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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이스라엘, 그 조상은 한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유대인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
세계 종교의 뿌리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조상은 한민족입니다.
오랜 방랑 끝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자할 때에 오늘 날의 만주지역을 달라고 유엔에 청원하였던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위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건국당시 이스라엘 건국영웅 벤'구리온 장군이 UN의 이스라엘 건국 결정에 따라 UN에 청원서를 내게 되었읍니다. 당시 벤'구리온 장군은 위청원서에서 "우리 민족의 조상은 오랜 옛날 아무르강 하류 동쪽 바닷가 쪽에서 살다가 오늘의 서쪽으로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의 땅, 아무르강 하류, 해뜨는 곳에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라고 청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이스라엘 조상의 아무르강 지역은 고대 "홍산문화" 지역과 유관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위에서의 아무르강=흑룡강 하류는 현재의 만주지역이고 당시는 중국이 UN에 가입 도 되어있지 않아서 협의 조차도 할 수 없는 아주 불가능 한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UN에서는 부득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 건국을 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읍니다.
슈메르 문명에 관한 내용, 또한 사실이 충분합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1.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자 할 때, 오늘 날의 만주지역을 달라고 유엔에 청원하였던 사실이 있습니다.
2. 우리 민족은 원래 환족이라고 했는데,아주 옛날에는 9환족 12국가를 형성하였으나, 그 강역이 너무 넓고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말과 풍습이 달라져서 안타까워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라 했으니 가능한 위치는 동서:바이칼-알라스카의 8,000키로, 남북:알라스카 -남미 끝 20,000키로 밖에는 없고 또 그 인종적 특징 또한 몽골리안(환/몽고반점)입니다. 대륙은 말로 이동, 미주는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고 봅니다
3. 12환국 중에 <우르>라는 국가가 있는데,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떠났던 지역명과 일치합니다
4. 요즈음 서양학자들이 내놓는 연구결과에 의하면,서양 최초의 문명을 수메르 문명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 수메르 문명 조차 동쪽 어디에선가 온 것 같다고 하고 있고 점토판을 해독해 나가는과정에서,수메르인은 황인종이고 키가 작으며 머리와 눈동자가 까맣다는것이 밝혀졌습니다. 소위, 바벨탑으로 유명한 지구라트는 고산숭배 문화로 그들이 고산숭배 신앙이 짙은 동북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종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우리 민족의 특징중 하나가 피라미드인데,이집트조차 우리 민족의 흔적이 있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적이 있고,그외 중국 북부지방들 만주 고구려 강역과 남미의 인디오문명까지 모두 인종적으로는 셈 계통 황인종, 엉덩이의 반점 , 피라미드문명 등 공통점이 있습니다
6. 그외 풍습, 유물 등 모든 것이 같고,예를들면 손 맷돌이 이스라엘과 우리가 같습니다, 쑥, 마늘, 무궁화(샤론의 장미라고 합니다), 흰옷, ...등등 너무 많고,
7. 더 더우기 놀라운 것은, 얼마전 TV에서 북한의 고인돌 발굴을 보여주었는데,5,000년이 넘었다는 고인돌무덤의 부장품중에 우리 민족의 특징인 비파형동검, 동경, 등등과 더불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촛대(7자루의 초를 얹을 수 있는)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주)위 내용은 [한단고기]의 한국 12연방이 사실임을 증명하며, 서양문명의 뿌리인 슈메르는 슈밀이국으로서 중앙아시아(한국)에서 동북방으로 이동한 환족의 일부가 다시 초원의 길을 따라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렀으며, 바벨탑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고산지대(동북아시아)의 신앙양식과 더불어 위대한 칸국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건설했으며, 슈메르 지역인 갈대아 우르 사람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승이 발달했던 고대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난안으로 들어오려던 12지파 중 단지파가, 단지파 출신이자 이스라엘의 사사(리더)인 삼손의 죽음으로 동북방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아마도 조상들의 고향을 찾아 동북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한단고기에 곰족. 호족. 환족 사이에 갑자기 출현한 <단족>은 바로 이들 단지파이며, 고조선 초기 유적지인 대동강변에서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 문자(도착했다. 무궁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자 등)가 기록된 와당과 백두산에 세워진 단군지석에도 여전히 고대 히브리어 문자가 기록됨으로 유물유적으로도 입증이 되며, 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우랄어도 아니요, 물론 알타이어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명확히 알타이어도 아닌 불명확한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윤복현)
성서에서 사라진 단지파에 주목한다.(윤복현)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상징.비유로 축약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유대인의 스승이다!
지난 해 6월 4일에 나이는 50세쯤 보이는 재미교포 남자 한 분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대종교 총본사를 찾아 왔다. 그는 안ㅇㅇ선생으로 25년 전에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인지 고국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 않았다. 그 분은 대종교와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려 올라가게 된다.
그가 고국의 대종교와의 필연은 유대교 랍비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유대교는 야훼를 신봉하면서 스스로 신의 선택된 민족[선민(選民)]임을 자처하며, 메시아의 도래 및 그의 지상천국 건설을 믿는 유대인의 민족종교이다. 그리고 랍비(rabbi)라는 말은 ''나의 스승'' 또는 ''나의 주인''이란 뜻을 가진 헤브라이어로서 유대교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안선생과 만난 랍비는 종교학이라면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다는 예일대학 출신으로 동양의 한국에서 온 사람인 것을 알자, 그는 한국사람이야말로 동그란 모자인 ''키바''를 쓸 자격이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안선생은 반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키바는 인간 위에 있는 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모자로서 하느님의 선택된 인간을 나타내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옛날에 한국어 이름은 몰라도 한국의 조상이 서방으로 와서 교화시켰고, 유대인의 지도자요 조상인 모세도 그분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특히 한국인도 키바를 써야 한다고 했다.
반신반의한 안선생은 바쁜 일과 속에서 잊고 지내다 언젠가 고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서점을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종교의 존재를 알아 고국에서 배달된 교적을 통해 대종교를 심취하게 되었고, 교민신문에 기고하기까지 하였으나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딪치게 되었으며 심지어, 사회주의자로 의심받게 되는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다른 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5여 년간 대종교와의 인연이 끊어졌지만 마침 고국을 찾아오게 되어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는 민족의 정통종교보다 기독교 사상에 젖어있는 교민들을 안타까워 했다.
또 다른 일례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학술원에 부임하게 된 김박사는 원장과 면담에서 수메르 문명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주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생소한 학문에 자기의 적임성 여부를 학술원장에서 되묻자 원장은 수메르 문명은 당신 같은 동양에서 온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지배적이므로 적격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독일 학술원 지하 창고에는 히틀러가 수메르 지방에서 수탈한 쇄기문자로 된 점토판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글자 해독은 쇄기문자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게서 몇 년간 개인지도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친 그는 점토판의 해독과 연구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한 옛날 동방에서 학자 천 명과 건설자 천 명 등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오신 분이 신전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고 태양력을 만들어 다스리다가 다시 동방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그 당시의 태양력으로 환산해 보니까 BC 2333년 전이고, 그 분이 당굴이라는 것이었다.
그도 역시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가 총전교로 계실 때 대종교를 방문하게 되었고, 자기는 기독교인이었지만 민족종단에 몸담고 있는 안호상 박사를 존경해마지 않는다고 하였다.
*위 글에는 특정종교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인정하기에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선택받은 민족이다!!!
아프리카-->중동지역-->중앙아시아-->만주와 한반도-->중국 대륙 (항하문명)
-->베링해협-->아메리카 (인디언 잉카문명, 마야문명)
-->중동지역 우르국, 수밀이국(수메르 문명)-->이집트(이집트문명)
-->단지파-->중국 대륙과 한반도-->일본열도
아라랏 산(BC 3086~.노아)-->아라파키티스(BC 2400~.아르박삿)-->유프라데스 강(BC 2300~.아벨)-->갈대아 우르(BC 2200~.나홀)-->하란(BC 2100~.데라163세)-->가나안(BC 2058~.아브라함75세)-->애굽(BC 1876~.야곱130)-->홍해&광야(BC 1446~.열두지파)-->요단강(BC 1406~.단지파)-->가나안 소라(BC 1120~.삼손 탄생)-->단(BC 1075~1073.헬몬산)-->모슬&아르빌(BC 1072)-->바쿠(BC 1071~1069)-->마리(BC 1068)-->사마르칸트(BC 1067)-->타시켄트(BC 1066)-->알마티(BC 1065~1064)-->규둔(BC 1063~1061)-->바이칼(BC 1060~880)-->몽골(BC 880~840)-->만주(BC 840~800)-->대동강(BC 800)
이스라엘 단(BC1075~1073)-->시리아-->이라크 모슬&아르빌(BC1072)-->이란 카스피해 바쿠(BC1071~1069)-->트루크메니스탄 마리(BC1068)-->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BC1067)-->타시켄트(BC1066)-->침켄트-->천산산맥 알마아타(BC1065~1064)-->이닝-->천산산맥 규둔(BC1063~1061)-->부얼진-->세미-->노부시바르스크-->아르크츠크-->바이칼 호수(BC1060~880)-->울란우데-->몽골 울란 바트르-->(BC880~840)-->에렌호트-->단둥-->북경-->탕산-->만주 심양(BC840~800)-->평양 대동강(BC800)
현재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중동지역을 거쳐서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 중 일부는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정착하여 단군이 조선을 세우게 되고, 단군 조선의 우리 민족은 중국 대륙에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문명을 일으키기는데, 그 문명이 발전하여 황하문명이 되었다. 만주와 시베리아에 살던 우리 민족의 일부가 빙하기 때에 베링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되었고, 그곳에서 잉카문명과 마야문명을 꽃피웠다. 전 세계 피라미드 문명은 우리 민족이 세운 문명이다.
만주와 한반도의 단군조선 사람들은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동지역에 우르국과 수밀이국을 세우게 되고, 그곳에서 서양 최초의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다. 오늘날 성경의 내용들도 모두 서쪽으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단군 조선의 동이족 사람들이다. 수밀이국과 우르국의 사람들이 나중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동해서 오늘날 유대인이 되었으며, 그 사람들에 의해서 성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단지파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9환족 12국가 중 단군조선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생각되며, 성경의 12지파는 우리 민족 9환족 12국가 중 12국가의 각 나라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에서 단지파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단군 조선의 동이족(단지파)사람들이 세운 수메르 문명이 이민족에게 멸망했거나 수메르인(동이족)이 다시 동쪽으로(만주와 한반도)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수메르인(동이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 민족의 조상 단지파가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 열도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우리 민족은 가는곳 마다 그 지역을 다스리고 문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다스렸던 중국과 일본의 건국 신화나, 신화에 관련된 인물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과 유사점이 많다.
여호와라는 발음의 유래는 동이족이다.
《正易과 韓國》참조
註② 창조주 3신 하느님(하나님)을 히브리 사람들은 야하웨 또는 야웨라 하였는데, 이는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에도 계시사 무궁한 생명’을 뜻함이니, 후에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의 여호와로 되니라. 마찬가지로 한알 한얼 한울의 자리에 성부 성령 성자를 대입할 수 있으니,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이란 우리의 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즉, 유대인이 그 깊은 내면을 간과하였는지 그들의 민족신으로만 알고 있었더라.
단지 야하웨 또는 여호와라는 발음의 유래는 東夷族인 5대 태우의 桓雄(환웅)의 딸 女希(여희) 또는 女의 전설을 같은 동이족인 Sumer(수메르)인이 전파한 것인 즉, 여와가 질흙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 生靈(생명)을 불어 넣어 사람을 지어 전장에 내보내는 군사로 썼으니, 여와는 사람 전에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일컬어졌을 것이라.
예수가 운명 전에 십자가에서 부르 짖었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도 절박한 위급 상황에서 튀어나온 ‘얼님 얼님이나마 (한얼님 한얼님이나마 믿었더니) 저벌더니(마저 나를 져버리다니 또는 나마저 罰하다니)’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통하는데, 엘리는 바로 엘리(불교의 如來)←엘←얼(한얼)이라. 창세기의 에덴이라는 말도 Sumer語로 Edin(에딘)과 연관되어 ‘예덴’ 곧 옛 하늘(天. 텬, 텐)을 뜻하니, Sumer인의 옛 고향 하늘이 있던 동북아의 숲속 낙원으로 추정된다.
※ 유대인 자체도 원래 황인종으로서 우리 족속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유대인 중에는 현재 백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흑인 아랍인 황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상 수 많은 민족 인멸의 고난으로 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방책으로 할례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고, 인근 타 인종지역으로 이민하여 그들과 결혼하여 백인화 되거나 흑인화 아랍인화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헝가리인 핀란드인을 보면 원래는 훈족 핀족이라는 몽고인종이 거의 백인화가 다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 중 소수는 황인종 형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다.
유대인이 매운 것을 좋아하고, 채소농사를 잘하고, 남북미 등지의 유대 이민이 우리 이민들과 너무 유사하다고 한다. 과일상 야채상을 하던 유대인이 보석상 금융상이 되듯, 우리 이민이 유대인의 자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그들의 자리로 진출하고 있다. 유대인이 노벨상을 휩쓸 듯 미국에서 머리 좋은 학생은 한국인이라 한다.
이스라엘(승리자, 이긴자라는 뜻)이라는 국명도 ‘이겨라 얼’(이겨라 정신), 이겨서 이어 나가는, 경상도 사투리로 '잇어 나간다'는 우리 말로 직역이 되니, 인류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문제이다.
단군은 히브리어를 썼다.
고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의 공통된 풍습
반세기를 공유한 한국과 이스라엘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단군은 히브리어를 썼다
단군신화의 요지는...
[환인(桓人)의 아들(서자) 桓雄(환웅)이 나라를 세우고자 800여명의 선랑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 왔으며,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고자 하니 쑥과 마늘로 동굴에서 100일을 지내게 하니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여 동굴을 빠져나갔으나, 곰은 끝까지 견디어내어 인간(여자)이 되었고,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 신화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문자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처럼 제대로 성서를 이해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단군신화의 해석은 농경문화와 북방 유목문화 민족과의 융합.결별을 표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단국대 윤내현 교수)
[단군신화]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환인 = 중앙 아시아에 기원했던 한민족의 원류
* 환웅 = 환인의 문명을 이어받은 북방유목민(슈메르 문명을 발전시킨 슈메르인)
* 하늘 = 중앙 아시아
* 호랑이, 곰 = 사냥이나 농경문화를 이루고 사는 만주와 한반도의 토착민(한민족의 원류)
* 호랑이 도망 가다 = 사냥을 위주로 하는 호족과는 결별하다.
* 곰이 인간(여자)이 되다. = 농업경작 위주의 웅족과는 수용.융합하다.
*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다 = 단지파가 만주와 한반도 토착민을 수용.융합하여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단군 고조선을 세우다.
* 단군 = 단군족 = 단지파(이스라엘에서 동북방으로 이동한 성서에서 사라진 지파)
* 해석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며 실재의 역사입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다]
환족과 곰족이 융합하여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나, 아직 국가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갑자기 출현한 단족(한단고기)이 이 환족과 곰족을 융합.복속시켜 한민족을 형성하고 최초의 민족국가를 형성한 것이다.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다]고 문헌은 기록하고 있다. 문헌과 유물.유적상으로도 타당한 기록이다.
왜냐하면 평양에서 단군왕릉이 발굴되었으며, 대동강변에서 [도착했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로 들어가자. 잠언을 가르치는 자가 통치자가 된다 등]기원전 1천년 이전의 고대 히브리어 문자가 기록된 와당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백두산에 세워졌던 단군지석에도 고대 히브리어문자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양이전 고조선 수도는 어디였는가가 역사학계의 논쟁거리다. 평양이전 수도는 요동지역이였다. 왜냐하면 문헌적으로는 고조선멸망 직후에 기록한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고조선왕만의 옛도읍지는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조선문화의 특징인 [비파청동검]과 [고인돌]이 북한 평양일대와 요동에 집중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인돌의 정교함은 평양보다 요동지역의 고인돌이 더 예술적이고 깔끔하다. 그리고, 비파청동검이후 등장한 [세형청동검]은 요동보다는 북한의 평양지대에 집중되어 있다.즉 후기수도는 평양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삼손이 죽은 후 동북방으로 사라진 단지파는 이란->시리아(무궁화씨를 가져오다)->중앙아시아(히브리어 상실,문자만 보유하고 이동)-> 만주(요동)->평양까지 이동해 왔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본래 용맹하고 예술적인 지중해.서남아시아의 문화와 함께 지방자치제를 전제로 하는 정치제도는 당시 환족과 곰족을 쉽게 융합하고 복속시키고 나라를 세우기에 충분한 고급문화였기 때문이다.
[역사고증]
역사의 진실이란 추론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입증하는 유물.유적에 있다.
고대 히브리어는 바로 중세문자도 현대문자도 아닌,기원년 1천여년 이전의 히브리어를 말하며, 평양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고조선 유물,백두산에 세워진 단군지석에 기록된 고대히브리어는 고조선 건국세력은 바로 성서에서 동북방으로 사라진 단지파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도착했다><잠언을 가르치는 자가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사랑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분명히 하는 우리 민족이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오엽화=무궁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로 들어가자]는 의미는, 바로 무궁화로 상징되는 단군과 하나되어 양심의 나라인 신의 나라를 세우자는 의지를 보여주는 우리 민족신앙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성서적인 의미다.
참고로 성서 요한계시록에는 12지파 중 오직 [단지파]만 빠져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단지파를 [마귀들린 지파]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 또한 참고로 알아두기 바란다.
"단은 첩경의 독사(지혜)가 되어 말탄자(가짜.거짓권세)를 끌어 내리리라!"
"신의 구원을 단에게서 기다리나이다"<창세기 49장>
성서에서 이스라엘 12지파 중 아주 용맹하여 가난안 정복전쟁시 북군의 선봉장이였던 단지파인 삼손이 죽은 후에 동북방으로 이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성서기록에서 사라진 단지파에 주목한다.
참고로 인류학적으로 지금은 백인종과 피가 섞어 혼혈족인 된 유태인들과 우리 한국인들의 체형과 풍습 모두 동일하다. 무궁화의 시원지는 시리아이며, 성서에는 <샤론의 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동강변 고조선초기 유적지에서 <도착했다><무궁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자> <잠언을 아는 자가 통치자가 된다> 등 고대 히브리어 문자가 기록된 와당이 발견되었다.<국립 중앙 박물관.국립 광주박물관 소장>
또한 백두산에 세워진 단군지석에도 <고대히브리어 문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단군족은 <한단고기>에서 곰족과 호족 사이에 갑자기 출현한 <단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손이 죽은 후에 이들은 시리아=>이란=>중앙 아시아 알타이 산맥=>몽고=>만주=>한반도로 이주해 오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한국어는 특이한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즉, 명확히 알타이어도 우랄어도 아닌 것이다. 비중상 알타이어에 포함시키고 있다.
터키와 몽고는 우리와 친숙하며,그들 또한 우리를 친숙하게 생각한다, 중세 때 대제국을 건설한 터키는 본래 돌궐족이 조상으로 중국 북부지역에 세워진 돌궐족의 시원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아 중국북부지역이 그 근원지로 추정된다.
이들 모두 단지파가 동북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단지파의 일부가 정착.혹은 이동이하여 세운 민족은 아닌가 싶다.
아무튼 <단>은 성서상에 분명히 기록된 이스라엘 12지파 중 단지파의 시조가 되는 사람 이름에서 새긴 부족명이다.
고조선의 문화는 청동검이며,그것도 고대 팔레스틴이나 흑해연안에 분포된 <비파청동검>문화라는 게 특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이제 고조선과 단지파의 관계성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의 대통령명칭이기도 한 고조선 시대의 <단군>은 본래 <단지파의 임금>에서 온 말이라 확신한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같은 풍습
1 생활풍습
1.잡신을 잡는 양식이 같다.
-이스라엘 유월절 행사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 (출1212:6,23)
-한민족은 양의 피 색깔과 유사한 팥죽 사용
2. 삽과 호미를 사용하여 땅을 경작 (민 11:5)
3.향어,부추등 매운 음식을 즐겨 먹음.
4.흰옷입기를 좋아한다. (백의민족) (열하 25:14)
5.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가린다. (창 49:16)
6.부삽,불집게, 숟가락, 놋그릇 사용
7.부모를 "에미","에비"라고 부른다. (창 49:10)
8.단지파의 단 →심판자 → 단군(檀君)
9. 실로 →구세주
2 장례방식
1.돌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지낸다. (창28:16) (신27:6)
2.향을 피우고 베옷을 입고 곡을 한다. (여8:31)
3.곡을 할 때 "아이고 아이고" 한다.
4. 장작을 쌓고 소와 염소를 잡아 제사을 지낸다. (창37:34) (역상21:16)
3 외모,얼굴
1.셈족인 황인종이다. (창9:25~27)
2.황인종 가운데서 메시아 출현 (사41:1~16)
3.머리카락이 검고 키가 작다.
4. 골상이 똑같다. (민13:32~33)
5.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이 머리가 가장 뛰어난 민족이다. (동아백과사전, 70년도'하버드大 인류학자 연구결과)
4 증거자료 (국립중앙박물관, 광주 국립박물관에 보관)
1.고조선 시대 히브리어 문자 사용
(대동강 유역 히브리어 문야 외당 발견)
2.백두산의 단군지석에 히브리문자 사용 발견
5 이동경로
가나안 → 시리아 → 이락크 → 이란 → 우랄산맥 → 몽고 → 만주 |
우리나라의 역사는 3천년
수년전, 미국 시카고에서 성서언어학(수메르어)을 연구하는 강신택 박사가 ‘단군이 수메르인’이라고 주장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켜 BC 3천-2천년까지 융성했었던 수메르족이 아케디언족에 의해 멸망당하자 농사법과 무기 등 선진문명을 갖고 약 BC 1천년 경, 한반도에 들어와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1)’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군이 수메르인일 뿐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도 5천년이 아닌 3천년인 셈이다.
<단지파가 세운 단군 고조선 이후 3천년 역사이고, 이전의 환인(한민족의 원류)시대는 2천년 이상으로 보아야 함>
환 : 하늘의 광명
환인 : 인류의 조상의 뜻
환웅 : 천손민족의 큰 스승의 뜻
* 우리 민족이 단족이라고 기록된 곳은 신시본기, 환국본기
그는 메소포타미아라는 세계 최초의 문명을 이뤘던 수메르족의 말을 20년간 연구하면서 이같은 가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메르어의 어순은 주어, 목적어, 동사 순으로 우리말과 문장 형식이 똑같고 조사로 쓰이는 ‘-로’는 ra(라)로, ‘-에서’는 es(에스)로 각각 비슷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히브리어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수메르어라는 사실이다. 언어는 곧 지배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의 근원이 수메르족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도 메소포타미아 남부(갈대아)에 위치한 ‘우르’가 아닌가. 그도 수메르인인 것이다.
수메르국과 우르국에서 단군에게 특산물을 바치다.
고려때 행촌 이암 선생이 전한 <단군세기>에는 위의 사실에 대해 부연설명하고 있다. <단군세기>는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고열가까지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단군은 1세 단군이다. 제 15세 단제 때의 기록을 보자.
‘신시2년(기원전 1660년) 대홍수가 나서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는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는 우루국 사람 20여명이 투항해 오니,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하였다.’
단군세기를 비롯 북부여기, 태백일사, 삼성기, 단기고사 등의 ‘한단고기(桓檀古記)’들은 사학계에서는 소위 이단시 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고대사에 있어서 정통으로 취급되고 있는 사서들의 ‘곰이 사람을 낳았다’는 식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위 재위년도 등을 따져봤을 때 부분적으로 시기가 맞지 않거나 연도 계산이 틀린 것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등장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를테면 위의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양운국, 수밀이국, 우루국은 모두 환(桓人)시대의 한국(桓國) 12연방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수밀이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족의 나라로 추측된다. 그리고 우루국 역시 서남아시아의 ‘우르국’ 또는 성경에 나오는 ‘갈대아 우르국’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는 오히려 상고시대에 지구촌을 이룬 셈 아닌가? 광활한 영역을 통치한 칭기즈칸은 이미 인터넷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데….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단군의 지배영역이다. 아마도 전후상황으로 보건데 통치영역이 지나칠 정도로 넓었거나 아니면 한반도에 정착하기 이전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단군의 첫 도읍지인 아사달(阿斯達)이 어디인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흑해나 지중해 연안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루국 사람이 투항해오자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 염수(소금물처럼 짠 호수)가 바로 사해(死海)는 아닌지….
수메르어에서 중국어까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고 하면 우리나라 전역을 일컫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그 전역을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한다. 레바논 동북지방에 위치한 단(Dan)은 단(Dan)지파가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기 위해 200년간을 싸우는 동안 점령하고 있던 땅으로 원래는 ‘라이쉬’였다고 한다(삿18:29). 그 후 또 다시 레센도 점령하여 ‘단’이란 지명으로 고쳐 불렀는데(수19:47), 이처럼 단지파는 이동하여 정착하는 곳마다 단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단지파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동시에 기원전 10세기경 성서에서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최근 학자들은 그후 단지파의 경로에 대해 시리아 - 이라크 - 이란 - 중국 북부 우랄 알타이 산맥 - 한반도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우랄 알타이 산맥에서는 100년간 정착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자란 2세들은 아예 히브리말을 잊어버리고 알타이 말만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양사에서 우리 민족을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일본어에 지천으로 널린 뜻모르는 단어의 어원이 우리나라의 고어가 많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뜻모르고 쓰는 대부분의 언어도 몽고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 많다. 가령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으례 ‘야호’라고 외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도 쓰이고 있는 몽고어다. 컴퓨터와 전화가 없던 시절, 장거리를 단번에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산 꼭대기에서 저 산 꼭대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야호∼’, 가도 되느냐라고.
비록 민족의 대이동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을지언정 언어의 생명력은 아직도 남아 단지파의 이동경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메르어에 뿌리를 두고 다음으로 히브리어, 몽고어, 중국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영향을 받은 것일수록 많이 남아 있는 법, 그렇다면 과연 히브리어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고대 히브리 문자가 씌어진 와당(瓦當)과 단군지석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광주 박물관에는 아주 희귀한 고조선시대 와당(瓦當)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古代 )히브리 문자가 씌어 있다.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으로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라.’ ‘도착했다.’, ‘성도가 모여서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 된다’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대략 BC 1천년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당시의 것에서 약간 진보된 것도 있다. 이 문자는 야곱의 12지파만이 사용한 것인데, 그 문자의 사용시기가 성경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지파의 소멸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대동강뿐 아니라 백두산에도 히브리어가 씌어 있다. 일제치하 고정록 선생에 의해 발견된 ‘단군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1911년경 일본인들이 백두산에서 벌목하다가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씌어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 의주에 있는 평북도청에 옮겨 놓았는데, 그 지석에 음각된 글이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니어서 아무도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모두들 궁금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었던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가 그 지석의 글을 판독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 글자는 ‘히브리’ 문자이며 내용은 ‘단군지석’인데 판독해보니 제작연대는 약 3천년 전이라고.
그런데 비단 이런 유물들 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가 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애비, 애미, 애기 등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와 발음뿐 아니라 의미까지 같다. 그리고 장례를 치를 때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한다든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남아있는 ‘고수레’ 등의 용어가 그러하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의 ‘단(dan :‘심판자’라는 의미)’부터가 사실은 히브리어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된 이름을 가진 자가 히브리어를 썼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고증자료-
고대 히브리 문자가 씌어진 와당(瓦當)과 단군지석은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광주 박물관에는 아주 희귀한 고조선시대 와당(瓦當)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古代 )히브리 문자가 씌어 있다.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으로,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라.’ ‘도착했다.’, ‘성도가 모여서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대략 BC 1천년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당시의 것에서 약간 진보된 것도 있다. 이 문자는 야곱의 12지파만이 사용한 것인데 그 문자의 사용시기가 성경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지파의 소멸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대동강뿐 아니라 백두산에도 히브리어가 씌어 있다. 일제치하 고정록 선생에 의해 발견된 ‘단군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1911년경 일본인들이 백두산에서 벌목하다가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씌어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 의주에 있는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는데, 그 지석에 음각된 글이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니어서 아무도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모두들 궁금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었던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가 그 지석의 글을 판독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 글자는 ‘히브리’ 문자이며 내용은 ‘단군지석’인데 판독해보니 제작연대는 약 3천년 전이라고.
그런데 비단 이런 유물들 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가 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애비, 애미, 애기 등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와 발음뿐 아니라 의미까지 같다.
그리고 장례를 치를 때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한다든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남아있는 ‘고수레’ 등의 용어가 그러하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의 ‘단(dan :‘심판자’라는 의미)’부터가 사실은 히브리어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된 이름을 가진 자가 히브리어를 썼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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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
고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의 공통된 풍습
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먼저 가장 보수적인 전통중에 하나인 무덤 양식이 똑같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積石,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 일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돌담으로 지은 집에 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로 돌제단을 쌓는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단(壇)을 쌓았으며(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제단 앞에서는 잔을 세 번 돌린 후 제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사방식뿐 아니라 특히 유대인들의 장례방식은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가령 상주들이 베옷을 입고 베로 건을 만들어 쓴 뒤 향을 피우며 대나무를 짚고 곡을 한다든가(창37:34)(역상21:16), 곡을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 라고 한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이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인류사를 통틀어 사람이 죽었을 때, 베옷 입고 곡을 하는 민족은 오직 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뿐인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은 우리와 같은 농경법과 농구(보습, 쟁기, 도리깨 등)로 농사지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부삽, 불집게, 숟가락, 놋그릇을 사용(열하25:14)하여 매운음식과 부추 그리고 아주 깊고 맑은 물에만 사는 향어(일명 이스라엘 잉어) 등을 즐겨 먹었다.
이렇듯 한국과 이스라엘은 수천년 동안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공유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유물이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동짓날의 팥죽과 유월절의 희생양
동짓날만 되면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곤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일종의 신앙적인 행사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애굽기(12:6, 23)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살고 그렇지 않은 애굽사람들의 장자는 모두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선 양의 피를 바르면 ‘死者’귀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 단지파의 자손들에게도 이 관습이 그대로 남아 동짓날 팥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양이 많던 애굽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의 피와 비슷한 색인 ‘팥’이었다는 것. 그러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것은 단순한 절기음식이 아닌 ‘유월절 행사’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사 지낼 때 고사떡을 반드시 팥으로 하는 것도 팥이 양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3500년이란 전통을 가진 이스라엘의 명절이다. 즉 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를 건너가도(pass over)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7월 14일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일주일간 지킨다. 특히 첫날 밤엔 모든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는 거대한 민족적 축제로 밤을 세운다.
무엇보다 유월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희생양’을 바치던 제사의식.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유월절 희생제사 의식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유대인 즉 사마리탄 종족2)이다. 이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나불루스’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주로 아랍인들이 사는 사마리아 지방의 한 부락이다.
유대인과 한국인이 흰 옷을 즐겨 입는 이유
유월절이 되면 사마리탄 남자들은 모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리심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많은 수의 양을 잡아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모든 사마리탄 종족의 얼굴과 흰 두루마기에 묻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도를 드린다. 먼저 성경을 읽은 다음 번제를 드리는데 이 의식이 그들을 성화시키며 이를 통해 속죄함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흰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를 연상시키는데, 사마리탄 종족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이 유월절만은 반드시 ‘흰 옷’을 입는다. 흔히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다 하여 ‘백의 민족’이라 일컫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흰 옷은 노동복이 아니라 예복이었다. 구약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예복도 바로 세마포 모시옷(레16:4)이었으니, 예법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 또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예절을 갖추었던 것이다.
2천년전 유대인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베두인족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유목·천막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다. 그중 베두인족은 고대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가장 많이 지키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인류학자들은 주로 그들의 생활과 의식을 통해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고증하고 있다.
베두인족은 결혼할 때 서약식을 한 후, 신부의 부모가 사는 천막 근처에 임시로 초당을 짓고 3일동안 신방을 꾸민다. 이때 이 초당의 주위에 ‘양의 피’를 뿌려 축복을 기원한다.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신부의 부모가 사는 근처에 양의 피를 뿌릴 수는 없었고, 다만 양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신부의 온 몸을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처녀 때는 빨간 댕기를 하고 결혼할 때에는 빨간 치마에 빨간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고서 얼굴에 빨갛게 연지곤지까지 찍었던 것도 일종의 ‘死者’귀신을 쫓기 위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최남선은 이러한 연지풍속이 고려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여인들도 즐겨 찍었다. 5-6세기의 쌍기둥 및 수산리 무덤의 여인들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베두인족들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사상도 유별나서 우리 여인네들처럼 누구나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아이를 못낳거나 딸만 낳으면 이혼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셈이다. 처녀들은 예전의 조선시대 처녀들처럼 머리를 길게 따 늘어뜨리고 다니는데 그러다가 결혼하면 대개 머리를 틀어 위에 얹는다. 그리고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시에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한민족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흔히 한국인의 두뇌가 우수함을 보고 ‘제 2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70년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머리가 뛰어난 민족이며 그 다음이 유대인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1950년 1월경 모 일간지에는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인류학 박사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각 나라 민족별로 골상의 형태를 오랫동안 연구하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얼굴이나 유골을 보면 쉽게 어떤 계통의 민족인지 알 수 있다. 나는 2년반 정도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무덤의 유골을 보아 왔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나와 같은 유대민족 골격에 골상을 하고 있었다.”
동아백과사전에서도 한국인의 골격 구조와 골상이 ‘고대 유대인’의 골상과 동일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골상뿐 아니라 외모상으로 보아도 원래 유대인은 한국인들처럼 황인종(창9:25)이며 머리카락이 검고 키가 작았다(민13:32-33).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城)을 쳐들어 가려고 정탐꾼을 보냈을 때 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곳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한국인이 현재의 유대인들보다 순수 이스라엘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의 역경과 시련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 버려 성경상의 유대인들과는 거리가 먼, 노란 머리카락에 키 큰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 협동의 지혜를 배워 체질화함으로써 모든 생활면에서 이를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특유의 농촌 취락인 키부츠나 협동 농촌인 모샤브이다. 그것은 일종의 우리네 두레나 품앗이, 계의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대개의 유럽이나 미주지역 사람들에겐 ‘키부츠’나 ‘계’가 형성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우리에게는 오히려 사라지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 것이다.
'샬롬'에서 '안녕'까지
그런데 이것은 또 웬일인가?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들이 유대인의 단골 업종인 생선장사 야채장사 세탁소 등을 썩 잘하여 '제2의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얻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한국인과 유대인의 공통점에 대해서 아예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히브리 대학의 교수이며, 세계평화연구소 소장인 베냐민 슐로니 박사 같은 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이 테마를 가지고 깊이 연구한 그는 1989년 6월 한국에 와서 그것을 주제로 강연까지 했다.
슐로니 교수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똑같고 이스라엘 역시 같은 혈육인 아랍 때문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것처럼 한국 역시 같은 핏줄인 일본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도 똑같다고 비교해서 말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과 한국의 인사법 비교였다. 유대인들은 인사할 때 '샬롬'이라고 인사하고 한국 사람들은 '안녕'이라고 인사하는데 이는 모두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두 'Good morning' 'Bon jour'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할 때에, 유대인과 한국인들은 '평화'라는 말로 인사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은 만날 때마다 우리가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하듯이 '평안한가?' '평안히 가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인사뿐만 아니라 슐로니 교수는 언어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에 '아바(Abba)'라고 부르는데 한국어의 아빠와 흡사한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셨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36)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켜 말할 때에는 아비(Abbi)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가 예시하는 히브리어와 한국어의 유사한 단어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더 기이한 것은 히브리어가 본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랍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나라도 본래는 그렇게 썼으며, 같은 우랄 알타이어군에 속해 있는 몽고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언어뿐만 아니라 의관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로부터 모자 쓰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도 보수적인 사람들은 검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한국인도 이미 오래 전부터 모자 쓰기를 좋아해서 이를 이상하게 여긴 중국인이 그것을 기록해 놓았을 정도였다. 지금으로부터 4천여년 전에 기록된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에 바로 그런 기록이 나온다.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목덕이 어질어 군자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모자를 쓰고 띠를 띠고 칼을 찼으며……(東方有君子之國 東方木德仁故 有君子之國也 其人冠 劍…… 淮南子 形訓)"
한국인들이 모자 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지금도 TV의 역사극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방 안에서까지 갓을 쓰고 감투를 썼으며, 하인들도 초립을 썼고, 아이들이나 아녀자들까지도 모자를 썼던 것이다.
옷의 경우에도 공통점은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옷은 하얀 세마포(細痲布)인데 한국도 옛날부터 흰옷을 좋아하여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불리워졌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픈 일이 발생하면 굵은 베를 입고 통곡하였는데 한국인도 그러했고, 곡을 하다가 지치면 사람을 사서 대곡(代哭)을 시키는 풍습까지도 똑같았다.
모든 백성이 지키는 절기(節氣)에 대해서도 공통점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세 개의 절기가 있었는데(신 16:16) 애굽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첫 열매를 드린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칠칠절'과 하나님과 동행한 광야생활을 추억하며 메시야의 강림을 기다리는 '초막절'이 그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양을 잡았던 유월절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날이고, 칠칠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50일, 즉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초막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였던 것이다.
이 초막절(草幕節)은 유대인들의 절기 중 최대의 명절로 7일 동안 노동을 금지하고 초막을 집 밖에 지어놓고 성회를 여는 것이다. 그런데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선수단은 대회기간 중 한국이 베풀어준 민속명절 '추석'의 행사를 지켜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추석은 바로 이스라엘의 초막절과 같은 날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레 23:34)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음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들의 달력은 우리보다 한 달을 앞서가기 때문에 그들의 7월 15일은 우리의 음력 8월 15일이 되는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음력 8월 15일을 최대의 명절로 지키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뿐이다. 일본에서도 음력 8월 15일은 명절이었는데 오래 전에 그것을 양력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만 남게 되었다.
한 가지 더 밝혀둘 것이 있다. 1990년 5월부터 9월까지 일본의 오사카에서는 '만국 꽃박람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물론 한국의 무궁화도 출품되었다. 이 '무궁화'를 일본에서는 '무구케'라고 읽는데 그 학술명은 'Hibiseus Syriacus' 즉 '시리아에서 온 꽃'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죽은 후 천하를 나누어 다스린 네 명의 장군 중 안티오쿠스가 다스린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포함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무궁화가 백두산에서 핏기 시작한 것으로 알았는데 그 꽃이 시리아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무궁화의 별명이었다. 한영사전에도 나오는 이 무궁화의 별명은 바로 'Rose of Sharon', 즉 '사론의 장미'였던 것이다. 찬송가 89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론의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한국, 지구의 반대편에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나라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결되었기에 이렇게 쌍둥이처럼 똑같이 닮아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끈으로 이 두 민족은 묶여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두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역사 속의 역할' 또 무엇일까?
그러고 보면 지금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하는 비밀결사로 알려진 '프리 메이슨(Free Mason)' 조직의 수상한 배지도 무엇인가 의미있어 보인다. 기다란 뱀이 지구를 감고 있는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 꼬리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이스라엘에서 시작하고 있다. 뱀의 몸통은 유럽을 지나 러시아와 중국 대륙을 감았고 그 머리는 만주에 이르러 있으며 그 뱀의 입은 한반도를 향하여 집어삼킬 듯이 벌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들 조직은 그들이 삼켜야 할 최후의 목표로 한반도를 정했던 것일까?
도대체 세계 속에서 유대인은 무엇이며, 한국인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저 무서운 홍수가 땅 위에 모든 생물을 다 멸절시킨 후에 방주에 숨겨져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 그리고 그들 중 아내들까지 모두 여덟 명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유대인과 한국인은 그들의 어느 핏줄에서 나온 자손들이며 한국인은 언제 어떻게 해서 이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이 필자로 하여금 동서양의 고대사에 매달리게 했고 거기서 발견한 수많은 모순들과 위증들 속에서 오직 성경만이 그 난마(亂麻)와 같이 얽혀 있는 허위의 기록들을 규명해 낼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은 인류에게 남겨진 진실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성경이 없이는 아무 것도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사는 성경으로 열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으로 겹겹이 위장된 세계사를 열어갈 때 우리는 태초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나왔던 그 비밀의 문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나안이 가진 예언적인 의미는 신약시대에도 퇴색하지 않았다. 서기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짓밟은 이후 그들은 거의 2천년간이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며 온갖 멸시와 비웃음을 당했다. 나라없이 떠도는 노예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종교, 언어, 교육방식에서 그들만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역사상 유례가 없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기까지 했으니... 그토록 처절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언젠가는 가나안에 돌아간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그런 그들이 고향을 떠난지 1천8백여년만에 전세계에 흩어졌던 형제들을 불러모아 토지를 되찾고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선택받은 땅, 가나안에 깃발을 꽂았다. 주변 아랍국들의 힘의 휘협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것이다.그들이 돌아온 오늘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마실 물도 넉넉지 못한 아라비아반도 서북단의 사막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6일전쟁 등 아랍 민족들과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굳건하게 지켜낸 축복의 땅인 것이다.
또 다른 종류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2천년동안 나라를 잃고 헤매지는 않았지만 수없는 외침과 굴욕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 단일국가라는 정체성을 지켜낸 사실이 그렇고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긴 하지만 남북한 대립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의 긴장상태와 통한다. 이처럼 양국이 비슷해 보이지만 동방 땅 끝에 위치한 한국은 자연의 혜택을 놓고 보면 가나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의 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불로초(不老草)가 자라는 신선의 나라로, 금은보화가 가득한 '해 돋는 아침의 나라'로 불리워진 한국을 일컬어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찬사를 보내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모든 조건을 한반도가 갖추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성경에는 '동방, 땅 끝, 땅 모퉁이, 먼 나라, 해 돋는 곳'으로 가나안말고 또 한 곳의 축복의 땅이 예언되어 있다.
한국은 가나안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의 땅
한국인들 중에는 이스라엘을 마치 형제국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인종, 역사, 문화적 배경이 너무도 다른데도 말이다. 유대인들처럼 어떤 절대자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이 잠재의식 속에 박혀있는 것은 아닐까.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와 같은 한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실 혹자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막힌 동쪽을 막연히 미지의 땅 낙원처럼 생각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성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신학자들 간에 일치된 견해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을 성경에 예언된 또 한 곳의 축복된 땅으로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한국은 위도 상으로 이스라엘의 동쪽 선상 가장 끝(먼 나라)에 위치한 반도(땅 모퉁이)로 이루어져 있어 성경의 예언과 일치한다.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
단군은 히브리어를 썼다.
고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의 공통된 풍습
반세기를 공유한 한국과 이스라엘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반세기를 공유한 두이름 한나라, 한국과 이스라엘
태극기가 거리에 물결치고 있다. 건국 반세기를 맞아 새출발하자는 표상이다. 지구의 동쪽 또 다른 한켠, 이스라엘에서는 네게브사막에 대대적인 ‘이스라엘 숲’을 조성 중이다. 그 취지 역시 건국 반세기를 기리기 위한 것. 이스라엘 정부는 사막기후에 강한 ‘예루살렘 소나무’ 묘목 1백만그루를 심었고, 한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건국 반세기를 맞게 됨을 축하하기 위해 그 중 1만그루를 ‘한국의 숲(Korean Forest)’ 조성용으로 배정했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유대력으로는 5728년 이야르 월(8월) 제 5일, 독립과 동시에 건국을 선포했다. 이른 바, 구약 성경시대 애굽을 떠나온 이후 유대인들이 20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나라없는 설움과 모진 박해속에서 승리한 날이다. ‘이스라엘(‘승리자’라는 의미)’을 위한 이스라엘, 말세가 되면 황금시대가 팔레스타인에서 열리게 될 것이라는 유대교의 종말론적 예언이 시오니즘을 부활시켰고 그들에게 그 땅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인구는 65만명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애굽을 떠나올 때도 대략 65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너무도 기막힌 우연의 일치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1억달러를 빌려 간신히 나라살림을 시작했던 나라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인구 5백 70만명, 1인당 GDP는 1만7천달러의 부국이자 50만명의 병력과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으로 성장했다. 사막은 녹지로 변했으며 생계수단이었던 집단농장(키부츠)는 관광산업과 연계, 연간 2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고수익 공동체로 변신하였다.
이제 이스라엘은 중동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방 선진국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중추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2천여개의 컴퓨터·정보산업 군단이 이끄는 최첨단 산업이 버티고 있다. 이미 동방의 실리콘 밸리로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과의 미묘한 관계 해결책으로도 이 ‘첨단기술로 무장한 경제강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을 정도다.
단기간에 이토록 세계 최첨단의 대열에 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90년대 이후 구소련 국경이 열리면서 몰려든 이주민 90만명의 공헌이 컸다. 이들 중 절반이 변호사, 과학자,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예술가 등 지식인층이었기 때문이다. 6만5천명에 달하는 구소련 출신 엔지니어들은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붐’에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절반이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건설한 나라이기 때문에 출신배경이 다른 만큼 집단별 정치세력화도 활발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는 용광로(Melting Pot)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조각 조각이 돋보이는 모자이크다. 작년 건국 50주년을 자축하는 이스라엘의 공식 슬로건이 “야하드 베 티크바, 야하드 베 아하바 (자랑스런 하나, 희망의 하나)”인 것도 이러한 모자이크를 염두에 둔 것일게다.
허리 잘린 반도, 한국. 아랍의 바다에 둘러싸인 유대인의 섬, 이스라엘. 어쩌면 한반도의 평화가 오는 날, 중동의 평화가 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두 나라의 지나온 반세기가 어떠한 모습이었든 이젠 미래를 향한, 세계를 향한 ‘제 2의 건국’을 위해 움직일 때다.
이긴자
이긴자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네 대신 이겨주신 주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이긴자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구주 밖에는 없네
[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 하리로다.(창 49: 16) ] ━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배출하기 위하여 단지파인 우리 한민족을 동방에 옮겨놓으시고 지혜를 키우셨다. ━ 영광의 빛이 대한민국에 이미 비치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11월 대만에서 국제역술학회 세미나가 열렸을 때, 세계적인 예언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국의 산세(山勢)와 지세(地勢)를 보아서 한국민족에게 영광(榮光)이 임하게 되어 있다. 아니 이미 영광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그 대회에 참석했던 한국 역술학회 회장 지창용씨가 말을 하니, 기자들의 생각에는 미국에나 영광이 임한다면 몰라도 조그만 나라에 영광이 임한다니까 믿어지지 않아서 겨우 중앙, 경향, 한국일보에만 조그맣게 게재됐던 것이다.
이 진리(眞理)의 말씀을 만약 개가 듣는다면 개식으로 들을 것이고, 소가 듣는다면 소식으로 들을 것이고, 원숭이가 듣는다면 원숭이 식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지배하고 구원할 민족이라는 것을 기자들이 일찍이 알았더라면 대문짝만 하게 게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범위가 얼마나 졸렬한 것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대만에 모였던 역술인들은 세계적인 대 예언가들로서 소위 왈(曰) 그들 나라의 운명을 점치고 세계의 장래를 예언하면 예언하는 대로 맞는다고 큰소리치며 나름대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분명히 한국(동방)에 구세주가 세계만민을 구원할 것이라고 성경(사41:2-16)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감록(鄭鑑錄) 비결과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이며, 고서의 모든 예언과 현대 예언가들의 말이 일치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진인(眞人)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것은 역사적인 말씀이요, 성경적이요, 고서적인 말씀이며 현대 예언가들의 말인 것이다.
이것이 틀림없는 것은 오늘날 한국 땅 역곡(驛谷)에서 구원의 등불이 비치기 시작하여 온 세계 만민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役事) 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중국에 진시황도 한국 땅에 불로초(不老草)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쌍을 배에 태워 보내며 삼신산(三伸山)의 불로초를 캐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계시를 받을 때, 삼신산의 불로초를 육(肉)의 말로 알아 들었기에 한국에 와서 삼신산이 되는 묘향산 지리산 한라산을 샅샅이 헤멨던 것이다. 진시황이 오매불망 갈망했던 삼신산의 불로초라는 것이 새 에덴동산을 말하는 것이요, 에덴동산이 곧 천국이요, 지상낙원이요, 의인의 마음이다. 사망의 신을 죽이는 이긴자 승리자의 영(靈)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과 고서와 모든 예언서에 진인이 한국땅에 나타난다고 예시되어 있는 것이다. 육적인 산으로 알고 평생 산을 헤매며 헛수고를 했으니 주인공이 아니면 누구도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삼신산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 즉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이요, 이 세분 신이 곧 생명과요, 불로초요, 진인이요, 구세주인 것이다.
불로초를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을 알았던 진시황은 말할 수 없는 영화를 앞에 놓고 죽음이 점점 닥쳐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한국에 있는 불로초를 캐다 먹고 영원무궁토록 살고 싶어 천여명이나 보냈으나 단 한명도 불로초를 캐가지고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그 불로초가 지금에야 나타났으니까 ..
한국에서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은 성경적인 상속이다.
성경말씀을 상세히 검토해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에게 옮겨졌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에게 옮겨졌고, [야곱]의 하나님이 예수의 조상 [유다]에게 옮겨진 것이 아니요, [단]에게 옮겨졌다고 창세기 49장16절에 나온다. 비밀리에 단에게 장자 상속을 하신 것을 숨기려고 [라헬]이 낳은 [요셉]을 [야곱]이 편애하므로 열한 형제가 시기하여 깊은 웅덩이에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였던 사실이 있었으므로, 단이 하나님의 신을 모신 것을 알면 죽일까 두려워하여 라헬과 상의하고 살짝 숨겨서 축복하신 것이다.
“유다는 사자새끼 같음이여, 홀(王權)이 함께하는데 실로(구세주)가 임할 때 까지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간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창49:16-18) 히브리말로 실로는 구원, 구세주인데 완벽하게 숨기기 위하여 구원이라고 하였다. 또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라는 말은 이긴자 구세주가 나타나면 철장을 가지고 마귀 권세를 부수어버린다. 아담 이긴자가 예수를 구세주라는 것, 천국은 하늘 꼭대기에 있다는 것,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떠나간다는 것, 죽은 사람이 마지막 날에 무덤이 반으로 짝 갈라져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 등등 질그릇처럼 쌓여진 잘못된 마음 속의 가설탑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있다. 또 잘못된 구원관, 신앙관, 중생론, 죄론, 지옥론도 여지없이 부수어 버리고 새로운 철학과 이념, 새로운 진리의 학문과 법을 선포하고 있다.
단지파의 이동과 언어교체
단지파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검토해 보면 심판권을 부여 받은 단지파가 하나님의 신을 모시고 지금이 레바논 동쪽에서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이주하여 시리아, 이락, 이란, 천산북로를 거쳐 중국북부 알타이산맥 밑에서 오랫 동안 살면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니 그곳 민족에게 적응되면서 자라나는 2세들은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히브리어는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히브리 민족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숨기시려고 히브리 말을 잊어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만약 한국에 도착해서 까지 히브리언어를 사용한다면 완벽하게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게서는 위장전술을 쓰기 위하여 알타이산맥 부근에서 언어교체가 될 때까지 100-200년간 우거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동양사에서 알타이어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언어교체가 완전히 된 다음에 몽고로 옮겨서 살다가 만주로 내려와 압록강을 건어 대동강변에서 자리잡고 고조선을 창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중의 이스라엘 민족이다. 선민중의 선민인 것이다.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배출하가 위하여 동방에 옮겨놓고 지혜를 키우시는 것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한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의 원족(原族)이다.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생활습관이 너무나 똑 같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제사법(祭祀法)이 같다. 두 나라가 다 같이 사람이 죽으면 베옷을 입고 곡하는 것이 같다. 산소마다 돌 제단이 있다. 또 장작을 쌓아놓고 염소나 양을 잡아서 불태우며 제사를 지냈고 우리 나라에서도 비가 안오면 기우제를 지낼 때 장작을 쌓아놓고 소를 잡아 올려놓아 불을 지르며 제사 지냈던 것이 같다. 두 민족이 다같이 흰옷 입기를 좋아하여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하고, 또 같은 것은 양반, 상놈제도가 같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정조관념이 같으며, 부녀자들이 물동이를 이고 물깃던 것이 같고 맷돌질, 도리깨, 농사법이 같고 언어가 같다. 기본적인 언어 에미 에비(엄마, 아빠)와 음식이 같다. 맵고 짜고, 부초, 마늘, 또 향어등은 이스라엘 사람과 우리 민족만이 먹는 생성이다. 또 골상이 똑같다. 두뇌가 다 우수하다. 또 키가 작은 것이 같다. 모세가 가나안에 정탐꾼 보냈을 때 돌아와서 아낙사람은 장대 같고 이스라엘 사람은 메뚜기 같다고 했으니 바로 키가 작다는 말이다. 또 절기(節氣) 지키는 것이 같다, 유월절 절기에 양의 피(血)를 문설주에 발라서 화를 면했던 절기를 한국에 오니 양이 없어 피 색깔과 비슷한 팥죽을 쑤어 문설주에 바르며 잡귀(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 절기가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단지파를 중동 땅에 그냥 놓아두면 말살될 것을 내다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을 모시고 있는 단지파를 쏙 빼내서 멀리 한국에 옮겨놓으신 것이다.
우리 민족이 히브리 민족이라는 것이 더 확실한 것은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기왓장에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7천년대는 안식의 세계요, 평화의 세계다. 천년에서 6000년까지는 하나님께서 마귀와 대적해 싸우시고 7천년대에 가서 비로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 안식의 세계, 낙원의 세계,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서 주인공이 새 법을(자유율법) 선포하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로 건설하는 새 나라에는 주인공이 새 학문을 선포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새로운 학문을 온전한 학문이므로 변할래야 변할 수가 없다. 온전자가 나와서 진리의 학문을 선포하고 있다.
나를 미워하는 것이 자유율법이다. 나를 짓이기고 죽을 때까지 내가 나를 학대하고 형제를(모든 사람)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 새 율법이요, 형제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여기고 형제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형제의 몸을 하나님의 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죄다. 또한 새 법을 지키는 비결은 고도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초초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이다.
“구세주는 이슬성신을 부어주는 자요, 한국 땅에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 땅에서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사야 41장에 “섬들아 잠잠하라 동방에서 의인 한 사람을 불러일으키리니 열국 왕들이 그 앞에 와서 굴복하리라. 너를 땅끝(극동) 땅 모퉁이에서 붙들고 .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리니 .
일본도 동방이나 섬들은 해당이 안된다. 중국은 대륙이요, 땅 모퉁이 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라고 지역을 꼭 찍어 놓았다.
창세기에 단에게 부여하신 심판권과 새 타작기계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자라는 의미에서 일치하고 있다.
자격은 호세아 14장5절 이하에 보면, “내가 이슬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다.”
이슬성신 부어주는 증표가 있어야 구세주다. 예수는 이슬성신을 거론도 못해 보았다. 구세주는 이슬성신(살마광선)으로 마귀를 전멸시켜 마귀세상, 즉 사망이 있는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늘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는 주인공이다. 말세는 아무때나 말세가 되는 줄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착각을 하고 말세타령을 했던 것이다. 말세는 마귀를 죽이는 자가 나와야 사망이 있는 세상이 끝이나야 말세가 되는 것이다. 요엘서 2장2절에 말세에 내가 남종과 여종들에게 성신을 물 붓듯이 부어 주리니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
이슬성신이 강하게 내릴 때는 연기기둥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슬성신이 폭포수같이 내리는 때는 사망을 지상에서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긴자 구세주가 한국 땅에 나타났다!
증명;
1.이스라엘민족은 유월절을 지킬 때 羊을 잡아서 그피를 문설주에 발라 액(厄)을 면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양이 없으므로 색갈이 비슷한 팟죽을 쒀서 동짓날에 문설주에 바른다.
2.이스라엘에서는 양을 잡아 돌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양이 귀하므로 소를 잡아 돌 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다.<마니산 첨성단>
3,이스라엘과 우리나라만이 산소 앞에도 돌 제단이 있다.
4.이스라엘에서 사람이 죽으면 향을 피우고 굵은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데, 우리나라도 마찮가지다.
5.이스라엘에서 지성소에 들어 갈 때는 세마포 모시옷을 입는데(레16:4), 우리 민족도 흰옷입기를 좋아한다. 백의민족이라 한다. 흰두루마기를 입고 예를 가추는 것은 제사장복과 같기 때문이다.
6.중동이나 이스라엘 여성들이 바깥에 나갈 때는 얼굴을 가리는데, 우리네도 얼굴을 가린다.
7.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물동이를 짐고 다니는데, 이스라엘과 우리만이 이고 다닌다.
8.이스라엘과 우리만이 멧돌을 사용한다.
9.보습이나 쟁기 도리깨등을 사용한다.
10.부추는 이스라엘민족과 우리네 만이 먹는다.(민11:5)
11.두민족만이 매운음식을 즐겨 먹는 습관이 있다.
12.수심이 아주 깊고 맑은 물속에서만 사는 향어(일명 이스라엘 잉어)는 이스라엘 민족과 한민족만 먹는다.
13.키가작고 머리가 검었으며 땃고 다닌다. [예: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쳐들어 가려고 정탐꾼을 보냈던바, 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곳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고 우리 스스로는 메뚜기와 같더라(민13:25-33)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남기 위하여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혼혈이 되어 백인과 같이 되었다.]
14.동아백과사전-한국인의 신체 골격구조와 골상이 고대 이스라엘인의 두개골의 골상과 똑 같다
15, 고대 히브리어 일부가 지금도 쓰이고있다."애기,애비,에미"는 의미가 같고, "실로,고시레,꼭두각시"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16.대동강유역에서 나온 기와장에 고대히브리어가 씌어 있다. 이 기와장은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슴
-金恩泰 논문-
[1] 이스라엘과 한민족 다 5000년 역사라 한다.
[2] 羊+食= (시루떡)고
[3] 삼성기는 신라시대 승려 안함로 와 행적이 일정치 안은 원동준씨가 쓴 것을 각각 삼성기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하여 합친 것으로 이는 우리 민족의 시발인 한국시대의 환인으로부터 7세 단인까지 3301년의 역사와 신시대의 환으로부터 18세 단웅까지 1565년의 역사를 압축한것 하권엔 신시역대기가 덧붙여 있다. 아래 한문은 <삼성기하편에 있는대목> 으로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蔓)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사타(阿耳斯咤)라고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한의 무리는 모두그의 후손이다}
人類之祖曰那般初與阿蔓相遇之處曰阿耳斯咤夢得天神之敎而自成婚禮則九桓之族皆基後也
1,나반.아만;아담.이브에 맞먹는 최초의 한국사의 남여에게 붙여진 이름 하나반.아만 따위 사투리는 아직도 우리말에 <한아버지->할아버지><어머니>의 사투리로 쓰이고 있다.
2.아이사타:<한단고기>를 처음 번역한 일본인 하지마노보루씨는 한국사나 일본사를 히브리.바빌론.아카드 역사의 후손이라고 해석하고 여기에 나오는 나반과 아만을 아담과 이브일거라고 해석하고, 아이사타는 노아의 방주와 관련지어 아라랏타 산일거라고 해석했다. 혹인은 아이사타를 바이칼호수 부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
http://blog.naver.com/jsh929/100034066669
*위의 글은 퍼온 것이며.. 특정 종교의 이론을 홍보하거나 비하하는 노골적 부분은 삭제하였습니다.
참고 :
http://blog.naver.com/godrsm1/20015601025
본 글의 댓글 임.
단지파 중에서 정탐군과 더불어 600명의 군사들이 적어도 2,3천의 가족을 이끌고 소라나 에스다올을 떠나 라이스로 갔다고 했고, 라이스를 쳐서 단이라고 하고 그 곳에 머물러 있다가 사로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상숭배는 단지파의 자손 중 라이스로 갔던 일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보고, 본래 소라나 에스다올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라이스 정복에 나선 단지파의 사람 일부가 미가의 집을 들려 우상숭배의 도구를 훔치고, 라이스에 들어 가서 레위를 제사장으로 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를 하였다고 한다면, 소라와 에스다올에 남아있었던 나머지 단지파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그 지역을 떠나 이동을 했으리라고 본다면, 그러면 이들은 우상숭배하지 않았다 라고 판단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출발지는 단이 아니고 소라와 에스디올로 추정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파의 고조선 설립의 시기를 BC 800년경으로 보는 경우와, 엘람과 앗수르에 의한 고조선 설립의 시기를 BC 2333년 보는 경우, 2 가지가 있는데, 한반도에서 출토된 토기나 청동기 칼의 연대를 보아서, BC 2357년 바벨탑 사건 엘람과 앗수르가 만주와 한반도에 도착했을 때에도, 단지파가 평양 대동강에 도착한 때(BC 800)에도, 이미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살아 온 토착민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노아가 (BC 3086~.노아) 아라랏 산에 살기 그 이전에도 한반도에는 여전히 환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한단고기에서 고조선의 설립의 연대를 정확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어서 바벨탑 사건이나 단지파의 사라진 시점을 보아 고조선의 설립의 때를 잡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듯 합니다.
문제는 엘람이 장자이면서도 아르박삿이 장자로 된 배경과, 엘람과 앗수르의 행방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 이동설로 볼 것인지, 아니라면 그들의 행방에 관한 또 다른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고, 사라진 단지파가 한반도로 이동한 것으로 본다면 출토된 유물로 보아 조각된 히브리어 언어가 BC 1000년 경의 것이라면 이것은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