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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22) 2026. 8. 5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라
왕하6:18~23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아람 왕(벤하닷)이 북이스라엘(여호람 왕)을 기습하기 위해 여러 작전을 짰으니 이상하게도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혹시 내부의 첩자가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나 한 신하가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아람 왕이 침실에서 말한 것까지 다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경고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람 왕은 작전을 바꾸어 엘리사를 먼저 제거하기로 작전을 바꿉니다. 그리하여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단이라는 성으로 군사들을 보내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게하시)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보니 아람 왕의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사환은 두려움에 엘리사에게 달려가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하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들과 함께 하는 자들이 더 많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하나님께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환의 눈이 열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르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어 엘리사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이라는 아주 귀한 분이 계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장로교 목사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대학 창설자 및 초대 학장을 역임한 분입니다.
그분의 생애를 기록한 책을 보면 기적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도둑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시는 목사님을 보고 돈 많은 부자인 줄 알았습니다. 양복을 입은 신사가 가방을 들고 걸어가니 돈을 많이 가지고 가는 줄 알고 목사님을 따라가다가 으슥한 길이 나오자 앞질러 가서 숨었습니다. 목사님이 그곳에 도착하면 목사님의 가방을 빼앗으려 했던 것입니다. 도둑이 목사님을 덮치려 하는데, 신비로운 빛이 나는 어떤 사람이 목사님 뒤에서 목사님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으슥한 곳을 지날 때까지 그 광경이 계속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걸어가시지만, 도둑은 그것을 보고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무엇 하는 사람인가?’하고 끝까지 목사님을 따라갔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로 들어가니 도둑도 교회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도둑이 그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 후, 도둑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기가 본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개를 했답니다. 하나님께서 한상동 목사님을 천사로 보호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도 작은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그들의 돕는 천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하나님의 우리가 위험에 처할 때,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그 보호의 날개 아래 품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한 엘리사>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내려오자, 엘리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8절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는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싼웨림’은 ‘현혹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쓰인 대표적인 장면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소돔의 죄악 – 창19:1~1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롯의 손님들, 곧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성적인 설득의 시간이 지나고, 위협이 다가오자 단호하게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당기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 후, 천사들은 문밖의 폭도들의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을 어둡게 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시력을 완전히 빼앗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손을 더듬으며 헤매었습니다.
오늘 엘리사의 기도,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에 쓰인 단어(‘싼웨림’)와 같은 단어가 창 19:11에서 ‘그 눈을 어둡게 하니’에 사용된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나 처지를 전혀 모르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들을 사마리아로 인도하는 엘리사>
눈이 어두워진 아람 군대를 엘리사는 사마리아로 이끌었습니다.
19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엘리사는 그들에게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고 말하며 그들을 사마리아로 인도하였습니다.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약 19~20km로 걸어서 5시간도 넘는 거리입니다. 엘리사가 그들을 북왕국 이스라엘의 도성 사마리아까지 인도하는 동안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바보처럼 엘리사를 따라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은 영적 눈이 어두워져, 사단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가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을 좋아하는 나방이 불만 보고 날아가다가 불에 타죽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을 위선을 책망하면서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마23:16), ‘어리석은 맹인들이여’(마23:17), ‘눈먼 바리새인이여’(마23:26)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소경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사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요9:39-41).
우리는 영적인 눈이 멀지 않기를, 시험에 들지 않기를 늘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무리의 눈을 뜨게 한 엘리사>
사마라이에 도착하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여 아람 군대의 눈을 열어 다시 보게 하였습니다.
20절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엘리사는 다시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즉 정신을 차리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여셨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사마리아 한가운데 이스라엘 군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들이 도단성을 에워쌌던 처음 상황과는(14절)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군에게 포로가 잡혀 어쩌면 죽을 운명에 이르렀습니다.
<치고 싶은 이스라엘 왕>
이스라엘 왕은 당황해하는 아람 군대를 두고 엘리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21절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여호람은 엘리사를 ‘내 아버지여’라고 불었습니다. 보통 혈통 상 부자지간이 아니 경우, 이렇게 부르는 것은 존경과 경외의 표현입니다. 예전에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그렇게 불렀습니다(2:12).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 즉, 여호람과 엘리사 선지자와의 관계가 어떠하였습니까? 냉담하고 소원(疏遠)한 관계였습니다. 비록 여러 차례 아람 군대의 침입을 막아주긴 했었으나, 냉담한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지금 일어난 일에 탄복하여 부른 일시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한편, 여호람은 ‘내가 치리이까’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은 보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그러나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의 기대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십니다.
22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1) 엘리사는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은 엘리사를 잡으러(죽이러) 온 원수들입니다. 죽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죽이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을 사마리아에까지 유인해 온 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참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5:8)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람 군대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2) 그래서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라’고 명합니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관대하게 대해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인식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음식을 많이 베풀고>
결국,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합니다.
23절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음식을 많이 베풀어 먹이고, 다시 아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후로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첫째, 침공해 보았자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람 군대에 대한 여호람의 호의와 석방에 대한 감동 때문입니다.
한편 여기서 ‘다시는’은 ‘잠시 동안’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실제 역사로는 후에 다시 아람 군대가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교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은 배우게 됩니다.
첫째, 엘리사의 모든 역사는 기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엘리사의 첫 번째 기도 :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군대로 포위한 것을 알고 두려워 떨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17)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람의 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하늘의 군사들이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엘리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영의 눈’이 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떠져야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엘리사의 두 번째 기도 :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향해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18)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시력은 정상인데, 혼돈이 와 이성이 마비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3) 엘리사의 세 번째 기도 : 사마리아 성으로 그들은 인도한 뒤에는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20)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즉 정신을 차리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여시니, 그제서야 자신들이 지금 사마리아 성읍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것 하나 인간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사는 기도를 통해 일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힘>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주 등장합니다.
1) 환경과 자연을 바꾸는 능력 -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자연적 위기 상황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불러옵니다.
엘리야의 기도(왕상 18장 / 약 5:17-18) -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가뭄 속에서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생명 연장(사 38장) - 죽을 병에 걸렸던 히스기야 왕이 벽을 향해 눈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셨습니다.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2) 어둠의 영적 세력을 대적하는 능력 - 기도는 어둠의 권세와 악한 영을 무찌르는 성도의 영적 무기입니다.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말씀하셨습니다.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행12장, 16장) -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간절히 기도하자 천사가 나타나 쇠사슬을 풀고 옥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 큰 지진이 나며 문이 다 열리고 매인 것이 풀렸습니다.
3) 내면을 변화시키는 능력 - 기도는 환경 자체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의 능력 - 인간의 한계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발견하게 합니다.
렘 33:2-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5) 각종 신비한 은사를 체험하는 능력 – 방언, 예언, 치유 등 신비한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물론 기도에 능력을 더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1) 믿음으로 구하기 -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믿는 태도 (막 11:24, 약 1:6)
2) 내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 (요14:13, 요일 5:14)
오늘날 우리도 기도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 하기.
둘째, 이 세상에는 자신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람 군대는 엘리사에게 이끌려 전진 깊숙이 ‘사마리아’ 성으로 가는지 모르고 따라갔습니다. 영적인 눈이 닫혔기 때문입니다(영적 혼돈 상태). 탐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영안이 열린 믿는 우리는 - 마7:13~14(산상수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셋째, 원수를 굴복시키는 길은 칼과 무력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잡으려는 아람 군대에 대해, 엘리사는 어떻게 대우하였습니까?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게 하고 그들의 나라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시대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아 주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원수들을 사랑으로 대접해서 보냅니다. 그는 시대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람 군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똑같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믿는 사람이 원수를 만나게 되면 자신 속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면서 사랑하라고 할 것이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원수를 미워하고 공격하라고 할 것입니다. 이때 누구를 따를지 우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면 원수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따르면 원수를 미워하고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잠 25:21~22).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께서 와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따라서 원수를 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 속에 부어진 주님의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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