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에는 피아노 선이 있다
운명에는 피아노 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아노 선으로 영화를 찍는다
음악과 예술의 위대함은
오늘도 한 편의 음악에 날개를 달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 선 보다도 훌씬 방석 깐 스프링으로
허공마다 빛으로 방석을 짠
육신보더 더 영혼에 안식인가 하는 것으로
운명에는 피아노선이 있다
그 것을 들으면
온 몸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부푼 듯
불
옛말에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말이 있다
이 정도야 낭만적이지
똠방 각하야 뭐
완장 하나 휘두는 것이니
그것도 절대 권력 언저리의 해프닝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나팔은 그래도 곡조나 있지
요즘엔 꼭
선(善)을 쌓으라면서 호랑이를 몰고 다니니
이 건 완전 지옥이로구나
말로는 상냥하기 그지 없으나
입은 유황불을 뿜어대네
물 수제비
쥐구멍이나
바위 문이나
묵묵 부답으로만 보이기도 하나
속내 눈치야 쥐같이 재바르지 않으랴
가시적어서 색마인
달리는 가시 광선
그에 먼지 이는 빛의 보푸라기 털
자외선 적외선의 갓길의 적체같은 것
흑백만으로
빗자루 길 다 빨아들이며 가기까지
물 튕기듯 일어나 노도질주하며
한 털끝까지 미쳤다 가라앉은 것이리
굴욕감
사회에서의 굴욕감이라는 것도
수평적 선상에서의 표정이라는 것은
그래도 나타나기는 하는 배색이지만
완전히 지배적이다 싶은 굴욕감에는
함께 지향점을 외쳐대는 속에서 내재된다
K
앵무새 부리 K
크낙새 부리 K
어데가 독보적 가슴의 무덤이더란 말인가
목이 쉬어 터갈러져도
외침의 형상만 있을 뿐의
L
생사에는 연착륙이 없으니
그래프 마져 엘(L) 자형
아! 그 절벽 위의 망부석이로구나
파도가 밀려 온다
파도가 밀려 온다
ㅣ에 ~으로 밀려온다
섬이 간다
섬이 간다
M
아! 저 산이 보인다
섬이 보인다
M이 보인다
저 건 우리의 잊었던 어깨 추임새
무엇에 봉합된 소포같음에
마음을 울쳐 놓고 살아 갔었음인지
쇄골 아래 메달 같은
목걸이를 하나 달 마네킹이더란 말인가
끝이 아닌 센타 라인이라면
우리에게 결론이 본론이고
본론이 결론이라면
판타지적 복사판의
나비 양 날개를 접은 모양새 같음은 어떠한 것인가
즉 우리가 주검이 끝이 아니고
젊음이 중앙이 아니고
주검이 허리이고
접히는 것으로 본아
우리의 젊은 부위가 결론적 말미에 해당 되는 것이라면
좀 더 이해되고 설명 되는 것으로
의지가 더 살아 있지 않은가 하는
이 미완되다시피
건방지고 오만불손하다시피하는 혈기의
이것의 결론 부위로
대단원의 막이 되는 것이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독선과 개성
민주주의란 것이
대중이 개성을 죽일 수도 있음에
독자성을 외쳐대며 끼워 가기로
졸부들도 소수에 들면
특별한 개성인 냥 내 세우기 바쁘다
혹시 모든 독선마져 개성이라고 아부한 것에
꿈을 못 깨면 정말 개성인 줄 알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큰 인생록인 냥
이미 단절된 과정에 돌이키지 못하는 씁쓸함에
과정이 삭제된
결과만으로 치부할 수 있음으로 우쭐대는 꼴이니
점입가경 거기다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노예
인간을 각박하게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한 눈을 팔게 하지 않는
기능을 발휘하는 듯한 주체성의 가치인 듯하지만
결국 돈에다 맞추게 되어 있는
돈의 균형감각일 뿐으로 끝나게 하는 것
이 것이 곧 노예화라 하는 것이다
문화
요즘 공원이라고 차츰 늘려 가기는 하나
아직도 공원에서 사색할 문화는 아닌 것같다
공원에도 뛴다
거기마져 뛰지 않으면 뛸 공간과 시간이 없는 듯이 뛴다
오히려 혼자 오래 머문다는 데는 낮설다
수상하다
불안하다
사회풍토란 것이 방에 콕이 아니면
다른 어느 콕이든 불안하다 불안하게 한다
어데든 어울리고 소속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의 콕! 도 바깤의 콕!도 되어야 하는데
방의 콕을 바깥의 집단으로 어울게 해 줬다고
해방을 시켜 준 듯이 한다
사색의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화끈하게 풀고 활기차게 일하자는 것이다
눈 3
요즘 세상에는
눈 감는 것도 가지가지일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왠지 저 젊은 아가씨는
휴대폰 모니터의 스크린처럼 눈 감을 것같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양 귀는 레시바에 막아 놓고
눈은 스크린에 못 박아 놓고 걷는데
난 이미 나의 메아리를 느낀다
참 염려스러운 바는
나중에 호소하려는 일일 생길 때
사방이 적막하고 메이리일 뿐이라고 여길 때
무엇을 탓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도 휴대폰 스크린만큼은
눈을 떴다 감을 수 있는 것 같다
허나 왠지 서슬프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미어 온다
공원과 골프
공원은 그래도 한 정서의 징검 다리가 되지만
골프는 골 머리를 우물물처럼 고여 놓은 곳에
퍼가는 듯한 어감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즉 고급스럽게 보면 골퍼요
촌스럽게 보면
시골 우물 터에 정갱이 드러내 놓고
빨래하는 아낙의
두레박 줄 당기는 것과 같을 뿐이다
초두
질문의 초두는 무엇으로 해야 하나
점(占)이 먼저냐
설(說)이 먼저냐
점 속에 사고(思考)의 뭉치가 있느냐
설은 점이 흡수하는 틈새의 접합인가
아니면 우리가 깨어가며 하나 씩
취득한 만큼의 커 나가는 것이냐
두드러기
두두러기 일어나 본들
두더지와 두드러기가 그 것이 그 것인데
아예 묻었다고 묻었다 싶은 데
다 일어나고 볼 것같으니
이제는 동급이라고 해도
긁어준다고 해도 부스럼만 나기
제 스스로 알아서 체질을 만든 결과니
남 두더지 만들어 놓고
제 두드러기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단 말인가
아이
사는 것 참 별 것 아니다 싶은 데도
별 것인 냥
별 것 아님을 강조하고 재차 강조하고
요즘엔 애들한테도 웃음 띠기 어색한데다
그래도 애들 볼 때마다
세상이 새롭게 돋는 듯 화기는 돈다
내 할 말 다하고 산다는 게 다툼 같기도 하지만
내 힘든 건 힘 드는 것이고
생기가 도는 것은 도는 것이니
눈치 아래에 있는 것이
집 안 싸움 뿐만 아니라
세상 싸움도 다 거둬질 것같은 데
묵은 고분이 수 천 년이 늘어난들
마음만 무겁기가 천 근이다
시간이라는 때
우리의 어떤 폐단이
어떤 변화에 긁적이는 정도에
머물게 하는 역량이라면
그 일어나는 때는
시간의 때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유전자 변형에도
본질적 돌연변이는 아닌 듯이
붙들어주는 자연의 힘이 머물게 한다면
그렇게 역사의 어리석음도
자연적 맹목성을 한 부분으로
자연성을 지켜가는 덕량과 같인 듯 할 때
시간은 생명력에 생 때 지나길 기다리다
때를 벗기듯 안은 시간이기도 하는 것이다
상실성
토론에는 악영향이거나 좋은 영향을 낳는 것인데
악 영향은
이미 우리가 상식상이나 일반적으로
이미 경중이 결정나 있음에도
토론에 붙여 경중을 같게 하여
오히려 체증을 줄러일으키는 것이나
또한 정말 대치국면이 치열 하나
차전놀이처럼 서로 간의 가치가 함게 상승하는 것일 것 이다
우리가 사회니 중재니 하지만
중재를 빌미로 한 쪽을 이득 되게 한 수작이냐
아니면 진실로서 살찌운 신의가 있느냐는
외향상으로 드러남으로 분별이 서는 것이지만
우리가 지식인라는 틀을 만들어 교묘한 수작이라는 것은
관객이나 패널이나 함게 만들어가는
스스로의 함정은 가린 채로 평평하다는 데는
과히 산 생명의 논리를
길 면 자르고 짦으면 길게 임의로 만드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처럼 인형놀음을 하는 것이어도
똑 같다는 다음에야
누구를 대변해 줄 수 있을 건가를 의심하게 된다
즉 어느 쪽으로 붙든
자신을 믿을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운명의 문
운명은 문을 두드리기 바쁘게
떼거리로 몰려 있는
우수가 결정적으로 벽에 다달아
그 수면이 올라 붙듯이 끌어 들이는 것
왜 운명의 수면 위의 달처럼 잠겨
넘쳐나게 하는가
왜 만조를 끌어 붙여
운명의 문이라고 해서
거북이가 엉금엉금 해변으로 기어나오게 하였는가
왜 그 것이 이미 뻥 튄 궤도에
참으로 느려 빠진 모래 벽을 통과하는 새로운 알을 낳지만
그 거도 파도가 봉황의 활주를 하는 듯이
만 년의 홱을 그리듯이 하는 것을
우린 단숨에 담금징로서 쇠를 빼는
우린 분명의 벽의을 넣은 용광로의 산물을 위하여
땀을 독촉 받듯
운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리자 힘이 몰리는 것이다
뻐꾸기
빌딩은 상자곽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상자각은 자꾸 큰다
그래서 인간이 작아졌다 싶을 때
참 우리도 개미같이 부지런 떠는 구나 하는 데
달이 창가에 큰 알을 낳고 간다
꿈은 늘 큰다
꿈은 늘 키운다
뻐구기 알이 세끼
손가락만 하게 더 큰 듯 틈새에
키
자연으로 돌아가든
신으로 돌아가든
인간이 실질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란 무엇이며
과정이야 현실적인지만
어떠한 굴절성으로
키를 돌릴 수 있느냐를 살펴야 하기도 하다
돌아가는 것
북극성이 거기 있다고 그 쪽을 따랐다면
이 과학의 시대에는 결과가 어떠 하리
내가 내 자리로 돌아 왔고
콜롬부스가 그 자리로 돌아 왔구나
돌았다고 내가 돈 것이 아니오
곧았다고 내가 곧은 것도 아닌데
왜 우린 장단 안 맞았다고 진리에 두질 않는가
왜 신발에 의지하는가
왜 이력에 의지하는가
또 돌아가겠지
아직도 저 뿌려진 동짓 팥죽인 채로
우린 다만 그 것이야 하는 것 만으로 됐다
소리만 있고 형체가 없다
우린 이 비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린 지금 뜻과 형태가 분명해도
어떤 우상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그 것이 탁월하다 해도
반목으로 쏠려 있는 것이다
그 의미가 완전히 없다 할지라도
내용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새가 있는 것만으로 됐다
이젠 마음대로 자유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힘들이지 않고
대중이라는 편성으로
가장 단순하게 형태의 표면상으로
왕따도 되지 않고
끼어들기도 무엇을 짓기도 쉬운 것이니까
그래서 우린 그 것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소리면 되었지 뜻까지 아니가면 더 좋고
아침
우린 알아 든는다는 주파수는 가져야 한다
아니 그 것은 부여 받아야 한다
최소한 그 수용성의 자세는 보여야 한다
주파수에 맞는 교감은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식으로 더 익숙하듯
능동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주장과
자기 논리의 성숙과 반 비례되어도
이불 개듯 개어 나가야 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늘 아침이라는 자세다
입에는 늘 침이 고인다
메마르지 않게
그래 이 것이 나의 침이라는 자세다
마침
아! 이 침샘의 마침은 어데인가
이 우주가 하나로 귀결된다면
그 하나는 어데로 가는가
마 일곱 근
그대의 침이 마로 돌아 한 마침이로구나
오존의 문
(O3)이란 오존이 입이 세 개
대답의 차원이 곧 질문의 차원
우린 나름의 부각성으로 합리를 몰아간다
코가 오똑한 것도
우리도 드러나는 만큼에 숨통일 뿐이라는 듯
우린 합리가 그리 모여
인간세상의 강줄기를 만든다
그렇게 질문을 몰다보면 지평선이 보인다
즉 대지의 얼굴이 보인다
겉보기에는 반질반질 미그러지듯 해도
로켙같이 그 안으로 꽂히다보면
상처와 같은 불꽃이 인다
끝이 날카롭지 않는 것은 바깥에서 미끄러진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어
질문이 머물지 못하고 미끄러짐이 무엇인가
자외선은 질문도 아니어서?
해답보다
우린 투영된 가시선에서는 행위적 유추성이지만
저 자외선처럼 접근 못한
화두가 머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명(共鳴)
우리가 단식 수행을 하다 보면
민감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속 비우고
평화로워 졌을 때는 모든 것이 평화롭다
외부적인 것과도 그리 즉흥적이지 않다
허나 속을 채우고 느긋해 졌을 때는
모든 자극에는 민감하게 일어난다 것이다
둔하다 싶어도 까탈로움은 내재돼 있음이다
이것이 곧 삶의 공명 현상이다
꼴꼴 꼴꼴
바위가 꼴꼴
꼴골에만 귀 기울니
바위가 어데 놈인 걸 몰랐다
그 아래 갈 놈만 눈여겨 볼 뿐이었다
바위는
제 가면을 용광로에 구겨 넣어도
당신만큼의 무게로
꼴꼴 꼴꼴
저 물결 틈바구니에 속빈다
초연함도 있어야 그 속에 고마움이 있음을 안다
천국이란 것이
꼭 있어서 천국인가
보기 싫은 사람 죽음으로 갈라 놓으니 천국이요
보고 싶은사람
죽음 너머 만날 수 있으면 천국이요
이 정도일 것 같으면
인생 극과 극의 단 맛 쓴 맛 끝의 철학일지니
피안이란 다 생의 욕심이 빚어 놓은 것
다 이 눈 앞의 경계를 지나면서
본 체도 아니 하고 저 먼 쪽만 쫓으니
거울을 쥐고 거울임을 모른 체 쥐어 박는
저 개와 하나 다를 게 없구나
그래 하나는 달라
맑게 개임이 짐승과 사람이 달라 청명하다 한 들
또 한 거울에 다달으니
다시 개같은 안목일 뿐이로구나
본 시간
이 우주가 이 세상에 걸리기 이 이전에
내가 또한 뱉었어늘
누가 심봉사만 모았더란 말인가
가리 늦게 초등생 과학 시간에 모아 놓고
저리 눈 떴다고 법석일세
양파 5
왠지 사는 게 같다 하나
비를 건느지도 못하는데
또한 비를 즐기지도 못하겠구나
내겐 오히려 걸림 없이 확트였다싶음에도
도리어 답답한 지경인 것
바로 창가임을 가르키는구나
살아가는 수평이 같이 굽어 간다 하나
양파 층이 다른 듯 싸고 넘어가는 듯
하늘의 양파엔 비가 내리는 데
그대의 앙파엔 창가의 비와 같으니
그대가 싫든 좋든 늙은 끝이다
그대가 싫든 좋든 늙은 끝이니
그나마 늙은이에 맞추면
기억에 들려 줄 줄 앎이요
각성에 돌려 줄 줄 앎이요
그 마나 재생력 회복이 있음이요
그 포켙을 아물 줄 알음이요
비밀 번호에 잠글 줄 알고
저장성 좋고 비축성 좋고
또한 징검다리도 되어 줄 줄 알고
넘어가게 할 줄 알고
내 저 옥황상제가 늙은이가 아니고 젊은이였다면
저기도 꿈 덜 깬 쿠데타나 나는 나라일까
어찌 씨앗 눈의 포장 껍질을 맡기리
나무에도 영혼이 있겠구나
참으로 저 복숭아 씨
우리의 주름살만큼이나 닮았지
우리도 저만큼 굳어가보면
우리의 주름은 그 보존력을 다하지
이젠 하늘의 석고만큼이나 대체시켜 봉하면
이미 그 사이 바람은 살이 되어 사박사박하지
그러고보니 나무에도 영혼이 있겠구나
종이접이
종이접이로 공을 만들기도 하듯이
완성 되었다할지라도
납작한 면만 있어 끝 모서리만 보이는 데까지는
일방 통행 끝의 상대성에 대해진 냥 하지만
바람을 넣다보면 공이 되듯이
이승에 저승이 접은 선과 같아
혹시나 알으랴
속을 훅 불다보면
평원이 배를 볼록하게 보인다 싶더니
둥그렇게 돌아나오는 실증의 것이라 할지
신이 곧 인간
신이 곧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생각
사고
하물며 마음먹기까지
실제 스스로의 반추성에 있지 않는
자신이 또 다르게 있음의
신이 곧 인간인 것이란 뜻이다
즉 이 生의 사유가
곧 그림자처럼 맞물렸다고 여겨서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즉 그림자 없는 일체성과 같으니
마음의 것이 아닌
네 마음이 어데 있느냐의 등식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신을 그대로 입증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마져 자신이 아닌 채
상대적으로 경계에 넘어가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형
은하수로 빚은 세상은
참으로 보습이 좋구나
태양과 화산
마른 똥 막대기 만들기 바쁘다
그림자 없으니
그림자가 그림자 가릴 일 없고
보습이 잘 되면
그림자도 빠져 나가고 없는 것인지
미리내는 있다는 설화일 뿐
저 까치 소리 못 알아 들음에 묻혀 가는구나
침묵
그대 스스롤 생의 가벼움을 예기하는 것이면
결론을 내려 마라
왜 가법게 모여 가볍게 하는 길이라면
지나칠 일이지
왜 결론을 내어 주는 것인가
그렇게 입이 가벼워 지질 않거늘
길 바삐 길이 고삐 길
쭉 뻗은 신장로보다
옛 곡절로 가는 길의 꽃들이 아름답구나
내 노래 한 곡조에 달아붙은 그리움
아직 뒷꿈치 더 팅구면
가는 바삐보다 고삐 줄이 나는 듯
마음으로 이루어 놓은
아무리 점잔키로
부뚜막의 고양이보다
더 튕구며 올라 있을
제 고삐 제가 쥔 듯이 할 것
아! 저 기타 소리에
나도 봉숭아 터질 듯 터지네
네 방울의 의미
진(盡) 字에도 점점이 송진 가루
네 방울의 의미란 것이
저울에
접시 네 귀퉁이 끈 매달아 올린 듯
삭풍에 다잡혀 목이 다 쉬고 난 다음의
왠지 서리 끼 끝에 산 허리 빠진 듯
봄에 남겨진 진인 냥의 것에
또 묵(墨)이란 자
점점이 한 방울 식 떨어질 곳엔
땅 土의 地平이 있는
원근법으로 아무리 잡아도
네 귀퉁이의 연변에서 그림이 된 것
이는 다 누구의 년월일시에
영화처럼 살다 갈 것인가
마름
말(沫)이라고 다 헛거품을 물었다 마라
마름을 보니
은하수 속에서 말랐을 알맹이가 있다
별이 있다
밤 맛이다
막상 가져다가
지상의 손에라도 얹어 놓고 보니
밤송이 같은 빛살로 그렇게 보임일 뿐인데도
그 물체를 이루었을 밤이었구나
천하
당장에 아이가 굵어도
청천 벽력같고
길거리에 노숙자만 보아도
사회가 답답한데
무엇 하나 천하이지 않음이 있었던가
현시성
어쩌다 아라한을 본 것이
해파리 속 내장을 본 듯이
속에서 만들어내는 똥이야
보일 듯로 아니 보일 듯이
겨 묻었든
똥 묻었든
다 바깥에 붙었을 때의 일이로구나
함정에서 나오기
누른 대지가 더 늘어 났다
누구나 자신의 험을 가지고 함정에 빠졌다면
그 나오는 계단이나 밧줄을
너도 그런 것이다로
헐어가며 바닥에 깔고 나오면
그 패인 것만큼의 같은 험으로 하는 듯이하나
허나 마치 옷을 바느질 한 듯
짜깁기 된 듯 수평으로만 돌아가 있는 듯이
마치 투명 고래가 흰 고래 된 듯
등 뼈 한 줄에 태두리 감각이 살아 있는 듯이
그걸 개체라고 살의 부위로 하니
바느질 된 선의 섬과 같은 것이로구나
구산(龜山)
여기라 해도 마땅찮고
저기라 해도 마땅찮고
물 만나면 좋다고 하니
물의 근원을 어데다 둘까
아! 오늘은 내 아닌
이 글귀의 주인공이 날 접대했구나
구산! 이라고
한 동이 아니라
두 동이 아니라
기왕에 쌍꺼풀일려면
두 번 거두고 눈 뜨세
도매 금
옛날에는 시계 바늘처럼
일직선으로 제일 길게 뻗은 도로가
저 창원 공단을 가로지르는 도로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반 고속도로 허리를 감아대며
칭칭이 남아대는 국도간의
그래도 운치는 차이 나는 것이라고
정감을 따로 묶어 놓은 듯이
끝도 달리 하는 듯
한 끝둥을 시계 바늘 끝 둥인 냥 하고
시계 추처럼 앞으로 가게 한다면
우리 눈에는
제일 짧은 고속도로라는 것으로
넝쿨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같은 서룬함이 있는
손해보는 것같기도 하나
어쩜 그렇게 느껴야 함이 자연스러운 섭섭함 아닐까도 하는
바쁘게 설치다 보면
달리 무엇에 걸린지도 모르게 사는 것보다는
저 고속도로 같은 시계의 콧날에
강줄기 같은 길을 뒤척이며
함께 가는 간선도로로 향기 자락을
한 오라기처럽 걸치면 휘감은 것이니
그 것이 속으로 접힌 것이듯
콧물은 나와야 하는 것이요
물이 흘러야 또한 동리가 있듯
물가의 인생이 한 치 더한 것으로 붙게 하는
인중(人中)!
결국 시계침은 안개처럼 코딱지 지며
콧날 바르고
개울가에 빨래하는 아낙들의 방망이질 있는 곳
상(相)과 상(像)
우리가 관상이라는 용어에는 서로 상(相)을 쓰는데
보통 우리가
상이 좋다함에는 거의 (像)에 이미지를 두고
뱉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꼭 그리이스 로마 도시의 조각상을 떠올게 하는 데
그건 상학적으로 격국에 해당하는 것인데
전반적 풍모를 갖게 하는 것이도 하다
또한 상(相)이란 메카니즘을 따라 유추하는 것이요
또한 찰색에 비중을 많이 둔다
이 건 또한 미지적 대화의 방편에 있는 듯이 하는데
마치 뜻의 낱말을 베너화 하여
마치 신이 타자친 반점과 같이 나타나는 것인데
이러한 상호성에 관상이라는 말이다
보통 우리가 상(像)의 형태로
첫인상이 많이 쏠리게 되어 있기에
시간적으로 장기적으로 노력하여 성형할 수도 있기에
그 간편성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 건 비교가 분명하고 기준도 분명한데서 변화를 취하는 것인데
그렇게 탈바꿈을 한다고 할지라도 전반적 상황의 변화라기보다
분위기의 변화는 있다는 것이다
즉 좀 더 여리게 여성적 미로 치중하다보면
연애도 좀 더 야리야리하게 풍겨가며 분위기일 것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악쓰기 보다
제 면모에 맞게 좀 더 수더분해져 있을 것이요
다만 자기 도취가 쉽게 환각성이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는 것과
억척스러움만 고생으로 여기고 불행으로 여기지 않더라도
말 못할 좌절성의 참담함은 겪게 될 것이다
즉 상(像)은 눈 앞의 것으로 조화를 맞춰진 낭만을 낳기도 하지만
즉설적이고 즉현적인 것으로 변화 시킨 작은 차이일 뿐이다
여자가 남성적으로 생겨
남자 같은 생을 감수하고 간다 할지라도
그 의지가 깊은 것에서 참 맛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인데
결국 인간의 고뇌나 기쁨이 (辛物)이 나는 것이
신물(神物)이 나는 지경을 일컫는 것으로서는
별 다를 바 없이 맞닥 뜨린 삶을 산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상호성에 있다
무형이 유형됨도 내적 미덕으로 혈색화 하는 것이요
무체가 유체가 됨도
육체를 넘어 나타는 미각을 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신과 의중이 서로 동일시 되면
그만큼 인연의 깊이로서 감동을 하게 되고
추상성이 임상적으로 신비감을 토해내는 마력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아기자기한 맛은
줄기보다 꽃인데
이 꽃이 결코 가벼운 것을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닌
무거운 것을 가볍게 피워 올리는 힘을 보는 것이다
옷걸이
한 어깨 하는 것이
옷걸이가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세탁소에 매달려 있는 고리라는 것도
삶 자체는 고리는 되는 듯이 어깨는 무겁다
인생은 물물려지는 코스에 자신감을 붙이듯
그렇게 되어야 어깨인 냥 기댈 수 있을 만치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한 고리는 된다
저 눈 덮힌 상록수만큼이나 어깨겹도록
그래도 꿈은 소리없이 내린 눈처럼 펼쳐진
목마처럼 되어 준 듯 준령을 고개 숙인
우린 어깨만으로 산을 떠날 수 없음의
저 빈 옷걸이마나 눈처럼 바싹 부셔질 것같은
음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음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악보가 반석같아서이겠지
우린 이미 8 차선을 휘졌고 다니는
어느 선상으로 넘어가든
그 연기성은 감치는 맛으로
쇠같은 근육질이어도
마지막 쿠션까지 좋은 차 안의
파도처럼 휘몰며 가는 것이겠지
음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악보가 마치
내 팔이 잘못 되어도
어깨 가슴이 결리는 듯이
그렇게 내 가슴에서 울려 퍼진 것이기에
꽃잎 띄운 듯
종이배 띄운 듯
그대에 대한 연서와 같은 것이겠지
한국인의 대륙
한국인은 곰 발바닥 되지 말래도
곰 발바닥이다
고추장 후추가루에 내장은 곰 발바닥이다
그래서 일에는 예열도 필요가 없다
어젯밤 술도 안주에 고추장 발랐다 하나
실상은 술이 안주였다
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생각에 생각이지만
우린 생각만 머물면 된다
절로 우리는 거친 대륙을 정복해 놓은
어느 황무지도 거침 없이 비만 뿌리면 되는 데 있다
죄송함같은 것
내 사는 것이 진력이 나다보면
남 고생하는 것도 반갑잖다
세상사 웃을 일도
한 순간에
이웃 간에도 희비가 같이 일어나는 것이니
다 기울기 나름인 것
내 웃음도 아니다보니
오래 살 일도 아닌 것이 알맞은 듯 마춤 같은 것
몰라
어쩜 웃음의 욕심에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인지도 모를 것
자꾸 내 웃음 줄어드는 만큼에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느낌만 북받친다
구름 변비
허연 구름 갖고 수염 빼는 신선이야
웃음도 변비만큼 윤기 없음에 소탈하고
저 구름 똥
참 양 안 나오네
참 양 안 나오네
가벼움의 심각성
애정과 증오는 같은 것이라 했다
사랑할 때
그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
종교란 것에도
그 한눈 판 것 때문에
애증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이러한 깊이로 의식하려 않는다는 데
그 가벼움의 심각성이 있다
휴대폰 스트레스
요즘엔
남의 집안 욕 싸움이
휴대폰으로 새어나오다 보니
드물지 않게
차 칸에서가지 남의 욕을 감당해야 하는
이 건 하루의 기분과 맞물리는 것인데도
손 쓸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조건 아니다 싶으면
당사가 앞에서는 감히 하지 못하는 욕을
저들 끼리 하는 것이
왜 남이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
그 직접성을 간접적인 삼 자가 당해야 하는 것에
담배보다 훨씬 폐해가 크다
특히 우리 세대의 아줌마들이
눈치 볼 일 없이 대뜸 뱉어내 놓고
열변을 토하니
좀 더 마음을 넓게 가져 본다는 것이
에전에는 그 사람의 인성에 둔 것이었지만
원체 사회가 냉소적이고 교할에 음해가 많으니
분별력 또한 비비 꼬인 것에 있으니
차라리 저런 폭발성이 솔직하고 해소성이라고 보이기도 하나
이 건 분명 병폐인 것이니
술 담배 끊 듯 끊는 켐페인도 있을 날 있으리라 여겨질 정도의
친구 간에 새끼
남남 간에 새끼
듣고 보면
일상 싸우기도 즐겁기도 한 대목이거늘
느닺 없이 새끼로 부터 다룬다
허 참
이것 듣기 싫으면
버스 타지 말고
공공 장소는 될 수 있는 피하고
오직 오너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출세만 해라
돈만 많아라 이것이든가?
옛날엔 사랑의 표현이 서툴었지만
욕 또한 입에 발리지는 않았지만
미소만으로 버침목이 되어 주질 못하기로
욕지기는 빨리 뱉어내야 약이 되는 것인지
中 2
저 구렁이
전생 제 상좌의 말에 자존심이 치받아
그 자리에서 죽으니
그 정도면 불성도 있겠구나
또한 저 인간
제 자존심 상해 더는 못 참겠다고
또한 죽고 말았으니 불성 또한 없겠을
죽어야 아는 것은 짐승이요
살아도 아는 것은 신이요
인간은 인간인 채
양 끝머리 잘 잡고 벗고보면 알겠구나
변압기
저 변압기
천기만큼 비밀스러우면서
인생 200 볼트에 몇 만 볼트를 휘접고
제 손 안이라고 할 것
내 등허리 탄소 막대
내 자율성보다 타적이구나
건전지의 꿈
건전지!
각자마다의 봉합의 것으로 다하는 것으로
남겨진 최후의 한 에너지까지도
새어 나감 없이 +와 -을 다한
최대한 건전함을 다한 것이라고 건전지
이상하게도 보재기에 쌓인 건
저 북두를 돌고 나와도
선 하나 끊어지지 않고 들어 온 것
끈의 부상
우린 낙조의 오랏줄을 탄 거이다
석양 하나의 것에
저 해조를 주렁주렁 매달고 일어날 듯
바다는 한 선인 냥 일어선다
보는 자마다의 하나씩의 끈에
유정란 2
저 달빛의 올 하나
달빛 가득 채우고 달려 오니
달빛 한 묶음의 올들이
불가사의가 그나마 뿌리털이라도 내면 다행이지
이 부지기수의 자연과 유기성과
동물과 식물과
60억 인구와 함께 달 가까이 간다
물왕
큰 못이 임신선을 줄이고 보니
작은 못을 낳았다
가로지른 밸트 신장로는 삐까삐까하게 어리고
저 물왕한 면면에 용이 있는 듯
미리내 面에 인간세 洞이로구나
강 포구
배가 포구에 난파된 듯 걸려 있다
어느 새가 새 날개를 달고
노래 소리들려 대는 라듸오 소리
갈매기는 포구 안 까지 안 드는
배가 그리움의 날개를 달 입구애 다달으지 못한 채
어데가 아픈지 기우뚱 쓰러져 있는 듯
그래도 고운 맛
황 고개에 고개 맛
방축 높인 찻길에 가려 말짱 황
그렇다고
누런 욕심만 찼다고 그 것만 쏘아댈 것이냐
그래도 고운 맛
황란을 낳으려무나
봄볕에 잘 익었으니
면
원만한 면에는 논현이 있듯
원만한 시에는 대흥이 있듯
원만한 촌에는 논골이 있듯
원만한 발 버선은
동네 연못에 발 담그고 있는 것
길은 물길을 찾는다
동은 물길을 찾는다
물기
빛으로서 그림자를 빨아들이나
그림자만 퍼질러진 채 한 동이
사물에 얼어 붙었던 것
녹아도 한 거푸집처럼 다듬받이 됐다
그림자 3
음과 양이 있다는 것은
그 느낌만으로 대답이 되는
설명 또한 적절함을 다해야 하는 것
너와 내가 설명이 안 된 걸
그림자를 어떻게 찾으리
그림자 없는 나무
그대 진정 나무인가
정녕 텅 비었단 말인가
그럼 그림자를 비우고
無을 내 비쳐 봐라
완벽
완벽하든가
아니면 신비주의에 묻히든가
그래야 세상사가 도리어 견실할 수 잇음이듯
그렇게 뚤뚤 말린 듯
빛에는 그림자가 기본
그 그림자에는 선을 빼는 요소가 있다
매듭
매듭을 푸는 데 있어서 요건은
매듭을 따라 가라
한 덩어리 속의 줄이
스스로 가로 누르며
미로를 만든 다음에는
답답하더라도 신중하게
침묵의 미덕은
인류 철학사 이전의 사머니즘의
그것도 주먹만한 매듭의 주먹구구식이니
철학이 힘들어도 解는 되어야 하는 것
합성
언어란 것이
먼지와 먼지 끼리 합성이라면
가라 앉은 것 같으나
미세 먼지마냥 세상이 떠돌고
이왕에 언어가 합성되고 불꽃이 되는 것이라면
그 속에 뜻이 거푸집을 이루어
나름의 조형성이 있음에도
우리는 성향으로만 인지하는 氣에 치부됨이 아닌가 하는
그 과정에서 물로 축여가며 유연성을 갖고
움직여 나가는 것이라 할 것의
자라면서 보는 눈은 나이테가 없다
우리에개 있어 표현의 시발점이란
수시로 선택을 해야 하고
그로 행위가 일어나는 것에
입에 붙이면 말이고
몸에 두면 행동이고
하물며 귀에 두어도 기울임인 것이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마이너스 선상이든 플러스 선상이든
행위에 두어야 하는 것이니
우리가 언어 속에 그 뜻을 해아릴 것이 없다면
그것은 먼저 그 사람의 사고와 성찰력의 문제이며
굳이 말에 비중을 둘 필요는 없다
다만 가벼운 것으로 너무
소리만 크고 번복적이란 데 문제일 것이다
나무도 그 각피성보다
자라면서 보는 눈같이 깨우침의 연속성일 것이다
체질
뿌연 먼지 덮어 쓴 안개
개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 누렁끼 때문에
구릉발 구름까지 못 올리듯
인간이듯
다시 인간세에 낮춰 놓고
가라 앉은 안개
어느 짐승이던 사이에서 새어 들은 듯
몸이 무거워진 듯
어느 덧
바퀴 굴레의 뭉터기가 다르더란 말인가
씨앗
무엇이 그리 힘드니 해도
그래도 지구를 등에 진
야누스가 버거운 것이리라
그 사이로 사물이 보인다
저 촛불이
심지를 머금고 굳어지면 씨앗과 같은 것
그 진행되는
저 불타는 순간에는 문을 열어 놓음과 같은 것인데
꼭 야누스가
지겟짐을 지고 버팅기듯 일어 서 있음과 같다
그 사이로 굄목을 넣어
이 것의 총체성을 알만도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구조성으로 받쳐도
그 영감은 일괄성 있게 유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기네들의 창의인 냥 하기는 쉽다
허나 공간을 대나무 결을 찟듯 열어
영감을 내 비춘다는
저 야누스와 같은 노역의 부산물과는 힘겨움이 다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공유하려는 의지를 내비추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냥 쉬쉬 하자는 데 나름의 잇속이 있다
왜 이 야누스의 양면을 가진 이중성 나왔느냐 하면
年初면 보는 토정비결이 하도 잘 맞아
오히려 헝클어 놓았다는 취지와 같은 것이듯 맞물려 가는 것이다
이 건 마치
변강쇠가 저네들 동네에 한 번 지나간 충격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서로 간의 묵과처럼 지나는 것이다
이러한 한 번의 것으로 지나는 것은
평생 쉬쉬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성질의 것이다
다만
그 촛불이 심지를 머금고 씨앗이 되어 뚝 떨어지면
같은 사주여도 달리 살아가지는 인연 줄과 같으리라
개고기를 먹지 마라
참으로 본질적인 질문이긴 하다만
또 과부의 옥구를 들어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인가
오늘은 한 수 더 떠
인도의 쾌락주의자는 들어주어야 한다고 하니
그것도 맞다고 강조하고 싶은 듯이 하는구나
이 것이 오늘의 개하고 무슨 연관이더란 말인가
오늘은 개만 들고 왔으니 놓을 때는 됐는데
놓기도 전에 또 한 짐지는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놓고 지든지 말든지
"개고기를 먹지 마시오"
"?"
대답해 놓고 나니 나도 "?... ..."
그 손님의 친구분이 어색한 듯
분위기를 바꾸려는데 질문이 참 진솔하다
가만히 듣고 보니
이도 주인을 잘 섬기느냐
얼마나 열성적이냐
잘 났다 해봐야 주인보다 잘 날 수 없으니
얼마나 애착심을 가지고 성실하냐를 다뤄본다
그제서야 감이 온다
"개고기를 먹지 마시오"
그러자 그 옆의 전자가
왜 자기함테도 그러더니 이 친구한테도 그러냐고 한다
나는 그 건 나의 대답이 아니라
이 친구분이 내린 대답이라고 했다
왜 대답을 늘 끌고 다니면서
꼭 노을에 와서 뱉을 이유야 없지 않는가
맥 앓이
맥이 없음에
아림이 어이 있을 수 있으며
맥이 없음에
앓음인들 제대로 갖췄겠으랴
어찌 지성적 품위만 있으랴
정서적 품위도 있으니
우리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감동하면
최소한 그 줄의 맥락만큼
굵을 줄도 알아야 하고
질길 줄도 알아야 하고
조율을 맞출 줄도 알아야
음악과 함께 길을 간다고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부담을 던다는 것이
심지를 빼면 버들피리는 되는 것이요
껍질을 빼면 실로폰은 되는 듯이 하지만
같은 음악이도 붙는 살이 다르다는 것에
감상 또한 붙이는 바가 다르듯이 하이듯
악기가 되었다가 감상이 되었다가 하는
일체를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알음이 알의 원음
꼭 젊음만이 진한 맛은 아니다
오늘보다 추억이 더 감미를 낼 수 있기에
저 말라깽이 건천이 물을 축이듯 달콤하다
아마 임종을 맞는
늙은이의 기억 속에서도
자연은 모든 것을 함께 뿜어내지만
인간은 세월에 따라 진해짐이 다른 듯이
과거가 새로운 듯이 물들어 가는
어려서는 표현보다는 젖은 그대로 잠긴 것
이젠 알은 뜻에 어린애가 되어가는
자연은 그 향기로 거둬가는 길의
어느 끝엔가 알음이 알이 되어 가는 듯
접부채
접부채는
접었을 때는 마주 잡은 뱃짓장인 냥 한다는 것이다
허나 펼쳤을 때는 마주한지도 않았는데
허공에다
서로 반대인 냥 물어댄다는 것이다
그 사이
이 쪽 저 쪽도 아닌
그림만 한 폭 달려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주한 듯이 해야만
해결한 듯이 악다구를 썼다한들
그 사이 우린
천리를 온 색다른 그림에 있다는 것이다
부채
저 호수가 그림자에 실리운
접부채가 살로 모는 바람
접어도 접은 것이 아니라는 듯
배 불뚝이에
접이가 살로 모는 바람
동글게 둥글게
펴고 보면
골고루하지 않음이 없는 데
채를 잡고 따진들
수면은 수면일 뿐의 그림인 것
그 깊이와 맞잡고
땅을 파고
하늘은 판들 무엇 하리
그 심지가 송곳같을 겨를도 아닌 것을
쉬~ ! 1
쉬~!
쉬~!
이놈아 제대로 대고 누거라
다 사람은 태어날 때
나름의 속 사정은 갖고 나게 마련이다
그래도 내겐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
이 놈아!
그리움도 네 엄마 꿈이란 것도 알아라
쉬쉬
이놈아
제대로 대고 갈겨라
쉿 그것만으로 한 자루 담고
또 다시 쉬쉬 내놓으라고 살 텐데
분명 같이 쉬어 가는 인생이 있으리라
진행 중에 또 내놓아라
글이란
진행 중에도 파생이 많아야 그늘이 크구나
기왕에 나무 그늘을 읊조리려거든
너무 한 뜻에 매달아 메우려 들지 마라
그럼 그로 한 가지만 드러났음으로 끝이니
마치 빗자루 도깨비라고
완벽하게 한 다리는 걸고 넘길 수 있음이라 하지만
다 밤의 전설과 같은 곳에서의
종지뼈
종아리에 속한 것같기는
사타구니에 속한 것 같기도
서로 잘 맞으면 화목함의 윤택함이요
안 맞으면
이 눈치 저 눈치하는 한 판
그래
그 종지에 한 잔을 부어 한 잔의 술
저녘 관절 즈음에
좀 더 연골의 윤기로 넘어가는 듯
그로 접어 해가 넘어가듯
핏줄도 넘어가는 듯
무릎 싸 안으며 산을 이루두보면
이마를 댄 듯
그 종지 뒤집어 따르는 술잔인 냥
정류주마냥 먹어도
구름 막걸리 일어나듯 취해 보자구나
쉬~! 2
뭐 다
인간이 원하는 만큼 신이 응했다면
굳이 주검이라 따로 둘 필요도 없는 듯이
쥐 구멍만 해도 터졌을 것
쉬도 멈춰서 쉬하듯
잠도 멈춰서 넘어가는 벽이 아니든가
꿈은 늘 넘나든다
애초에 신장(腎臟)은 그렇게 걸러 넘겼으니
부신이 호르몬 대기 바빴구나
벼
저 구름 쌀로 뭉칠려면
벼리를 따라 간다
창공을 따라간다
論이라고 說이 모인 것에
소금쟁이가 유심히 알맹이 푼 것에
간수에 두부가 모를 이루려
보이지 않는 구름 엉키기가 일어난다
논이 모를 이루었다
이젠 쌀이 쌀로 나려면
물빛이 벼리어 있다
디스크
아무리 마음을 비우니 해도
노래가 디스크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제자리로 들어가
제 스스로 건망증을 앓든가
치매로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비웠다고 해도
마음을 앗고 들어갔음이지
디스크도 기억이 노쇠한다
정적이 앓는다
정적이 신음과 같다
기타 줄을 담궈도
당면처럼 불궈져 일어난다
디스크도 그리 붙들지 못하는 세계에서
양수재배(養水栽培)
정적은 토양과 맞먹는다
그래서 양수 제배에서 나오는 것은
정적의 바란스가 빈약하다
물결은 소리와 맞먹는다
은하가 물이라고 꽉 쥐고 있는 만큼
소리도 쥐고 있다
그래서 물 속에는 소리도 먹먹하다
즉 먹물 배이듯 할 뿐이다
과연 우리가 토양이 없이
비료로만 땅이 이룬 형체를 그대로 드러낸다면
우린 무중력에 멀미를 하는
또 다른 퇴화의 다른 인식이지 않을까
마치 바람같은 신이
코와 입이 없이 존재성의 부여와 같이
우리가 심증적으로 있는 허공성을
토양이라고 불거져 놓은 것의 현상만큼
정서나 실체가
몸의 뉴련 상에서나 변화가 보일만큼에
무형 유형으로 같은 모습을 띤 것으로
어느 한 쪽으로 몰린 현상과 같으리라
결국 우리가 인력과 대기를 벗어난 생명력이
이미 현실의 우리 세상으로는 죽음을 넘는 선이 되어 있는
우주에서의 진화인 것으로
수평으로 여는 것이 아니라
접은 면으로 닿게하는 진보된 지혜의 소산은 아닐까
역삼(驛三)
역삼에 가면 팔 괘가 있다
그래서 驛인 동시에 譯이다
세 개가 움직였다하면 발을 뗀 것이요
앞에 하나만 떼면 앞으로 뒷꿈치 먼저 댄 것이요
뒤에 하나만 떼면 뒤에서 앞 꿈치도 마져 떼리니
중간을 떼면
평발이 아니면 죄우 중에 뗀듯 패임을 취할 것이다
역삼에는 만상의 조화가 있는 재주꾼이요
서초는 복덩이니
어찌 강남 제비가 그냥 지나치리요
터미널이로세
터미널이로세
W인 강
2호선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이 카시오페아의 성좌의 어느 부위에 있음은
다 자율 신경에서나 돌아가는 것이요
혹이나 이 땅덩어리에서 생각이 깊어진 것이
별천지 갈라진 틈새의 남쪽이라는 것으로
순환으로 뭐 그리 꼭꼭 잊지 못하게 하는 건지
시와 씨
그댄 낚씨를 하고
강태공은 낚시를 하고
그대 시는
씨만 보이니 무슨 꽃인지 알겠는데
강태공의 씨는 시를 보이니
강 물결 속에 달빛만 있네
길은 더 명료한데
200 원짜리 볼펜이든
1000 원짜리 볼펜이든
출세하는 데야 별로 상관 없는 듯
다 선택의 폭에 자유를 느끼게 하지만
그래도 천 원짜리 가슴에 꽂지 앉으면
어느 한 쪽이 기울어진 듯이느니
차라리 큰 폭이어야 제 균형인 듯이 하는 것에
왠지 홰를 친다는 것이
스스로의 우월성 까지 낳으려니
왕따라는 것으로 세월의 폭까지 정복한 듯이 날으는
그 속에 눈물이 있다 해도
기우뚱이 아닌 스스로 부담지워지는 형국이어도
문구상인 냥 무덤덤히 지나간다
아! 그러데 수상(手相)은 왜 봐!
별 것 아닌 듯 감각도 없이 하면서
이 볼펜 한 뼘의 문제가
실제 독이라도 금간 형태를 뱉으라는 말이구나
옴
보통 전기에 저항을 나타내는 옴자나
불교의 범어로서의 옴자나
우리나라 글로서의 옴자나 그 모양이 비슷하다
즉 위가 둥그렇게 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아마 머리를 으뜸이라고 표하고져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기의 저항을 꼭 저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저축성 기억성으로 볾이 더 타당할 것이다
환갑
甲은 머리의 형상인데
또한 申의 한 쪽 끝이 없는 것이다
즉 신의 수레처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추억처럼 써 먹을 요량인지
버드나무에 달처럼 걸어 놓았으니
몸 기(己)자와 함하여
환갑은 살만하게 하였구나
갑기(甲己) 合
甲은 나무와 같이 뻗어가는 영혼과 같다
己는 부드러운 흙이니
과히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빗은 것이로구나
의식 또한 물상만으로 판단이 서니
흙과 같은 의식의 병행이라 함이로구나
병정(丙丁)
병은 심장의 양 심실이요
정은 늑막에서부터
가로 선으로 하여
그 아랫 배까지로 해
양기 부족하면 축 처지는
거시기까지로
고리처럼 끌어 당겨야 산 것이라고
장정(壯丁)이라 하는 것
을경(乙庚) 合
乙은 새다
즉 새는 징조와 깊은 관계가 있다
庚은 배꼽이다
즉 모든 것이 결정 지어진 단면이요
또한 출입구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에
새가 나타난다기보다 비쳐지는 것이다
종지(宗旨)
그래도 생의 종지를 알려면
생의 끝이 사요
사의 끝이 생이라면
왜 끝머리로 하였을까
그래도 우리의 의연함은
관절에 인대와 같이 써 먹히고 있는 중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있는 것이지
한쪽 마디만으로 너무 메이다보면
로봇의 부속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을
내가 내 제삿밥 챙길 우주보다
내가 내 종지의 뜻을 음미함이 현실일 것
뜸내
우린
왠지 센스 있고 세심한 면이 있는 하면서도
인위적인 맛깔을 만들어가는 듯이 하는 것보다
지성 중에도 뜸내 나는 지성이었으면 한다
내가 외국 드라마를 보는 것 중에
좋아하는 한면은
드라마 중에 음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뭔가 긴장한다고 할까 긴축된다고 할까
무의식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담이 져 있다
정적이란 맹물과 같다
언제나 갈증일 때 더욱 단맛이 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적 자의식을 깨우쳐 지지 않는 순간에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리드 한다는 것에
그저 우리도 이젠 정적에 좀 익숙해 졌으면 하지 않나 싶다
뜸내 2
우리가 꽃에 비유하여
꽃을 더 나은 표현의 향료인 냥 하지만
인간이 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는
맹물로서만 다시 담구어 돌아오는 뜸내와 같은 것으로서의
인간미가 곁들여진 지성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무언가 생사 간에 정화된 인상같은 것
그것은 사물보다 더 깊은 감동으로의
인간으로서 전하는 미가 있는
임은 그렇한 심지가 있음으로서 배려가 있구나
뜸팡이
오늘 신선하게 와 닿는 뜸팡이라는 간판
집 비운 마루의 턱턱 갈라진 서리 먼지 않은 듯에
다시 물걸레로 밀고 밀고 검은 광때가 나는
할머니
그 억척스러움에 위도 견디지 못해 궤양이 시달리시던
주위 사람들마져 곧 돌아가시겠다던 중년의 나이
그래도 일손 놓지 않으시며 검버섯만 남달리 피워 대시더니
거의 백수(白壽) 가까이에서야 돌아가신
천수는 따로 휘바람 분 듯이 어쩐지 다른 곁만 같았던 것에
왠지 검은 아득함 속에 뜸팡이 피워 댄 듯
마루를 닦아도 닦아도 빛나는 유약같이 살아 오신 분
허물 벗기
인간은 진정 이렇게 잡고 허물을 벗는 것인가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우랴
권력이 뻔뻔한 것이지 내 얼굴은 얇다
무미 건조
갈수록 더 말라가며 단단하기만 하는
저 박바가지 소리가 아니어도
화전 자갈 끌어 밀어 붙이 듯 해도
쌀은 더 보석이 되는 듯이
우리의 무미건조함에는
타악기 배분이 많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적반하장
몰 이해에 박힌 스트레스만큼
스레트 지붕 두드리며 일어나는 시원함과 같이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의
그래도 바가지만큼 담은 고마움을 알아야겠지
전복
현대 사회란 것이
크게는 작은 모니터 상자곽에 들고
크게는 빌딩의 멀티에 들고 하는 것이지만
다 큰 듯이 사는
허나 저 전복(全鰒)은 제 등짝을 벗지 못해
벽을 놓지 못하는
유동하는 몸을 돌이라 하고
가만히 있는 등은 그 가만히인 채여도 실려가게 하는
아! 내 등 뒤에 거대한 뚜껑을 덮어 쓰고
어덴가 떨어져도 생생히 살아 있는 살덩이
난 이 장엄한 벽에
등짝이 강력접 접착제라도 붙은 냥
울려퍼지는 홀의 장엄함에 내 온몸으로 하는 것에
위대한 아티스트가
떠나고 나니 온 홀이 텅 비는 것에
음악도 그 이별을 안마하기 위한 예술이었듯
노래는 빠져 나가고
거대한 빌딩만 남은 길의 한 켠에서야
애초에 우리의 음악은
이 홀에 붙기위한 것이 아니라
떨어지기 위한 진동의 번복과 같았던
그 무엇보다 인간인
그 무엇보다 생명체인 것으로
전복이 벽에 붙어 장엄을 떨더니
결국 자기 등짝을 떼고 떠나는 것과 같음이니
아! 크게만 보였던 홀이 허전쿠나
한 순간의 빈 소라 껍질 같구나
구름 띠를 비우며
인간이 나름의 지식층이라는 것으로
너무 각박하다보면
나름의 진실성마져 꼬여 가는 세상이니
너무 맑고 명료함보다
좀 어눌함이듯 어울림이
마치 구름 사다리르 타고 내려오는 듯이 하든가
아니면 아예 무언가 부정확한 언저리인든가에
그 어눌함이 어색함이 함께 배합되어 있는 반복형에
서로가 유머가 되어가며 웃어 넘어감이
부담이 없어 잘 모일 수 있는 망각의 편의이긴 하지만
그것이 맑고 침착한 자의 방편을 드러냄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