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빈농의 아들, 노동현장의 투사에서 대통령, 그리고 검찰 출두와 자살...
23일 63세를 일기로 타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숨길과 희비가 담긴 한편의 '서사시'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만의 '원칙'과 지역주의에 항거했다가 번번이 좌절한 '소신'을 무기로 최고 권좌에 올랐지만 퇴임 후 짧았던 삶은 불행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초라했다.
정치개혁을 외치며 현실정치의 벽과 온몸으로 맞섰지만 역설적이게도 '깨끗한 정치'를 향한 부르짖음은 그의 명예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참담한 마지막 길을 걷게 한 족쇄가 됐다.
인권 변호사로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대통령에 당선돼 재임할 때까지 그는 늘 한국정치의 이단아였다.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민주당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헌정사상 첫 대통령 등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파격과 기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세간에서 불리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이 늘 따라붙었고 또한 친숙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학업에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비상한 두뇌를 지녔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일찌감치 접고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 세상에 큰 뜻을 펼치고픈 야망은 고교 졸업 후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를 법조인의 길로 이끌었다.
수차례의 고배를 마신 끝에 나이 서른에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의 길을 걷다 "적성에 맞지 않아" 7개월 만에 그만두고 변호사로 전직했다.
잠시 안락한 삶을 살던 그가 인권 변호사의 가시밭길로 접어든 것은 81년 부림사건 변론이 계기가 됐다. 이후 소외받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편에 서서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노 전 대통령은 87년 9월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건을 통해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사인 규명에 나섰다가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지만 돈키호테 같은 용기를 눈여겨본 김영삼 (金泳三)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측의 권유로 88년 13대 총선에 출마, 5공 실세였던 허삼수(許三守) 후보를 꺾고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초선의원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신데렐라처럼 부상, 한국정치의 새 희망으로 떠오르게 한 무대는 88년 5공 청문회였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힘있는 증인들을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 몰아세워 TV를 시청하던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청문회 스타'가 된 것.
그러나 이후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90년 1월 3당 합당 때 김영삼 총재의 손을 뿌리치고 합류를 거부한 뒤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낙선을 거듭하는 등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동시에 영남 출신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뜻을 함께한 그의 '소신'은 대통령의 길로 이끈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98년 보선에서 '김대중 깃발' 아래 종로에 도전, 금배지를 달았지만 2000년 총선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워 고향 부산에 내려갔다가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선거는 '대통령 노무현'을 있게 한 소중한 패배였다.
그의 무모함은 '바보 노무현'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을 타고 대중, 특히 영.호남 지역주의에 지친 표심을 파고들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바람과 2002년 대선을 휘감은 `노풍'을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노풍의 진원은 호남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이는 `이인제 대세론'을 함몰시키면서 전라도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경상도 출신 후보로 나서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그는 대선날 새벽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가 후보단일화를 철회했지만 마지막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정면돌파를 택했고, 정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그 특유의 승부수는 청와대 입성의 '기적'을 이뤄냈다.
'정치인 노무현'의 승부사적 기질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옛 정치의 반동에 맞서며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여소야대 구도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 등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지만, 되레 메가톤급 역풍을 불렀고, 결국 제3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의회 독주에 제동을 걸며 과반을 차지하는 제2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치, 경제, 대북관계 등 거의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의 무모하게 보이는 정치 실험은 그칠 줄 몰랐고,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는 청와대발 충격 발언은 민심이반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급전직하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국정 난맥상을 야기한 자충수가 됐다.
거듭된 재보선 전패로 의회 과반을 잃고 뿌리채 흔들리던 열린우리당은 결국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했다. 사실상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 조기 레임덕에 빠지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에 의해 일언지하에 외면당했다.
급진적 개혁정책으로 사회 전반에 피로감이 누적되는 와중에 아파트값 급등과 북한 핵실험 사태 등이 맞물리면서 여당 내부에서 탈당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적 동지'들마저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정국 타개책으로 4년 연임제 개헌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역시 한나라당의 거부로 뜻을 접어야 했다.
대신 남북 화해협력 관계 정립에 매진, 8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한 것이 대북관계에서 큰 업적으로 남았다.
대통령 권좌에 있는 동안에도 바람 잘 날 없었지만 퇴임 후 불거진 박연차 뇌물 게이트는 노 전 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도덕성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그를 '사지'로 몰고 갔다.
퇴임 전 입버릇처럼 "농촌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던 그였지만 역시 전직 대통령들이 걸었던 굴곡을 피해가지 못했다.
인생행로를 함께 걸은 진보진영 정치인들과 젊은 386들, 특히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친형 건평씨와 부인 권양숙씨마저 수뢰 혐의로 검찰에 줄줄이 불려나가는 현실 속에서 구차한 삶보다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후대의 평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
노 전대통령 연설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HAZuNanYtv0"
조선 건국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이명박대통령의 화려한 전과!
1) 위장전입 5차례
2) 자녀 및 운전기사 위장취업을 통한 탈세
3) 건강보험료 13000원
4) 보유한 건물의 등록세를 12년 동안 안내고 버팀
5) 국회의원시절 선거법 위반(증거 은닉, 증인도피, 위증교사 포함)으로 94년에는 의원직 중도하차, 98년 당선무효
6) 성매매업소 ‘섹시클럽’ 이명박 소유 양재동 빌딩 건물에서 최근까지 성업하다 기사화된 후 갑자기 ‘공사중’
7) 개발정보취득부동산투기
8) 현대노조위원장납치 노조설립방해 노동조합법위반
9) 건축법위반공개수배구속
10) 지방세체납 6회재산압류
11) 고용산재보험료미납강제추징
12) 소유사업장건보료40개월미납
13) 건강보험법령11차례위반
14) LK이뱅크 등기이사 변경 과정에서 형법 제228조(공정증서 원본 등의 부실기재)와 지방공기업법 제61조(임직원의 겸직제한)위반
15) 국가공무원법제64조(영리업무 및 겸직금지)위반
16) 지방공무원법제56조(영리업무의 겸직금지)위반
17) 공직자윤리법위반, 정치자금법제36조위반(회계책임자 통하지 않고 월급 제공)
18) 재산축소신고
19) 조세범처벌법 제9조위반
20) 임대소득축소신고 소득누락 횡령탈세,
21) 소유건축물불법용도변경
22) 자동차보험사기(사고대리처벌)
23) 친인척 여의도면적땅투기
24) 무주택직원용현대아파트 친인척불법분양
25) 현대건설 대표 시절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비자금 상납
---------------------------------------------------------------------------------------------------------
이명박 각하, 그리고 사법부와 한나라당 정말 장한 일 하셨습니다.
내 평생 당신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불안, 안보불안, 민생불안, 인권후퇴, 개발독재, 국론분열, 언론장악, 잘못된 법치, 소통단절등 이명박 각하와 그 수하들의 놀라운 업적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 당신은 이명박 각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노사모는 아니지만 당신이 하던 연설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소신있게 살아온 당신의 인생,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사고와 단 한번도 국민을 향해서 불평 섞인 소리를 내뱉지 않던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같은 분이 대통령인 시대에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암흑기이지만 그래서 그 암흑이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훗날 역사는 대통령님을 재평가 할 것입니다.
물론 이명박씨에 대한 조소어린 비난도 역사가 대신 해 줄 것입니다. 편안하게 가십시오...
태어나서 정치인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인간적으로 눈물이 나기는 처음입니다.
정치인이면서도 기득권을 위해서 정치는 정치인에게라는 말보다는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에 대해서 역설하셨던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셨습니다.
국민이 힘이 들면 대통령이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던 당신의 그 생각이 그립습니다.
공권력은 서민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특수한 권력이라서, 최대한 신중하게 집행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독도영유권 문제로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시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대한민국을 최대의 호황기로 만들어 놓으시고도 족벌언론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인들에 의해 수난을 겪으셨던 당신을 우리 대다수의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셨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우리 무지히고 노예근성에 가득한 국민들이 당신을 죽인 것만 같아서...
--------------------------------------------------------------------------------------------------------
청와대 홈페이지 '몸살'…"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일부 누리꾼 극한 분노…"MB-조·중·동이 盧 죽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홈페이지도 몸살을 앓고 있다.
수백 명의 누리꾼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흠집을 내려고 검찰을 압박한 청와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오후 3시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수백 명의 누리꾼이 "이명박 씨 축하합니다", "결국 이명박 씨 소원대로 되었군요", "이명박 씨 이제 속이 시원합니까", "시원하시겠습니다. 각하" 등의 글을 계속 올리며 이 대통령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표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청와대 책임이 크다는 것. 이 게시판은 실명으로만 글을 올릴 수 있다.
박승만 씨는 "이명박 각하는 오늘 조·중·동, 연합뉴스 사장과 검찰총장과 폭탄주 한 잔 하실 건가요"라며 노 대통령의 서거가 청와대, 검찰, 보수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누리꾼의 일반 시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현아 씨도 "자살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이명박 대통령)과 조·중·동, 검찰의 (타살이라는) 걸 알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 씨는 "당신이 '애통하다'고 말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회원 가입까지 했다"며 "전과 14범인 당신은 왜 아직 살아있나" 하고 반문했다. 이 씨는 "3년 반 남은 임기 동안 당신의 횡포는 절대로 잊지 않겠다"며 앞으로 한나라당으로 뽑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리꾼은 이처럼 '이 대통령의 앞날을 지켜보겠다'며 그간 제기된 온갖 의혹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처럼 진행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겠다"(백선민), "당신은 그렇게 깨끗하냐. 이것저것 들쑤시지 말고 재산 헌납이나 빨리 해라"(정선용), "이참에 천신일, 장자연, BBK 게이트 등 다 밝혀내야 한다"(신준식) 등의 글이 잇달았다.
/강양구 기자
---------------------------------------------------------------------------------------------------------
눈물만나옵니다.....................무엇을 해야하는지........알려주십시오........................
애통하고 또 애통합니다.........애통합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렵니다......................................................
무엇이라도,,,,,정말 작은 것이라도 제가 할 일이 있다면
하고싶습니다,,,,,,,,,,,,,,,,,,,,,,,,,,,,,,,,,,
아이 둘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간 제대로 님의 길에 힘이 되지 못했던 비겁했던 제 자신
님께 너무 죄스러울 뿐입니다...............................
------------------------------------------------------------------------------------------------
1. http://video.cyworld.com/179281477
2. http://video.cyworld.com/207649475
3. http://video.cyworld.com/201195653
위 주소를 클릭하시면 생전의 그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재차 삼가 고인의 안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