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 원킬(one shot, one kill)
가독타임스 정찬혜
최고의 저격수를 영어권에서는 스나이퍼(Sniper)라고 부르는데, 이는 매우 동작이 빠른 도요새(snipe)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총을 잘 쏘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다. 우수한 저격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표적을 잘 찾아내서는 적중할 수 있는 놀라운 집중력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눈 속에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집중하며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전설의 스나이퍼로는 시모 해위해가 있는데 그의 별명은 하얀 사신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단 한 번도 망원조준경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실전에서 그의 총에 조준경이 장비되었던 적은 없다. 그는 오로지 총신의 가늠쇠를 이용하여 맨눈 시력만으로 조준하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초인적인 시력과 정신력, 그리고 사격 실력이었다.
그는 핀란드의 군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인 핀란드와 소련 사이의 전쟁 '겨울전쟁'에서 활약한 최고의 저격수이다. 겨울전쟁(1939.11.30~1940.3.13)은 결국 소련이 이겼으나 소련의 군사적 한계를 드러냈다. 소련군 입장에선 총에 맞아 죽은 군인보다 얼어 죽은 군인의 숫자가 더 많았으며 핀란드군은 전사자가 약 2만 5000여 명이지만 소련군은 전사자 수치만 무려 12만 이상을 기록했다.
당시 소련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는, 10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혼자서 무려 약 500명 이상을 저격해 사살했으며 저격 소총이 아닌 기관단총 등으로도 200명 이상을 사살했다.
1998년 어느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최고의 명사수가 될 수 있었습니까?"
"연습(practice) 했지요. “
기자에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스나이퍼답게 간단명료했지만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카더라 통신에다가 SNS 괴담까지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다. 연습 없는 글들과 연습 없는 말들이 아무런 영양가 없는 주절거림이나 소모전 양상으로 사회를 혼란하게 한다.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표현의 불분명성으로 인해서 진실과 정의를 가로 막는 무책임 화법이 이젠 당연시 되고 있다. 이런 부정확한 화법들은 범죄 행위를 빠져나가게 하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길 때 특히 주로 사용이 된다.
이런 불분명하고 어중간한 화법들과 엉터리 소문들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 우니 나라가 좀 더 젊고 진취적인 세대와 소통하고 발전해 나가려면 간단명료하나 진정성이 있는 진실한 소통이 필요하다. 진실 빠진 허구의 명예에 갇혀서 자꾸만 지난날의 자긍심을 되불러 온다는 것은 이미 현재의 암울함을 반증하는 것 밖에 안 된다.
현 시대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언어의 습관은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진실을 기반으로 한 신뢰관계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신뢰 관계라면 맹목적인 신뢰 관계가 되고 결국 아니면 말고 식의 담론은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과 불신만을 자초할 뿐이다.
현재 우리 주변의 삶들을 돌아보라. 수많은 현학적 언어나 문학적인 수사를 통해서 그 누구를 감동시키기란 속된 말로 물 건너갔다 할 것이다. 왜일까? 언어에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생명력이란 진실이다. 진실이 없는 언어들은 흩어지는 탄알처럼 아무에게나 쏘아져서 불특정 다수의 가슴에 상흔을 남긴다. 진실을 찾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한 언론의 스나이퍼들이 나오길 기대하는 깊은 어둠이 시류를 흔들고 있다. 동은 터 올 것이다. 누군가 진실을 퍼 올리려는 노력이 어떤 정치력보다 더욱 민중의 가슴에 희망을 저격할 것이다. 국민 모두는 진실과 정의에 대한 심각한 갈증으로 목말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