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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이갑종
2024년 6월 20일 목요일
남편이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119를 불러 우리병원에 응급실에 갔더니 입원실이 부족하다고 받아주지를 않는다. 그러면 일산 암 센터 병원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니 119구급차도 일산 쪽으로는 우리 구역이 아니라 갈 수 없다고, 거절하여 남편을 큰애 자동차 뒷좌석에 눕히고 일산 암 센터 응급실로 달려갔다. 암 환자가 아닌 사람이 암 센터 병원으로 왜 갔나 궁금하겠지만, 그 병원으로 폐질환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지인분이 일산 암 센터에 폐질환을 잘 보시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여 지인분의 소개로 남편이 진료받게 되었는데 담당 선생님이 혹시라도 위급한 일이 생기면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빨리 오라고 해서 그곳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암 환자분들로 응급실이 꽉 차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진찰을 하시더니 급성폐렴이라고 입원실로 옮기라는 지시가 떨어져 남편은 5층 5인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렸을 때 결핵 가족력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았다. 청년 시절에 담배를 피웠고 건물 지하에서 슈퍼를 하게 되면서 공기가 안 좋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쪽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해서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받았다. 진찰을 받고 나니 백내장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검진하고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왔는데 검진 결과 왼쪽 폐가 안 좋게 나와 알려 드린다고 하면서 수술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받을 수 있다는 연락이 와서 수술받았다. 그때 우리는 남편이 왼쪽 폐가 폐쇄성 폐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 6월21일 금요일
병실에 올라오니 남편만 빼고 모두 암 환자다. 앞 침대에 입원하고 있는 50세 젊은 환자는 담당 선생님이 이제 더 이상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퇴원해서 호스피스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임종을 맞으시라고 권했는데 애들 엄마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이대로 보낼 수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서 입원해 좀 더 치료받아 보겠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가여운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2024년 6월 22일 토요일
이곳 병실에는 중증 환자들만 있는 병실이라서 환자 한 명에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한다. 환자 침대 옆에 긴 의자가 있어 보호자는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잠을 자야 하는데 보호자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제일 불편한 것은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옆에 환자들이 너무 코를 심하게 골아서 남편이 하루빨리 회복해서 퇴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오늘은 2년에 한 번 요양사 교육이 있는 날이라서 작은애한테 아버지를 돌봐드리라고 부탁하고 나는 교육장으로 향했다. 저녁 5시에 교육이 끝나고 다시 병원에 도착하니 남편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무래도 아들이 돌봐주는 것 보다 마누라가 돌보아주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작은애도 잠깐이지만 병원에 있는 것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아침 5시부터 엑스레이 기사가 와서 사진을 찍어가고 채혈 검사. 항생제를 투여하니 남편이 힘들어했다. 남편이 하루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보챘다. 옆 침대에 있는 아저씨가 퇴원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여동생들이 얼마 남지 않은 오빠의 삶을 뒷바라지하느라 멀리 경북 영천에서 올라와 오빠를 간호해 줬는데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했단다. 환자분은 63세인데 공무원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지난 3 월달에 건강검진에서 폐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고 이곳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조금 있으려니 아들과 애들 엄마가 병실에 도착해서 아저씨를 모시고 퇴원하는 것을 배웅해 줬다.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아침 회진 때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내일 퇴원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선생님에게 산소호흡기 처방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 대답이 산소호흡기를 자주 쓰면 해롭다고 하시면서 선 뜻 응답을 안 하셨다. 이에 남편은 제발 산소호흡기 처방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니 선생님께서 처방을 해드릴 터이니 과용해서 쓰지 말고 꼭 필요할 때만 쓰시라고 당부하셨다.
2024년 6월 26일 수요일
퇴원하는 날 아침부터 엑스레이, 채혈 검사 그 외에 여러 가지 검사가 있어 검사실로 가는데 머리를 깎은 환자들이 주위에 너무 많아 어느 사찰에 온 느낌이 들었다. 5층에는 폐암 병동인데 40개 병실이 있고 5개 병동만 특실 2인실이다. 그 외에는 5인실이라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입원한 폐암 환자가 180여 명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남편은 검사를 끝내고 결과를 보고 퇴원을 하였다. 퇴원을 하면서 산소호흡기 사무실에 전화를 넣었더니 집에 도착 후 조금 있으니, 산소호흡기가 바로 도착했다. 산소호흡기를 배달 온 사장님도 주의 사항을 알려주는데 과용하지 말고 너무 힘들 때만 사용하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2024년 6월27일 목요일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병원 음식이 입맛에 맞지를 않아 마음대로 먹지 못해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더니 닭백숙을 먹고 싶다고 했다. 마트에 가서 토종닭 한마리를 사고 닭백숙에 들어갈 재료를 사 가지고 와서 푹 끓여서 닭다리를 잘게 찢어 국물을 넉넉하게 떠주었더니 간이 딱 맞고 자기 입맛에 맞는다고 하면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다음 끼니에도 또 닭백숙을 찾았다. 남편은 입맛이 까다로워 한 끼를 먹으면 다음번에는 다른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또 닭백숙을 먹겠다고 한다. 다음 끼니에도 또 닭백숙을 찾았다. 남편은 그렇게 연거푸 세끼를 맛있게 닭백숙으로 끼니를 때웠다.
2024년 6월 28일 금요일
남편이 오늘은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해서 큰애한테 심부름시켜 사 오게 했다. 보신탕을 데우고 밥상을 차려줬더니 이번에도 맛있다고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다음 식사 때도 또 보신탕을 달라고 주문했다.
보신탕이 폐가 안 좋은 사람한테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약으로 어쩌다 한 번씩 사다가 주면 한 끼 외에는 절대 안 먹던 사람인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도 연거푸 세 번을 먹겠다고 한다. 아마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못 먹었던 것을 집에 와서 보충하는 것 같았다.
2024년 7월4일 금요일
오늘 아침 남편한테 아침 밥상을 차려 주었더니 밥을 먹을 수가 없다며 밥알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뱅뱅 돈다고 식사를 못 하겠다고 했다. 오전에 요양보호사 일을 다녀와서 점심을 차려 주었는데도 밥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오후에 내가 밖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순대와 튀김을 파는 가게가 눈에 띄어 순대와 튀김을 사 가지고 와서 남편한테 주었더니 순대와 튀김이 맛있다고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또 큰애한테 퇴근하는 길에 설렁탕을 사 오라고 주문했다.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겠다고 해서 데워주니 밥을 말아 한술 뜨더니 조금 전에 순대를 많이 먹어 그런지 더 못 먹겠다고 상을 물렸다.
2024년 7월 5일 토요일
오늘은 내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다. 생일이 돌아오는 친구가 생일 기념으로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일산 사는 친구가 자기 집으로 생일인 친구와 몇몇 친구를 불러 감자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게장하고 반찬 몇 가지 준비할 터이니 자기 집으로 모여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초대를 해서 밥을 먹기로 한 날이다. 남편한테 말했더니 다녀오라고 했다. 마침 토요일이라서 큰애도 직장을 안 가는 날이고 점심은 남편이 먹고 싶은 것으로 배달시켜 먹기로 했단다.
그런데 아침 식사로 어제 사 온 설렁탕을 준비해서 아침밥을 차려 줬더니 남편이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밥상을 밀어냈다. 남편한테 식사를 못 하겠으면 방문 간호사를 불러 영양제를 맞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영양제를 맞는 남편한테 나 점심 먹으러 가는 모임에 안 가고 집에 있을 터이니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히 영양제를 맞으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자네가 내 옆에 있어야 내 마음이 든든하다고 고맙다고 했다. 영양제를 맞은 남편은 한잠 자야겠다고 말하더니 잠이 들었다.
남편이 한잠 자고 일어나더니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한다. 도와줄 터이니 같이 가자고 말했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기운이 없다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기저귀를 채워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저귀에다 볼일을 보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직은 혼자서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다녀 큰 걱정은 없었다. 한데 만약을 생각해서 기저귀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한 시간이 지난 후 뭐가 나온 것 같다고 해서 기저귀를 열어보니 검은 변이 보인다. 내가 보고도 실감이 안 났다. 다시 확인해도 역시 검은 변이다.
어르신들이 말씀 하시기를 사람이 죽기 전에 검은 변을 보고 죽는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귓결에 들은 기억이 났다. 왜? 검은 변을 보았을까 혼잣말로 말했는데 남편이 그 말을 들었나 보다, "변이 검다고?" 글쎄 "검은 변을 누었네요." 남편한테 대답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후 또 대변을 보았다고 남편이 말을 해서 기저귀를 열어보니 처음과 똑같이 검은 대변을 누었다. 이제는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남편한테는 내색을 안 하고 마음에 평정을 찾았다. 그렇게 저녁 시간까지 네 번이나 똑같은 대변을 보았다. 저녁 시간에도 남편 침대 옆에 자리를 깔아놓고 계속 대변을 치워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상으로 대변을 보면 냄새가 나는데 남편이 보는 대변은 전혀 냄새가 나지를 않았다.
2024년 7월 6일 일요일
그렇게 밤을 새워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남편은 20번에 검은 대변을 보았다. 집안 어르신들이 계시면 전화를 드려 여쭈어라도 보겠지만 집안에 어른들이 안 계시니 답답할 따름이다. 날이 밝은 후 보덕정사 주지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여쭈어보니 주지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환자가 검은 변을 보면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큰애한테도 아버지 상황을 얘기 해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아침이 되니 남편은 입이 마른다고 하면서 계속 물을 찾는데 물을 컵에 담아 한꺼번에 마시면 물이 폐로 넘어갈까봐 빨대로 조금씩 마시게 하고 가제에 물을 흠뻑 적셔 입으로 빨아먹게 하였다. 이어 가래도 자꾸 나와 가제로 닦아 주곤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남편이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남편한테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더니 메모지와 연필을 달라고 한다. 메모지에 글로 써서 전해 주어 읽어보니.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병원에 가게 되면 의논하여 너희들한테 알려줄 터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오후에 친정 올케한테 전화를 넣었다. 올케는 시부모님과 오빠가 돌아가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 남편이 처한 상황을 말해줬더니 오빠도 돌아가실 때 검은 변을 보더라고 얘기하면서 고모부 상태가 그러한데 고모는 겁도 안 나느냐고 하면서 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일러줬다. 올케한테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나서 남편한테 병원에 갈까요? 하고 물었더니 병원에 가면 목이 안 마를까를 묻는다. 병원에 가면 수액도 맞고, 영양제도 맞으니까, 목이 마르지 않는다고 말해 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 있어서 위급할 때는 어떠한 조처하여야 하느냐고 문의 한 적이 있어 그분한테 전화를 넣었더니 동네 호스피스병원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입원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일요일인데 원장님이 출근하신 것 같으니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잠시 후에 연락이 왔는데 원장님이 입원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고 응급차를 보낼 터이니 입원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사설 응급차가 왔다. 병원에 도착하여 입원 절차를 마치고 남편이 입원했다. 병동에는 5인실인데 남자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아주니까 보호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하면서 특별한 일이 있으면 보호자한테 전화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면회 시간은 오후 1시 30분에서 2시까지이고 저녁 시간에는 7시 30분에서 8시까지라고 일러 주면서 내일 면회 시간에 면회를 오라고 알려줘서 우리는 남편을 병원에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7월 7일 월요일
오전 요양사 일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작은애와 같이 병원에 도착했다. 면회 시간이 되어 병실에 들어서니 어제와는 달리 남편의 표정이 밝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간호사들이 입안에 가래를 빼내 주어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간병인 아저씨가 중국 교포분인데 남편하고 나이가 동갑이라면서 친구처럼 잘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어제 남편이 큰일을 당하는 줄 알고 긴장했다가 오늘 남편을 만나보니 아주 좋아진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마음의 긴장이 풀리니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동안 남편을 돌보며 몸과 마음이 지쳐 기운이 없어 동네병원에 들러 영양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7월 8일 화요일
오늘도 작은애와 같이 남편 면회를 하였다. 병실에 들어서니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다. 남편은 우리를 보더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간호사들도 잘 해주고 간병인도 잘 해주니 몸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다고 한다. 입원하던 날은 말도 잘 하지 못했는데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남편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큰애한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아주 좋아지셨다고 전했더니 큰애도 좋아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시누이들한테 전화를 넣어 오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오빠 몸 상태를 전해 주고 시간이 되면 한번 다녀가라고 말해줬다. 전화를 받는 시누이들이 울음을 삼킨다.
2024년 7월9일 수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막내 시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올케네 집으로 가고 있으니 집 앞에 나와서 기다리라는 전화다. 병원에 도착하니 넷째 시누이가 병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되어 우리는 함께 남편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시누이들을 보고 남편이 놀라는 표정이다. “제가 아가씨들한테 연락해서 오빠 만나보러 오라고 했어요.”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막내 시누이는 오빠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더니 너무 얼굴이 야위었다고 돌아서서 눈물을 보였다. 병실을 나와 시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헤어졌다. 작은애와 함께 허리가 안 좋아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4년 7월10일 목요일
큰애가 서울에 살고 계시는 아주버님한테 전화를 넣어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하니 아주버님이 말씀을 잇지 못 하시고 통곡하셨다. 전화를 한 지 두 시간이 지난 저녁 시간에 아주버님이 큰애한테 전화하시어 우리집으로 들어 오지 않으시고 큰애를 밖으로 불러내어 남편의 장례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를 의논 하시고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 나의 몸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공영 주차장에서 우리집까지는 8분여 거리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다리에 힘이 없어 두 번을 쉬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고, 몸 킬로그램 수가 갑자기 5킬로가 빠지면서 위에 복통이 오는데 아기를 출산할 때보다도 더 아픈 복통이 와서 내과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 복통이라고 해서 진통제를 맞았다. 큰애한테 병원에 다녀온 얘기를 해주었더니 어머니! 다음에는 스트레스 장염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2024년 7월 10일 금요일
오후에 남편한테 면회하러 갔더니 남편이 할 얘기가 있다고 작은애와 나를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아무래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병원에는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얘기를 하고 난 뒤 남편이 우리한테 손목을 보여주는데 양쪽 손목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간병인 아저씨한테 여쭈어보았더니, 간병인 아저씨가 말씀 하시기를 자정이 다 되어서 남편이 우리집으로 전화 좀 걸어달라고 부탁해서 간병인 아저씨가 지금 시간에 전화를 하면 사모님도 주무실 텐데 내일 아침에 통화하라고 얘기했더니 지금 우리 집사람이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얘기를 하는데도 안 들어 주니까 남편이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사기를 빼버리고 위에 달아놓은 링거병까지 빼서 던져버리는 난동을 부리니 병원에서 남편의 두 손목을 가제로 침대 양쪽으로 따로 묶어놓아 아침에 풀어 주었는데 이후에 우리가 면회를 가니 남편이 다른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소연을 한 것 같았다.
2024년 7월 11일 토요일
아침부터 장염으로 고생했다. 큰애가 스트레스 장염도 올 것이 라고 얘기하더니 큰애 말이 맞았다. 병원에 가서 또 진통제와 영양제를 맞았다. 그동안 남편 간병을 하다가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내 몸에 이상이 찾아온 것 같았다. 오후에 남편한테 면회하러 갔더니 오늘도 다른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아주버님이 우리집에 다녀가셨다고 전해 줬더니 남편은 그 말을 듣고 형님하고 통화하게 전화 좀 빨리 걸어 달다고 부탁했다. 작은애한테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바꿔 드리라고 했더니 바꾸어 드렸는데 아주버님이 동생 전화를 받더니 울음을 터트리셔서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조금 후 남편이 아주버님한테 형! 빨리 오셔서 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형이 오시면 못 하실 일이 없다고 하면서 남편의 기대는 대단했다.
2024년 7월 12일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남편 쪽 8남매 형제들이 모두 다 모여 두 번으로 나누어 남편 면회를 했다. 아주버님과 형님 두 내외분이 먼저 면회하셨는데 아주버님은 남편을 보자마자 병원이 떠나가라 하고 통곡하셨다. 남편도 덩달아 따라 울었다. 큰 어머님이 열 여섯살에 시집을 오셔서 아기를 임신 하시고도 7. 8개월이 되면 유산을 하시어 아들만 다섯을 갖다 버리시고, 굿도 하고 푸닥거리도 하고 절에 가서 불공도 수없이 드렸는데도 효험이 없자 그 옛날 87년 전에 큰돈을 가지고 서울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에 가서 선생님께 진찰받아 보았더니 어머님은 자궁이 작아서 아기를 가지면 열 달을 못 채우고 유산이 되었다면서 다음에 아기를 가지게 되면 딸이든 아들이든 열달을 채워 아기를 낳아 기르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 했다.
다음에 어머님이 열 달을 채워 낳은 아기가 지금에 큰 시누님이다. 딸을 낳으시고 십 년 동안 다시 아기를 갖지 못하시어 유복자이신 아버님에 대를 못이을까 봐 작은어머님을 들이시어 지금에 아주버님을 낳게 되셨다. 아주버님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다행히 우리 어머님이 다시 임신을 하시어 난 아기가 지금에 우리 남편이다.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낳으셨고, 작은 어머님이 아들 하나에 딸을, 넷을 낳으시어 합 8남매를 두셨다. 아주버님과 남편은 이복형제이니 두 형제 사이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 있어 남편이 먼저 형한테 잘못했다고 말하고, 아주버님도 동생한테 잘못했다고 서로 용서를 빌어 옆에서 지켜보던 형님과 나의 눈물샘을 쏙 빼놨다.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두 형제간에 마음에 응어리를 다 풀어버리고 남편은 세상을 하직한 것 같다. 남편은 자기 두 손을 묶어 놓았던 병원이 못마땅해서 이 병원에서 치료를 안 받을 거니까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형한테 다시 부탁 했다. 아주버님은 잘 알았다고 하시며 다른 병원을 알아볼 터이니 걱정 하지 말고 편히 기다리라고 동생한테 위로를 해주었다.
2024년 7월 13일 월요일
남편은 병실에서 낮에는 불을 환하게 켜놓았지만, 밤에는 환자들 잠자리에 들라고 큰 불은 끄고 작은 불만 켜두어 병실이 어두워서 무섭다고 집에 오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평소에 집 안에 있을 때 낮에도 거실에 항상 불을 켜놓고 살았다. 낮에 불을 켜놓는다고 해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나는 환한 낮에도 불필요한 불을 켜놓는 남편한테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생각하기를 여자가 돈 좀 번다고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한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대낮에 불을 켜놓던, 불을 끄던 일체 아무런 간섭을 안 하고 지냈다. 그렇게 환한 집에서 지내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겁이 나는데 병실이 어두우니 얼마나 무서우면 집으로 오고 싶어 할까? 하고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자네한테 궁금한 것이 있다고 말하면서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 형제들이 나를 보러오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당황했지만 시침 뚝 떼고 “당신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집에서 매우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형제들한테 연락했더니 면회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2024년 7월 14일 화요일
큰 시누이가 작은 조카와 함께 남편 면회를 오셨다. 지난번에도 다녀가셨지만, 동생을 만나보고 난 이후로 계속 눈에 밟혀 세상 떠나기 전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 오셨다고 했다. 큰 시누이는 나한테 귓속말로 지난번 다녀가셨을 때보다 동생이 더 야윈 것 같다고 말씀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남편은 평소에 운동하기를 싫어해서 나와 함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가자고 해도 못 들은 척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러더니 체중이 자꾸 줄어들기 시작하고 병원에서도 운동 열심히 하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더니 운동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이제는 오랜 시간은 아니더라도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밖에 나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복도에 나가 운동을 하고 들어 오면서 나에게는 운동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남편은 이미 때가 늦은 것 같다.
2024년 7월 15일 수요일
요양보호사로 일하러 가는 어머님 댁에 어머님이 요즘 아저씨 상태는 어떠냐고 궁금 하시다고 물으셨다. 남편이 자꾸 다른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속상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가 돌아가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일러 주시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셨을 때 좀 더 잘해드릴 것을 하고 후회가 되더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나니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 잘 해주고 싶어도 이미 잘 해주고 싶은 시간 들이 다 지나가 버린것 같았다.
2024년 7월16일 목요일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몸살 기운도 있고 해서 집에서 쉬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10시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큰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버지가 저한테 전화하셔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셔서 아버지! 저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알았다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고 했다. 조금 후 작은애도 전화를 해서 엄마! 아버지가 저한테 지금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나한테도 전화가 왔나 하고 궁금해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나한테도 전화했는데 내가 소리음을 작게 해놓아서 설거지하느라 벨소리를 못 들은 것 같았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았다. 벨소리를 작게 해놓아 전화를 못 받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왜 했느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쪽 병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에 버스를 타고 작은애는 아버지한테 면회를 가고 나는 마송 정류장에서 내려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맞았다. 남편한테 큰일이라도 생기면 나라도 몸을 추슬러야 할 것 같아서다. 저녁 시간에 큰애하고 같이 남편 면회하러 갔더니 남편은 눈을 감은 채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좋은 영양제를 맞아서 그런지 말도 잘하고 몸 상태도 좋아졌는데 갑자기 호흡이 나빠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으니 겁이 났다. 남편 손을 잡아주면서 힘드냐고 물었더니 눈도 뜨지 않고 고개만 끄떡인다. 오전에 집으로 전화했을 때 남편하고 통화를 했으면 남편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벨소리를 작게 해놓아 남편하고 대화를 못 나눈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오후에 작은애가 면회를 왔을 때만 하더라도 말도 잘하고 두시에 큰애한테 다시 전화를 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했는데...
내가 낮에 영양제를 맞지 않고 작은애와 같이 남편 면회를 왔더라면 남편하고 마지막 대화라도 나누었을 텐데 이렇게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고 있으니, 이제는 아무런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남편 손을 꼭 잡아주면서 힘들죠? 라고 말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를 끝내고 병실을 나서는데 복도에서 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께서 남편이 오늘밤이나 내일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면 병원에서 연락이 갈 거예요. 연락을 받으면 빨리 임종하러 오시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집에 도착해서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7월17일 금요일
자정이 지나서 큰애가 안방 문을 열면서 어머니! 지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빨리 오시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이웃에 사는 작은애한테 전화를 해서 자동차를 가지고 집 앞으로 갈 테니 빨리 준비하고 나와 있으라고 전했다. 잠시 후 작은애를 태우고 병원 입원실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최ㅇㅇ님 임종하셨다고 간호사가 알려주면서 고생은 안 하셨다고 덧붙였다. 입원실로 들어가 남편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가서 뒤를 바라보니 간병인 아저씨는 남편이 돌아가신 것도 모르는 채 옆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2024년 7월 17일 오전 1시에 최ㅇㅇ님 사망하셨습니다. 라고 사망 선고를 내렸다. 남편은 보고 싶은 가족들을 못 보아서 그랬는지 눈을 반쯤 뜨고 있었고, 왼쪽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남편의 두 눈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남편 손을 잡아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사람은 사망을 해도 한 시간까지는 청각이 살아있다고 해서 남편한테 부디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가서 편히 쉬라고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