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일출
문부자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며 글이 보이질 않는다. 서둘러 전등을 켜고 창 밖을 보니 짧은 겨울 해가 노을도 없이 산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제 겨우 네시삼십분이 지났는데,...
산골의 겨울 해는 노루꼬리만큼 짧아 일몰 후 아침해 뜨는 시간까지는 시커멓게 내려오는 산과 마주해야 한다. 넓은 보폭으로 자리잡은 어둠이 밀려오면 거리엔 정적을 깔아놓고 간간이 불어오는 겨울바람소리만 스산하다.
산이 높아 하늘 가리운/ 초겨울 바람은 허공에/ 서럽디 서러운 한숨을 토하고/ 옷을 벗긴 나목은 잊힌 계절 아쉬워/ 하늘을 인 채 외롭습니다// 해질녘 정채된 거리엔/ 빛 바랜 노을이 내려와/ 정적을 잉태합니다// 어느덧 창가에/ 하나 둘 불빛이 졸면 /꿈은 피어 별빛 되어 내리고/ 쪽달은 수줍은 얼굴로 / 또 하루를 이웁니다.
이 글은 서울에서 삶의 터전을 이리로 옮기고 난 직후에 외로운 일도 서러움이 되어 산도 하늘도 적막강산으로 가슴을 누를 때 쓴 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을이 깊어 나뭇잎들이 옷 벗을 때였으니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는 일도 그리 짧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자동차소리마저 잠든 긴 밤 드믄드믄 비추는 가로등 사이로 밤하늘에 별빛이 그렇게 찬연했던지 그것도 익숙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이 되곤 했다.
그도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은 세월이 되어 이곳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산하도 개발되어 깔끔하게 변모가 있었지만 자연을 우리의 큰 거처로 바라보는 나의 느낌도 많이 변화되었다.
앞산에서 커다란 해가 뜨려면 아침이 한참 깨어서이고 한낮이 지났나 싶으면 해는 벌써 서산에서 어둠과 자리를 바꾼다. 그것도 삽시간에 일이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보다 시골사람들은 마음이 순하고 생활이 좀 늘어지나 보다.
여름태양도 그리 뜨거운 줄 모른다. 태양 빛이 내려오다 나뭇가지나 산마루에 걸터앉아 한 호흡 돌리고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곳 아이들은 해가 바다에서 뜬다는 사실을 다 커서야 이해한다. 항상 태양은 앞산에서 뜨고 뒷산에서 지고있으니... 아이들이 동해바다 수평선에서 불끈 솟는 해를 보면 얼마나 근사해 할까?
몇 해전 정초에 해돋이 마중을 가기로 했다.
산에서 뜨는 해나 바다에서 뜨는 해나 창공에 떠오르면 다르리 없건만 요즘 생활이 윤택해지며 도시사람 시골사람 할 것 없이 새해 맞이하러 동해로 몰려드는 이색 이동문화를 낳고 있다.
바다에서 물을 뚝뚝 떨구며 건져 올리는 태양을 향해 경탄의 소리를 외치는 사람,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 느긋하게 떠오르든 태양도 세월 따라 바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편승하고 싶었다. TV에서 그 진풍경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새벽4시에 눈을 뜨자 차에 올랐다. 새해 초하루 바람은 칼같이 예리했다.
차창을 열 때 마다 볼이 떨어질 듯 차가웠다.
미시령 오르는 길은 신 새벽임에도 해맞이 행렬이 줄을 달았다. 일출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해 미리 도착한 산 정상에는 동해에서 불어오는 난류와 백두대간을 훑고 다니는 한류가 만나 육중한 차체마저 들썩거린다.
옷섶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무서워 동해바다까지 가지 못하고 산정에서의 해맞이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추위를 피해 휴게소로 들어갔다.
신정 손님맞이를 위해 코너마다 희뿌연 김을 올리며 음식 준비에 한창이다. 창문엔 어둠이 걷히지 않아 밖은 지척도 분간 할 수 없다. 실내에 밝힌 전등불빛들이 까만 유리창에 붙어 갸멸지게 춤을 춘다.
어둠이 가실 기미는 보이질 않고 새로 사 쓰고 왔다 바람에 날아간 모자 생각만 지울 수 없다.
7시가 가까워지며 여명이 서서히 걷히고 검붉게 변해 가는 수평선이 통유리창에 융창한 모습으로 바뀐다. 우리는 달려나갔다. 그사이 어디서 왔는지 너른 휴게소 광장엔 사람으로 붐빈다.
지척이듯 보이는 동해바다, 7시40분 드디어 모태에서 양수가 터지듯 검붉은 무리가 울컥거린다.
수면이 용트림으로 진통을 겪는 순간 태양이 빛나는 불빛으로 탄생의 신비를 자아낸다. 사방에서 환호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수평선위로 무리 지어 오는 빛에 반사되어 홍조 띤 얼굴에 희망이 넘친다.
너무나 눈부시고 온몸이 전율한다.
나는 소원할 것도 경외스러워 할 것도 다 잊고 두 손 합장하고 그냥 침묵으로 바라보는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주체할 길이 없다.
감격스러움인지 눈부심인지 묘한 감정에 쌓여 그냥 그렇게 서서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춥기도 했지만 발가벗긴 몸이 부끄러운 듯 해 겹겹이 끼어 입은 옷매무새만 자꾸 끌어올려 몸을 감쌌다.
물기를 걷힌 불같은 태양이 붉은 구름에 받혀 온 수평선을 광휘의 빛으로 눈부시게 한다.
아주 잠깐동안 지구 자전의 태동으로 떠오른 거대한 태양은 대지에 빛을 뿌리며 온 세상을 눈뜨게 한다. 빛으로 드러난 하늘. 바다. 산의 나무들도 경건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새날을 시작한다
천지창조의 섭리는 태양을 늘 그렇게 우리에게 비추며 삶을 존속케 하는 것이다.
태양이 우리 곁에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없음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태양은 저토록 장엄한 일출이었고 일몰이었을 터인데 땅만 보고 사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무딘 감각들이 자책이 되곤 한다.
하나의 달이 일천 강을 비추고 한줄기 태양 빛이 삼라만상을 일어나게도 눕게도 하는 것이다.
그 후론 나는 생각했다, 태양은 인간 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성역이며 살아있는 생명을 위해 신이 태초에 내리신 우주의 원천임을 깨닫고 싶어했다. 그리곤 다시 해맞이를 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의 창문으로 굴절되어 들어오는 태양 빛도 아침엔 바로 볼 수가 없다. 너무나 눈이 부시기 때문이다.
강원문학 36집 원고>
약력
계간 [시현실] 수필 천료
인제문협 수필분과 위원
내린문학 회원
인제 예술인연합회 부회장
인제 도서관 부부독서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