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도 산길에서도 시행착오 되풀이… 결국 도중하차로 산행마감
석봉산악회 제1627차 진양지맥 6구간 바랑산(796.4m)
대상산 바랑산(796.4m) 거창군 신원면 산청군 오부면
날짜 2009년 2월 15일(일요일) 당일산행
산행 거리 산행 시간 11.6km(도상) 4시간55분(기맥7.1km 3시간32분)
출발 일시 장소 1일 아침8시 영광도서 앞
산행 시작 시각 장소 15일11시30분 밀치 거창군 신원면 산청군 차황면경계
산행 매듭 시각 장소 15일17시20분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수영덩이 도로
부산 도착 시각 장소 1일 22시 롯데호텔 앞
산행 코스
11:30밀치510m 1006번지방도(거창 신원면 산청 차황면 경계)-11:35 산행
시작-1.4km/55분-12:30 소룡산760.9m-2.2km/90분(12:55-점심20분-13:
15)-14:00바랑산796.4m-3.5km/67분-15:07 신예동 농로고개-0.5km/33분-15:40신촌경로당(예동마을)-4km/50분-16:30중유마을
참석자 10명 강창모 조종임 성병식정철교 이선균 서진경 노병복 황정희
최계순 김철우
회비 30,000원 지도 1:50000 거창 날씨 예보에도 없던 흐린 날씨 눈발도
교통편 12인승 승합차
기타 식사 신원면소재지 식육식당, 목욕 의령, 찬조 노병복 50,000원
자세한 산행코스
11:30 밀치-11:35산행시작-12:30 소룡산 710.9m 바랑산3.3km-12:50 이정표 독촉주차장0.8km-12:55식사 -13:15 식사 후 출발-13:20 이정표 바랑산1.7km 소룡산1.7km-13:40 천지사0.5km 소룡산2.4km 바랑산0.9km-1
4:00바랑산 소룡산3.3km 신촌2.6km-14:25 이정표 신촌2km 바랑산600m
-15:07 신예동 농로고개-15:50신촌(예동)경로당-16:30중유-16:50면소재지
산행 이모저모
화창하고 맑은 날씨를 기상청은 예보했지만 실제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산행들머리로 들어가는 도로를 찾으려고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하다 들어간 게 등산들머리로 가는 도로가 아니었다. 다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조심스레 동네 밖 넓은 도로를 살핀다. 마침내 입구도로를 찾았다.
도로가에 있는 노은리 표석을 지나자 그 다음에는 구평리가 나와 이번에는 틀림없는 들머리로 가는 도로다. 오늘 승합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정철교 산행대장이다. 정대장은 비로소 얼굴을 펴고 웃음을 날리며 차를 신나게 몰아간다. 좌우에서 도로와 같이 달리던 산줄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가까워진다. 5분만 달리면 양쪽 산줄기가 만나 한 몸이 될 정도로 계곡 옆 기슭 깊숙이 들어갔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갑자기 포장도로가 검누런 흙이 덮은 길로 바뀐다. 앞에는 커다란 돌로 차량 진입을 막아놓았고 도로는 한창 확장 포장 공사 중이다. 갈 길이 없다.다시 차를 돌려 생초면 어서리로 내려온다.
이제 어디로 간다. 오늘 산행 들머리는 산복도로 삼거리인 수영덩이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날머리인 밀치로 가서 역방향으로 산행을 할 것인지로 잠시 설왕설래한다. 운전을 하던 산행대장이 밀치로 가는 게 길이 확실해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 결정에 따랐다. 차는 생초에서 산청읍으로 들어와서는 거창군 신원면으로 뻗은 2차선 도로를 타고 간다.
이 도로는 차황면으로 들어가 신등면에서 오는 1006번 지방도를 만나 더 탄탄한 도로가 돼 거창으로 달린다. 차황면 장박리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마을 표석을 길 오른편에 두고 승합차는 산기슭을 타고 오른다. 장박리 위쪽 고개가 오른 산행할 밀치다.
밀치(密峙)다. 정대장이 열심히 달려 온 탓에 11시30분에 도착했다. 신원면 쪽은 고개 바로 아래가 완만한 경작지인데다 소룡마을이 가까이 있다. 산청 쪽은 고개에서 골짜기에 이르는 기슭이 급경사라 저 아래편 먼곳에 마을이 있다. 11시35분 우리는 차가 올라온 방향에서 왼편의 산길을 오른다. 도로 찾느라 날려버린 시간을 보충이라도 할 듯이 모두 열심히 걷는다. 산길은 밤송이가 무더기로 뒹굴고 여기 저기 흩어진 오래된 밤송이에는 알밤이 드러났는데 거의 벌레 먹었다.
밤송이를 밟으며 앞으로 간다. 하지만 길 사정은 빨리 걸을 상황이 아니다.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른편 경작지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려고 철조망이 능선 따라 쳤다. 철조망 옆을 가거나 가끔 넘어 오가면서 올라가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제법 높은 봉우리(610m)에 오르면 삼거리인데 오른편으로 가야 한다. 오른편 건너에 높이 솟은 산이 소룡산이다. 왼편은 산청군 차황면쪽으로 가는 길.
어느새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거세지자 산골 특유의 겨울 날씨로 급변한다. 갑자기 공기가 갑자기 얼음을 깨물었는지 장갑을 낀 손가락 끝이 시리다. 610봉에서 오른편으로 꺾이면서 길이 없어졌다. 철조망을 따라 내려간다. 산을 허물어 농경지나 과수원을 만듯 탓에 산줄기는 그대로지만 종주 길은 사라져 간다.
고개로 내려서자 길은 농경지와 합친다. 무슨 나무인지는 몰라도 계단을 만들어 나무를 심었고 지지할 쇠파이프를 나무마다 세웠다. 내려 선 건너편 산자락에 길이 다시 열린다. 가끔 리본도 있다.
길은 가래 많은 이가 기침을 토하듯 겨울 풀잎이 서걱대는 소리가 가득하고 마른 풀을 헤치며 오른다. 약간 왼편으로 도는 듯 하던 길이 다시 제 모습을 갖췄다.
소령산은 한자 이름이 참 재미있다. 巢龍山 집소 용용이니 용이 사는 집이다. 그렇다면 산자체가 굉장할 것 같은 느낌인데 그저 평범하다. 어릴 때부터 실제 있지도 않은 용을 너무나 많이 들어 온 탓에 용에 관련된 것이면 모두 굉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소룡산은 거창한 이름인데도 그저 평범해 약간 실망하기도.
산길을 보아 진양기맥 종주꾼이나 가끔 다니지 일반 산행객은 없을 것 같은데 산행 안내 리본은 종주만이 아닌 일반 산행 리본도 있는 것 같다. 텅 빈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룡산 고스락에는 한 무리의 산꾼들이 앉아 식사를 한다. 차린 음식이 보통 점심식사하고는 달리 상당히 푸짐해 물었더니 소룡산에서 시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진주에서 이산까지 와 시산제를 올리는 것을 보니 소룡산이 용의 집은 없더라도 효험이 있는 산인 모양이다. 막걸리 한잔에다 삶은 돼지고기 한 점 하고 가라고 하지만 우리는 종종 걸음을 친다.
소룡산에서 바랑산쪽으로 가는 하산 길은 “야 여기로 올라올 땐 죽었구나”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대단한 급경사. 작은 나무나 가지를 잘라 가로로 놓고 나무 가지를 못처럼 박아 고정시킨 계단길인데 저 아래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내리꽂는다. 계단에 정신을 팔다 얼굴을 들어 오른편을 보다 입이 떡 벌어진다.
미끈하게 쭉 뻗은 바위무리가 날카로운 칼날로 춤추며 하늘을 한 움큼 비스듬히 베어내고 빈자리에 섰다. 바위 밑은 이 아래인데 꼭대기는 소룡산까지 뻗었는지 알 수 없다. 안개를 부르고 구름을 불러 용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바위라 용의 집으로 손색이 없다. 소룡산의 면모를 확연히 각인시켜 주었다.
급경사 계단길이 끝나자 높낮이가 거의 없는 능선길이다. 흐려진 날씨가 갑자기 눈을 뿌린다. 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땅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 폭신폭신하다. 소나무 숲으로 몰려드는 눈과 바람이 모처럼 겨울 등산의 맛과 멋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에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길은 뚜렷하지만 겨울 들어 사람이 다진 흔적은 거의 없고 이정표가 눈을 끈다. 12시50분 독촉주차장 0.8km의 이정표를 지나 12시55분부터 오후1시15분까지 점심을 먹었다. 깊은 산속 넓은 묘지의 잔디에 앉아 눈을 맞으며 먹는 식사는 그렇게 싫지 않은 풍경이었는데 식사를 끝내고 행장을 꾸리자
마자 그만 눈도 그쳤다. 모처럼의 겨울등산은 이렇게 채 맛보기도 전에 안개처럼 흩어진다.
바랑산 1.7km 소룡산 1.7km의 이정표(13:20). 천지사 0.5km 소룡산 2.4km 바랑산 0.9km의 이정표를 지나(13:40) 바랑산에 올라선 건 오후 2시였다. 바랑산 해발746m를 알려주는 표석이 참 반갑다. 신청군 오부면 왕촌리 38번지라고 새겼다. 여기서 소룡산 3.3km 신촌 2.6km를 이정표가 가리킨다. 후미인 우리가 바랑산을 올랐을 때 선두 세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왼편에 있는 신촌길로 내려온다. 신촌 2km, 바랑산 600m의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는데 선두에서 연락이 온다. 바랑산에서 신촌 길로 접어들었으면 바랑산 600m가 있는 이정표에서 오른편 기슭을 타고 내려오다 앞을 가로로 지나는 희미한 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제일 뒤에서 걸었는데 앞에 가던 이선균 기획부장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하산을 멈추고 길을 확인하니 우리가 지금 산청군 오부면 신촌리를 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거창군과 산청군 경계를 이룬 산줄기를 가야하고 오른편에 거창군 신원면 중유리 예동과 신예동을 아주 가깝게 보면서 지나야한다. 왼편 신촌마을은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엉뚱한 데로 가고 있다. 되돌아 올라와 바랑산 600m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다시 능선을 거슬러 올라 왔다. 나는 아예 바랑산 고스락에 가서 다시 하산을 할 생각이었으나 후배들이 이정표 있는데서 하산을 하자고 해 그 말을 쫒았다.
앞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산길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옛날 집이 있었던지 담 같은 흔적이 보인다. 땅도 습기가 많으며 비가 잦을 경우 개울물이 흐를 수 있는 그런 곳을 지나 맞은편 능선에 붙었다. 이 능선을 다시 한 번 오른편으로 넘어가자 바랑산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이어지고 산길은 갑자기 넓은 길이 된다. 풀이 많이 자라 말라버렸지만 경운기다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산길 아닌 산길을 내려가자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다. 제초 작업 하는 소리가 골짜기를 흔들고 저 앞에는 굴삭기도 있다. 동네는 건너편 산 아래다. 제초 작업을 하는 이를 만나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타지 사람이란다. 굴삭기 기사는 신원면 사람으로 저 아래 동네는 신예동이고 우리가 가야 할 철마산은 마을 뒷산이며 갈전산은 철마산에서 한참을 가야 한단다. 수영덩이까지 산길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양지맥은 농경지의 외곽 경계선이지만 군데군데 산줄기를 잃어버렸고 어쩌다 살아난 능선도 밭과 이어져 찾아 들기가 참 힘들었다. 분명한 것은 진양지맥인 외곽 경계선 따라 바로 아래에 시멘트포장도로가 아주 잘 나 있었다. 우리는 이 도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동네를 오른편에 바라다보면서도 외곽을 빙 둘러 간다. 포장도로가 2km쯤 될까. 도로가 끝나자 지금 막 만들고 있는 인산 밭이다. 인삼 밭과 산의 경계를 따라 마침내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때 시각이 오후 3시7분이다.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잘못되면 3시간 이상이나 걸려야 한다. 나는 아무래도 오늘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산행을 접자고 건의 했다. 만약 6시가 넘으면 곧 어두워지고 랜턴이 준비되지 않음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간 쪽에서 어서 오라고 연락이 온다.
이 기획부장이 선두에 있는 대장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오늘 산행을 여기서 접고 신예동 마을로 내려가는 것을 다시 건의했다. 대장은 알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2명은 이미 철마산을 지났으므로 청수리 대안마을로 하산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선두에 가다 후미를 기다리며 쳐진 강창모 회장과 만나고 나서 신예동으로 하산 한 뒤 버스가 없으면 큰길을 따라 신원면 소재지 쪽으로 걸어가겠다고 했다.
결국 산행을 접고 마을로 내려왔다. 오후3시50분 마을 경로당에 도착했는데 신촌경로당이란 현판에 깜짝 놀라 물었더니 여기는 거창군 신원면이고 신예동인데 신촌이라고 부른단다. 산청 오부변 신촌은 우리가 걸었던 경작지 외곽 경계선을 가리키며 저 넘어 있다고 한다. 버스는 이미 가버렸고 마지막 버스는 저녁6시에 있다 길래 다시 걸었다.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한 시간 정도 걸어 상유곡을 거쳐 원중유 마을까지 왔을 때 지나가던 트럭이 우리를 태워 주었다. 작은 트럭의 적재함에 앉아 신원면 소재지인 과정리에 오니 어둠이 안개처럼 슬슬 동네를 덮고 있었다. 적재함 뒤에 앉았던 탓에 찬바람에 몸을 녹이려 식당을 찾아들기가 무섭게 앞서 갔던 대장 정철교씨가 연락이 왔다. 10분후면 만날 수 있으니 식당이름을 알려달라는 연락이 이 기획부장한데서 왔다.
오늘 하지 못한 산행만을 다음에 할 게 아니라 원래 계획대로 수영덩이 도로 삼거리에서 밀치까지 산행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실패한 산행인데도 모두의 얼굴은 미소와 여유가 번득인다. 시골에서 모처럼 혁대 풀고 돼지고기 삼겹살 구워먹는 맛은 솔바람 같은 시원함은 없지만 투박한 뚝배기 맛이 온몸에 감치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