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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히드사의 설계진들은 당시 나와 있는 엔진을 이용해서는 이런 요건을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적어도 두개 이상의 엔진을 장착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두개의 엔진을 주익에 장착하고, 중앙에 조종석을 위한 동체를 따로 만들기로 계획했고, 두개의 엔진탑재부를 연결해 미익을 제작하기로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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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나는 XP-38 기...... 성공적인 처녀비행을 하기는 하지만...
- 결과는.... 바로 아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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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개의 엔진에서 발생하는 토크 현상을 줄이기 위해, 양쪽 프로펠러의 회전 방향을 반대 방향으로 잡기로 했다. 즉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프로펠러는 시계방향으로, 왼쪽은 반시계방향으로 돌게끔 설계한 것이다. 설계 계획을 받아 본, 미 육군 항공단은 록히드사에 원형기 제작을 의뢰했고, 드디어 최초의 XP-38기가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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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국 동서를 단 7시간 2분 만에 주파했지만, 마지막 착륙에서 이렇게 파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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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12월 드디어 제작이 끝나, 다음해인 1939년 1월 27일 대망의 처녀비행을 시작했다. 960 마력의 앨린슨 (Allison) V-1710-11엔진 두개를 장착한 XP-38기는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뉴욕까지 장거리 시험비행에 들어 갔는데, 7시간 2분대에 주파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원형기들이 그렇듯, XP-38도 첫 비행에서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즉 비행 자체는 이상없이 완수했으나, 마지막 착륙하면서, 지상에 닿자마자, 크게 파손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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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초기 시험비행에 고무된 미육군 항공단은 이 새로운 전투기 생산을 승인했으며, 두번째 시험비행기인 YP-38기가 1940년 9월, 시험비행을 시작해, 1941년 3월에는 미육군 항공단 자체 성능시험까지 받기에 이른다. YP-38기는 엔진을 1150 마력의 앨리슨 V-1710-27/29 엔진으로 교체했으며, 프로펠러의 회전 방향을 XP-38의 반대로 바꾸었고, 12.7 mm (0.50 캘리버) 기관총 2정과 7.62 mm (0.30 캘리버) 기관총 2정, 37 mm 기관포 1정을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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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YP-38기의 모습..... XP-38의 뒤를 이은 기종으로 드디어 미국 항공기 최초로 400 mph의 벽을 깨어 버린 기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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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YP-38의 속도는 처음 제시된 360 mph를 상회해 405 mph까지 낼 수 있었고, 상승력도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시험 비행도중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꼬리 날개 부분이 급하강시 균열이 생기면서, 파괴되는 것으로, YP-38의 시험비행 도중, 이 결함으로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곧 록히드사는 이 결함을 보완한 후, P-38 D기를 내놓게 된다. (XP-38A 이후 B, C형은 없었고, 곧바로 D형으로 건너 뛰었다. 또 D형은 YP-38기에 연료 자동 봉입 장치 등 몇가지 장치를 변경시킨 것 이외에는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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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8 기가 라이트닝(Lightnng)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P-51 무스탕의 경우와 매우 흡사한 사연이 있다. 즉 P-51 무스탕도 원래 제작국인 미국에서는 "아파치"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려 했다가, 미리 주문해 사용하던 영국이 "무스탕"이라는 명칭을 쓰고 보편화되자, 미국 역시 그대로 무스탕이라고 부르게 된다. P-38 역시 미국의 록히드사는 "아트란다(Atlanta)" 라는 명칭을 사용하려 했으나, 영국이 일부 초기 P-38을 먼저 사용하면서 "라이트닝"으로 부르고 있어, 이번에도 미국 역시 영국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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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이트닝의 고향은 뭐니 뭐니 해도 태평양 상공이다... 일본 전투기들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라이트닝의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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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영국은 전쟁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성능도 제대로 파악 안된 P-38기들을 주문해 썼었다. 그러나 고공기동을 위한 엔진의 수퍼차저(supercharger)도 없었고, 토크 현상(Torque effect, 프로펠러가 한쪽방향으로 돌면서 나타나는 관성에 의해 기체가 수평비행시도 한쪽으로기우는 현상 )을 줄이기 위한 프로펠러 회전 방향 조절도 없어, 영국에 팔려간 초기 P-38기들은 정확히 말해 완벽한 P-38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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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히드사는 시험중인 P-38기들을 구입하려는 영국을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전투기가 부족했던 영국이 떼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보급해 주었는데, 중요한 장치가 다 빠진 P-38이었으니, 록히드사도 팔기는 했어도 약간 불안했다. 왜냐면, 회사의 명예가 걸려 있는 문제이니... 록히드 설계진은 알맹이 빠진 이 영국 수출용 P-38을 "거세된(castrated) P-38"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하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영국은 "거세된 P-38"의 성능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해, 600 대 규모로 잡아 놓았던 주문 계약을 파기시켜버리는 조치를 취하고 만다. 생산중이던 많은 수가 고스란이 남게 되었고, 록히드사는 이것을 업그레이드시켜 P-38 F형과 P-38 G형을 만들어내는 자원으로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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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P-38E형의 비행모습..... 라이트닝 최초의 격추를 달성한 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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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실전형이라 할 수 있는 P-38 E형은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41년 10월 경부터 생산되었으며, 총 210 대가 만들어졌다. 주 화력이었던 37 mm 기관포를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20 mm 기관포로 교체했으며, 날개에는 454 kg 투하용 폭탄이나 어뢰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또 일부는 기수의 기관포 대신 카메라를 장착해 정찰기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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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진은 1225 마력으로 향상된 앨리슨 V-1710-49/53 형 엔진을 탑재했고, 총 8 단계의 각기 다른 각도로 작동하는 새로운 플랩을 장착하여, 선회시 더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P-38 E형이 거둔 최초의 전과는 태평양 전선에서 달성되는데, 1942년 8월 4일의 일로, 정찰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P-38 E기가 일본의 수상기인 Kawanishi H6K기를 격추시켜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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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형의 뒤를 이어 1942년 4월경부터 생산된 P-38 F형은, 총 527대가 만들어졌다. F형은 적재 중량을 더 늘여, 900 kg 투하용 폭탄이나 좀 더 용적이 큰 외부 연료 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F형중일부는 카메라를 장착하고 정찰기(P-38 F4)로도 사용되었다. P-38 F기에 의한 최초의 격추는 1942년 8월 15일 대서양 상공에서 달성되는데, 격추제물은 독일의 Fw 200기였다고 한다.
- 본격적인 실전형 P-38 F형...... 하지만 아직은 전투기의 성향보다는 지상공격기의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 기종이 독일 공군을 상대로 첫 격추를 달성한 라이트닝 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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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942년 11월부터는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면서, 지중해 연안에서 주로 독일 수송기들과 보급 차량을 공격해, 상당한 전과를 이루어 나갔다. 이 연합군의 쌍발 전투기는 독일군에게 생소한 것이었고, 갑자기 나타나 군수품을 죄다 못쓰게 만들고는 줄행랑을 치는 일이 잦아지자, 독일군들은 P-38을 "Gabelschwanz Teufel (the fork-tailed devil, 포크 모양 꼬리를 가진 악마)"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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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P-38기들이 지상 공격이나 수송기 격추 임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기는 했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P-38은 전투기 보다는 지상공격기의 성격이 강했다. 적의 수송기를 만나면, 전투기처럼 의기양양하게 공격에 나섰지만, 독일의 Bf 109를 만나면, 라이트닝은 무늬만 전투기인 덜떨어진 성능의 하위 기종에 불과했다. 항공기 자체가 커, 커다란 표적인데다가, 기동성 역시 메서슈미트보다 한수 아래였으니..... 단 독일 지휘부는 P-38와 조우할때, 절대 헤드온으로 맞서지 말것을 조종사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기동은 떨어졌지만, P-38의 강력한 화력은 공포의 대상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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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8 G형의 모습... 위 기체는 1943년 4월 일본 해군 사령관 야마모토의 탑승기를 격추한 토마스 랜피어(Thomas G Lanphier)의 애기이기도 하다
- 1943년 초가 되면서, 1400 마력으로 한층 향상된 앨리슨 엔진을 탑재한 P-38 G형이 양산되기 시작해, 총 1082대가 생산되었다. 얼마후 다시 1425 마력으로 파워를 약간 높힌 P-38 H형이 생산되었고, 총 600대 가량 만들어졌다. (참고적으로 H형 후속버전으로 I형은 없었다, I라는 알파벳이 숫자 1과 비슷해, 혼동을 초래할 소지가 있어 건너 뛰어 J형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또 J형 후속버전은 K형 역시 생산되지 않고 곧바로 L형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