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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 칼럼 (2009년 12월)
강남국
▢ 12월 1일 : 문학평론자 김화영 고려대명예교수는 며칠 전 “이 시대의 소설, 곁에 두고픈 148권”을 발표했습니다. 목록을 훑어보니 저도 상당 부분 읽었더군요. 그는 “문학적 가치가 있어 두고두고 읽을 만하다”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쉬운 책만 찾는 것은 게으른 사람들이나 하는 선택”이라고 일갈하며 “어렵지만 좋은 책 읽어야”한다고 하네요. 선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읽고 난 뒤에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소장하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라는 정의했습니다. 12월의 첫날입니다. 알찬 마무리의 달 되세요.
▢ 12월 2일 : "Life is a stream.-(삶이 흐름이거든)"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라는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이지요.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군요. 인간사뿐이겠습니까. 우주의 만물이 짧건 길건 있다가는 없어지는 것, 이 소멸의 이치가 참으로 오묘하고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생성만 있고 소멸이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공존하기에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든 생명이 한번뿐이기에(一回) 존재의 소중함은 그만큼 더 크다 할 테지요. 다만 열심히 부딪는 밖에요.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올해의 연말이 됐으면!!!
▢ 12월 3일 : 지난해 타계한 대하소설《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동상이 원주시 단구동에 세워졌습니다. 작가는 이 공원에 지난 1980년부터 머물며《토지》를 탈고했던 옛집이지요. 동상은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되어 있다’는 글을 주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선생의 동상은 텃밭에서 나무, 풀, 꽃 등을 보살핀 뒤 나무그늘에 앉아 편안히 쉬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하네요. 우측엔 고양이와 새가 있고, 좌측엔 펜이 빠져나간 손에 늘 쥐어져 있던 호미가 책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저자의 또 다른 책《김약국의 딸들》내용이 떠오르네요. 차암 멋지게 살다 가신 할매였습니다.
▢ 12월 4일 :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식(食)일 텐데 왜 입는 의(衣)가 먼저 왔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로부터 남에게 보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먹지 않으면 죽지만 벗었다고 죽는 것은 아닐 터인데도 우리 한국인들은 옷을 맨 먼저 첫 자리에 놨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뭣을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뭣을 입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요즘에 나오는 책들의 표지를 볼라치면 그 화려한 표지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왕이면 ‘다홍도서’랄까요. 출판의 변방에서 이젠 중심이 된 듯한 ‘북 디자인’시대입니다.
▢ 12월 5일 :《현산어보(玆山魚譜)》는 흔히 자산어보라고도 부르는 생물학의 도감이랄 수 있는 책입니다. 정약전 [丁若銓, 1758~1816]이 1814년 신유사옥으로 흑산도에 유배됐던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도서인 이 책을 썼지요. 남들 같으면 유배지에서 탄식하며 술이나 마실 텐데 그는 조선시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목민심서》를 쓴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는 형제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또한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500여권의 책을 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빛나는 인물이 아닙니까. 환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얘기는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 12월 6일 : 고향을 한 뿌리로 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끈적끈적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삼 누구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선후배와의 만남이기에 밖에서의 만남과는 다르단 생각도 드네요. 반가움에 나누는 악수의 따스한 체온은 세상 풍파가 심할수록 더 가슴으로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해안의 작은 섬 삽시도라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하나가 참석한 모두의 가슴에 공통분모를 갖게 하고 앞으로 더 자랑스러운 고향을 만들기 위한 아름다운 비전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섬을 고향으로 둔 인연이 얼마나 끈끈한 정과 사랑을 깨닫게 하던지요.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 12월 7일 : 만물은 바라보기에 따라 그 모든 각도가 달라지지요. 세상을 어떤 안목(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삶은 천길만길로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긍정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셉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것도 바꾸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조금만 바꿔도 세상은 분명코 달라진다 확신합니다. 저는 월요일을 맞을 때마다 이 한주도 더 많을 것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몫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는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과 수강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생명이 깃든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요. 그래서 월요일은 더 힘찹니다.
▢ 12월 8일 : 연말이 되면 해마다 피할 수 없는 술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술을 마실 때야 모르지만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할 생각을 하면 멈출 수도 있으련만 술이란 참으로 이상하고 묘한 것이어서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지요. 건널 수밖에 없는 강인데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기는 비법은 없는 것일까요? 술 마시기 전에 우유를 한 잔 마시는 것과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고 중간 중간에 물과 과일 또는 스포츠음료도 좋다고 하네요. 본래는 삼겹살이 최악의 안주라는 설도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입맛이 없더라도 뭣이던 먹는 것도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겠지요. 에우리피데스는 박카스에서 "술이 없는 곳에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했지만, 이래저래 술자리가 많아지면 술도 약게 마셔야한단 생각입니다.
▢ 12월 9일 : 박노해시인은 지난 1980년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으로 일약 노동문학의 대부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로부터 11년 후 그는 한 사건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풀려나 그동안 중동 지역을 돌며 4만여 컷의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그중 37장을 골라 사진전을 연다고 하네요. “한 손에 카메라를, 다른 손에 만년필을 들고 보냈던 시절”이라 그는 했습니다. “국경을 못넘는 詩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는 그는 한 장 한 장에 단편소설 분량의 사연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란 자평을 했군요. 그는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 12월 10일 : 인간관계에서 소통(疎通)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통한다는 것과 통하지 않는 다는 것(불통)은 반대의 개념이지만 통한다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소통이란 생각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게는 두 사람의 소통으로부터 온 세상과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실로 엄청나다 할 것입니다. 가장 흔한 의사소통(意思疏通)은 사람의 의사나 감정의 소통 등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커뮤니케이션 (Human Communication)이라고도 하지요. 통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 삶의 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지인과 차 한 잔 하고 싶어집니다.
▢ 12월 11일 : 또 한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또 어떻게 보냈는가 가만히 자문하면서 나에게 일어났던 올해의 10대 뉴스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생각해 보면 너무 진부한 말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과연 역사에 있었던가 싶기 때문이지요.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의식에선 지난해와 너무도 다른 또 한해를 살았다는 생각을 해보며 뉴스를 정리해 봅니다. 단 열 가지로 추리기엔 벅차다는 생각도 드네요. 매일 매일 새롭게 살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12월 12일 :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 사형장에서"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를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할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언제 읽어도 감동적인 함석헌(咸錫憲, 1901~1989년)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의 전문입니다. 종교인으로, 비폭력 인권 운동을 전개한 민권운동가이자 재야운동가, 문필가로 사셨던 그분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지독하며!!!
▢ 12월 13일 : 시대가 불황이면 문학이 강세라는 말을 뒷받침하려는 듯 올해 베스트셀러의 100권중 41권이 문학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시와 인터파크의 분석이군요.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와 한비야의『그건, 사랑이었네』가 각각 1~2위를 기록했고 지난 5월 타계한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6위를 했군요. 며칠 전에도 썼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그렇게 많이 팔린 이유는 소통을 희망하는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소설에 나타난 ‘엄마의 부재(不在)’는 불통(不通)을 뜻하기 때문이지요. 흐름에 편승해 가는 아픔 뒤에 시류(時流)의 짭짤한 맛은 언제쯤 맛볼까 싶습니다.
▢ 12월 14일 : 나락(奈落)이란 지옥을 뜻하기도 하지만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을 뜻하기도 하지요. 골프의 황제라고 불리는 어느 선수의 얘기를 계속 접하면서 인간의 명성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 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연민의 생각도 해보지만 공인의 삶이란 다르단 냉혹한 채찍의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인은 외로운 법이고, 매사 조심할 부분이 그렇게도 많은 법이겠지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여전히 자신을 아는 것 같습니다.
▢ 12월 15일 : 천편일률적인 기부이긴 하지만 해마다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에게 성금을 내는 행사가 잦습니다. 작게는 일일찻집 같은 모금행사에서 크게는 구세군 자선냄비나 방송 혹은 재단 등을 통한 모금행위도 되풀이 되지요. 하지만 이제는 기부행위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재능 기부”(Pro Bono-공익을 위하여)가 바로 그것이지요.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을 소외 계층을 위해 쓰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로 불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기 어려운 이 추운 겨울 덥히고 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생의 나눔일까요. “재능 기부”란 말이 고향의 어머니 젖품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 12월 16일 : 해마다 12월이 되면 저는 우선 수첩과 서랍을 정리합니다. 수첩을 들여다보면 올해에 빨간 줄이 쳐진 사람들도 있고 그동안 적어놓기만 하고 연락한번 제대로 못한 분들도 많네요. 내 인생의 소중한 지인들인데도 너무 소홀히 했다는 자책의 맘도 드네요. 헌 물건을 바꾸듯 그렇게 쉽게 지우고 없앨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이고 보면 12월을 보내기 전 문자메시지 한통이라도 전할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하루의 생은 어쩌면 숱한 빚으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의 빚이겠지요. 물질적인 것이야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랑의 빚만은 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12월 17일 :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트리플 써티 Triple-Thirty(30.30.30)’라고도 합니다. 전반기 30년과 중반기 30년 그리고 후반기 30년이라는 말이지요. 30세까지는 성장하면서 교육을 받고 독립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고, 30세에서 60세까지는 독립해서 한 가정을 이루어 경제활동을 하며, 60세 이후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은퇴기간이라는 설명입니다. 며칠 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겼지요.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평균수명이 훨씬 길어졌습니다. 그 시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기에 현대인들은 오늘도 그렇게도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혹한이 계속되고 있네요. 건강 챙기십시오.
▢ 12월 18일 : 영원한 학승(學僧)인 법정스님이 계속 편찮다는 소식입니다. 폐암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으셨고 현재 서귀포의 한 신자 집에 머물며 요양 중이라고 하시네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올해 78세인 스님은 그동안 숱한 책을 쓰셨지요. 저는 그분의 책을 평생 동안 옆에 두고 읽어왔습니다. 종교를 초월해 그 맑음에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란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스님은 불교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필자라고 할 수 있지요. 최근에도 스님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출간했지요. 스님의 건강이 회복돼 그 잔잔한 미소와 글을 더 오랫동안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12월 19일 : ‘눈은 일상시의 조그만 기적인 것이다.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세상일을 생각해 본다. 순수한 백설, 때 묻지 않는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볼 때 문득 우리는 착한 이웃들과 아이들의 운명을 느끼게 된다.’ 이어령의 『茶 한잔의 思想』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서해안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하네요. 고향 삽시도에도 온통 눈꽃이 피었을 것 같습니다. 그 고요한 전경이 눈에 선하네요. 세상사 모든 다툼을 껴안고 혹한 속에 내리는 살풋한 설경이 보이는 듯합니다. R.구르몽의 ‘눈’이란 싯구도 생각나는군요. ‘시몬 눈은 네 맨발처럼 희다/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눈을 녹이면 뜨거운 키스/네 맘을 풀려면 이별의 키스…
▢ 12월 20일 : 최고의 악기에는 늘 명기(名器)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바이얼린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가 가장 유명한데 기타는 미국의 펜더(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를 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의 ‘록의 대부’(代父-God Father) 신중현(71)씨가 아시아인으로 처음으로 이 기타를 헌정 받았고 하네요. 이는 우리나라의 록음악이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만 여전히 음색이 맑고 고운 기타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네요.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여간 좋지 않습니다.
▢ 12월 21일 : 지난 1942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소설『이방인』을 발표하여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습니다. 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6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지요. 시대를 고민하지 않는 작가가 어디 있을까만 그는 유독 고민이 많았던 듯합니다. 그는 특히 인간과 세계의 ‘부조리’와 ‘반항’ ‘절도’에 천착해 『이방인』『시지프 신화』『페스트』『반항하는 인간』등을 썼지요. 흔히 그를 ‘실존주의자’라고 부르지만 그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부딪쳤던 절도(節度)는 ‘중용’이나 ‘균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화영교수는 얼마 전 23년간 매달렸던 카뮈전집번역(전20권-책세상)을 끝냈군요. 내년 1월 4일은 카뮈가 죽은 지 50년째가 되는 날인데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번역본을 갖게 돼 행복합니다. 그동안 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 12월 22일 : 얼마 전 ‘착한 책’이 뜬다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소설가 신경숙씨는 올해로 9년째 자신이 쓴 모든 책의 인세 1%를 기부하고 있으며『엄마를 부탁해』만 하더라도 천만 원이 넘었다고 하네요. 참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190여명의 저자들이 동참하여 9천만 원이 차곡차곡 쌓였다니 흐뭇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움켜쥐려고만 하는 삶에선 진정한 향기가 나지 않지요. 나눔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는 실천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로 이 혹한의 겨울을 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나눔은 천상의 꽃을 지상에서 볼 수 있게 합니다.
▢ 12월 23일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의 시「파장」에 나오는 첫 구절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어쩐지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네요. 아마도 시인이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오늘 누구를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흥겨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또 누구에게 그렇게 얼굴만 보여줘도 반가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편 부끄럽기도 하네요. 알고 있는 지인들을 생각하며 피식 웃어보기도 합니다. 허물없이 아무 때나 이웃집조차 찾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으면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시류의 흐름이 아프기도 합니다. 허물없이 찾아갈 수 있었던 때가 그립기도 하고요. 서로 얼굴만 봐도 행복한 만남을 오늘도 낳고 싶습니다.
▢ 12월 24일 :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育身-The Incarnation)은 강생(신이 예수로서 지상에 태어남)을 뜻합니다. 절대자가 지극히 낮은 곳에 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높은 보좌를 다 버리고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신 그 뜻은 ‘소통’을 위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시대는 좋아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아름다운 생명의 소통을 위해 육신을 버리셨던 그 주님은 오늘 지상을 내려다보며 한숨짓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끊겼던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탄이브는 ‘불통’의 치유를 위한 처방의 날일지 모릅니다.
▢ 12월 25일 :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는 일본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시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지도자 종교가 무교회주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를 배출하여 현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교신 함석헌을 통하여 한국에도 영향력을 미쳤지요. 그는 “크리스마스는 우주의 축일이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그 석방, 자유, 완성을 축하하는 날이라.”라고「1일 1생」에서 말했지요. 성탄은 십자가의 뜻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물을 나누고 하루 쉬는 것도 좋지만, 성탄은 하늘의 빛을 주심으로 세상을 밝혔듯 내가 빛이 되라 는 듯합니다.
▢ 12월 26일 : 커트 스펠마이어 Kurt Spellmeyer라는 미국 한 대학의 영문과 교수가 쓴『인문학의 즐거움』이란 책엔 인문학이 걸어온 길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문학은 세상 문제들로부터 동떨어져 있고, 다른 학문들로부터도 동떨어져 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이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책이지요. 인문학이 오늘날 대학에서 그렇게 심각한 수준인가 하고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우리 대학에서 인문학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만학의 학문의 기초는 인문학이지요. 인문학의 숲을 맛보지 않고 어떻게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
▢ 12월 27일 : “소욕지족 소병소뇌 小欲知足 少病少惱.”라는 말이 있네요.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란 뜻이랍니다. 법정스님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읽다보면 밑줄을 많이 치게 됩니다. ‘맑은 가난’이란 표현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군요. “맑은 가난이란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자주적으로 억제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다 인생을 몽땅 허비하는 숱한 세인들에게 전해주는 청어(淸語)지만 그 말이 얼 만큼의 싹을 틔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군요. 적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 밭을 조금씩이라도 새해엔 더 넓혀야겠습니다.
▢ 12월 28일 : 올해도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의 대통령이 그렇고 2월엔 김수환추기경님이 5월엔 장영희교수가 바로 그분들이지요. 추기경님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곱씹을수록 그 깊이가 마음 깊이 전해오는 것 같으네요. 소설가 김주영은 이분들을 향해 “평생을 그리워해도 다시 그리울 그분들을 떠나보내면서 우리들의 삶의 궤적도 흔적 없이 흘러가 버렸다는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마음을 같이 합니다. 그분들을 가만히 생각하면 내 영혼의 “따뜻한 밥”이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 추운 겨울날 고봉밥을 남겨놓고 그분들은 가신 듯 합니다.
▢ 12월 29일 : “인간은 이미 완전합니다. 그것을 못 보게 가로막는 것은 착각에 사로잡힌 우리들의 지각입니다. 더 많이 깨달을수록 깨달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인도에서 24년간 수행하고 서양 여성 최초로 티베트 수도승의 계를 받았던 영국인 비구니 텐진 팔모(Tenzin Palmo)의 얘깁니다. 그녀는 12년 동안 히말라야 1만 3천피트의 동굴에서 수행을 했지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그녀의 독기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내면과 씨름했던 그녀의 생애를 생각하면 오늘 나는 너무 쉽게 하루를 맞고 보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12월 30일 : 올 한 해 동안 몇 편의 영화를 보셨는지요? 국내영화는 봉준호감독의『마더』홍상수 감독의『잘 알지도 못하면서』박찬욱 감독의『파주』와『박쥐』양익준 감독의『똥파리』등이 사랑을 많이 받았네요. 한국영화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외화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예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듯해요. 저는 오래된 외화를 자주 보는 편이지만 좋은 영화는 문학작품처럼 그렇게 가슴에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숱한 일상의 잡일을 잠시 접어두고 신년연휴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스톱 말고 영화관을 찾는 것도 잃어버린 생의 여유를 회복하는 멋진 신년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 12월 31일 : 누구에게나 똑같이 허락됐던 한해 8760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자문해 봅니다. 세월이란 뒤돌아보면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고 무용한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구나 싶을 때가 있지요. 편하다는 것이 결코 행복이 아님을 알면서도 편하려고만 했고, 통장의 잔고 늘어나는 재미로 살지는 않았는가 싶어요. 남을 위해 쓴 시간만이 내 인생의 확실한 저축이라는 생각도 해보며 내면의 성숙을 위해 투자한 시간만이 삶의 질로 피어나 성숙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 생을 향기롭게 할 거라 믿습니다. 저는 올해도 이렇게 매일 ‘청죽칼럼’을 쓸 수 있어 행복했고, 읽어준 당신이 있어 고마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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