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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의 일출, 사진 중간의 짙은 그림자 부분이 바로 콜로라도강이다. 그리고 사진 중간의 구불구불한 흰색선은 등산로. 등산로의 표고도 천미터를 넘는다.
그랜드 캐년은 미국 서부의 대자연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아이콘이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웅대하고 장중하고 광대한 협곡, 캐년이 워낙 깊게 그리고 길고 넓게 패여 있어서 하늘 높은 곳에서 보지 않는 한 가까이에서든 멀리서든 한 눈에 바라볼 수 없다. 직접 보는 그랜드 캐년은 협곡이라기 보다는 지표면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산악지대에 가깝다.
◎ 내가 본 그랜드 캐년
인간의 일생에 비기면 거의 영겁에 가까운 세월 동안 침식된 협곡, 산 자락에서 산 마루까지 선연하게 드러난 검붉은 색 퇴적층과 각양각색의 바위산들은 세월의 무게를 웅변하듯 무겁게 서 있다.
억만년 동안 쉼없이 협곡을 깎아낸 조물주 콜로라도강은 오늘도 협곡 사이를 노도(怒濤)처럼 흘러간다. 황량한 무채색 협곡 사이를 쉼없이 흐르고 흐르는 한 줄기 연청색 생명선, 태고의 강은 협곡을 깎고도 남은 힘으로 아리조나 사막 팔백리를 적시고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간다.
‘캐년 중의 캐년’, ‘아리조나의 상징’, ‘지질학의 노천 박물관’, 무변 광대하고 웅장한 캐년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 감동적이다. 캐년의 가장 자리에(rim)서서 좌우로 끝없이 뻗어나간 원시협곡을 보는 순간 감동이 파도친다. 눈을 통해 뇌로 전달된 그랜드 캐년의 영상은 다시 폐부를 가득 채워 가슴 벅차게 만든다.
고독을 즐기기엔 그랜드 캐년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전체 길이 443킬로미터, 평균 넓이 16킬로미터의 광대한 캐년 지대엔 이따금 적막을 깨는 산 까마귀와 콜로라도강의 계류(溪流)외엔 소리를 만들어낼 음원이라곤 없는 절대 고요지대다.
2009년 9월 24일 낮 11시 라스베가스를 출발, 미드 호수(Mead)-후버댐(Hoover), 윌리엄스시를 거쳐 그랜드 캐년 사우스림 비지터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밤 9시 30분. GPS가 엉뚱한 길을 안내하는 바람에 6~7시간 걸릴 길을 9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캐년 아랫 동네 ‘그랜드캐년 인(Inn)’에 투숙해 핸드폰의 알람시각을 새벽 5시에 맞췄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한 탓인지 다음날 눈 뜬 시각은 5시 30분. 일출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침도 거른 채 허겁지겁 짐을 챙겨 그랜드 캐년으로 출발했다.
9월의 일출시각은 6:06~6:50, 10월 6:26~6:45, 11월 6:51~7:19분이기 때문에 꾸물거리다가는 일생에 한 번 뿐일지도 모를 기회를 놓칠 판이었다. 그랜드 캐년 비행장과 투사얀(Tusayan)을 지나면 캐년의 남쪽 입구가 나온다. 이른 시간이라 공원입구엔 아무도 없었으니 입장료를(차 1대당 20$) 낼 이유도 없었다. 남쪽 정문을 통과했을 때 사우스림의 동쪽 끝 하늘은 붉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해가 솟아오를 것 같은 상황이었다.
첫 관광인데다 사전준비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어디서 일출을 보는 것이 좋은 지도 몰랐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매더 포인트(Mather point)는 그곳이 캐년을 볼 수 있는 포인트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다.
일출을 놓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달리기를 4킬로미터,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observation point)에 도착하기 무섭게 바로 전망대로 뛰었다. 전망대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겨우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캐년의 사우스림 지평선 위로 붉은 해가 서서히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빛의 향연, 일출이 시작된 것이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 일출을 보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캐년의 일출
캐년의 동쪽 끝 사우스림(rim)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 오르자 수백 킬로미터의 깊은 협곡을 가득 메웠던 어둠과 그림자는 빛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이 빠지는 것 처럼 콜로라도강 속으로 빠져나간다.
빛이 정상에서부터 어둠의 그늘을 잠식해 들어갈 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캐년의 모습은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스러져 가는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협곡의 사면을 잠식해 가는 빛과 교차하고, 빛과 그림자가 극명한 명암의 대비를 이루면 그랜드 캐년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태양이 수평선 위를 불쑥 솟아오르는 바다의 일출이 장쾌하고 남성적이라면 그랜드 캐년의 일출은 신비롭고 섬세하고 여성적이다. 바다의 일출은 단조로운 모노드라마에 가깝지만 캐년의 그것은 스토리가 있는 장편 드라마다. 대양의 일출은 주연이 태양이지만 캐년의 일출은 수 천 가지 협곡이 주연이고 태양은 조연이다. 그래서 캐년의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태양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빛에 반사돼 시간대 별로 변화해 가는 협곡의 모습을 봐야 한다.
관광객들은 태양과 협곡이 만들어 내는 장엄한 파노라마에 숨을 죽인다. 해돋이에 몰입한 고요함을 깰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야바파이 포인트는 고요했다. 그랜드 캐년이란 이름이 갖는 유명세 만큼 기대가 컸지만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일출 장면만으로도 캐년 관광은 OK였다. 캐년 트레킹은 덤이다.
◎그랜드 캐년 백배 즐기기
그랜드 캐년에는 3가지 인기 관광코스가 있다. 노스림과(North rim) 사우스림(South rim), 그리고 헬리콥터를 이용한 하늘코스. 노스림은 캐년의 북쪽 가장자리, 사우스림은 남쪽 가장자리란 뜻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바로 사우스림이고 관광객들에게도 가장 인기있는 코스이다.
로스엔젤레스나 아리조나의 피닉스, 뉴멕시코의 알부케케시에서 US-40번 고속도로를 이용해 윌리암스(Williams)나 플랙스텝(Flagstaff)으로 가서 64번 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그랜드 캐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사우스림의 동쪽 끝 대저트 뷰(Desert view)에서 매더 포인트(Mather point)까지 35㎞ 구간과 그랜드 캐년 빌리지에서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까지 30㎞ 구간이 사우스림에서 일반에 개방되는 곳이다. 허미츠 레스트는 개방구간의 서쪽 끝 지점이다.
단 시간에 효과적으로 그랜드 캐년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전략이 필요하다. 캐년지대에서 가능한 관광법은 일출-일몰보기와 림 위에서 캐년 구경, 캐년 속에서 구경하기, 캐년 트레킹, 뮬(mule) 트레킹, 자전거 하이킹, 콜로라도강 래프팅, 협곡 종주하기 등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야바파이나 야키(Yaki) 또는 마리코파 포인트(Maricopa point)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개방구간 60여㎞ 가운데 일출을 본 지점에서 가깝고 마음에 드는 ‘림 트레일 코스’ 한 곳을 골라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3개 포인트는 캐년 속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곳들이어서 일출 관광의 시야가 가장 많이 확보되는 곳이다.
태고적 그랜드 캐년은 해발 2100미터 높이의 고원지대(Colorodo plateau)였다. 미국의 대부분 지세가 그렇듯이 아무리 높은 고원지대라도 고지대가 수 백㎞에 걸쳐 뻗어 있으면 평지로 착각하게 되는데 그랜드 캐년 역시 사실은 높은 산이로되 워낙 넓어 평지로 착각하게 된다.
콜로라도 고원은 일종의 준평원인데 짧게는 500만년에서 600만년동안 강물에 깎여 나가 오늘날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림은(Rim)땅이 깎여 협곡으로 변한 지점과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의 경계지점이다.
림 트레킹을 권하는 이유는 높고 탁트인 시야에서 캐년의 내부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 림 트레일(Trail)은 파이프 크릭 비스타에서(Pipe creek vista) 허미츠 트레일까지 총연장이 30㎞나 된다.
림 아래로 내려가 협곡 내부를 걸어 보고 싶다면 일출 관광과 림 트레킹 시간을 최단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위에서 보면 얼마 걸릴 것 같지 않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아무리 가까운 목적지라도 왕복 4시간 이상 걸린다. 늦은 시각 림 아래로 내려갔다가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날이 어두워지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가장 인기있는 캐년 트레일, ‘브라이트 엔젤코스’는 트레일 헤드(시작지점)~콜로라도강 → 10-14시간, 트레일 헤드~Plateau point → 8-10시간, 트레일 헤드~인디안 가든 → 6~9시간, 트레일 헤드~Three rest house → 4-6시간 걸린다.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협곡 내부의 시야가 넓은 편이다. 트레일 헤드~Ooh ash point → 1-2시간, 트레일 헤드~Cedar ridge → 2-4시간, 트레일 헤드~Skeleton point → 4-6시간, 트레일 헤드~Kaibab suspension bridge → 7-9시간,
이 길은 다른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고 쉬운 길이다. 브라이트 엔젤과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에는 콜로라도강 위로 노스림으로 건너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설치돼 있다.
허미츠 레스트는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가장 험한 길이다. 트레일 헤드~Waldron basin → 2-4시간, 트레일 헤드~Santa maria spring → 4-6시간, 트레일 헤드~Dripping springs → 5-7시간.
워낙 협곡의 바닥면적이 넓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루 일정으로는 림에서 콜로라도강 까지 도착하기 어렵다. 일출과 림 트레일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하루만에 콜로라도강을 찍고 돌아오는 계획은 무리다. (사진은 허미츠 레스트 셔틀버스 노선도)
캐년 트레킹에 나서려면 등산화와 모자, 물, 소금, 비상식량 등 조난을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트레일 헤드에는 어김없이 “그랜드 캐년을 얕잡아 보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여유있게 일출과 림 트레킹을 즐긴 뒤 3곳 가운데 1곳을 골라 협곡 아래로 내려갔다가 가까운 포인트를 들러 다시 림 위로 돌아오면 오후 5시 전후가 된다.
◎ 림 아래 캐년 속으로
이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랜드 캐년을 남에서 북으로 종주하는 데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우스림에서 최단거리로 콜로라도강에 닿을 수 있고 시야가 넓어 볼 것 많은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이 종주코스로 제격이다.
이른 아침 사우스림을 출발해 천천히 캐년 트레킹을 즐기고 저녁 무렵 콜로라도강 구름다리를 넘어 브라이트 엔젤 캠프그라운드에 텐트를 친다. 아침 일찍 캐년 림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일출을 보고 노스림으로 트레킹을 이어간다.
그러나, 캐년 종주는 교통편 때문에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우스에서 노스림까지 직선거리가 지점에 따라 13에서 26㎞로 만만치 않지만 이틀 정도면 주파할 수 있다. 문제는 종주하고 난 뒤다. 자신의 자동차나 랜터카가 사우스림 지역에 주차돼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노스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시 사우스림으로 가려면 346㎞를 돌아가야 한다. 손수 운전해 간 경우 종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흘은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
뮬트레킹은 정말 색다른 체험이 될 수 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고 말을 어느 정도 탈줄 알아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자전거로 림 위를 달리면서 캐년의 전체 풍광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우스림 전 구간은 셔틀버스가 매 15분 단위로 운행하고 셔틀버스에(무료) 자전거를 실을 수도 있다.
나는 허미츠 레스트 트레일을 통해 협곡으로 내려갔다.
해발 2100미터의 사우스림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어 내려가도 바닥까지 절반을 가기도 어렵다. 워낙 바위가 많고 가드레일도 없는 위험한 비탈길이 많아 속도를 내기 어렵다.
첫 번째 기점인 웰드론 배신(Waldron basin)까지는 나무가 별로 없을 뿐, 한국의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배신을 지나면서 부터 본격적인 캐년 여행이 시작된다.
평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 굽이를 돌아가면 트레일은 머리 위쪽도 낭떠러지, 발 아래 쪽도 천길 낭떠러지다. U자 형태의 협곡 안쪽으로 가느다랗게 걸린 길을 조심스럽게 돌아가야 하는 아슬아슬한 길이다. 한 쪽 절벽에서 건너편 절벽까지 거리는 대략 이백에서 삼백 미터 정도. 자칫 잘못해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바로 추락이다. 위험천만하지만 이 곳 만큼 모험심을 자극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길 바로 옆이 절벽이어서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심스러운데다 등산로의 넓이가 넓은 곳은 1.5미터, 좁은 곳은 1미터로 한 사람이 걸어가기에도 좁아 혹시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정말 캐년 속에서는 인간을 압도하는 캐년의 거대한 규모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내친 김에 콜로라도강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허미츠 레스트 트레일 헤드에서 밸드론 배신을 거쳐 산타 마리아 스프링까지 내려가는 데 1시간 30분 가량 걸렸다. 그리고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데 2시간 30분. 협곡 속으로 내리쬐는 햇볕이 강렬하지만 그늘이 없고 길도 가파르고 험해 준비없는 산행은 금물이다. 캐년 등산길은 대부분이 바위거나 바위와 흙이 섞인 길이고 내부 환경은 사막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닥이나 비탈에 나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키가 작은 관목이거나 선인장이다. 여름철에는 열기가 캐년에 가득차 최고기온이 38,9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비록 짧지만 4시간의 트레킹을 마쳤을 때 허기에 탈수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랜드 캐년의 기원
그랜드 캐년의 모태가 된 콜로라도 고원은(Colorodo plateau) 7천만년 전 두 개의 지각판이 충돌하면서 지각이 3000미터 이상 융기해 만들어졌고 오늘날의 캐년은 500에서 600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원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은 생성 시기가 훨씬 오래됐다. 협곡의 가장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Vishnu basement rocks은 16억 8천만년에서 18억 4천만년 전 생성됐고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단층은 Kaibab formation이다.(2억 7천만년) 바닥과 꼭대기층 사이에는 Toroweap formation, Coconino sandstone, Hermit formation, Supai group, Redwall limestone, Temple butte formation, Muav limestone 등 12개의 단층이 포개져 퇴적암 꼴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퇴적층들이 캐년 카빙의 비밀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캐년 생성의 비밀이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캐년을 세차게 흘러 내리는 콜로라도강은 연중 마르지 않고 흐르는 협곡 내부의 유일한 강이다. 강 바닥의 표고가 해발 700미터나 되기 때문에 물살은 노도와 같다. 콜로라도강의 캐년 내 구간은 277마일(443킬로미터), 강물의 깊이는 평균 12-3미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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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기야! 눈 수술했나? 안경 안끼고 있네.
그래 올때 했잖아, 잘 지내고 있제, 자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