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웨딩드레스', '애모의 노래'의 가수 한상일[1]
'신사의 멋' 물씬 풍기며 아리따운 신부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모의 노래', '웨딩드레스'로 사랑받던 시절의 한상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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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웨딩드레스', '애모의 노래'의 인텔리 가수 한상일[1]
'신사의 멋' 물씬 풍기며 '아리따운 신부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소.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소.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 향기였다오.'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의 가수 한상일씨(65)가 70년 2월에 발표한 노래, '웨딩드레스'다.
당시 아리따웠던 신부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이 노래는 정인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먼데서 온 여자'의 주제가.
이희우 작사, 정풍송 작곡으로 발표되자마자 당시 '하와이안 웨딩 송'과 더불어 결혼축가의 대명사로 금세 자리했다.
흔히들 '노래엔 임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노래는 '신사의 멋'이 물씬 풍기는 가수 한상일씨의 분위기에 제 격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이 노래 '웨딩드레스'는 작곡가 길옥윤씨와 정풍송씨에 의해 각각 발표된 노래다.
말하자면 똑같은 가사에 멜로디만 서로 다른 두 가지 노래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작곡가의 각기 다른 노래는 모두 한상일씨에 의해 취입된다.
"1주일 정도의 차이로 같은 가사의 노래를 각각 다른 멜로디로 연습해야 했어요.
그리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음반이 각각 나왔지요.
때문에 방송국 측에서는 신청엽서를 받으면 어느 곡을 틀어야 할지 몰라 애먹었고
저 역시 무대에서 ‘웨딩드레스’를 요청받으면 무대에 따라 두 곡을 번갈아 부르기도 했지요."
-한상일씨의 회고다.
현재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애모의 노래'를 비롯하여 '내 마음의 왈츠', '오 천사여', '영아는 내 사랑'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70년대 말 전공인 건설 분야로 방향을 선회, 20여 년 간 가요계를 떠나 있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인물로 작년에는 '손석우 노래 55주년 헌정음반'을 통해
오랜만에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등을 발표, 예전 그 음성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당시 대부분이 그러했듯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던 당시의 한제상, 즉 한상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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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1월 18일, 개성에서 부친 한효경씨와 모친 진은주씨 사이의 5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그.
그는 개성 만월초등학교 4학년 때 6.25가 발발하자 인천으로 피난 와
인천 서림초등학교, 인천중을 거쳐 서울 경동고를 졸업했다.
중2 때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혼자가 되어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인천의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신문배달 등으로 고학을 해야 했다.
어릴 때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진로를 바꿔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한다.
남쪽과 북쪽에서 모두 공부 잘하는 우등생인 동시에 노래 잘하는 재주꾼으로 통했던 그는 특히 대학시절,
마리오 란자, 앤디 윌리암스, 후랭크 시나트라 등에 심취해 4중창단을 결성해 활동했을 정도로 음악광이었다.
65년 대학 졸업 후 은사가 설립한 '김희춘 설계사무소'에 입사,
1년여 동안 전공을 따라 설계기사로 일했지만 결국 노래를 부르기 위해 이 일을 접고
미8군 장교클럽인 '유썸클럽(Yusumclub)'에서 전속가수, 즉 하우스 싱어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주위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먼저 '팝송악보'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스탠더드 팝을
무려 3백여 곡 정도나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1966년, 칸초네 'Carissimo Pinocchio(피노키오의 편지)'를 불러
KBS-TV 전속가수 1기생으로 발탁, 본격적으로 대중들 앞에 등장한다.
▲ 손석우 작곡의 데뷔곡 '내 마음의 왈츠', '가리라 저멀리'가 담겨 있는 가수 한상일의 데뷔음반(우측), 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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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은 본명 '한제상(韓濟祥)'.
그러나 67년 데뷔곡 '내 마음의 왈츠'를 취입하며 '한상일(韓常一)'로 바꾼다.
이 이름은 작곡가 손석우씨가 지어준 것으로 '늘 어디서든 일등이 되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면테스트까지 거친 TV 전속가수였기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는 물론 율동까지 소화해내야 했어요.
그러나 어린 시절 골수염으로 인해 오른쪽 발목을 잘라낼 위기까지 넘겼던 터라 다리가 불편해
무대에서의 율동을 소화해내기가 어려웠지요."
때문에 방송국 측 입장에서는 한편 난감했을 것이라 회고하는 그는
대신 '밤으로의 초대' 나 '장미의 화원'같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더욱 주력한다. (계속)
글 l 박성서(대중음악 평론가/저널리스트)
- Copyrights ⓒ2006-09-14일자, 서울신문.
첫댓글 박성서님```오랫만에 뵙습니다.무척 애 많이쓰셨네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 이 아저씨랑 차인태씨랑 왜 그렇게 닮게 느껴지는지...ㅎㅎ
한상일님의 `웨딩드레스`는 지금 들어도 너무 멋진 웨딩송 입니다.얼마전 귀국하시여 `아침마당`에서 아직도 멋진 노신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찾아주신 인왕산님, 나팔꽃님, 금강님께 감사드립니다. 거의 1년이나 지나 감사 댓글을 단 것은 아마도 바람새 친구 게시판에서 기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냥, 죄송...
한상일씨는 언제나 지성적이며 절제된 노래로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었지요. La novia도 번안해서 불렀었구요. 중학교 시절 멋모르고 따라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좋은 소식 감사드립니다. 박성서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