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대구 출장을 마치고, 1시간 거리의 부산까지 들렀다 오는 길은 몹시 빠듯한 일정이었다. 이미 등짐에 에코백을 짊어진 내게, 모친은 그렇게 해야만 '모성'이 증명되기라도 하듯이, 아니, 그렇게 함으로써 기어이 질긴 모성을 증명하는 듯이, 내게 이것저것을 싸주었다. "요즘 찹쌀은 멥쌀을 하나도 안 섞었는데도 그렇게 찰지지가 않네"하며 한 번에 데워먹도록 포장한 냉동밥 5덩이, 엄마가 큰 돈을 쓸 때마다 입버릇처럼 달아두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는 멘트와 함께 무려 1말(!)의 이사떡을 수영장 친구들에게 돌렸다는 소식과 함께 내게도 3조각의 냉동떡이 배정되었다.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집들이는 커녕, 어느 누구로부터도 한 번 방문하겠다는 소식이 없는 내 사정은 뒤로 한 채, '지난 번, 손님 오면 쓴다고 했던 침구시트 2개 찾아놨는데...무거워서 가져가겠나?'하시니, 또 거절할 수가 없다. '오늘 도착하면 저녁 먹기가 애매할텐데 반찬 서너가지 싸놨다. 남으면 냉장고에 얼렸다가 비빔밥 해 먹어. 테레비에 보니 백종원이가 그렇게 하면 맛있다더라' 평생의 요리패턴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온 외식산업의 큰 손이자 한국사회의 셀레브리티 이름까지 들먹이며 또 내게로 온 휴대용 반찬 그릇까지.
"선생님, 거기 다녀오시면 다른 선생님들하고 내용 공유하셔야 합니다" 교감선생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영광에서 광주로, 다시 대구로 가는 5시간의 여정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모친을 만나고 오는 일은 뒷전이었다. 2015년에 이전했다는 중앙교육연수원은 대구 도심과는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대구혁신도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방분산정책에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빌딩숲이었다. 첫날 일정이었던 '국제포럼'에서는, 이스라엘 ‘하데라 민주학교’설립자이자 전세계 ‘민주학교’ 붐을 일으키고 있는 ‘야콥 헥트(Yaacov Hecht)’의 기조강의(‘대안교육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가 있었다.
‘학생은 교사가 없어도 배운다’는 시대변화를 인식하고 ‘모든 학생은 (서로에게) 교사다’(‘All students are also teachers.’)라는 모토로 최초의 ‘민주학교’를 설립한 내력과 현재 우크라이나에 5년 동안 100여개, 스웨덴, 터키, 프랑스, 브라질 등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 중인 ‘민주학교’가 소개되었다.
두번째 발제자로, 일본 ‘키타 아키노’(와세다대 교수) 발제가 있었다. ‘대안교육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이란 제목의 발제는, 학교부적응을 넘어 ‘등교거부’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서, 최근에는 ‘보통교육의 권리와 의무’라는 법적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왜 학교에서만 배운다고 간주되는가?’란 물음으로 ‘학교중심주의’ 와 ‘공교육 중심주의(-국가에 의한 보통교육독점체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음을 소개하고 상대적으로 ‘대안학교’의 설립과 인가가 어려운 일본에서 새로운 교육활동의 이론적 배경을 확립하는 중임을 알렸다. 등교거부와 ‘학교밖 청소년’ 문제가 커지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중요한 참조점이 될 듯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과 무관하게, 야콥 헥트와 지극히 대조를 이루는 키타교수의 발제 태도 때문에 좌중에는 은근한 저항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을까로 고심하는 듯한 야콥씨와 달리, '듣거나 말거나 나는 읽고 내려가겠다'는 식의, 거의 고개를 들지도, 눈을 맞추지도 않고 써온 원고를, 단 한 번의 자세 바꿈도 없이 낭독하고 내려가는 일본 교수의 모습에서, 일본사회의 어떤 편린을 상징적으로 느꼈다면 과장일까.
국제포럼의 세 번째 순서는 대만 ‘왕 메이링(王美玲-탐캉대 교수)’의 '대안교육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의 발제였다. 아직은 ‘대안학교=귀족학교’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대만에서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탈피한 ‘실험학교’가 대만의 정치적 상황과 연동되어 하나씩 등장하고 있으며(森林小學, 雅歌小學 등) 현재, 법적/제도적 정비와 관련한 많은 논의가 생성되는 중임을 소개하였고, 발제를 들으면서 일반적으로 대안교육은 유치부부터 시작되지만, 한국의 경우,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고등학교부터 시작되었음을 환기할 수 있었다. 유다른 입시문화의 짙은 그림자라고나 할까.
교사로서 국제포럼에 참가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전남 지역에서는 내가 유일한 신청자였다. '광주/전남'으로 구획되던 교육행정이, '광주광역시'와 '전남교육'으로 분리되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전남지역의 현황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대안교육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내가 근무하는 곳을 포함한 6개의 학교가 교육부 인가를 받았던 1997년을 한국 대안교육의 출발기점으로 본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제도권이 아닌 교육으로 '대안'교육이라면, 조선시대 서당교육이나, 일제시대부터 이어지는 '야학'의 전통 등이 있을 수 있고, 간디학교와 최초 교육부 인가 학교들 사이에 존재하는 성격의 차이, 즉, 비자발적인 '수용'에 가까운 학생들과 자기주도적 학습에 대한 열망이 커서 자발적으로 학교 밖 교육을 '선택'하는 경우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대안교육의 역사기술에 또다른 차이가 있겠으나, 정책 담당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두 갈래가 모두 '학교 밖 청소년'이자, 전자는 향후 사회안전성을 생각해서라도 전적인 비용지원을, 후자는, 학부모의 부담을 적극적으로 분담해야 하는 맥락도 어디까지나 한국사회의 주류인 '공교육 패러다임'을 흔들지 않는 것이 기조이기 때문임도 이해할 수 있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는, 일종의 '절대성'을 지닌 공간이었다. 웬만한 가정집보다 시설이나 규모가 쾌적하였을 뿐 아니라, '6년 개근'이란 상장이 상징하듯,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서는 안 되는 권위를 안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삼사십년이 흐르는 사이, 사람과 학교의 변화에 시차가 생기면서, 학교는 '낙후된 시설'의 대표적인 공간이 되고 말았다. 마치 공룡처럼, 존립근거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비대한 몸집 때문에 변화의 요구에 제때 응답할 수 없는 21세기 한국의 공교육.
광주에 있는 제법 유명한 대안학교 '지혜학교'가 갑자기 교육청의 고발대상이 되었다는 소식도 여기서 알게 되었다. 지혜학교 철학연구소장이 펴낸 신간, <나의 외국어학습기>를 오는 버스 안에서 읽었던 참이어선지, 지혜학교 측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였다. 공교육-인가받은 중고등학교-위탁교육시설-각종학교-미인가교육시설까지. 20년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한국의 대안교육은 저렇듯 분화와 다양성의 길을 걸어왔으나, 이제는 통합과 새로운 도약의 길로 재배치 되고 있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