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기러기는 한마리의 리더를 따라 40,000Km를 날아 간다. 맨 앞에 선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짓고 리더의 날개 짓에 기류의 양력을 일으키고 뒤 따르는 무리들은 71%의 힘으로 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뒤따르는 동료들은 끊임 없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앞에선 리더가 세찬 바람을 가르는데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다.
거리기는 먼 장정을 하면서 바로 옆의 동료에게 의지하며 날아간다. 결코 혼자서는 그 먼 장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옆에서 나는 동료가 총에 맞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떨어지면 반드시 다른 동료 2~3마리가 같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 날 때까지 아니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옆에서 지키다가 원래의 무리로 돌아온다.
엊그제 기러기 아빠 신세를 이제 면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오랫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기러기아빠인 친구가 여럿있는데
난 이해를 못한다. 그런데 왜 하고많은 새 중에 기러기인지에 몹시 궁금했었다. 나는 옛날 고등학교 시절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결성한 <흥사단>에 몸 담았던 적이 있다. 흥사단의 상징이 士(선비사)字이고 그것이 바로 기러기가 나는 형상을 본뜻 것이어서 기러기 사상에 대해서 제법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기러기아빠는 무슨 의미일까?....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단다.
기러기가 가을 하늘을 나는 쓸쓸함과 서로 모여서 외로움을 달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며 실제로도 처자식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 남아 쓸쓸한 처지에 있는 이들은 기러기와 닮아 있다.
또 하나는 기러기는 먼 거리를 날아가 새끼의 먹이를 구해 오므로 자녀교육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를 기러기에 비유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기러기는 어린 마음에도 쓸쓸하고 외롭게 가을 하늘을 줄 맞춰 날아가던 새이다. 흔히 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고 진짜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기러기이다.
그래서 전통혼례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젊은 시절의 거의를 혼자 살았던 우리 친구는 그야말로 그 모습이 기러기를 닮았다. '기러기 아빠'의 영어 표현은 '(wild) goose daddy'이다.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를 아주 멋진 새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두 다리를 바짝 뒤로 모으고 높은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은 낭만적인 정취가 가득 있어 보인다.
기러기는 그 우는 소리가 처량한 정을 자아내게 하므로 예로부터 사랑하는 임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시(詩)와 노래로 많이 읊어져 왔고, 동양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여 왔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기러기가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편평한 모래펄에 맵시있게 내려앉은 모습을 묘사한 성어로서 글이나 문장이 매끈하게 잘 되었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전용(轉用)되어 왔다.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 북쪽에서 찬바람[朔風]을 타고 하늘 구만리를 날아온다고 하여 기러기를 '삭조(朔鳥)', 서로간에 신의가 깊다고 하여 '신조(信鳥)',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鴻雁)'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북녘에서 날아와 서리를 전한다고 '상신(霜信)',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낸다고 하여 '이계조(二季鳥)'라는 별칭이 붙어 있으며, 한방에서는 양기에 좋다는 뜻으로 '양조(陽鳥)', 보양의 왕이라 하여 '왕조(王鳥)'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황금알을 낳는」거위는 영어명(英語名)이 'goose'이고, 야생의 기러기는 ''wild goose'라고 한다. 거위는 기러기의 변종인데 일찍이 가금으로 길러진 까닭이다. 한자문화권에서 거위[鵝]를 '家雁(가안)'이라고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러기는 신라 문무왕이 축조한 안압지(雁鴨池)란 이름에도 등장한다. '안항(←雁行)' 은 기러기의 행렬이란 뜻으로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이며, 먼 곳에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안신(雁信)' '안백(雁帛)' '안서(雁書)'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를 '긔려기'라고 불렀다. '기러기'라는 말은 이 새가 '기럭기럭' 우는 데에서 나온 의성어이다.
전통 혼례식 때 행해지는 전안례(奠雁禮)란 의식은 지난날 농경사회에서 풍요 및 다산(多産)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래혼에서는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혼례를 행한다.
전안례는 홍안지례(鴻雁之禮)라고도 하는데 신부집에서는 먼저 안마당에 차일을 치고 안방에 전안청(奠雁廳)을 준비한다. 다리가 높은 탁자에 붉은 보를 깔고 곡물과 과일 등을 차린다. 탁자 앞에는 돗자리를 깔고, 대문에서 탁자 앞까지 행보석(行步席)을 깐다.
신랑은 백마를 타고 신부집에 가는데, 기러기 한 쌍을 든 기럭아비[雁夫]가 신랑보다 앞서 간다. 신랑이 당도하여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바치면 신부 어머니는 기러기를 치마에 싸서 전안청에 안치한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이 장인께 재배하고 나서 안대청에 마련된 초례청(醮禮廳)으로 안내되어 신랑 신부가 상견례를 하며 초례(교배례: 혼례식)를 올린다.
이런 경사스런 자리에 수많은 금수(禽獸) 중에 하필 기러기를 택한 것은 기러기처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아들딸을 많이 낳아 백년해로하게 해달라는 기원의 표시라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 해 농사를 모두 마친 늦가을에 질서있게 무리지어 날아와 금실 좋게 짝을 이루며 사는 기러기를 신의·화목·정절을 상징하는 새, 모두에게 풍요로움을 전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겼던 까닭이다.
처음에는 전안례에 산 기러기를 쓰다가 점차 나무로 만든 목안(木雁)이나 닭을 대신 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날 전통의 뿌리가 깊은 마을에서는 혼례를 위해 '기러기집'을 한 채씩 지어 수· 부· 귀· 다남 등 오복(五福)을 모두 갖춘 집에서 관리하고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한 번 빌려 쓰는데 쌀로 셈하여 받았다. "기러기집 딸은 묻지 않고 장가든다."는 말이 지금도 전해오는 것은 이런 집 딸이 행실과 용모도 단정하거니와 눈썰미와 손썰미가 매서워서 오랜 경험 끝에 비법으로 전해온 음식맛을 내는 솜씨 또한 뛰어났기 때문이다.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이옥(李鈺)이란 여인은 지나온 신혼 시절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신랑은 목안(木雁)을 쥐고/ 신부는 건치(乾雉)를 쥐었으니/ 그 꿩이 울고 그 기러기 날 때까지/ 두 정 그치지 않으리…."
회색 기러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시조 온조왕 43년에 기러기 100여 마리가 왕궁으로 날아 들었을 때 일관(日官)이 “먼 곳의 사람들이 찾아와 기탁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왕궁으로 날아 든 기러기를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신(神)의 사자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규합총서》에는 기러기에 신(信)·예(禮)·절(節)·지(智)의 덕(德)이 있다고 적혀 있다.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의 사이가 좋다고 해서 전통혼례에서는 나무 기러기(木雁)을 전하는 의식이 있다. 또 다정한 형제처럼 줄을 지어 함께 날아다니므로, 남의 형제를 높여서 안행(雁行)이라고도 한다. 이동할 때 경험이 많은 기러기를 선두로 하여 V자 모양으로 높이 날아가는 것은 서열과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자어로는 안(雁)·홍(鴻)이라 쓰고 옹계(翁鷄)·홍안(鴻雁)이라고도 하는 기러기는 수컷이 암컷보다 크며, 몸빛깔은 종류에 따라 다르나 암수의 빛깔은 같다. 목은 몸보다 짧다. 부리는 밑부분이 둥글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치판(齒板)을 가지고 있다.
다리는 오리보다 앞으로 나와 있어 빨리 걸을 수 있다. 땅 위에 간단한 둥우리를 틀고 짝지어 살며 한배에 3~12개의 알을 낳아 24~33일 동안 품는데,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주위를 경계한다. 새끼는 여름까지 어미새의 보호를 받다가 가을이 되면 둥지를 떠난다. 갯벌·호수·습지·논밭 등지에서 무리지어 산다. 전세계에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는 흑기러기·회색거리기·쇠기러기·흰이마기러기·큰기러기·흰기러기·개리 등 7종이 찾아온다.
회색기러기와 흰이마기러기·흰기러기는 미조(迷鳥)이고 나머지 4종은 겨울새이다. 시베리아 동부와 사할린섬·알래스카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일본·중국(북부)·몽골·북아메리카(서부)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 미조(迷鳥, Vergrant Birds)
미조란 길 잃은 새를 뜻하는 말로, 원래의 서식지역이 아닌 곳이나, 이동 경로를 벗어난 지역에서 발견되는 새를 의미한다.
이 같은 일은 주로 태풍, 지구온난화, 엘니뇨현상 등 주로 기상이변에 의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태풍 등 기상이변에 의해 철새들이 원래의 이동경로를 벗어난 지역에서 발견되거나, 지구온난화나 엘니뇨 등의 이상 기후변화로 원래의 분포 지역을 벗어난 지역으로 확대 분포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기록은 약 150년 전부터 있어 왔다. 본래 동남아시아와 시베리아 사이를 오가는 철새인 솔새류, 개똥지빠귀류가 중앙유럽에서 발견된 사례는 수천 여건에 달한다. 1990년대 초에는 약 8개 종의 미조가 발견된 기록이 있는데, 특히 노랑눈썹솔새는 1836년과 1991년 각각 중앙 유럽에서 발견된 기록이 있다. 노랑눈썹솔새는 원래 북극권인 시베리아의 침엽수림에서 짝짓기를 하고 아열대와 열대의 동남아시아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 철새이다.
이 외에도 현재까지 기록된 미조는 기러기류, 신천옹, 사다새, 아메리카홍머리오리, 미국쇠오리, 군함조, 사막꿩, 잿빛쇠찌르레기, 바람까마귀 등 다수이다. 이 같은 기록을 보면 새의 크기는 현재까지 미조가 되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수많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철새집단을 벗어나 텃새가 된 미조들에 대한 기록이 있어왔다.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길을 잃은 한 두 마리의 개체가 다른 철새 무리에 섞여 들어와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는 알래스카에서 로키산맥 동쪽에 이르는 북아메리카지역에서 번식하고, 북아프리카, 인도·중국 남부, 캘리포니아·멕시코 남부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아열대성 조류인 열대붉은해오라기와 바람까마귀가 처음으로 국내에서 발견됨으로써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아열대성 조류의 분포권이 점차 고위도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자연적 원인 외에도 철새연구센터에 의하면 많은 수의 철새들이 기름오염, 고양이의 공격, 인공구조물에 의한 충돌 등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길을 잃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