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가슴속으로 하루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종소리의 마지막 먼 울림 같은 것이 내려앉고 있다는 것이다.
......
라고,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은 썼습니다.
요 며칠, 선생님이 보름 쯤 전에 건네주신 김윤식 시인의 시를
읽고 있습니다.
제 소설집과 맞바꾸는 듯 그저 가벼이 주셔서
저는 별 무게를 느끼지 않고 가방에 넣었더랬습니다.
내키면 읽어드리면(?) 되겠지 하는 한없이 무례한 생각을 하면서요.
받은 후 늘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그저 몇 번 들춰보기만 했을 뿐
찬찬히 읽지 않았던 것은
다만 제가 예의를 모르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사실 표지나 모양새가 좀 가볍고 품위 없이 생겨 먹어
속엣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겠습니다.
제 첫 소설집 역시 디자인이 좀 떨어진다고, 그래서 눈에 잘 안 띤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만,
이 시집도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 잘 만들지 못한 건 같습니다.
겉만 보고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안의 시들이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요 며칠,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 같지 않은 시인의 감성이 푹 젖어 있습니다.
이 시집 안에서 건진 여러 빛나는 시들들 중에서
오늘은 <가을 별자리>와 <중앙초등학교> 이 두 편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중앙초등학교>를 굳이 여기에 옮기는 것은
자판으로 두드리면서 손끝으로 한 번 더 느끼고 싶어서라고,
아부를 좀 하겠습니다. 이 아부를 꼭 김윤식 선생님께 전해주시기를. (네, 선생님?^^)
<중앙초등학교>
가을은 공터만 찾아다니는 모양입니다. 공터를 생각하다 보면 문득 몽골의 언덕이 떠오릅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가 본 적은 없지만, 가을이 삶의 일부분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 가을은 짧고...... 주일날처럼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김제 중앙초등학교와도 같습니다. 털조각처럼 하얀 가을꽃들이 운동장 저쪽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오후, 거기 말몰이꾼 같은 사내 하나가 좁다란 벤치 끝에 햇빛을 끌어다 놓고 가만히 비탈처럼 누워 있는 모습도 같습니다. 무엇이 허전한지 가을은 공터만 찾아다니는 모양입니다.
다른 좋은 시들도 많이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맨 뒤에 있는 이원규 선생님의 발문까지도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내일은 정말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만, 여러분께 인사하러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홀로 계신 시어머니에게 가서 고스톱을 좀 가르쳐드리고 올 생각입니다.
치매 방지용으로 권장하였더니 늦게서야 고스톱을 배운 우리 시어머니께서
요즘 아파트 노인정에서 할머니들끼리 모여 점에 5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소일하시는데
베테랑 동네 할머니들께서 우리 시어머니에게 잘못친다, 늦게 친다, 고는 할 거면 빨리 해라,
등등, 구박을 하신다고 저에게 한 시간 가량 전화로 하소연을 하시길래
맏며느리인 제가 팔을 걷어부치고 어머니에게 한수 가르쳐드리러 가기 때문입니다.
다녀와서, 시어머니가 고스톱에서 이기기 위한 비결 전수 전말기를 보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