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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싸고 맛있는 집 BIG 5
귤화위지(橘和爲枳)라는 말이 있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주로 지역에 따른 문화 차, 문화 수용도, 동네 수준에 대해 거론할 때 쓰는 말인데, 금회 싼맛에 달인의 취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이 격언을 함 대여해보려 한다. "왕오화위칠(王五和爲七)" 이게 무슨 뜻인가 하니, '강남'은 비싸다. 커피값도 비싸고, 술값도 비싸고, 안주값도 비싸다. 밥값도 물론 비싸다. 같은 메뉴라면 강북과 천원 이천원 차이는 기본이다. 가격대의 최고봉 압구정 청담은 말해봐야 입아프고, 방배동, 신천, 반포, 강남역 주변 등도 강북보다는 확실히 물가가 높다. 땅값 비싼 동네인 것은 알겠다만, 그렇다고 음식에 땅뙈기 얹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강남 사람이라고 해서 다 부자일리는 없다. 그곳으로 출퇴근 하는 직딩들도 물론 있을 것이요, 그 동네에 사는 여자친구가 불러서 마지못해 향하는 주머니 가벼운 사내들도 있을 것이다. 서민 가는 곳에 싼맛 가는 법. 강남에도 분명히 가격 착하고 맛 기특한 집들이 숨어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 본지가 가서 구석구석 후벼줘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이러한 의도로, 본 회에는 강남의 싼맛집을 싼 맛집들을 찾아 나서보았다. 늘 퇴계 선생 두서너장으로 해결을 보던 '싼맛의 달인'이었지만, 동네가 동네이니 만큼 여기서는 율곡 이이 선생이 슬며시 옥체를 들이미신다.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컴팩트하게 부활하셨으니 한번쯤 모셔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닐까 싶다. 본 '싼맛의 달인' 강남편의 대상지역은 한강 이남 전체가 아닌,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일부의 유흥가를 중심으로 했다. 싼맛 고수들의 주요 서식처인 빌딩 지하 식당가나 아파트 상가 식당은 정보의 부족으로 아깝게 취재하지 못했다. 독자님이 직접 추천해 주시면 부리나케 달려가겠다. 사실상 강남 싼맛 최고의 대안인 기사 식당들은 다음 번 싼맛의 달인 기사식당 편을 위해 아껴두었음을 미리 알려드리고 넘어간다.
그럼, 가보자.
싼맛의 달인들 강남의 번화가에서 싼맛집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점심 특선이라고 선심쓰듯 내건 가격이 육천원인 동네가 강남이다. 그러나 이 곳에도 땅값이나 체면값 등에 신경쓰지 않는 듯한 싼맛의 달인들이 숨어있다. 정말 착한 가격의 강남 싼맛집 두 곳을 소개한다.
해주 냉면
해주 냉면이라. 평양 냉면 함흥 냉면은 유명하다만, 해주 냉면이라. 본토 황해도 해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울하고도 신천에는 해주 냉면이 있다.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집이다. 매시매시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20여년간 수많은 마니아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집이다. 일단 가격을 보자. 착하다. 물냉면 비빔냉면 3,000원. 김밥집 냉면에 준하는 가격이다. 장사하는 곳이 잠실하고도 신천. 강남에서야 싼 동네 축에 속한다지만, 그럼에도 이 가격은 충분히 흐뭇하다. 양이 적고 면발이 딱 삼천원짜리스럽긴 하지만 아직 '이 집은 '싼'만 있고 '맛'은 없다'고 판단하기 이르다. 일단 공짜로 마음껏 퍼다 먹을 수 있는 육수라도 실컷 드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시라.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일단 육수는 마셔두는 것을 권한다. 물냉면, 비빔냉면 두 종류의 메뉴가 있지만 물냉면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집에 왔다면 당연히 비빔냉면을 먹어야 한다. 전국에서 가장 맵다고 정평이 난 비빔냉면이다. 이 집은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맛이라기보다 열렬한 마니아를 양산하는 집인데, 마니아들 조차 이집 냉면의 매운맛을 '고통'이라고 표현하기 주저하지 않는다. 면위를 덮은 시뻘건 양념위에 설탕과 식초를 적당량 친다. 안 뿌려도 무방하지만, 자신이 매운맛에 아주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면 설탕은 뿌리는 것이 좋다. 옆에 육수와 물냉면을 대기 시켜놓고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 되겠다.
겁을 잔뜩 주긴 했지만, 그렇게 지옥에나 떨어질 만큼 맵지는 않다. 라면 끓일 때 반드시 청양고추 썰어넣는 정도의 매운맛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냥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꽤 감칠맛 있는 매운 맛을 내는 지라 계속 젓가락이 간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편이지만, 열혈 마니아를 양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는 바이다. 그러나 너무 자신하지는 말자. 첫맛보다 뒷맛이 맵고, 매운맛이 오래 남는다. 공복에 먹는 것은 위궤양님 오시라고 비단길 까는 것과 동일한 행위다. 양이 적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이 매운 걸 양이 찰 때 까지 먹었다가는 입보다 속이 못배긴다. 사리 추가를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맛이 떨어진다. 맛 좋고 무엇보다 개성이 출중하다. 가격도 무척 착하다. 싼맛의 달인의 수위에 올려도 무방하다고 보는 바이다. 계신 곳에서 신천까지 30분 이내로 찾아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있다면 한번쯤 찾아가서 먹어보라고 권유드리고 싶다. (저 멀리 도봉구나 인천에서 이거 먹으러 굳이 오지는 마시고.) 단, 경고한다. 본 취재팀 이 집 냉면 먹고 그날 새벽부터 다음날 저녁때 까지 웬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붉은 것을 배출하는 고통을 겪었다. 고통을 감수하던가, 아니면 육수와 물냉면을 적당히 배합하여 드시길 권하는 바이다.
전통 아바이 순대
순대국이 3000원. 싼맛의 중원 낙원상가의 가격과 동일하다. 지정학적 위치가 방배동 까페골목 인근이라는 것도 놀랍다. 지금은 많이 죽었다고는 하나, 한때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던 환락가 중 한곳이었던 방배동 까페골목이 아니던가. 인테리어나 외관은 그냥 아주 흔한 순대국집의 모양새라고 보시면 된다. 주문을 하면 아주 신속하게 나온다. 반찬은 깍두기와 양파뿐으로 아주 단촐하다. 반찬인 깍두기는 달달한 것이 맛있는 편이나, 양파는 썰어놓은 지 오래 된 듯 시들시들하였다. 양파 애호가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순대국에는 양념과 밥이 미리 넣어져서 나온다. 맛은 평범하다. 돼지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장점이 있고, 건더기가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직접 만든다는 아바이순대는 대량생산 아바이순대보다는 확실히 맛있다. 어쨌든 불평 없이 한 끼 든든히 배를 채울 만 하다. 게다가 가격이 3,000원이라면 다 먹고 '자~알 먹었습니다!'라는 말도 나올 만 하다. 친절하다는 느낌은 없으나 순대국이 삼천원이라면 불친절하지 않은 것을 고마워 해야 하는 가격이 아닐까 싶다.
사실 주위에 널린 것이 순대국 집이고 이 집의 맛에 대단한 개성이나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니 굳이 멀리 사는 사람이 방배동 까지 찾아가서 먹어야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서초구민이나 동작구민 중 중 방배동에 가깝게 사시는 분이나 방배동에서 시장기를 느낀 분들은 찾아가 보시길 권한다.
비교적 싼맛집 가격은 절대로 싼맛의 취지에 합당하지 않으나, '그 동네에 이런 가격에 이런 사양이라면 감사해야 한다.'라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싼맛의 반열에 올린 집들이다.
대풍
신사역 강남웨딩문화원 뒷골목은 이른 바 '간장게장 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간장게장을 필두로 꽃게찜이니 해물탕이니 하는 해물 요리들을 전문으로 하는 집들이 주르륵 들어서 있는데, 주로 근처 직장인들의 회식이나 근처의 나이트클럽에서 눈이 맞아 야참을 먹으러 오는 남녀들이 즐겨 찾는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동네 게요리나 해물 요리들 가격, 안구 돌출 유발 수준이다. 이런 동네에 오천원 짜리 밥집이란, 그것도 골목 저으기 끄트머리 고기집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평범한 생선구이 정식집이 맛집으로 이름나기는 쉽지 않다. 화장실도 가게 안에 없는 집인데 오죽하랴. 그러나 이 집은 점심시간만 되면 주변 직장인들로 미어터져나간다.
분명히 오천원이란, 철저한 퇴계 이황주의를 천명하는 본 싼맛의 달인 코너에 적합하지 않은 가격이다. 게다가 오천원짜리 생선구이 백반집은 사실 흔해터진 아이템이다. 노매드 사무실 주위에도 두 곳이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단지 신사동의 비싼 맛집 많은 먹자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게으른 이유로 이 집을 올렸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일단 이 집 생선 맛나다. 오천원 짜리 생선 백반을 시키면 흔히 나오는 다 말라비틀어진 손바닥만한 자반, 그런거 생각하면 서운하다. 큼직한 한 마리가 통째로 구워져 나온다. 살도 촉촉하고 통통하다. 밑반찬도 나름 맛깔스러운데, 특히 들기름 냄새가 솔솔나는 김이 아주 맛있다. 게다가 이집 생선은 대충 가스불에 찍 구워주는 생선이 아니다. 바로 숯불구이다. 숯불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양념이 될 정도의 아이템 아닌감. 그리고, 이집, 호탕하다. 생선이 무한리필이다. 삼치구이던 고등어구이던 필요하면 계속 구워준다. 처음 나오는 생선의 크기도 그다지 작지 않건만 그것이 달라는 대로 계속 나온다.
전체적으로 이 집의 생선구이 백반은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오천원이라는 가격을 상회하는 퀄라리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여 '비교적 싼맛집'에 봉하는 바이다. 신사동, 영동사거리, 잠원동 부근 거주자나 직장인 중 생선애호가들에게 강하게 추천한다.
청담골
드디어 나왔다. 청담동이다. 럭셔리와 사치를 대변하는 듯한 동네. 그것이 개성과 세련으로 발현되는 집도 있는가 하면 단지 겉멋만 지나쳐 돈X랄로만 보이는 집도 많은 동네. 그 무엇이 되었던 하여간 비싼 동네. 그곳이 청담동이다. 이 집은 평범한 백반집이다. 가정식 백반, 생선구이 백반, 누룽지 백반, 재첩국 백반 등 소박하기 짝이없어 보이는 메뉴를 주로 내놓는다. 그런데 가격은 세다. 누가 청담동 아니랄까봐, 갈치 한접시 곁들여 나오는 백반이 8,000원이다. 강북 직장가에서 이렇게 장사하면 당장 일주일 안에 파리날릴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의 가장 기본 세팅인 '가정식 백반'은 가격과 사양이 모두 쓸 만하다. 밑반찬 여덟가지와 밥이 기본으로 나오고, 거기에 큰 뚝배기에 담긴 김치찌개와 국이 딸려있다. 거기에 방금 만든 계란찜 뚝배기가 또 나온다. 가정식 백반이라고 생각해도, 김치찌개 백반이라고 생각해도 오천원의 가치는 충분히 상회하는 패키지 구성이라고 하겠다.
맛 또한 오천원은 가뿐히 넘겨준다.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제대로 푹 신김치를 사용한 탓이다. '김치찌개라면 당연히 신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딸려나오는 반찬들도 엉성하지는 않다. 대충 달달하고 미원맛이 솔솔하긴 하지만, 솜씨가 없는 맛은 아니다. 충분히 '정갈'하다는 표현을 할 만 하다. 청담동의 물가에 경기일으키는 분들에게 권한다. 가격 대비 성능으로 따지면, 그 근처 겉멋으로 장사하는 몇몇 한정식집들 보다도 오히려 낫다. '비교적 싼맛집'에 봉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 집의 가정식 백반에 한정하는 것이다. 청담동 물가 증말 왜그러는게냐. 아니 무신 노무 누룽지 백반이 7,000원이란 말이냐! 금 발랐냐!
군둥이네
5,000원도 싼맛 스럽지 않다고 규정했건만, 이 집은 율곡 이이 선생이 어깨에 수줍게 학까지 한 마리 얹어가지고 나오신다. 그러나 이 집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하면 '비교적 싼맛'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남하고도 압구정. 그곳에서도 가장 번화한 로데오 거리. 군둥이네는 바로 그 로데오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전체적인 '강남 싼맛'도 아닌, '로데오 거리 싼맛집'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이름을 헷갈리지 말자. '궁둥이네'가 아니라 '군둥이네'이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에 위치한 '메주마을'이라는 곳에서 생산하는 장을 사용한다고 해서 '군둥이네'란다. 엄하게 남의 상호를 볼기짝으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겠다. 이 집의 주종메뉴는 된장찌개 백반이다. 된장찌개가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담겨 나오고, 밑반찬들이 주욱 잇다른다. 된장찌개의 맛은 텁텁하고 투박하며 짠맛이 강하다. 국물이 거무튀튀하기는 하지만 걸쭉하지는 않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만큼 자기 엄마, 자기 아내의 맛에 길들여 지는 아이템이 또 있을까. 세상 음식을 딱 양분하여 '맛있다' '맛없다'로 나누면 맛있다에 속하긴 하지만, 모든 이의 입맛에 맞는 찌개는 아닌 듯 싶다.
오히려 밑반찬이 좋다. 밑반찬이 총 아홉 개가 나오는데, 깔끔하고 먹을만 하다. 양이 적은 듯 하지만, 인심이 지저분하다는 생각 보다는 낭비가 적다는 느낌이다. 물론 더 달라면 더 주니 주어진 것을 일단 깔끔하게 다 먹는 것이 좋다고 본다. 된장찌개 말고도 생선구이, 뚝배기 불고기 등 일반 백반 메뉴도 있으니 된장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쪽을 권해드린다. 무한리필 생선구이나 강북의 잘나오는 백반집에는 못미쳐도, 깔끔하니 괜찮다. 전체적으로 '무난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살짝 드리는 팁. 이 집은 데이트 코스로 추천해 드린다. 압구정동이라면 응당 큰돈 주고 밥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던가. 그럴 때 이 집으로 살짝 인도해 보시길 바란다. 지저분하지도 않고, 음식도 깔끔하며 가격도 압구정 치고는 상당히 저렴하다. 당신은 당장 연인에게 센스쟁이로 찍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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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취재팀이 소개하는 강남 싼맛집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독자분 들의 차례다. 독자님들이 아시는 강남의 싼맛집들을 주르륵 풀어놔 주시라. 혼자 몰래 알고 있던 강남의 싼맛집들을, 다른 분들과 함께 공유해 주시라. 강남같이 물가 비싼 동네야 말로 진정 싼맛의 달인들이 빛과 소금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단, 가격상한은 5,000원이다. 딴 동네 싼맛집이 2~3,000원, 기껏 4,000원이었던 거 생각하면 많이 쓴거다. 어쨌든 아는 거 죄 풀어놓아 주시라. 괜찮은 거 보이면 본 싼맛팀은 언제든지 출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