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 경계에 흐르는 잠베지 강(Zambezi River)에 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사는 원주민 칼롤로 로지(Kalolo lozi)족은 이 폭포를
모시 오아 투냐(Mosi Oa Tunya)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The smoke that thunders)라고
불렀는데 1855년 영국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후로는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라고 한다.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가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약 1시간 40분가량 비행기로가야 한다.
빅토리아(Victoria)공항은 순전이 폭포관광을 위한 항공노선으로 개설되었다고 한다.
강 건너 잠비아에도 비슷한 리빙스턴( Livingstone)공항이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공항을 이용한단다.
그것은 목적이 폭포관광이므로 원래 개발 초기부터 호텔과 각종 편의 시설을
잠비아보다 짐바브웨 쪽을 많이 건설하여 편리하기 때문이란다.
단순한 빅토리아 폭포 관광객들만을 실어 나르는 노선이어서
얼핏 한산할 줄로만 예상했는데 의외로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이륙한 SA항공기에는
빈 좌석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1년에 50만 명이라는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을 가진 세계인들이 이 폭포를
보기 위하여 관심을 갖고 몰려온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증거였다.
빅토리아 폭포로 가는 기내서 내려다 본 지상경관은 한 없이 넓고 삼림으로 울창했다.
-----잠베지강의 선상 크루즈 모습-----
선착장에는 여러 모양의 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셋 크루즈(Sun set Cruise)를 하는 유람선들은 그리 호화롭지 않은 나무와
엘팔 피로 만든 크기가 다양한 배들이었는데 뜨거운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천정이
모두 덥혀져 있었다.
예약된 관광객은 30여명. 유럽 팀을 비롯하여 다른 부부배낭 팀이 속속 승선하자 배는
출발하면서 선장은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잠베지 강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우리 일행은 각자 편한 좌석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간단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넓게
흐르는 잠베지 강의 물결위에서 잠시 아프리카의 원시적 풍광에 빠져 들었다.
개성을 품은 야성미 넘치는 구름과 탁한 강물 위로 반사되어 흐르는 햇빛은 은구슬처럼
빤짝이었고 알록달록한 작은 열대새들은 떼를 지어 낮게 물위를 날아갔다.
-----잠베지강의 악어와 하마들-----
배는 강 양 기슭을 더듬으면서 동물들을 탐색했는데 비교적 악어가 많이 눈에 띠었고
물속엔 하마가 수없이 무리지어 있어 서로 사진 촬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나가는 다른 유람선의 여행객들과도 서로 손을 흔들어 정을 나누고 동물들의 잠적에
정보를 주면서 멋처럼의 여유를 가졌다.
또한 배에서 느껴지는 잠베지 강에 대한 이국적인 감정과 전개되는 운치 있는 풍광에
새로운 여행의 묘미를 맞는 것 같았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 대지의 색깔은 퇴색되고 생기를 잃은 태양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유속이 느린 검은 강물엔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이 빨갛게 그림같이 물 드려졌다.
-----잠베지강의 석양-----
오늘은 빅토리아 폭포 관광을 하는 날이다.
빅토리아 폭포 관광은 잠비아와 짐바브웨 쪽에서 따로 각각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폭포를 통해서 두 나라를 왕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폭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는 짐바브웨 쪽부터 투어를 하기로 하고
모두들 기대에 찬 들뜬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입구 관리소는 우리 옛 초가 형식의 갈대로 덥혀진
아주 토속적 정취가 물신 풍기는 지붕과 돌담 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입구 벽면에는 안내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전시장에는 빅토리아 폭포에 관한 자료. 즉 폭포의 크기와 물의 수량. 그리고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계를 정리해 놓아 폭포를 관광하는데 이해를 도왔다.
-----입구와 안내도-----
출입구를 통과하여 폭포를 따라 연결된 숲길에 들어서면 먼저 리빙스톤의 동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들리고 곧바로 빅토리아 폭포에서
제일 큰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를 관광하게 된다.
원주민들은 이 악마의 폭포를 신성시하고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폭포상류 작은 섬에서 원주민들이 희생의식을 치렀는데
그 원혼이 폭포 뒤편 동굴 속에 숨어서 계속 괴물 같은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란다.
이 악마의 폭포는 다른 폭포와 같이 지평 건너 언덕에서 바라볼 수 도 있고 가파르지만
밑창에 내려가 물이 낙하하는 모습을 탄성을 지르며 올려다 볼 수 있는
캐터랙 비우(Catarack View)가 있는 유일한 폭포다.
엄청난 물이 108m나 되는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물 폭탄으로 변하여
내려 꼬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굽이굽이 잔잔하게 흐르다 칼로 단면을 자르듯 뚝 끊겨 벼랑 아래로 고공낙하 하는
이 물기둥은 정말 악마와 같이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이었다.
폭포는 굉음을 내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물보라로 바뀐 물안개는
하늘로 솟구치면서 소낙비가 되었다.
쏟아지는 물방울은 시야를 가리고 까마득한 고공에서 힘차게 내려 쏟는 물의 마력은
나를 휘감고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최면(催眠)에 걸려들게 했다.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
빅토리아 폭포는 흔히 생각하는 강물이 흐르다 절벽에서 떨어져 넓은 웅덩이를 거쳐
평지위로 흘러가는 그런 폭포가 아니다.
지진에 의해 땅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생긴 깊은 협곡에 한쪽 절벽에서 흐르는
물로 폭포가 이뤄졌기에 다른 폭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나이아가라나 이구아수 폭포는 그래서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고 가까운 맞은편에서는
실감나게 쏟아지는 스릴을 못 느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러나 빅토리아 폭포는 지형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 폭포로 인한 체험적 감각이
직접적으로 부딪쳐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광대한 잠베지 강이
평원을 유유히 흘러오다가 갑자기 독특한 깊은 협곡을 맞나 빠져들면서 특이한 형상의
폭포가 벌어지기에 색다른 정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불과 50m~70m의 틈을 두고 110m의 깊은 협곡을 가로질러 강폭1.7km의 전강물이
물 폭탄 되어 일제히 수직 낙하하는 위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일분에 55만 톤의 물이 협곡으로 쏟아져 내려 하늘로 무려 300m나 튀겨 올라가 50km
에서도 볼 수 있다니 이는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경이로움이 아니던가?
온통 물보라와 수증기로 가득 메운 사방은 방향을 잃게 하고 마구 떨어지는 물보라는
안개속의 가랑비로 변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메인 폭포(Main falls)와 물안개-----
빅토리아 폭포는 지형과 물줄기에 따라 폭포의 특성과 형태에 의해서 이름이 지어 졌는데
악마의 폭포(Devil's cataract).
메인 폭포(Main falls).
말 발급 폭포(Horse shoe Falls),
안락의자 폭포(Armchair falls).
무지개 폭포(Rainbow falls).
그리고 이스턴 폭포(Eastern cataract). 로 구분 된다.
빅토리아 폭포 관광은 물이 떨어지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울창한 밀림 숲속
길(Livingston Way)을 따라 걸으면서 맞은편 폭포를 관망하게 되어 있다.
이름 있는 요소 마다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수시로 달라지는 폭포의 우람한 모습을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가장 짜릿한 감동을 체험할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점에 닦아갈 수 가없었다.
마침 시기가 우기인지라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량이 워낙 많아 바닥에서 부딪쳐 솟구치는
물보라가 앞을 가로 막고 접근을 허용치 안했기 때문이다.
안개비로 전방은 하얗기만 하고 물바람은 사납게 덮치고 지축을 흔드는 굉음은 청각을
무디게 하니 어떻게 정신을 추스르고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겠는가?
흠뻑 젖인 비닐로 싼 카메라마저 초점을 거부했고 나름대로 준비해간 우의장비도 사납게
쏟아지는 소나 기속에서는 속수무책 이였다.
그래도 일행들은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는데도 의미 있는 미소를 서로 나누면서
관광을 계속했다.
리빙스톤 섬(Livingston Island)을 지나고 말발급 폭포(Horse shoe Falls)에 이어
무지개 폭포(Rainbow Falls)를 지나 데인저 포인트(Danger Point)에 이르러서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들 넋이 나갔다.
이곳은 짐바브웨와 잠비아 사이를 가르면서 흐르는 협곡의 삼각절벽 모서리다.
짐바브웨로서는 마지막 관광 포인트인데 잠베지 강이 1.7km 넓이로 흐르다가 협곡을
맞나 폭포가 이루어져 깊은 골짝이로 떨어졌다가 다시 좁고 깊은 계곡으로 합수되어
빠져 나가는 지점인 것이다.
사나운 폭포수의 유일한 배출구이기도 한 이 협곡은 짐바브웨와 잠비아 사이의 국경도
되는데 보일링 포트(Boiling Port)라 이름 하는 이지점은 폭이 65m 깊이가 120m나
깊게 패인 웅덩이로서 물이 항상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흐른다고 한다.
난간 없는 까마득한 절벽 위 이끼 낀 바위더미에 가슴조이며 다가 보려 시도도 해
보았지만 역시 현기증 나는 과욕이었고 선명한 폭포의 경관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을
기약하고 아쉽지만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빅토리아 폭포-----
짐바브웨에서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를 관광하려면 리빙스턴 다리(Livingston Bridge)를
건너 국경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다리는 잠베지 강물이 넓게 흐르다가 절벽을 맞나 곤두박질 쳐 장엄한 폭포를
연출하고 다시 이 물이 한데 모여 구비 치며 빠져 나가는 유일한 배수구 역할을 하는
협곡하단에 아치형으로 아름답게 설치된 다리이다.
짐바브웨와 잠비아 사이를 가르는 국경이 되기도 하는 이 다리는 폭포 교(Falls Bridge)
라고도 하며 1905년 영국 통치령시대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Cecil Rhodes:1853~1902)가
남아공의 다이아몬드와 금등을 침탈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케이프 타운~카이로)
으로 종단하려는 계획 하에 큰 야망을 갖고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의도야 어쨌건 지금은 빅토리아 폭포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되어
110m의 협곡을 향해 몸을 던지는 앗질 한 번지점프(Bungee jump)대가 교량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특히 다리에서 둘러보는 주위의 경관은 일품이다.
까마득한 협곡아래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흐르는 유속이며 보기만 해도
앗질 한 낭떠러지의 절벽에 물안개가 덮여 무지개가 걸치게 되면 폭포의 연기와 어울려
탄성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
-----리빙스턴 다리와 주위 풍경-----
나라가 달라서인지 잠비아에서는 모든 이름이 바뀐다.
잠비아인 들은 영국의 여왕보다는 리빙스턴의 탐험정신에 후한 점수를 줬는가 싶다.
짐바브웨에서는 “빅토리아 폭포”를 잠비아에서는 “리빙스턴 폭포”로
짐바브웨에서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을 잠비아에서는 “모시 오아 투냐 국립공원”으로
비행장도 역시 “빅토리아 공항”과 “리빙스턴 공항”으로
또 도시의 이름도 짐바브웨 쪽에서는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 쪽은 “리빙스턴”으로
각각 부르고 있다.
폭포 관광은 여기에서도 짐바브웨와 마찬가지로 출입구를 통과하여 무성한 숲길을 걸으면서
시작되는데 역시 먼저 리빙스턴 동상을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검은 대륙의 선교자로서 아프리카 개척자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탐험을 즐겼던 리빙스턴은 스코틀랜드 남서부 “블랜타이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학구열에 불타 과학서적과 여행기를 즐겨 읽었으며 중국 선교사로서의
꿈을 갖고 의학공부를 하기도 했다.
선교사 시험에 8차레나 낙방하면서도 꿈을 잃지 안했던 그는
1840년 의료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3차례의 아프리카 선교탐험을 감행하면서 생명의 위협도 많이 받았으나 수많은 선교정보를
얻으면서 지리학적으로 가치 있는 탕가니카호와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애써 수집한 정보는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이용되어 식민화에 앞당겨졌다.
리빙스턴의 꿈은 오로지 순수한 선교와 탐험이었지만 그 지리적 발견이 오히려 원주민의
보금자리를 빼앗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는 저서에서 노예매매의 진상을 폭로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을 존중한다고 했다.
1873년 그는 폐결핵으로 임종을 맞았는데 그를 모신 충직한 흑인 2명이 시신을 1년간
잔지바르까지 운반하여 영국으로 보내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고 한다.
-----잠비아쪽의 리빙스턴 동상-----
울창하게 하늘을 덮은 밀림에 가려 물이 낙하하는 굉음만 귀청을 울리더니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물줄기를 드러냈다.
위에서 떨어지는 낙차가 길어서일까 무섭게 내리꽂는 물기둥이 무시무시하다.
튀어 오르는 물보라는 여전히 하늘로 치솟았고 열대우림은 내리는 이슬비를 조금은
막아주듯 했다.
잠비아 쪽에서 보는 폭포는 전체의 폭 3분에 1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짐바브웨 쪽보다 드라마틱하고 한결 변화무쌍한 것 같다.
폭이 좁은 대신 낙차의 높이가 깊어 몰아쳐 떨어지는 물 폭탄이
훨씬 생동감 있고 위협적이어서 무한한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하늘에선 계속해서 이슬비가 내렸고 이스턴 폭포(Eastern Cataract)를 지나
중간 건널목 다리(Crossing Bridge)에 와서는 모든 시야가 가려졌다.
그런데 기적 같이 무지개가 떴다.
아.아..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선물이고 신의 축복이다.
-----무지개 뜬 중간 건널목다리-----
바람이 물보라를 쓸어내면 순간 잠시 나타났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건너편
무지개 폭포(Reinbow Falls)를 보면서 또렷한 형체를 나타내주지 안는 것이
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건기에 와서 물 없는 흉측스러운 절벽의 속살을 드려다 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푸념인가?
건널목 다리를 지나 잠비아에서 맨 끝에 “칼 모서리”(Knife Edge)라는 전망대가
있다고 하여 가 보려 했지만 역시 물보라와 물안개에 막혀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스턴 폭포(Eastern cataract)-----
잠비아에서는 동쪽 폭포 위강기슭에서 빠르게 구비치 며 흘러가는 물 쌀을 볼 수 있다.
바로 발밑가까이서 요동치며 내려 쏟는 생생한 물의 위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물의 마력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같은 무서움이 든다.
-----이스턴 폭포 상류 지점-----
-----공중에서 내려다 본 빅토리아 폭포-----
-----짐바브웨 바오밤나무 앞에서-----
잠비아에서 폭포를 관광하고 짐바브웨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일이었다.
잠시 국경근처에서 여권수속 관계로 차를 정차하고 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잡상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물건을 사라고 했다.
우리부부는 우비는 입었으나 물보라의 이슬비로 옷이 젖고 신발에도 물이 들어가
매무새 추스리기에 별 관심도 없었는데 젖은 아내의 양말이 창틀에 걸린 것을 보고 자기나라
돈과 바꾸자고 지페를 흔들어 보였다.
화폐단위를 보니 One Hundred Trillion Dollars 백조 원짜리다.
-----짐바브웨 100조원짜리 화폐-----
짐바브웨가 많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겪고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화폐단위가 발행되어 사용되는 줄은 몰랐다.
백조하면 0이 14개 그려져 있다.
감(感)이 안 잡히고 상상이 안 된다.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이 240조쯤 된다고 예상해 보면 액수의 크기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갈까?
빵 한 개가 30억(미화 25센트) 버스요금도 30억. 쇠고기1kg는 220억 한다니
이게 국가가 발행하여 통용하는 화폐라 말 할 수 있는가?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로버트 무가베(Robert Gabriel Mugabe)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을 잡았다.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가진 풍요로운 나라에서
백인과 흑인의 경제적 격차가 너무 큰 것을 고뇌한 무가베 대통령은 2000년 백인들의
토지를 몰수 해 흑인들에게 나누어주는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흑인들의 가난을 외국자본 때문이라고 여기고 2004년 외국소유의 공장을 모두
국유화 식혀 버렸다.
그 결과 기술과 장비가 없는 흑인들은 생산성을 떨어뜨렸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짐바브웨를 떠나 공장의 문은 일제히 닫게되고 생필품은 품기 현상이 일어났다.
식량과 모든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려니 재정은 고갈되고 외환 보유고는
바닥 나 마구 화폐 발행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안 올수가 없고 망국으로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최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짐바브웨가 가장 낮은 나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불행은 무시한 채 자신의 85세 생일잔치에 23만 달러(약4억원)라는
비용을 드려 최고급 요리로 호화판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한나라의 대통령이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야당을 탄압하고 세계여론을 무시하고 당장의 선심정책으로
독재정권만을 연장하려 한다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가 흑백갈등을 유화정책으로 잘 극복한 사례와 비교되는 바 크다.
상 운.
첫댓글 이과수 폭포를 회상하며 빅토리아를 ~~ ㅎ , 아프리카여행을 례획하고 있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멋진 풍경에 오늘 하루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