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 전투 추모제
도솔산 전적 문화제(Mt. DOSOL Battle Memorial Festival)가 양구군 주최로 2008년 6월 20일부터 3일간 해병대 개선용사 시가행진을 시작으로 양구군 전역에서 열렸다.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공연 등 육군이 주둔하고 있는 양구지역에서 멀리서 온 해병대가 전적 추모제를 하느냐고 법석을 떠니 육군한테 미안한 감이 든다.
11회째인 이 문화제가 산악지역이 대부분이라 자립도가 취약한 양구군의 야심에 찬 행사다.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인 동경 128도 02분 02.5초, 북위 38도 03분 37.5초가 지나는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가 있다.
도솔산 전투란 해병대가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하고 2년만인 1951년 6월 4일부터 20일까지 17일간 도솔산에서 주야 공방 끝에 탈환한 치열한 전투로서 해병대 전적사에 크게 기록되어 있는 전투다.
도솔산 전투의 승전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양구에 있는 도솔산을 방문하여 ‘무적해병’ 이란 휘호를 내렸고 이후로 해병대는 무적해병이란 칭호를 쓰게 되었다.
통영상륙작전에서 김성은부대가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을 보고 외신이 ‘귀신 잡는 해병대’ (Marine catches even ghost)란 별칭을 붙인지 얼마 안 되어 받은 명예로운 무적해병의 칭호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1148고지인 도솔산은 첩첩산중으로 도솔산 탈환에 실패한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임무교대를 한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북괴군 12사단과 32사단의 정예부대와 난공불락의 진지를 피와 땀으로 사생결단하여 점령한 피의 능선이다.
도솔산 전투 대대장중 한명이 27세의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이고 소대장이 강복구 대령이다.
도솔산 전투에 참가한 해병이 해병 제1기에서 제7기 까지다.
이 6.25 참전 노병들이 격전지가 그리워 서울서 양구의 도솔산까지 죽은 전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버스 3대로 빨간 모자를 쓰고 추모제에 참석한 것이다. 70대 후반에서 80대까지인 이들은 당시에 배가고파 미군수송기가 낙하산으로 뿌려주는 식량이 적군으로 떨어져 적진에 떨어진 식량 빼앗아 먹으려고 더욱 치열하게 싸웠다고 농을 한다. 만약 이 도솔산 전투에서 해병대가 전멸하였다면 신생 해병대는 빛도 못보고 해병대의 이름이 사라질 뻔한 전투다.
도솔산 전투에서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은 해병 제1연대는 양구 북쪽 해안분지인 펀치볼 지구작전에 미 해병 제1사단과 같이 1951년 8월 21일 투입된다. 휴전회담이 제기되어 남 북 모두 경계선을 확보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이다.
펀치볼 전투는 3주간의 대 공방전을 감행한 끝에 펀치볼지구를 9월 20일 완전장악하게 되었다. 펀치볼 전투는 도솔산 전투와 함께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전투사다.
펀치볼지구 작전을 격려하기위하여 해병대 초대 사령관인 신현준대령이 예방하였으며, 이 대통령은 ‘신인이 경탄할 공훈’이라고 격려하였다.
차별침식에 의하여 형성된 이 펀치볼 분지는 한국전쟁을 취재하던 외신 종군기자들이 이 분지가 칵테일의 일종인 펀치를 담는 그릇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서울서 추모제에 참석하러간 역전의 용사들은 해병대전우회중앙회에서 준비한 버스 3대로 아침에 용산역 용사의집 앞에서 출발하여 양구의 도솔산까지 가니 오후 2시다.
양구의 동면에서 도솔산 전투 위령비까지 꼬불꼬불 산길을 가파르게 오르는데 위령비가 이렇게 높은 고지에 있는 줄은 몰랐다. 잠잠하던 날씨가 위령비에 도착하니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3시에 추모제가 시작되는데 기온이 하강하여 여름옷만 입고 온 참석자들이 으슬으슬 떨기 시작하고 안개는 더욱 짙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 기수가 기를 들고 쩔쩔맨다. 이 지역 기상이 항상 나쁘기는 하지만 요 몇 년 내로 오늘 기상이 제일 나쁘단다.
기상이 나쁘더라도 추모제는 정시에 시작되었다. 참석자는 양구지역의 유명인사는 모두 모였고 육군이나 해병대에 관련 장군이나 해병전우회장을 비롯하여 유지들이 참석하였는데 유명인사 외에 일반 참배객은 해병 1기에서 7기생 , 예비역 약간명, 참전용사를 빼고는 해간 35기 5명이 제일 많다. 참석자중에 눈에 띄는 것은 미국에서 온 전 사령관을 비롯하여 6명이 참석한 것이 이채로웠다. 행사 비중에 비하여 참배객이 적어 내심 서운하였다. 그나마도 열심히 참석하는 6.25참전 용사들이 고령이라 조금 있으면 유명을 달리할 용사들인데 후배 예비역들이라도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날씨가 춥고 안개 끼고 바람이 불어도 추모식은 조총을 비롯하여 분향은 계속되었다. 전황보고와 공사령관의 회고사를 들으며 박수도 치고 헌시낭송도 들었다.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나니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뜨기 시작하여 참석자의 의자가 텅 비게 되어 참으로 볼상 사나웠으나 덜덜 떨면서 자리를 지킨다는 것도 현역이 아닌데 기대난이다. 동기생들도 다 사라지고 나 혼자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내가 소대장시절 백령도에서 근무를 할 때 육지(본토)에서 유명인사가 부대방문을 한다고 전 부대원을 연병장에 도열시켜놓고 서울서온 유명인사 앞에서 열병을 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가 추은 겨울이었다. 부대가 열병을 하려면 사열관이 오기 전 최소한 한 시간 전에 모든 부대원은 사열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으며 이때까지가 고생이며 식은 순식간에 끝나는 것이다. 모든 부대원은 고위인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추워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고위인사가 연병장에 도착하니 겨울바람이 불며 눈보라까지 날리기 시작하였다. 부동자세로 서 있는 대원은 물론이고 내 앞에 서있는 중대장의 궁둥이가 덜덜 떨리는 게 보이는데 정신력으로 뻐팅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유명인사 중에 민주당총재 박순천여사 보고 치사를 하라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추운데 빨리 끝내라고 치사도 생략하니 식은 순식간에 끝나게 되었다.
식이 끝나고 각 부대별로 해산을 하는데 중대장이 지휘하려고 뒤로 돌아서는데 몸이 얼어 비틀거린다. 장사병 할 것 없이 온 몸이 얼어 몸이 말을 안 듣고 부대가 정열을 해서 가는데 대오가 엉망이 된다. 전 부대원은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자기 부대로 빨리 이동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추모제에 떨고 앉아서 현역시절 겨울에도 참았는데 이런 정도도 못 참겠나 하고 식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살풀이춤이 나오고 무용단이 퍼포먼스를 하는데 바람에 안개에 무용단 쇼올이 어울려 오히려 멋있게 보였다. 이 무용수들도 자기차례가 올 때까지 가림 막도 없어 전시용 수륙양용차 옆에서 하늘하늘한 얇은 옷을 입고 대기하며 추위에 떨다 나가서 춤을 추니 제 실력이 나오겠나만, 열심히 추고 멋있게 보였다.
추모제가 끝나고 버스로 도솔산을 내려와 양구 공설 운동장에 오니 날씨가 다른 세계 같이 맑고 바람도 안개도 없다. 공설운동장에는 각시도연합회에서 온 해병전우회원들이 축구대회에 열기를 더하고 있고 장터마당에는 옛날 풍물을 팔며 먹거리 장터가 섰는데 국화빵 하나로 달랬다.
추모제에 양구군수의 노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