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 여행 3일차 수리성공원
2015.2.24.
오키나와를 통일한 류쿠 왕조가 수리성을 세웠는데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오키나와 본래 독립국가였으나 1906년 일본이 점령하였다. 1945년 오키나와 전쟁에서 일본 주력부대가 수리성에 주둔하여 집중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전후 미군이 점령하다가 72년 반환하였다. 1992년 오키나와 본토 복귀 20주년을 기념하여 복원되었다. 옛날 성벽은 보관하고 있는데 2000년 12월 일본에서 11번째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붉은색이 많이 들어간 것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중국과 일본의 축성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수리성 관광 느낌은 성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약간 실망이었다. 오키나와는 중국, 일본, 미국의 문화가 섞여 있다. 외침을 자주 받아 살아남기 위한 질긴 생명력이 있고 많은 한을 담은 슬픈 역사가 있다. 일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오키나와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여성분들 생활력 강하다. 남성분들 일 잘 안 해. 그래서 그런지 이혼율이 높다. 여성분들 독립심 있어 혼자서도 아이 키우며 산다.
|
수레문(슈레이문)
쇼신왕시대(1527~1555)에 창건. 현판 예절을 지키는 나라
또는 류큐는 예절을 중용시하는 나라라는 의미.
수리성 관광 지도 한글판
한회문(칸카이몬)
슈리성 정문, 중국 황제의 사자 "책봉사" 등 방문하는 사람에게
환영의 뜻을 담아 이름이 붙여졌다. 별명 '아마에우죠'(응석의어문)
서천문(즈이센몬)
즈이센이라 '훌륭한, 경사스러운 샘'이라고 하는 의미, 문의 앞에 있는 용수(솟아나는 물)
'류히'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 별명 '하키와우죠'
누각문(로코쿠몬)
성루 안의 물시계로 시각을 잰 것으로 이름이 붙여진 문.
별명 '키고이세우죠', 신분이 높은 공무원도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며 여기서 가마를 내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한화문(좌측)과 수리성 성곽
일영대 해시계와 만국진량의 종
해시계 일영대(니치에다이)
'누각문'의 정면에 놓여져 있는 해시계. 1739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져.
1879년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할 때까지 왕국시대를 계속 새겼다.
만국진량의 종(반코쿠신료노카네)
1458년 수리성 정전에 걸려 있었던 종.
해상무역으로 번창했던 류큐왕국의 기개를 나타내는 명문으로 유명.
광복문
동쪽에는 호적관리를 하는 '대여좌', 서쪽에는 절이나 신사등을 관리하는
'시사좌'가 있음, 현재는 발매소
광복문에 들어와서 광복문을 촬영한 사진, 우측이 정전 관람 티켓 판매소다.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
우리는 정전이 패키지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고 딱히 일본 문화를
더 배우려고 온 것도 아니므로 그냥 추가 관람을 포기.
수리성 정전 관광은 약도로 대체
서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키나와와 풍경과 전망대 주변 풍경
기묘한 나무
또 다른 전망대에서 바로 본 오키나와 풍경
류탄, 책봉사의 진언에 의해 1427년에 조성된 인공 연못
일본 700여 년간 무사가 지배하였으며 무사에게는 죄지은 양민을 처벌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그런 무사들을 상대로 장사해야 하므로 친절했고 일본어에 욕이 별로 없다. 한국은 감정에 충실한 민족으로 화나면 싸우고, 싸우다가도 사과하고 다시 사귀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은 참을 때까지 참다가 더 못 참으면 끝내 떠나버린다. 사과해도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감정 표현이 서툴다고 보면 된다.
오키나와에는 눈과 철도가 없다. 겨울이어도 남쪽이라 1월 중순부터 벚꽃이 핀다. 오키나와에는 담도 없는데 후꾸(福이란 의미) 나무를 심어 담을 대신한다. 나무뿌리가 지반을 튼튼히 잡아주는 역할도 해 일본 본토에는 도로변이나 집 둘레에 나무를 많이 심는다. 대나무 뿌리가 밀도가 높아 산간 사면이나 도로변에 대나무를 많이 심는다. 일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편백 다음 오동나무다. 편백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
|
첫댓글 사진 참 잘찍으셨네요.
잘보앗습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