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2년도 황씨세계종친회(필리핀)에 참석하고 와서 쓴 수필로서,
2014년 제50차 황씨중앙종친회 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수필>
세계 종친회
황 덕 중(黃德重)
나는 황씨 춘천지구종친회 회장이다.
황씨는 그 뿌리를 파헤쳐 보면 한국에서 황(黃)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신라 말기(서기 28년)에 중국에서 건너온 낙(洛)이라는 한 할아버님의 자손이기 때문에, 본관이 평해든 장수든 창원이든 모든 황씨가 함께 모여 종친회를 하고 있다. 음력 10월 중정일(中丁日)에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황씨들이 울진 평해 월송정 안에 있는 도시조(都始祖) 휘(諱) 낙(洛)자 할아버님 사당에 모여 다함께 제를 올린다. 그래서 본관이 달라도 황씨끼리 혼인하는 일은 없다.
나의 대부벌 되는 O근(根)씨는 황씨 강원도종친회 회장이다. 강원도 종친회도 물론 본관 관계없이 함께 모인다. 그는 그러면서 춘천 지구 평해 황씨 대종중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숙항(叔行)인 환(煥)O씨는 사직공파(司直公派)의 회장이다. 사직공은 춘천 낙향조(落鄕祖) 휘(諱) 곤(坤)자 할아버님(평해 황씨 12세손)의 셋째 아드님이신 휘(諱) 윤(允)자 리(利)자 할아버님의 맏아드님 휘(諱) 건(健)자 할아버님의 벼슬 이름이다. 그러니까 사직공파는 그 할아버님의 후손들을 일컫는 소종중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는 종친회 이야기이지만, 내가 세계 황씨 종친회라는 말을 하면 듣는 이가 얼핏 이해를 못하는 눈치여서 그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세계에 많이 퍼져 살고 있으니 그 중에는 황씨들도 많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 종친회를 하는 것이라고 어림짐작으로 넘기려는 상식적 판단을,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야 한다. 나는 열 번이라도 기꺼이 설명한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2010년 금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30회 세계 황씨 종친회를 개최하였다. 개최지는 필리핀이지만 주최·주관은 중국이다. 중국이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은(殷)나라 시대(기원전 648년 경)에 황씨가 있었고, 그분이 일곱 아들을 두었는데 각각 세 명씩의 아들을 두어 스물 한 명의 아들들이 세계 각국에 퍼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마닐라 시내에서 조금 변두리 바닷가로 빠져 나와서 근래에 지은 듯한 웅장한 건물이 회의장이었다.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라고 쓴 금색 글씨가 아침 햇살에 번쩍였다. 안에 들어가니 중국식 무대 장식이 대단하고, 2,000여 석은 되는 홀이 모두 찼다. 한문과 영어로 나라 이름을 적은 예쁜 표지판이 여기저기 테이블 위에 서 있다. 한국 좌석은 맨 앞에 있었다.
世界黃氏宗親總會 第十届第三次懇親大會. 10th World Huang Clan Convention 3th Session Manila, Philippines. 2010年 11月 19日-20日. 菲律濱 馬尼拉.
1981년부터 시작했으니 이번이 서른 번째다. 중국, 태국, 필리핀은 물론 한국과 미국에서도 벌써 두 번씩이나 개최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대만,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동남아 17개국에서 2,000여 명이 참석했다. 개최국인 필리핀에서 제일 많이 참석하였고, 그 다음은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이고, 한국에서는 39명이 참석하였다. 누런 얼굴, 거무스름한 얼굴, 까만 얼굴에다 언어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종친회를 한다고 하니 느낌이 야릇했다.
더군다나 모든 진행은 중국어로 하고 간혹 영어가 섞여 나오고, 각국에서는 각기 대동한 통역관들의 통변으로 겨우 의사가 소통되는, 말하자면 의사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국제 회의였다. 좌중을 주욱 둘러보니 나라마다 다른 복장, 다른 얼굴, 특히 그들의 눈동자를 보면 모두 우리와는 완연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우리의 몸 속에 이천 년도 넘는 세월 동안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느낌 하나로 처음부터 서로 친근감을 앞세운 눈웃음으로 면대하게 되고, 혹시 어깨를 부딪어도 혹시 발등을 밟아도 뾰족한 감정의 날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인연의 스침이라는 배려의 눈웃음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었다. 피부의 윤기와 표정이 지닌 자신감의 정도로 그 나라 삶의 정도가 직감되고 금세 우열이 가려지지만, 그것은 서로간에 애써 지워버리고 금세 아무런 벽도 없는 친근감으로 악수하게 되는 것은, 분명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피의 몇 만분지 일이라도 될 것 같은 인자에 대한 확인이고 인식일 것이었다. 그게 모두 부모자식지간에 느껴지는 직감이나 과학적 확인과는 거리가 먼, 말하자면 동양적 윤리관 혹은 정치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인 회동일지라도, 처음부터 경제적 이해타산을 앞세우거나 번뜩이는 이념적 무기의 우열을 가지고 서로 겨누는 것 같은 국제회의에 비하면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국제간에 평화를 도모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거짓말이다. 모두 자기 방어일 뿐이다. 자기 방어를 전제로 하여 주변 국가로부터 이익을 얻어 보자는 속셈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뒤에는 힘(경제력, 무력)을 짊어지고 앞에는 미소(달콤한 미끼)의 가면을 쓰고 만나는 것이 국제회의의 일반적인 얼굴이다.
여기에 비하여 세계 종친회라는 모임은 어쩌면 바보스러운 모임일 수도 있다. 개인도 국가도 거기에서 이익을 보자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낭비적일 뿐이다. 남들이 보면 황씨들은 바보다. 세계 황씨종친회는 바보들의 모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황씨들은 기분이 좋았다. 이역만리 비행기를 타고 모여서 서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미소만 교환하며 하루를 지내는 회의였지만 만나서 반갑고 헤어질 때는 아쉬웠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 평화라는 것의 길이 먼 데 있는 게 아닌데 엉뚱한 데서 노상 도로(徒勞)로 끝나는 체면치레만 차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속에다 구렁이를 몇 마리씩 감추고 아무리 만나서 떠들어도 세계는 점점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모이는 정치인들의 회의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거기 모인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라. 그들의 얼굴에는 모두 하나같이 평화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만, 지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의 화약 냄새 또는 폭발 직전의 전운(戰雲)은 여전히 우리의 머리 위에서 감돌고 있다. 차라리 세계 황씨종친회 같은 바보들의 모임을 세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데서 세계 평화의 열쇠를 찾아 보는 것이 어떨지?
한국을 포함한 몇 개 나라에서 대표 연설이 있었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주최국인 중국과 행사국인 필리핀 다음으로 대접해 주는 눈치였다. 한국 황씨 중앙 종친회 회장은 상임 부회장이고, 좌석 마련도 맨 앞인 것을 보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한국 단장이 발표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첫째는 한때 아시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았던 일본은 지금까지 우리 황씨 종친회 모임에서 제외하여 왔으나, 이제는 화해의 차원에서 한 목 끼워주자는 제안이었고, 두 번째는 좀 요원한 얘기지만, 한자(漢字)가 그 뜻은 서로 통하나 음이 나라마다 다르니, 우리 세계 황씨종친회가 선도하여 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제안이었다. 참신하지 않은가?
매년 세계 평화의 작은 씨앗 하나씩을 지구 곳곳에 파종하는 세계 황씨종친회여, 영원하라! (2010.12.12.)
***글쓴이 약력***
황씨강원도종친회장
황씨춘천지구종친회장
강원도에서 중등교장 정년퇴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춘천지구교육삼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