.”
그는 제대 아래의 작은 초를 바라보았다.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돌아오기를 그렇게 기다리십니다. 늦었다고 꾸짖기보다, 무사히 돌아왔음을 기뻐하십니다.”
미사 후 서진은 임정애와 함께 성당 마당의 오래된 주일학교 사진을 바라보았다.
서진의 얼굴은 사진에 없었다.
사진을 찍기 전날 은솔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서윤이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는 함께 찍으실까요?”
임정애와 서진, 서아가 나란히 섰다.
사진을 찍기 직전 오미자가 옆으로 끼어들었다.
“저도 주일학교 봉사를 오래 했어요.”
최병철이 말했다.
“당시 사진에는 오 회장님이 안 계십니다.”
“이번에 찍는 사진에는 들어갈 수 있잖아요.”
복례도 옆에 섰다.
“그럼 나도 들어가야지.”
장태식과 최병철까지 자리를 잡으면서 사진은 어느새 은솔성당 단체사진이 되었다.
한서윤이 말했다.
“신부님도 들어가세요.”
“저는 사진을 찍어드리겠습니다.”
“카메라는 제가 들고 있는데요.”
김맑음 신부는 결국 사람들 가운데 섰다.
찰칵.
윤별이 빠져 있던 오래된 사진 옆에, 아무도 빠지지 않은 새로운 사진 한 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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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돌아간 뒤 이도현과 김맑음 신부만 성당 마당에 남았다.
둘만 있었기에 이도현이 물었다.
“맑음아, 처음부터 윤별이 살아 있다고 생각했어?”
“살아 있기를 바랐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지.”
“그런데 왜 케이크를 놓은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고 했어?”
“촛불이 매일 새것이 아니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케이크는 매일 달랐지만 촛불은 같은 것을 다시 사용했어. 아이의 생일을 매번 새로 축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약속을 그대로 지키려는 사람이 놓은 거라고 생각했지.”
“케이크 한 조각은 서아가 가져갔고.”
“응. 할머니에게 드리려고.”
이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사건은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네.”
“약속을 너무 오래 미룬 사람은 있었지.”
“그래도 결국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중요하겠지.”
이도현이 종점 방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우리도 돌아갈 차가 없는 것 같다.”
김맑음 신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 버스는 이미 떠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차를 타고 돌아간 뒤였다.
“한 기자님 차를 타기로 하지 않았어?”
“한 기자는 임정애 어머니와 서진 씨를 모셔다드리러 갔어.”
“복례 어머니 차는?”
“김밥 상자만 싣고 먼저 가셨어.”
“도현아.”
“왜?”
“경찰차를 가져오지 않았어?”
이도현이 잠시 침묵했다.
“후배가 긴급 신고를 받고 몰고 갔어.”
두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 나란히 서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걸어가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아.”
“신부님께서 막차를 놓치시면 안 된다고 했을 때 들었어야지.”
“도현이 너도 같이 남았잖아.”
“나는 너 때문에 남은 거야.”
멀리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복례가 운전하는 작은 승용차가 다시 종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을 내린 복례가 말했다.
“두 분이 또 차 없이 남으실 줄 알았어요.”
이도현이 뒷문을 열었다.
“복례 어머니께서는 사람을 너무 잘 아십니다.”
김맑음 신부도 차에 오르며 말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남은 김밥 드세요.”
뒷좌석에는 김밥 두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도현이 한 줄을 집었다.
“맑음아,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네.”
“누구?”
“우리.”
차는 불이 꺼진 종점을 떠나 은솔성당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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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회 예고
### 제23화 ― 「목욕탕 사물함의 성모상」
은솔시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목욕탕이 문을 닫는 날.
철거를 앞둔 33번 사물함 안에서 작은 성모상이 발견된다.
성모상 아래에는 오래된 반지 세 개와 쪽지 한 장이 놓여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세요.’
그런데 반지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모두 부유한 사람들이다.
한서윤 기자가 묻는다.
“신부님, 목욕탕에도 성모상이 있을 수 있나요?”
“한 기자님, 성모님께서 계실 수 없는 장소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사물함에 모셔둔 이유는 있을 겁니다.”
사람들 앞에서 이도현 형사가 정중하게 말한다.
“신부님, 목욕탕이 폐업했다고 해서 남탕에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이 형사님, 저는 관리인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수단 차림으로 사물함을 조사하시는 모습은 상당히 낯섭니다.”
번호가 지워진 열쇠.
물이 빠지지 않는 빈 욕조.
그리고 삼십 년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33번 사물함.
김맑음 신부가 반지 안쪽의 글씨를 바라본다.
“이 반지는 돈이 없는 사람에게 주려던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에게 주려던 겁니까?”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려주려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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