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 https://band.us/band/87089746/post/535
[2025년 2월 13일, 강원도 태기산 눈길 산행 기록]
2025년 2월 13일 10시 45분 '양구두미재' 정상에 도착.
이곳은 강원도 횡성군과 평창군의 경계 지역이다.
이 지점이 해발 980m, 이곳부터는 1,000m 이상 높은 지대에서의 산행이다.
입구부터 눈길이다. 임도가 정상까지 이어진다.
등산로의 초입부터 눈길.
등산로 옆의 나무들에는 '상고대'가 활짝 피었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 시리도록 맑고 푸르다. 그 푸름에 바람은 불고, 바람이 시리다.
1,000m가 넘는 고지에서는 사방으로, 눈덮힌 산줄기들이 꿈틀거리며 시야로 들어온다.
등산로 옆에 늘어선 '태기산풍력발전기'를 형상화한 전시물도 있었다.
등산로 옆의 나뭇가지들에는 꽃이 피었다, 눈꽃.
산은 산이고, 길은 길이다, 눈길.
이곳의 풍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횡성의 25,000여 가구에 전기를 공급한단다. 바람으로,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친환경 전기 공급 시설이다.
오늘 아침, 출발 지점인 행구수변공원.
그 주차장에서 오늘 함께 할 '명봉산방님'을 만났다. 만남의 순간, 흐뭇-든든, 오늘 최고의 산행을 확실하게 만들어줄 '도반(道伴)', 오늘은 출발부터 신나는 날이었다.
그 '도반'은 항상 앞서서 눈길을 오른다, 눈길을 끌고 간다. 그저 끌려가면 되는 눈길은 힘들지 않다.
등산로 옆 눈이 많이 쌓인 곳은, 바람이 눈을 몰아 키를 넘도록 쌓아놓았다.
태기산 정상은 1,261m.
그 정상에서 치악산 줄기와 1,288m의 비로봉도 멀리 보인다.
태기산 정상에서, 최근 황두승 시인이 펴낸 시집에 실린 <동행>이란 시를 떠올렸다.
동행
황두승
눈 덮힌 겨울숲 길을
바람소리와 함께 걷는다.
사람 발자국이 없어,
내 그림자와 함께 걷는다.
나무들의 그림자와 함께 걷는다.
싸각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의 빗금진 발자국을 덮는다.
이름 모를 검은 머리 산새의
주황색 목덜미 깃털이 아름답구나!
설원을 가득 채운 추위만이
임도 따라 서성거리고 있다.
길을 잃어도, 길을 헤매도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다.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
첫 키스의 숨결을 기억하는
당신이 동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나는 내 몸뚱아리가 아니라,
당신 품안의 따스온 추억이
내 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설맹이 되지도 않았고,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았다.
깎아지른 산자락, 백설의 오솔길 너머,
푸른 하늘을 이고,
겨우살이가 까치집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위의 시에서 '설맹'은 설원 위에 반사되는 자외선과 적외선 빛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망막이 손상되어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 산을 오를 때 많이 생기는 현상이다.)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을 생각한다.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을 생각한다. 물론 그 이유는 모른다. 나에겐, 아직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 많은 탓일 거다.
발이 두개인 이유는, 함께 혹은 혼자라도 가기 위해서는 하나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산꾼이 뒤따르는 나를 위해, 글을 남겨 놓았다.
13시 40분, 출발 지점인 '양구두미재' 정상으로 돌아왔다. 3시간 정도에 산길 10km 정도를 걸었다. 오늘 우리 산꾼들의 걸음이 빨랐었다.
980m 고개 정상에서 신나게 굴려내려와, 횡성군 둔내를 거쳐 안흥에 들러, 오늘의 '도반'께서 소개한 '시골식당'에서 토속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의 뒷자리는 항상 깨끗하다. 우리의 오늘, 내일 또 내일도 영원히 깨끗하고 건강할 것이다. 우리는 '산꾼'이기 때문이다. 치악산 '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