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4시 40분.. 배 꿀룩거려 변소 가서 일보고,(숯가루 물만 나온다, 맨날. 적체된 숙변도 없나 보다. 선생님 말씀이, 배 단단한 것도 숙변이 아니라 장이 단단하게 뭉쳐 있는 거란다. 사람들이 다 숙변이라 했는데.. 모르겠다.)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간밤에는 두어 번 깨긴 했다. 2시쯤이었고, 또 4시쯤이었나.. 배도 꿀룩거리고 뒤가 나올 것 같았는데, 힘없어 그랬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누워 또 자고 그랬다. 다행히 싸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벌레에 물린 건 아닌 것 같고 자면서 근질근질해 몸을 긁은 기억이 난다. 팔이었던가. 어딘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좀 없었나.. 귀찮았나. 어제부터 계속 배가 꿀룩거리고 그런다. 속도 더 매쓱거린다.
세수,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모두 나선다. 비 안 와 오늘 처음으로 우산 안 들고 나가니 좋다. 우산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근데 우산 없이도 몸이 너무 무겁다. 다리는 힘없고.. 그래 계단 내려가는데도 난간 잡아야 한다. 그리고도 한 칸씩밖에 못 내려간다. 사람들이, 노인들 힘없다 주저앉고 누워서도 힘들다 하는 거 이해하겠단다. 우리가 지금 그 체험 하고 있다고 하면서.. 오늘도 좋은 기사아저씨 만나 다섯이 한 차 탈 수 있었다.
도산공원 앞에 내려 걸어들어간다. 비 안 와 우산 안 쓰고 있으니, 공원 전체가 새롭게 보인다. 무성한 푸른 나무들.. 진짜 푸릇하다. 안나님 나뭇잎들 만져보며, 얘네들이 비를 맞아 부드럽다고, 비오기 전엔 쫌 까칠했는데, 그러신다.(우린 단식 시작한 첫날부터 비가 왔지만, 안나님은 그전부터 시작했으니, 변화를 알아채셨나 보다) 역시 물을 먹어야 된다고. 그래야 부드러워진다고.. 그래 사람이나 식물이나.. 그리고 사물도..(마른 행주에 물 묻힌 거 생각나, 혼자 속으로 덧붙였다.)
할머니꽃밭.. 백일홍 빨간 꽃이 참말 예쁘게 피었다. 가만히 보니 백일홍 색깔, 빨강 보라 주홍 주황 다 다르네. 다 이쁘고.. 군데군데 강아지풀 하나씩 머리 쳐들고 있고, 계속 피어 있던 보라색 꽃이 수선화라는 것, 로사님한테 들어 알았다. 근데, 채송화만 없다고 내가 그랬더니, 채송화 있다며 한쪽으로 가신다. 아, 채송화 노랑꽃이 봉오리져 있다. 그럼 그렇지. 채송화 없을 리 없을 텐데 키 낮아 안 보이고 한쪽 구석에 있어, 또 꽃 안 피어 있어 더 눈에 안 띄었겠지.. 몰랐다. 내가 채송화 젤 좋아하는데... 안나님이 혜주씨처럼 채송화가 시들시들하단다.^^; 키만 크고 옆으로는 실해 보이지 않는 채송화다. 가만 보니 뒤쪽에 진분홍 꽃몽우리도 보인다. 곧 활짝 피겠다. 연분홍 봉숭아, 색깔이 너무나 고웁다.
소나무 줄기 타고 올라가 있는 나팔꽃 이파리 한번 만져 본다. 호박잎도 보이고, 아주까리 잎도 있다고 그러신다. 때이른 코스모스 두 송이 피었다 지고 있다. 정말 없는 게 없구나. 옛날 뒤뜰 같다. 질경이풀 보며 안나님, 첨에 이거 보며 먹고 싶다 그랬다며..^^(금방 미안하다 그랬다지만.)
공원 한바퀴 돈다. 아름드리 삼나무 두 그루 멀리서 보니(우산 없어, 이렇게 보기는 첨이다)
하나는 꼭대기가 뾰족하고 하나는 모양이 둥글다. 같은 나무라도 이렇게 다르다. 오늘은 일부러 뒤쪽에 있는 삼나무 가까이 가서 둥치 보니, 이틀 전에 본 매미 그대로 나무에 붙어 있다. 죽은 것일까? 아니야, 아직 살아 있는 걸 거야. 며칠씩 걸려 허물 벗는다잖아... 매미 뒤로 하고 사람들 따라 또 걷는다. 오늘 새로 발견한 나무들 헤아려 본다. 목련나무, 안나님이 가르쳐준 후박나무, 여러 참나무류, 담쟁이 덩굴, 또 이름모를 나무들.. 비 그쳐 그런지 까치 소리, 참새 소리 더 맑게 들린다.
오늘은 더 천천히 걷게 된다. 잔디 사이로 민들레 노란 꽃이 지려는지 꼬구리고 있는 게 보인다. 늦게까지 피어 있었네? 로사님 불러 봬 준다. 로사님 어제 민들레는 언제 피나 했었거든.. 보니 안쪽에 두 송이나 더 있다. 잔디와 함께 민들레, 질경이, 토끼풀이 섞여 어우러져 있다. 로사님이 이게 뭔가 하는데, 지렁이 똥인 것 같다. 아주 부드러운 흙 같은 것. 한참 앉아 내려다보다 일어나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갔다. 안나님, 자귀나무꽃 떨어진 거 들고 오신다. 향기가 신선하다. 솜털같은...
벤치에 잠깐 앉아 있다 공원 나온다. 선생님 생선 파는 트럭 앞에 서 있다. 큰 새우랑 오징어 한 마리 사신다. 생선 트럭은 오늘 첨 본다. 여러 생선들 싱싱해 보이고 꽤 크다. 과일, 채소 트럭에서는 느타리버섯과 쌈배추 사고.. 택시 타고 돌아온다.
오늘은 돌아오니 7시도 넘었다. 사지 뻗고 누워 있다. 선생님이 오늘은 각자 알아서 자유롭게 하란다. 안나님은 벌써 명상 시작했고(이제 몸에 배이셨나 보다), 난 베개동작 했다. 스님도 곧 명상 들어가고.. 베개동작 하고 나서 마그밀, 숯 먹고. 조금 있다, 나도 9시쯤 두 분 따라 명상에 들어간다. 두 분은 끝마치고 있고.. 한쪽 구석 선생님 자리에선 아까부터 봉추랑 로사님이랑 선생님, 셋이서 얘기 나누고 있다. 봉추가 계속 하소연하고 있다. 지금 마음대로 잘 안 되나 보다. 꽤 능력 많은 아이, 특히 서예는 뭐.. 근데 그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힘 실어 줄 선생님 계신데도 따르지 못하고, 또 자신의 체력에 대해 자꾸 콤플렉스 가져, 걸리는 거라. 참 세상은 이래서 공평한 거란다. 많은 능력, 귀한 능력 갖고 있는데, 펼칠려면 또 그만큼의 고통이 따라야 한다. 얜 살을 못 찌워 고민이니, 요즘 딴 애들 쉽게 이해하겠나..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선생님이랑 로사님이 달래기도 하고 딴 애들과, 예전 선생님 때랑 비교하며 타이르기도 한다. 남들은 그 재주들 부러워하는데, 지는 또 지 나름대로 힘드니, 이해 못해 준다 하며, 훌쩍이고 있다.
그런저런 소리 들으며 내 살아온 생 2부를 그려 보다 한 시간쯤 지나 운동할 때 된 거 같아 명상(?) 끝냈다. 졸지는 않았지만 명상이라기보단 그냥 눈길만 벽 동그라미에 두고 여러 생각 하는 거다. 근데 오늘은 눈물이 좀 맺힌다. 방 안으로 들어가 조금 훌쩍였다. 눈물, 콧물.. 많이는 아니고 조금.. 엄마, 아빠 생각나서일까.. 봉추가 엄마한테 투정하고 어리광부리고, 하는 거 보면서 아마 자극받은 걸까.. 엄마, 아빠한테 기대고 싶은 마음? 아니 미안한 마음? 승영이한테 전화 걸었다. 낼 못 온댄다.. 책 부탁하고... 잠깐 섭섭!
10시 반에 바깥에서 운동 시작하는 것 같아 나왔다. 화장실 가서 변보고 천천히 동작 따라한다. 허리 아파 동작은 더 힘들지만, 내 분수껏 하니, 그리고 인정하니 마음은 편하다. 11시 반에 끝내고 오늘은 그만 휴식! 오늘은 선생님 봉녕사 가는 날.. 선생님 바쁘시다. 그래, 임산부랑 우리들 운동시키면서도 부엌 들랑날랑하신다. 안나님 밥 차려주시고 봉추랑 선생님 당신 밥도 준비하시느라.. 우린 다 자리들 들고 나와 마루에 깔고 눕는다. 많이 배기니까.. 난 이불도 들고 나왔다. 계속 춥다. 원래 추위도 많이 타지만 살도 빠지고 기운 빠지니까 더 그런가, 춥다. 세 분은 한쪽에서 계속 얘기한다. 요리 얘기가 주로. 사람들 소리가 어제부터 귀에 거슬린다. 좀 힘들다. 아마 기운 빠지니 듣는 것도 귀찮은가 보다. 이불 덮고 누워 30분쯤 자다 일어났다. 옆으로 누워 책 읽고 있는데, 진만스님 전화. 지금 문경 천주사에 있대나...
안나님 밥상 앞에 앉아 있다. 오늘 메뉴를 구경해야지. 오늘은 접시 셋에 열다섯 가지 반찬. 오곡밥과 콩나물국은 기본. 반찬을 말해 볼까나.. 간 하나도 하지 않고 잘게 썬 생채소, 곧 상추 오이 당근 쌈배추 깻잎 참나물 느타리버섯과 다시마, 물에 살짝 익힌(간 조금 하고) 것은 감자 호박 무 가지 두부, 그리고 마른김과 멸치.. 참 가짓수로는 진수성찬이지. 아니 내용도 그렇다. 모든 게 골고루 들어가 있으니, 이 정도면.. 사람들 말하길, 이거 다 넣고 비비면 비빔밥 되겠다 한다.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식은 어딜 가도 볼 수 없을 거 같다. 이렇게 하나하나 정성들여 한 사람만을 위해.. 그리고 우린 미리 볼 수 있고.. 그리고 우리들 이렇게 한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거... 참말로 행운이다.
선생님 나가시고 오늘은 저녁까지 자유시간. 오늘 저녁엔, 아침시간에 나와 요가하시는, 창 하시는 강선생님이 앞장서서 여시는 ‘박동진 선생님 1주기 추모음악회’ 보러 모두들 가기로 전번부터 계획 세워져 있었다.(그래 저녁에도 운동은 없다.) 7시 반 국립국악원.. 모두들 힘없어 지하철은 못 타고.. 차 수소문하다 택시 타고 가기로 했다. 지난번 나왕케촉 산사음악회 때 내가, 먼저 단식하고 있던 안나님이랑 효진씨, 그리고 선생님 모시고 수원 봉녕사 갔다온 거 두고두고 고마워하시던 안나님이 잠실 집에 가서 차 가지고 와 우리 데려간다 했는데, 보식기간이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모두 그러지 마시라 했다. 근데 로사님이 어딘가 전화 걸어 보시더니, 올케가 6시에 맞춰 요가원까지 우리 데리러 오기로 했단다. 잘됐다. 고맙구나, 참말로.
스님, 안나님, 로사님, 계속 얘기 나누고 계신다. 다, 살아온 길들 험난했구나. 앞으로도 뭐 모르는 거고.. 그 길에서 우리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거, 정말 행운이고 고마울 뿐... 스님도 쿠룬타 하시고, 안나님, 로사님 장에 잠깐 다녀오겠다 하고 나가셨다. 봉추도 나갔고, 컴퓨터 놀고 있으니 잠깐 할까 한다...
승영이 낼 친구 만난다 하여(일요일엔 또 여자친구 만나고) 목요일에 부대 들어가야 되어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오라 했다. 만화책 하나 부탁.. 사람들(안나님, 로사님) 단식한단 얘기 가까운 식구한테 말곤 얘기 안 하고 들어오셨단다. 이해들 못하니까.. 그래서 거짓말들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일터에서도, 주변 사람들한테도. 난 그래도 좋은 편이네, 다 알리고 왔으니.. 이해하거나 말거나..^^
컴퓨터 하고 나서 사람들이랑 얘기 나누다, 5시 반부터 6시까지 몸풀기하고 쿠룬타 했다. 6시 조금 넘어 세수, 양치했다. 로사님 셋째 올케언니 우리 데려다주러 차 끌고 오셨다. 선생님이 늦으신다. 6시 반에 선생님 전화, 차 밀려 늦겠다고 바로 가신다고 우리끼리 오란다. 국악원 우면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도 차가 꽤 밀려 늦겠다 생각했는데, 딱 맞춰 갔다. 로사님 언니 큰차 타고 편하게 갔다. 정말 고맙다.
표 바꾸고, 막 시작한 바람에 영상 끝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 앉자마자 바로 강정자 선생님 적벽가 시작한다. 작년에 한번 들었는데, 그땐 준비가 좀 되지 않아 그랬는지 막히시기도 했는데. 이번엔 아주 프로답게 하셨다. 하얀 한복 잘 어울린다. 다음은 안숙선 씨의 심청가. 심봉사 눈뜨는 장면.. 아버지, 눈 뜨세요.. 예, 아버지.. 돌아가셨지만 나도 아버지 눈뜨시길...하고 빌었다. 송순선 씨라고 수염 길게 기르신 분 나와 적벽가 중 새타령 하시고, (오정숙 씨 못 나오신 대신) 걸찍하니 좌중을 잘 이끄신다. 박송희 선생님 나와 흥보가 중 ‘화초장’ 부분 하시고..
앉아 있기 몸은 좀 힘들었지만, 아주 좋았다. 끝나고 강선생님한테 인사도 못하고 모두 서둘러 나왔다. 상미한테 낮에 쓴 엽서 건네주니 살짝 웃는다. 아이들(봉추, 상미, 미리)은 저들끼리 지하철 타는 방향으로 가고, 우리 다섯 택시 잡아타러 길가에 서 있다. 택시 잘 안 잡힌다. 겨우 잡은 택시, 다섯이라니까 첨엔 안된다 하다, 나중에 태워줬다.
강남역 쪽으로 해서 오는데 강남길 엄청 막히고, 바깥 불빛 엄청나다. 강남역 쪽 안 간 지 오래 되었지만, 그 사이 또 변화가 크다. 여러 건물들, 새로운 상가들, 점점 더 화려해지고 정신 어지럽게 하고... 공기는 더 안 좋을 테고.. 신사역 지나자마자 골목길 입구에 내려 걸어들어온다. 10시 다 되어 문 닫은 가게들 많지만, 아직도 걸찍하게 판 벌여놓은 가게들 아직 있다. 길거리에 취한 사람 비틀거리고, 요즘 생긴 고깃집들엔 사람들 한창이다. 새로 생긴 건물 1층은 하나같이 고깃집(삼겹살)이다. 요가원 주변으로, 바로 곁에 예전부터 있던 집하며 새로 생긴 집하며 온통 음식점, 고깃집인데, 생각해 보니 우습다. 어떻게 이런 곳에 요가원이 있는지(건재하는지..^^) 그러면서도 이곳은 별세상이다. 끊임없이 음식 냄새들 창을 통해 들어오지만, 단식을 하는데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실제로.. 음식 냄새, 그냥 맡고, 그렇구나.. 한다. 내 께 아니구나 하니까 그럴 수 있는 건지. 또 어떨 땐 냄새만으로 먹는 게 보상되기도 한다.^^
역시 나갔다 오니 힘들긴 하다. 30분 이상 마루에 퍼져 있다, 들어가 자라고 사람들이 깨워 일어났다. 11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