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압의 멸망을 통한 교훈
본문 : 이사야 15장 1-9절
지금까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계속해서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남 유다 나라를 결국에는 멸망시키실 것’과 ‘남은 자로 하여금 다시 회복시켜주실 날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했던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였는데, 첫 번째 나라가 10장에 나오는 ‘앗수르’였습니다. 두 번째 멸망할 나라로 13장서 나오는 ‘바벨론’이었고, 세 번째 멸망할 나라가 14장에 나오는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었던 15장에선 ‘모압’이라는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큰 딸과의 근친상간에 의해 낳은 아들 모압을 조상으로 한 민족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가까운 형제 국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압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호시탐탐 형제국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잔인한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때에 그 진로를 방해했던 적이 있었고, 또 광야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사사 시대 때는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18년 동안 압제했던 적도 있었고, 한 때는 르우벤 지파가 차지했던 사해 북쪽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갖은 악영향을 끼쳤던 모압 족속을 향해 하룻밤 사이에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모압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왜 성경에 기록하고 있으며, 또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1. ‘우리에게도 심판 날이 갑작스럽게 온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절을 읽겠습니다.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여기서 ‘모압 알’은 우리나라 수도 서울과 같이 ‘모압의 수도’를 말하고, 또 ‘모압 기르’는 우리나라 청와대와 같이 ‘모압의 왕궁’을 말합니다. 따라서 두 곳 모두가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하룻밤에 황폐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당시 모압이란 나라는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고,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된 적이 없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밤에 순식간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멸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저들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나라였는데, 하루 밤 사이에 멸망하여 없어진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쩌면 이 모압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12장에서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그 해 소출을 많이 거둔 부자가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거둬 가시면, 그가 쌓아두었던 그 모든 것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모압이 그랬습니다. 갑작스런 하나님의 심판에 놀란 저들이 울기도 하고, 통곡을 하였지만, 또 머리카락을 밀고 수염을 깎았지만, 3절에 나오듯이 뒤늦게 회개를 하였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모압’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말하고, ‘황폐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함’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이 언제냐? ‘하루 밤’이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어떤 날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돌연히 닥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하면, 무슨 뜻일까요? 당시 모압이란 나라가 평안하고 잘 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의 날이 찾아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지요? 그렇다면, 그날이 언제가 될지라도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날이 온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 4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깨어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무슨 말입니까? ‘심판의 날이, 주님이 오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또 심판의 날이 언제일지라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뒤늦게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4절까지 보면, ‘갑자기 닥친 심판의 날에 저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먼저 2절입니다. “그들은 바잇과 다본 신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는 도다.” 이 말은 ‘갑작스럽게 심판의 날이 오자, 자기들의 신들을 찾아 살려달라고 통곡하며 사정하였지만,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또 2절 하반부와 3절에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저들이 하나님께 울며 회개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들이 환난을 당하자, 당시 습관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굵은 베옷을 입고 애통하며 큰 소리로 울었다’는 말입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죽은 자를 위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우는 흉내를 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의 말은 “온 나라가 애곡하는 소리가 들림으로 인해, 그렇게 용맹했던 모압의 군사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는 말입니다. 정리를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미리 준비를 했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하여 뒤늦게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2절과 3절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판의 날이 왔을 때에라도 그때라도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그때라도 하나님께 회개했더라면, 어떠했겠느냐?’ 이것입니다. 물론 뒤늦게 회개를 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활약하였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모압에 멸망할 것이라 예언하는 장면이 예레미야 48장에 나오는 것을 볼 때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들은 심판의 날이 왔는데도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신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통회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하던 대로 습관적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베옷을 입고 우는 흉내만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당연이 주님이 오실 날과 심판의 날을 대비하여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라도, 영적을 깨어 주님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혹여라도 부족한 채로 그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면,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나님만 찾아야 하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식적으로 우는 척, 회개하는 척이 아니라, 정말 잘못 살아온 것을 회개하고, 긍휼하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로 인해 구원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 도다.” 여기서 ‘내’가 누구일까요? 저들을 멸망하기를 작정하셨던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핍박한 나라,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았던 저들을 멸망시키시는데, 왜 하나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다고 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부르짖다’는 말은 ‘안타까워하시는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들을 심판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하나님께서 저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돌이키기만을 수없이 바라고 또 바라셨건만, 끝내 돌이키지 않는 저들을 향해 “야 이놈들아.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면 안되겠니?” 하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간 탕자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습니다. 탕자가 거지꼴로 돌아오고 있을 때에, ‘너. 이 놈 잘 됐다. 거 쌤통이다. 이 나쁜 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마음 아파하며 목을 안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때릴 때, 때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합니까? 그런 부모가 있다면, 친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시면서도 마음 아파하십니다. 이와 같이 ‘저들이 잘못되는 길로 가는 것을 보시고 우신 것이고, 재앙을 당해 고생을 하면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저들을 보시고 가슴 아파 울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들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이게 무슨 말이냐면, 모압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쑥대밭이 되도록 망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 군사들의 손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집과 모든 터전에 다 불에 살라지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았다 해도 거지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냐? ‘살아남은 자들이라도 재물과 쌓았던 것들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죄악 가운데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저들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런 저들을 위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주는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안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또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죽어가는 영혼들 구원하는 데 앞장을 서는 자가 될 때에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우리에게 주는 교훈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도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때, 뒤늦게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성경 속의 이야기, 모압의 이야기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압에게 임하였던 심판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으니,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당하는 모압을 위해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날이 없도록 미리미리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면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