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나는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의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놓고 말한 뒤에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증명을 하는 반면, 소설은 빙빙 돌려 말하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한마디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돌려 말하나 싶은 생각, 그러니까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과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고(그래서 해결책은?), 내가 공감하거나 반감을 갖더라도 상대가 ‘나 그렇게 말한 거 아닌데?’라고 말할 듯 하다. 한마디로 분명하지 않은 말하기를 하는 느낌이다.
7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에 대한 내 편견이 대체적으로 다시 확인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소설마다 작가노트와 평론가(또는 다른 소설가)의 해설을 실어 작가가 소설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평론가가 소설을 한 번 설명해 주어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해 줬다는 점이다. 난해한 현대미술도 아니고 해설하는 글을 읽고야 이해되는 글이라니.... 역시 못마땅하다.
이 책의 아쉬운 점. 명색이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이다. 그런데 주제는 페미니즘과 동성애로 한정된 느낌이다. 김초엽의 <인지 공간>만이 다른 주제다. 등단 10년차 이내의 작가들의 한 해 수백 편의 단편, 중편 소설 중 정말 이런 주제밖에 없었을까? 다문화로 이어지는 이민자 문제나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남녀갈등, 세대갈등, 또는 묻지마 범죄, 거대한 플랫폼에 담긴 사회상이라거나 전염병이 우리에게 미치는 심리적 압박... 우리가 공감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문제들이 널려있는데 오로지 페미니즘과 퀴어라니.... 그나마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SF 소설이다......
작가 구성도 안타까운 게 주제 때문인지 7명의 작가 중 6명이 여성이다. 1명 있는 남자 작가는 낙태법을 다뤘다. 지금 20~30대 이후 세대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말하고 있는데 소설이 가져야 할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제기는 커녕 오히려 식상한 주제들을 계속 재탕하는 것 같아 아쉽다. 몇몇 소설들은 정말 언젯적 얘기를 하는지 피해의식처럼 보였고,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이렇게까지 뒤쳐져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걱정마저 들었다. 혹시 몰라 2021 수상작품집 리뷰를 보았는데 역시나 마찬가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건지 그에 대한 불만이 많이 보였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이 아니라 ‘페미니즘, 큐어’수상작이라고 해도 안타까울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지금보니 심사위원들의 나이가 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대가 아닌 예전 세대의 공감을 받을만한 소설이라면 이해가 된다. 근데... 기성세대에게 맞는 ‘젊은작가’를 고르는 건 또 아니잖아....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2. 그들은 상대는 이런 지식을 알지 못하리라고 확신하듯 ‘~거든요’라는 종결어미를 즐겨 썼다. : 정말이지 정확하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 말투와 ‘~거든.’이라는 말이 내내 불편했었다.... 나는 모르고 자신만 안다는 말투로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133. 임신중지가 언제나 예외 없이 한 여성의 절실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고정관념은 그것이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취해져야만 하는 조치처럼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 이러한 논리 끝에 임신중지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로만 가정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지워질 것이며, 타인의 선의에 의해 구조받는 나약한 존재로만 재현될지도 모른다 : 하지만 ‘생명’에 관한 문제는 역시 조심스러운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여, 출산과 낙태에 대한 선택권이 남자에게는 전혀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왜 출산 후 의무만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147.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권리로서의 임신중지의 의미는 삭제된다.
149. 임신중지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하게 경험될 수 없으며, 당사자들에게 획일적으로 덧씌워지는 비감이야말로 사회가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을 비윤리적 존재로 상상하는 방식이라는 것. 여성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는 서사는 거꾸로 절박한 상황에서만 임신중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규범을 만들어 낸다는 것. 절박함을 내세워 타인의 선의에 호소하는 것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재현하며, 임신중지를 여성의 자기결정 ‘권리’가 아니라 법과 사회에 의한 ‘허용/관용’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 그리하여 여성의 주체성은 삭제되고 만다는 것. 이러한 ‘나’의 생각은 사람들은 “큰 틀에서는 동의하나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위험하지 않느냐”고 우려를 표한다.
150. 행복이란 많은 경우 어떤 대상 그 자체를 통해서라기보다 한 사회가 행복이라 여기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얻어진다 : 차라리 이게 주제였다면.....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 같은 주제 말이지...
김초엽 <인지 공간>
179. 그렇지만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 만약 이 인지 공간이 우리의 확장된 사고라면, 그 사고가 우리의 개별적인 영혼에 깃들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
182. 사고는 추상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물질에 매여 있다. 기억은 특정한 분자, 단백질, 세포가 관여하는 현상이다.
183. 장애학에서는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 특정한 형태의 몸에 맞추어 설계된 세계가 어ᄄᅠᆫ 종류의 몸을 장애화하는 것이다.
심사경위
280. 치열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다시금 확인한 사실은 젠더나 퀴어의 문제가 이제 단순히 소재의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들어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는 계속 주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 막아!!!!!!!!!!!!!!!!!!!!!!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피해자로 상정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할 때. 남성 역시 제대로 살지 못했다. 남자라는 이유로. 어찌됐든 여성을 피해자로 전제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논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심사평
302. 뜬금없이 반복되는 ‘네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니’라는,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는 이러한 다정한 말의 교활한 자의적 변용, 격식을 갖춘 제상 한가운데 놓인 정체불명의 붉은색 고기 요리를 담은 검은색 르크루제 무쇠 냄비는 엉뚱하고 강렬한 풍자로 보인다 : ‘네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니’는 남자인 내가 장손으로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다. 명절이면 자기만의 시간을 지나는 누나와 달리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 앞에 끌려가 무릎 꿇고 2시간 넘게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20년도 훨씬 전에, 그러니까 20세기 말에 누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여자가 살기 정말 좋은 것 같아. 능력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노홍철의 형이 노홍철에게 했던 말이 겹쳐진다. (하고 싶은 연극을 포기하며)‘홍철아 나는 비록 내가 원하는 걸 못했지만 부모님이나 집안의 기대는 내가 다 책임질테니까 홍철이 넌 반드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남자를 가해자로 놓는 현재의 젠더 논쟁은 방향을 바뀌어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