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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김미경 지음
▣ 저자 김미경
1964년 출생. 연세대 음대를 졸업했고, 중앙대 산업대학원 산업전문지도자 과정과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여성 마케팅 전문 컨설팅 업체인 W.Insights와 미래여성연구원 대표이다. MBC-TV 기분좋은날 <김미경의 부매랑>, <김미경의 찬찬찬>, <김미경의 엔돌핀> 등을 통해 여성들의 큰 공감을 얻었고, SBS 라디오 <김미경의 행복레시피>를 진행하기도 했다. 저서로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나는 IMF가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당하지 말고 당차게 살아라』,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여성 마케팅』,『가족이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최고 강사로 꼽히는 김미경이 대한민국 가족에게 힘과 용기,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발간한 신작이다. 이 책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넘어야 하는 대한민국 모든 가족들에게 전하는 ‘가족 성공학’을 담고 있다. ‘가족 성공학’이란 현실이 어려워도 가족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 지혜를 말한다.
『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우리 가족의 꿈을 위축시키고 희망을 흔들리게 하는 장애물을 가족이 힘을 합해 함께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전해준다. 또한 위기돌파력이 강한 ‘가족 DNA’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DNA가 어떻게 대물림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이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당장 우리 집을 ‘희망 제작소’로 거듭나게 할 아주 구체적인 방법들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_ 내 소중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 손을 꼭 잡아주는 ‘가족 성공학’
Part 1 우리 가족의 꿈을 지키자
Family Self-Help 01 가정도 기업처럼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Family Self-Help 02 컨디션보다 프라블럼에 주목하라
Family Self-Help 03 가족이란 서로 손 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
Family Self-Help 04 가족의 마음을 샅샅이 공개하라
Family Self-Help 05 가족과 식솔은 다르다
Family Self-Help 06 우리 집은 수익형인가, 대출형인가?
Family Self-Help 07 가족의 무형자산을 유형자산으로 바꿔라
Family Self-Help 08 100년 성공 가족에게는 특별한 DNA가 있다
Family Self-Help 09 가족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DNA
Family Self-Help 10 가훈이 아니라 가족 비전을 만들어라
Family Self-Help 11 ‘불황’일 뿐 ‘불행’이 아니다
Family Self-Help 12 인생에도 가족에도 필터링이 필요하다
Family Self-Help 13 위기 때만 오는 기회가 따로 있다, 첫 번째 이야기
Family Self-Help 14 위기 때만 오는 기회가 따로 있다, 두 번째 이야기
Part 2 우리 집이 ‘희망 제작소’여야 한다
Family Self-Help 15 희망 제작소 VS 실망 제작소
Family Self-Help 16 새로운 ‘능력상자’를 열어 써야 할 때
Family Self-Help 17 숫자와 싸워라
Family Self-Help 18 10퍼센트 전략, 돈 버는 연습을 하라
Family Self-Help 19 내 안에 있는 희망의 볍씨를 찾아라
Family Self-Help 20 인생의 누적계수를 높이자
Family Self-Help 21 커브길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Family Self-Help 22 말이 통하는 가족이 꿈을 이룬다
Family Self-Help 23 용기는 꺼내 쓸수록 강해진다
Family Self-Help 24 돈에도 브랜드가 있다
Family Self-Help 25 가지는 흔들려도 뿌리는 버텨라
Family Self-Help 26 도망가고 싶거든 돌아올 곳을 생각해라
Family Self-Help 27 위기 속에서 버려서도 잃어서도 안 될 두 가지
Family Self-Help 28 우리 부모님들은 위기를 어떻게 넘겼을까?
Family Self-Help 29 추억은 가족을 찌들지 않게 한다
에필로그_ 가족의 재발견
프롤로그_ 내 소중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 손을 꼭 잡아주는 ‘가족성공학’
저는 고달픈 삶의 기로에 설 때마다 머릿속에 한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엄마, 홍순희 여사입니다. 칠순이 넘은 친정엄마의 깊게 패인 주름 속에서 우리 가족의 위기 극복 히스토리를 발견하곤 합니다. 좋은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가족이 깨지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의 소망과 꿈을 이뤄내기 위해 수많은 위기를 넘고, 험난한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부모님은 도대체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아왔을까요. 이제 와서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땐 이랬지” “이땐 내가 그렇게 살았어”라며 뼈아픈 위기극복의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엮어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대하소설은 저에겐 최고의 성공학 교과서가 됩니다. 그렇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놓은 부모님의 인생은 고스란히 저의 뿌리가 되고 제 성공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가족성공학’입니다. ‘가족성공학’은 현실이 어려워도 가족의 꿈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혜입니다. ‘가족성공학’은 가족과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 깨달음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해도 우리의 꿈이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잘 지켜줄 것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가족성공학’의 이름으로 “파이팅”을 외쳐봅시다.
Part 1 우리 가족의 꿈을 지키자
가정도 기업처럼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내 고향은 충북 증평이다. 증평에서 태어나 자랐다. 증평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농사짓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주변에 가발 공장, 빵 공장, 인형공장 등이 있어 몇 집 건너 한두 집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직물 공장과 신발 공장도 있었다. 돈 좀 있던 집안에서는 양조장이나 제재소를 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요즘에 고향에 가면 그런 공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몇 차례 닥친 위기에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평에서뿐만이 아니다. 거대 대기업이나 중간 이상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30년 이상 버티는 기업을 보기 힘들었다.
자부심을 뛰어넘는 인내심
우리 엄마는 증평에서 양장점을 했다. 이름하여 리리양장점. 엄마의 양장점도 지난 50년간 기업 못지않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증평의 첫 양장점이니만큼 처음에는 손님도 꽤 많았고 벌이도 괜찮았다. 그러다 위기가 왔다. ‘논노’라는 대기업에서 만든 기성복 제품이 나온 것이다. 양장점에서 옷 맞춰 입던 사람들이 죄다 ‘논노’로 가서 옷을 사 입었다. 디자인도 양장점보다 신선하고, 맞추고 기다리지 않고 사서 바로 입을 수 있으니 단골들까지 ‘논노’로 빠져나가 버렸다. 엄마는 자신의 만든 옷에 대한 자부심이 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부심만 세면 뭘 하나. 옷 맞추러 오는 손님이 없는데.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양장점을 반으로 뚝 잘라 양품점을 시작했다. 맞춤복에 대한 자신의 프라이드를 굽히고 기성복 옷을 갖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자부심을 접고 과감하게 ‘적과의 동침’을 해버린 것이었다. 엄마는 그때의 위기를 그렇게 버텼다.
엄마에게 배운 위기 돌파력
엄마는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자신만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 양장점에는 기성복이 판을 치는 시대에도 손님이 늘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패션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여성잡지며 TV에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을 나름 분석해 상품에 반영했다. “아유, 요즘 이게 유행이유”라고 엄마가 한마디하면 손님들은 바로 넘어갔다. 삶의 터전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서 아이템과 콘텐츠는 계속 바꿔나가면서 위기도 건너고 호기도 창출했던 것이다. 나는 어려움이 닥치거나 딱 손 놓고 싶을 때 엄마가 ‘논노’와 싸워 이겨냈던 그때를 떠올린다. 엄마가 위기를 버텨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를 배웠던 것이다. 가정이란 그런 곳이다. 부모는 위기가 왔을 때 버텨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위기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와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인생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위기를 버텨낼 때마다 ‘믿음과 동지애’가 생기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 같다. 창업 이후 기업이 순차적으로 위기를 맞이하듯이 가정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한평생 굴곡 없이 순탄하게 살아지길 바라지만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인생이라는 게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족 모두 감당하기 벅찰 만큼 아주 큰 위기가 오기도 한다. 중간에 가정의 문을 닫고 손 털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온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가정의 창업주들은 부도내고 손 털 생각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문을 닫을 생각은 말아야 한다. 대신 평생을 지켜온 맞춤복의 프라이드 다 버리고 기성복 갖다 팔면서 버텨낸 우리 엄마 양장점처럼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엄마 양장점은 그렇게 버틴 만큼 경쟁력이 생겼고 결국 다시 좋은 날을 맞게 되었다. 가족도 위기의 파도를 한 번씩 넘을 때마다 ‘믿음과 동지애’라는 경쟁력이 생긴다. 그래서 한 번 넘게 되면 두 번 넘을 수 있고, 두 번 넘게 되면 세 번을 넘을 수 있게 된다. 부도내고 손 턴다고 좋은 날 오지 않는다. 지금 모든 가정의 창업주들은 어렵다고 부도내고 손 털고 도망가려 하지말고 어떻게든 버텨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족성공학’이 모든 가정의 창업주들에게 그 지혜를 줄 수 있다.
가족이란 서로 손 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
우리는 왜 서로를 긁는 걸까?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집에서 부부싸움이 늘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다들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이 불편한 거다. 이를테면 남편이 아내에게 자꾸 가계부를 보자고 한다. 물론 “자, 그래 여기 있어” 하고 선뜻 보여주면 부부싸움할 일이 없다. 그런데 가계부 보여주는 게 주부로서는 학교 다닐 때 성적표나 검사받는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라도 선뜻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긁는 걸까? 이런 싸움을 백날 한다고 특별히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서로 긁는다고 우리 집 경제가 좋아진다면 뭐 매일이라도 해도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서로 긁는다는 것은 엄청난 감정의 소모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쪼잔함 속에 숨은 진실을 보자
우리가 서로를 긁는 것은 지금 서로의 실제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까지 불러주는데도 자원봉사자로만 봤던 소녀처럼 지금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가계부를 보여 달라고 하고, 카드명세서를 들고 화를 내는 것은 남편의 ‘위기체감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또 그 체감지수를 가족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가 전보다 더 짜증을 잘 내는 이유는 아내의 마음이 남편보다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경우 '위기체감지수'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높지만 ‘불안체감지수’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높다. 이런 때 처방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선 상대에게 이전보다 말을 좀 예쁘게 하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툭툭 던지듯이 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가족이란, 넘어지기 전에 손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내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무심하게 반응해서, 이미 바닥에 넘어진 후에야 그가 오래전부터 비틀거렸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서로의 손끝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로 손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불황’일 뿐 ‘불행’이 아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100년만의 전 세계적 불황’이라는 둥 ‘IMF는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들이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경제학자들도 ‘IMF가 V자 곡선을 찍고 올라갔다면 이번에는 U자 곡선’이라는 둥, 어떤 이는 ‘L자 곡선’이라는 둥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아예 ‘세계 대공황’을 얘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두려움을 넘어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언론을 보고 있노라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지금 혹독한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좌절할지 걱정스럽다.
불황을 땅으로 딛고 서라
불황은 경제적인 고통일 뿐이다. 예를 들면 100만 원 수입이 70만 원으로 떨어지는 것이나 30만 원이었던 하루 매출이 10만 원으로 줄어드는 것, 혹은 취업을 못한다든지, 55세가 정년 퇴임인데 45세에 명예퇴직을 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기존에 향유하던 모든 경제적인 기반이 축소되거나 내려앉는 상황을 우리는 ‘불황’이라 일컫는다. 불황은 녹록치 않다. 호황은 즐겨주면 그만이지만 불황은 고도의 기술로 다뤄야 한다. 불황은 결코 ‘욱하는’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정제된 감정과 노련한 기술로 가족이 힘을 합쳐 넘어야 간신히 넘을 수 있는 게 불황이다. 지레 겁먹고 ‘불황’을 ‘불행’으로 보는 순간, 넘어야 할 언덕은 거대한 산맥이 된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의 정체
경제적 불황이 심각해 온 가족이 길바닥으로 나앉은 극단적인 상황도 있지만 우리가 겪은 불황은 일반적으로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필요 이상으로 겁먹고 있다. 온 사회가 집단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지원육성’하면서 경제적 불황이 마음속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기왕에 닥친 불황이라면 오히려 얕잡아 볼 필요도 있다. ‘할 수 없어’, ‘어떻게 해’라고 겁먹는 순간 못하게 되는 불가능의 길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불황은 현실에 불과한 어떤 상황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순간부터 ‘할 수 있다’는 가능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불황을 확대 재생산시키지 말자
부모님들은 자식이 학교 들어가면 “이제 고생 시작”이라고 말했고, 결혼하면 “이제 진짜 고생 시작”이라고 말한다. 인생에는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거나, 남편이 일찍 죽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불행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것들이다. 불행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했더라면 지구 인구의 절반은 진작 죽었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행복에 겨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황으로 볼 것이냐, 불행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인생이 갈린다. 불행으로 보는 청년들은 지금 취업 못하면 영원히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불행의 씨앗은 점점 자라 ‘우리 집에 돈만 있었어도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는 건데…’라는 생각까지 번진다. 아버지를 불행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그에게 온 것은 일시적 불황일 뿐인데 불행으로 인생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행을 삶 자체로 받아들여 희망을 꽃 피우고 의미 있게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황 비슷한 것만 던져져도 불행으로 확대·재생산시켜 스스로 나자빠지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업·다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업할 때나 다운할 때나 변함없는 마음의 리듬을 갖는 일이다. 평생 동안 전 세계의 오지를 내 집 안방처럼 돌아다닌 구호활동가 한비야 씨는 이런 말을 했다. “낯설고 거친 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렸대도 물어보면 그만이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위기 때만 오는 기회가 따로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위기는 기회다.” 이 말은 IMF이후 지난 10년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말이다. 대통령부터 기업을 이끄는 CEO, 한 집안의 가장들까지 똑같이 외쳐왔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이분들은 정말 마음속 깊이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경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기회라고 본다. 경제 위기에서 서민들에게 오는 것은 올라가는 대출이자, 쪼들리는 생활비, 흔들리는 경제기반뿐이다. 때문에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화가 난다.
위기와 시련이 주는 선물은 따로 있다
한 기업체 교육 파트에 계신 정 부장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건축 관련 기업이라서 지난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기업 중 한 곳이었다. 한동안 교육과 컨설팅을 활발하게 진행했었는데,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많던 차였다. “원장님, 저희 회사가 요즘 많이 힘듭니다. 잡쉐어링 명목으로 전 직원이 사나흘만 출근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잘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평일에 쉬자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등산을 시작한 요즘은 지낼만 하답니다.” 사정을 듣고 나서 그래도 무사히 지내시는 것 같아 걱정을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려운 시기가 잘 나갈 때는 만날 수 없는 어떤 기회를 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생각의 함량이 인생의 함량을 바꾼다
사람이 성찰이나 통찰, 관찰, 고찰 같은 것 그러니까 한자로 察(찰)자 붙은 거 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시간’이다. 즉각 인스턴트가 안 통하는 유일한 분야다. 그런데 그동안 다들 하루에 10분밖에 생각할 시간을 안냈다. 그러니까 생각의 함량이 높아지질 않는다. 매일 똑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루에 4시간씩 산행을 하다보면 그 시간에 뭐하겠는가? 생각밖에 할 게 없다. 4시간이면 240분, 240분짜리 함량을 가진 해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 부장님도 산에 다니면서 많은 변화를 하게 되었다. 10분짜리 생각 패턴으로 인생을 살아오던 것을 240분짜리 생각 패턴으로 인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240분 동안 성찰 끝에 고민을 털고 내려간다. 산에서 내려가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이런 패턴으로 사는 방식을 싹 바꿔 버렸다. 혁명이 따로 없었다. 이런 게 바로 혁명이었다. 정 부장님은 유명한 큰스님들이 하시는 말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정 부장님은 이번 위기 속에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할 기회도 찾았다. 이번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해오던 대로 10분 생각 패턴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고, 모든 문제에 대해 10분짜리 함량의 해답밖에 찾지 못했을 것이다.
Part 2 우리 집이 ‘희망 제작소’여야 한다
희망 제작소 VS 실망 제작소
‘엄친아’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종횡무진 세상을 떠돌아다니진 않았다. 그동안 엄친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모양이다. 옛날에는 두 동네쯤 건너서 하나씩 있었다면 요즘엔 동네마다 두세 명쯤 있는 것 같다. 물론 ‘엄친아’란 말이 나와 좋은 점도 있다. 너무 잘나서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제는 기죽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쿨’하게 한마디 던지면 된다. “어느 동네 엄친아야? 목동 엄친아야? 화곡동 엄친아야?” 사실 따져보면 별 의미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이 갖는 ‘치유의 힘’은 대단하다. 한 번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때부터 그 사람한테 기가 죽거나 크게 부러울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내 말 믿기지 않으면 다들 한 번 실험해보시라.
미련, 후회, 불신, 비교를 만들지 마라
시대가 어려우니 모두들 희망이 어디 있는지 희망을 찾아 나선다. 물론 눈에 잘 안보이기 때문에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희망을 찾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우리 집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집이 ‘희망 제작소’이기 때문이다. 원래 희망 제작소라는 말은 시민사회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것인데 나도 종종 사용한다. 우리 회사에 한 달에 한 번씩 여성들을 초대해 멘토링 해주는 ‘코유라Coaching Your Lif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강의에서 한 번은 “우리 집이 희망 제작소예요”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좋아했다. 내가 “희망 제작소에서는 절대로 생산해서는 안 되는 제품이 있어요. 미련, 후회, 불신, 비교, 이 네 가지요”라고 말했더니 강의를 듣던 여성들 대부분이 “어머, 쿡 찔리네요. 남편한테도 애들한테도 비교를 많이 해서요”라며 웃었다. 작은 거라도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집은 희망 제작소가 될 수가 없다. ‘실망 제작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옆집보다 늘 낫다고 생각해야 된다. 강의 중 이 말을 들은 한 사람이 “우리 집은 이사 먼저 가야겠어요. 우리 옆집은 너무 부자거든요” 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아내들은 이제부터 가정이라는 희망 제작소의 소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걸맞은 ‘희망의 리더십’을 구현해야 한다.
희망 제작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해
희망 제작소의 원조격인 박원순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경제 위기를 이겨내려면 국민 모두가 소기업 사장이 되어야 한다. 헌법도 개정해야 한다. 헌법 1조 1항을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소기업 사장이 될 수 있다’로 바꿔야 한다.” 이제 ‘치킨 집 사장’은 승부 안나니 다들 관심 끄자는 말이다. 문제는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그런데 우리 남편에게 주로 이 두 가지가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창의력과 상상력이 없다고 남편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그 두 가지는 가정이라는 희망 제작소에서 생산해야 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야기 한 것처럼 전 국민이 소기업 사장이 되어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자신이 종사하던 일과 관련된 유사 업종을 개발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내 안에 있는 희망의 볍씨를 찾아라
위기 너머에 있는 것을 보자
기업은 인사 평가를 할 때 직원들이 희망의 볍씨를 몇 개 갖고 있는지 면밀하게 따진다. 때문에 가장은 여러 가지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 영업팀에서 일하는 장 팀장은 5년 전 ‘중국어’라는 희망의 볍씨를 심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어학원 새벽반에 나가 꾸준히 중국어 실력을 쌓았다. 그의 능력은 위기 때 빛났다. 회사가 경제 위기로 미국 수출길이 막히자 중국으로 판로를 바꾼 것이다. 장 팀장은 구조조정의 여파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중국 수출담당 부장으로 승진했다. 만약 그가 중국어라는 희망의 볍씨를 심고 가꾸지 않았다면 진작 정리해고 당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직급이 높아질수록 든든한 희망의 볍씨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면 남편의 학원비와 책값 등을 가장 먼저 줄인다. 대부분의 집에선 아이의 볍씨를 키우는 데는 무분별하게 투자를 하면서 남편의 볍씨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남편의 희망의 볍씨를 찾아 지원해주는 것은 가족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황 때 헐값으로 사서 호황 때 금값으로 팔아라
불황일수록 발은 현실이라는 땅 위에 딱 붙이고 머리는 호황에 두는 것이 좋다. 즉, 공부 같은 자기 투자에 몰입하면 발끝은 불황에 닿아 있지만 머리끝은 호황에 두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불황을 미래가치에 맞는 브랜드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 좋아지는 뭔가를 하나씩 갖고 있어야 한다. 희망의 볍씨가 싹을 틔워 가을 들판을 황금빛으로 일렁이게 하는 풍경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불황이후를 보지 못하나. 호황 때 두 아이가 서로 장난치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왜 상상하지 못할까. 어차피 아이가 살아갈 수십 년의 인생 동안 불황은 몇 번씩 왔다간다. 단지 지금 왔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껏 너무 바빠서 아이 낳을 시기를 놓쳤던 직장여성들은 지금이 기회다. 불황이 희망을 잉태하는 것이다. 힘들수록 생각보다 ‘상상’을 더 많이 하는 것이 미래가치를 만드는 지혜다. 나를 미래의 상상 속으로 데려갈 강력한 희망의 볍씨, 스스로를 현재의 고통이나 고민 속에 방치하지 않는 또 다른 내가 있어야 한다. 후배는 얼마 전 예쁜 둘째 딸을 낳았다. 나는 후배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해주고 싶다. “불황 때는 시간을 가장 헐값에 사라. 호황 때가 되면 그것을 최고의 금값으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라고.
말이 통하는 가족이 꿈을 이룬다
대화의 단절은 모든 인간관계의 ‘적신호’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어진다는 것은 애정이 식었다는 증거이고 아이가 입을 다무는 것은 사고칠 징조다. 엄마들은 알 것이다. 다섯 살짜리가 쫑알거리면서 시끄럽게 장난칠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꼭 조용할 때 일이 터진다. 아이들이 집에 우당탕탕 시끄럽게 들어오면 오늘도 무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용히 들어오면 친구와 싸웠거나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내가 이놈의 회사 때려치워야지!” 하고 큰소리치면 괜찮다는 증거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말이 없어지면 실직을 의심해봐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족이 단결해 한곳을 보면서 달려가야 한다. 한곳을 보려면 대화를 통해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소통해야 한다. 말없이 각자 처리하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낭비가 많아진다.
대화하기엔 너무 쑥스러운 가족을 위한 처방
가족끼리의 대화가 왕성하게 일어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대화가 어색하고 쑥스러워진 집은 대화의 소재를 찾아서 가족이 함께 떠나야 한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 단체 관람하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영화를 본 뒤 갑자기 거실에 모여앉아 “자, 이제 토론해볼까?” 하는 것도 영 어색하다. 그런 면에서 차 안은 좋은 대화의 공간이 된다. 굳이 눈을 안 맞춰도 되니 부담 없이 얘기가 오고 갈 수가 있다. “그 남자 주인공 말이야, 얼굴은 잘 생겼는데 연기는 영 꽝이야.” 아버지가 이렇게 한마디 던지면 뒷 자석에 파묻혀 있던 딸이 발끈해 운전석 등받이를 붙잡고 반론을 편다. 이렇게 하면 성공이다. 한 번 대화를 트면 그 뒤는 점점 쉬워진다. 몇 달 지나면 딸이 “아빠, 나 할 이야기 있는데…”라며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말 걸기가 겁날 정도로 서먹한 가족을 위한 처방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는가? 비난이나 질책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열고, 얻고 싶을 때 우리는 칭찬의 말을 건넨다. 칭찬의 가장 큰 효과는 적을 내 편으로 만들 때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별로 안 좋아했던 사람에게도 꾸준히 칭찬을 해주면 든든한 아군이 된다. 반면 직설적인 비난은 아군도 적군으로 만드는 수가 있다. 반면 직설적인 비난은 아군도 적군으로 만드는 수가 있다. 얼마 전 어떤 CEO가 신년사를 하려고 단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일부 직원들이 전날 전체회식에서 과음한 나머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임직원 여러분,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지난해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직원들과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술을 마신 그 열정조차 우리 회사의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힘들게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모두가 제 자식 같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들과 함께 언제까지나 생사고락을 함께할 것입니다.” 신년사가 끝날 무렵, 회의장에는 폭소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CEO의 칭찬과 유머가 회사 분위기를 살리고 직원들의 자발적 열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칭찬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야단칠 수 있다. 그게 삶의 지혜다. 어떤 엄마는 형편이 어려워져 수학여행 가는 중학생 딸에게 새 옷을 사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언니 옷을 물려입게 된 딸의 양 볼은 당연히 퉁퉁 부었다. 그러나 엄마는 웃으면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딸은 뭘 입어도 이렇게 예쁠까. 언니가 입을 때보다 네가 입으니까 훨씬 예쁘네. 엄마 형편 생각해줄 줄도 알고. 너는 옷맵시뿐만 아니라 마음도 괜찮은 애야.” 그 엄마는 칭찬을 통해 야단을 친 것이다. 이렇듯 칭찬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도 혼내줘야 하는 사람에게도, 서먹해진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다 통한다. 가족의 마음이 각박해지기 쉬운 때일수록 칭찬대화를 많이 활용하자.
추억은 가족을 찌들지 않게 한다
추락하는 그의 곁에 가족이 있다면
우리 동네에 있었던 가족의 이야기다. 이 가족은 금형공장을 운영하던 가장이 두 번의 부도를 낸 후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처음에는 정말 믿었던 사람에게 부도를 맞아 그 여파로 어쩔 수 없이 부도를 내게 되었다. 그때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재기했으나 조금 좋아지는 듯하다 저가의 중국산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와 사업이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불경기에 판매 부진까지 견디지 못하고 두 번째 부도를 내게 되었다. 그 가족은 그간 살았던 집도 잃고 전세금도 건지지 못해 조그만 월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가족을 안타깝게 생각한 지인이 창고를 개조해 내줘서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 둘과 함께 그곳을 집으로 삼아 살고 있다. 난 가족들의 안부를 전해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우연히 그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가족들의 표정이 밝고 편안해 보였다. 그 가족이 어렵고 힘든 추락의 과정에서도 찌들지 않는 비결은 두 가지였다. 그들은 상황이 나빠진 것에 대해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락 이후 ‘추억 놀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안쓰럽고, 짠하다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했을 경우 아내가 먼저 남편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당신은 사업을 어떻게 한거야! 당신은 왜 그렇게 능력이 없는 거야! 다른 집들은 다 멀쩡한데 당신만 대체 왜 이 모양이야!” “내 친구는 부도난 것을 처가에서 막아줘서 다시 일어났는데, 당신은 그런 친정도 없으면서 뭐 어쩌자는 거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지. 왜 시끄럽게 말이 많아!” 이렇게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대못질을 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은 그런 원망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바닥으로 떨어진 그 상황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단다. “초창기에 당신 사업이 잘 됐던 것도 내 능력이 아니었듯이, 지금 당신이 엎어진 것도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내가 복이 많았다면 우리 남편이 잘 풀렸을 텐데 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당신도 엎어지고 싶어서 엎어진 게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자 남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을 하더란다.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수십 차례 교차되는 긴 가족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추억을 만들어갈 것인지도 한 번 생각해보자.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추억의 단상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강인한 성공의 역사가 될 것이다. 오늘을 우리 가족 성공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쓰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 가족이 힘을 합하면 어떠한 고난도 성공의 추억으로 만들 수 있다.
에필로그_ 가족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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