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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아닌가?
내가 출근을 할 때면 두 아들 녀석은 현관 앞에서 공수(拱手)를 한 체 서있어야 한다. 오른쪽은 큰 녀석, 왼쪽은 작은 녀석 자리이고 그들의 자리에는 발바닥 모양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대체적으로 ‘아빠께 대하여 경례!’라는 말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면서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오늘은 배꼽인사를 하며 “아빠! 오실 때 맛있는 것 사오세요!”라는 말로 대신한다.
“맛있는 거 사 올게”라고 엉덩이를 두드리면 아이들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몇 시에 들어오실 건가요?”
아내의 물음에는 나도 모르게 “나도 몰라...”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해 버리고 말았다. 정말 몰라서 몰라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는 언제나 웃는 표정이다. 작은 녀석이 골목길까지 뛰어나오며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이쯤 되면 돌아오는 저녁에는 커다란 봉지에 하나 가득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로 채워야만 할 것이다.
벚꽃이 만발한 4월의 화창한 일요일 오후, 나는 도장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공권유술 사범들의 보수교육(補修敎育)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혹시 술이라도 한잔 마실 것 같아 일부러 차를 두고 갔다. 평소에는 항상 한가했는데 오늘따라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만원(滿員)버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에 의지한 체 오늘은 어떤 기술들을 사범들에게 교육을 시킬까? 라는 생각으로 나의 머리는 복잡했다. 버스가 도로공사구간을 빠져나갈 때 심하게 좌우로 움직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잡고 있던 손잡을 놓칠 뻔 했다. 몇 정거장이나 지나쳤을까. 연세 지긋한 노인 몇 분이 탔다. 그 중에 한명이 한참동안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기사양반은 뭐하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냐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소란이 일어났다. 갑자기 버스 안이 떠들썩해졌다.
노인들이 서성거리자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젊은 사람 몇 명이 노인들에게 자리양보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택시를 탔다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택시기사에게 일장연설을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그야말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아닌가? 외국 놈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 몰라. 어른에 대한 공경심도 없고 어른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 지들만 아는 놈들이야 외국 놈들은.”
노약자석은 금세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만석을 이루었다. 제일 늦게 버스에 오른 일행 중 한명은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없게 되어 당황스러운 듯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노약자석에는 거의 자신의 또래의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노인이 잠시 뒤쪽을 힐끗 보고는 곡예를 하듯 휘청거리며 자리를 이동하였다.
이윽고 노인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앞에 섰다. 책가방을 무릎위에 올려놓은 학생은 이어폰을 착용하였고 아마도 음악을 듣는 듯 했다. 노인은 버스등받이의 손잡이를 잡고 앉아있는 학생에게 어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전 뒤쪽을 본 이유는 좌석에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자리를 양보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일종의 기대심리로 보여 졌다.
그러나 노인의 생각과는 달리 몇 분이 지나도 학생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그 자리는 노약자 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이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해도 학생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금테안경을 썼고 팽팽한 피부를 가져서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는데 한70세 쯤으로 보였다. 회색 양복에 하얀색 백구두를 신었는데 구두의 앞이 죽창처럼 뾰족했다.
저걸루다가 조인트를 한 대 까이면 그 자리에서 뼈에 구멍이 날것만 같았다.
드디어 노인이 한마디 했다.
“요새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어.. 어른이 옆에 있어도 자리 양보할 줄을 몰라!”
이쯤 되면 학생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 정석으로 노인은 판단한 모양인데 학생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통에 노인이 하는 소리를 못들은 듯 했다.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 학생에 당황스러웠는지 쓰고 있던 중절모(中折帽)를 벗었다가 썻다를 반복했다. 손이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는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완전한 대머리였다. 번쩍 번쩍 윤이 나는 그의 머리에서 옛날 어릴 적 보았던 황금박쥐 만화영화가 생각났다. 1968년 NBC-TV(동양방송)에서 처음 방영되었던 ‘황금박쥐’를 한참이 지난 후 재방송을 했을 때 본적이 있는데 황금박쥐는 노란색 황금머리에 바깥쪽은 검은색, 안쪽은 빨간색의 투톤(two tone)칼라의 비교적 세련된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옷은 홀딱 벗고 있었는데 빤스를 입었는지 황금색 쫄쫄이바지를 입었는지는 생각이 가물가물하다. 당시에는 흑백텔레비전이라 색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문구점에서 파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동그란 모양의 딱지에는 칼라인쇄가 되어있어 황금박쥐의 몸이 결단코 검은색이 아니라 황금색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황금박쥐 주제곡. 특히 두 번째부터 시작되는 ‘빛나는 해골은 정의용사다. 힘차게 날으는 실버배턴.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켜라!’의 노랫말은 최고의 클라이맥스(climax)다. 내가 황금박쥐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노인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허.. 참 세상 말세로다. 젊은 놈들은 앉아서 가고 나이 먹은 백발의 노인은 서서가고 가정교육이 형편없어!”
노인은 머리가 한 올도 없으면서 백발을 운운하고 있었다.
학생은 그제서야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있던 아저씨가 거들고 나왔다.
“이봐 학생 할아버지에게 자리 좀 양보하지!”
훈계조의 말투였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확!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 인상이었다. 학생의 얼굴이 토마토케첩을 발라 놓은 것처럼 빨개졌다. 일어설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이기는 한데 그의 엉덩이는 버스좌석시트에 본드를 붙여놓은 것처럼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원버스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학생에게 집중되어있었다.
내가 볼 때 학생은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라 생각되었다. 자리도 양보할 타이밍이 있는데,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노인이 자기 앞자리에 왔을 때 1분 이내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그때 일어나지 못하면 그냥 앉아 가기도 불편하고 자리를 양보하기도 이상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모양새가 된다.
“너는 에미 에비도 없냐? 천하의 호래자식 같은 놈아!”
노인이 드디어 폭발했다.
“버스에 타신 양반들 이것 좀 보쇼! 이게 말이 되는 것이요? 젊은 놈이 노인에게 자리 양보 좀 하라니까 끝까지 버티는 꼬락서니를 보쇼! 쯔쯔..”
버스 안이 점점 소란스러워져 가고 있었다.
운전사는 룸 밀러로 버스안의 상황을 계속주시하고 있었다. 좌회전 신호가 떨어져 버스가 크게 회전하고 직진차선에 들어섰을 때 운전사가 갑갑하다는 듯이 말했다.
“학생 할아버지에게 그냥 자리 양보해 드려!”
바로 내 앞에 있던 아줌마도 참지 못했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어휴 학생! 젊은 사람이 좀 서서 가면 어때 좀 일어나!”
어느덧 학생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호래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있던 학생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뚝뚝 버스 바닥에 떨어졌다. 학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를 노인이 앉았다. 앉으면서 금테안경너머로 학생을 흘겨보고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한마디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학생에게 고정됐고 모두들 “너도 참 질긴 놈이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학생은 얼어붙은 듯 버스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체 꼼짝을 하지 않았다. 몇 분후 학생이 다음 정거장에 내리기위해 몸을 움직일 때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소아마비로 보이는 장애우(障碍友)였던 것이었다. 버스가 멈추고 학생이 내렸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니 학생이 다리를 절며 걷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내릴 목적지가 한참 멀었음에도 미리 내렸던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애처로운 마음이 밀려왔다. 학생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이 연세 많은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자리를 양보하는 이유는 ‘나는 젊은 사람이고 당신은 노인이니까, 나보다 다리에 힘이 부족하니 목적지까지 편하게 앉아서 가세요!’라는 뜻으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순수한 생각이기 때문에 나는 노인을 공경하는 이러한 미풍양속이 너무나 좋다. 그러나 서두에 이야기 했던 장애우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아직도 그 학생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노인이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굳이 뒷자리까지 가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를 하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몸이 불편하다면 나이 어린 손자뻘이라고 하더라도 양해를 구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학생 내가 지금 다리가 몹시 불편하니 미안하지만 자리를 양보해주면 고맙겠네!”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학생은 자신의 자리를 선 듯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기꺼이 자리양보를 해준다면 고맙다는 인사로 마무리하고 학생이 들고 있던 가방도 받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노인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위사람의 반응이다. 옆에 있던 아저씨, 버스 운전기사, 아주머니의 반응은 너무 심해 보인다.
“학생 여기 할아버지가 다리에 힘이 없어 보이는데 괜찮으면 자리양보를 해줄 수 있겠나?”라고 젊잖게 이야기 했다면 학생은 “아! 제가 이어폰을 끼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서 미쳐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네요, 여기 앉아서 가세요!”라고 좋게 해결될 수도 있었을 것을 보인다.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아니면서 학생에게 자리양보를 강요했기 때문에 학생으로써는 자리를 양보할 기회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위의 있는 어른들이 학생을 나무라면서 자리양보를 강요한다면 그 이후에 학생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긴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었던 얼마 후 공권유술을 배우기 위하여 독일의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가 도장을 방문했는데, 독일의 버스에서 노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생각난다.
노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에 대해서 그는 “독일에서는 노인이 타면 되도록 자리를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대꾸하였다.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이유를 물었다.
“자리를 양보한다면 그 노인은 ‘당신은 늙고 힘없는 노인입니다’라고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어린이도 버스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일전에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던 택시기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해 졌다.
외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결코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아서, 세상이 말세라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첫댓글 어제tv 에서 보았던 법륜스님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도" 는 안밖이 타로 없다 하지만 그말로 위안을 삼아 안과 밖 을 나누는 것은 그의 몫이다 ... 우리의 교육도 무조건 적인 행동이 아니라 생각하는행동이되면 어떨까 .. 스승의 글을 읽으면 나 자신또한반성을 해 봅니다....
저도 그래요... 언행일치를 한다는것이 쉬운일이 아니죠...
나도 50살이나 먹어야 철이 좀 들것 같습니다. 호신~!
잉 혹 모텔 아닌가 오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