⑶ 벳부(別府)의 지옥과 유노하나(湯の花)
일행은 버스를 타고 벳부를 향해 옮겨가는데,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것이 멀리서 자욱하다. ‘저기가 벳부로군!’온천과 유노하나로 유명한 오이타 (大分)현의 벳부라는 것을 버스 안에서도 알 수 있었다.
거리에는 야자수 같은 열대수목도 눈에 띠어 이국적인 정경이 펼져지더니,‘우미지옥(海의 지옥)’이니 ‘야마(山) 지옥’이니 하는 간판도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는 전용버스로 왔지만, 온천을 한바퀴 도는 관광 버스가 있다는데, 이것을 ‘지옥순례 정기관광버스’라고 한다.
이곳 온천(지옥) 중에 가장 큰 것은‘우미지옥(海의 지옥)이며, 시내와 그 주변 8개의 온천지역에서 솟아나오는 물 출기가 무려 2,800여 개소, 그 물만 해도 하루에 13만 7천 킬로리터나 된다니, 일본 제일, 세계 제일을 자랑할 만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은‘유노하나(湯の花)’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유노하나는 벳부의 고원(神奈川県 足柄下郡 箱根町) 온천물을 가두어 유황성분을 응고시켜서 다시 가루로 만든 천연 입욕제 또는 비누, 수렴, 살균제, 화장품, 의약품으로도 쓰인다. 일행 중에는 천연기념물이란 선전에 이끌려 기념품판매장에서 한두 가지씩 사기도 하지만, 만드는 과정 등에 더 관심이 쏠려 안내문을 열심히 읽는 회원도 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찾아 오길래 한글 안내판, 한글 유인물 그리고 한국인 안내원까지 두는지, 이곳의 수많은 온천과 질 좋은 온천수의 자연조건 그리고 중국인 뺨치는 일본사람들의 상술과 한국사람들의 극성스러운 윌빙 추구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곳이 벳부이다.
한국에 돌아가, 일본에서 지옥을 구경하고 왔다면 ‘또라이’라고 비웃을 지 모르나, 이곳은 틀림없는 지옥이다. ‘믿지 못한다면 간판 사진을 보여줘야지!’ 버스는 문을 열어놓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젠 지옥에서 이승 길로 되돌아가는 차례다.
⑷ 야메시(八女市)의 다도 견학
일행이 야메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러 옮겨가는데, 도시가 고풍스러운 한적한 시골 같다. 살림집으로 지은 듯한 단층 집에 인형전시, 도자기 전시 그리고 문화행사 공간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버스에서 가이드로부터 대충 설명을 들었지만, 전통문화도시의 정취가 조금씩 젖어오기 시작한다.
야메시(八女市)는 후쿠오카현에 딸린 지방으로 후쿠오카시에서 남녘으로 50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는 이와도야마(岩戸山)고분 등 고분이 많고, 손으로 뜨는 일본 고유의 종이, 인형관 등 전통공예품과 전시장 그리고 교구로 차, 전등국화(電照菊) 같은 농산물로도 유명하다.
이 고장은 품질이 뛰어난 차 ‘교구로(玉露)’의 생산지인데, 일본 교구로의 거의 절반 가까운 양이 이곳에서 나온다. 또한 야메차는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맛이 그 특징이라 한다.
점심을 마친 뒤에 전통 공예품 등 규모가 작은 문화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다도 체험장에 닿았는데, 나카시마 히사지(中島尙次) 씨가 마중 나와 2층으로 안내한다. 좀 높은 곳에 다다미방과 방문이 마련되어있기에 우리는 낮은 곳에서 의자에 앉아 다도를 견학하게 된다.
일본 전통 의상 기모노를 입은 미모의 젊은 여성이 다다미방에 다소곳이 꿇어앉더니 차분하게 다도를 연출한다. 그 여인은 밖에서 노크를 하며 방으로 들어오는 법과 들어오고 나가는 걸음걸이, 찻잔을 채우고 비우며 숟가락 놓는 법 등 다도에 대한 예의범절을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회원은 동작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웃거리거나 일어서서 보며 사진기에도 담는다. “이 여자분과 기념사진 찍으실 분은 올라오세요” 나카시마 히사지(中島尙次) 씨의 말에 필자는 아동문학가 P님을 따라 다도 연출 여인 곁에서 포즈를 취하니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번쩍인다.
그런데 다도를 보여주려는 형식에 얽매여서인지, 시범 모습이 차분하고 정갈해 보이긴 하나, 담향(淡香)이나 방향(芳香)은 어쩐지 마음속에 물씬 스며오지 않는다. 차는 마시는 사람이나 현장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데, 그 여인과 차 한 잔 나누지 않았으니, 다도의 운치를 어찌 제대로 느껴보겠는가.
고구료 차는 당이 없고 부드러우며 감미로운 맛을 내는 저칼로리 음료이므로 당뇨나 고혈압 예방과 몸매 관리에도 좋다니 1층 판매장에서 마시고 가야지. 한 봉지 사 든 채, 판매장 건너 구석지에 자리한 전통 종이공장으로 옮겨 간다. 그런데 웬일인가. 매장 관리인도 한국 여인, 종이를 손으로 뜨는 사람도 한국 교포가 아닌가. 종이는 영락없는 전주 한지 같고, 만드는 과정도 비슷한 것으로 보아 우리 기술을 배워서 일본 전통 종이로 만들어 팔아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⑸ 남장원(南藏院:なんぞういん)과 청동대불
일본순방 마지막 일정은 후쿠오카 남장원을 보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후쿠오카현 카스야군 사사구리마치(福岡県糟屋郡篠栗町)인데 큰 길에서 가까운 산속에 자리하여 있다.
이곳 교통편은 후쿠오카 도심에서 고속∼국도 201호로 가면 30분 거리, 키도(城戶) 남장원앞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이다.
안내문을 보면 경내 배치도와 청동 열반상 등 설명이 잘 되어있다. 사찰 경내 입장료는 없지만, 열반장(涅槃蔵)을 참배하려면 500엔을 접수자에게 내면 된다.
경내에 들어가니 마당에 누워있는 커다란 열반상(涅槃像)에 먼저 눈길이 끌려간다. 동상이 엄청나게 큰 데다 마당 노천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상의 길이가 41m, 높이 11m, 무게가 무려 300t이나 된다니, 일본사람들이 세계제일의 청동상이라고 자랑할 만도 하다.
이러한 열반상을 세운 취지는, 이 절에서 오랫동안 미얀마와 네팔 등의 어린이들에게 의약품을 보내어 건강을 보살펴 준 답례로, 1988년에 미얀마 불교회의에서 세 부처(석가모니, 아난타, 목련불)의 불사리(佛舍利)를 보내와 그 불사리를 배알하기 위해 발원했다는 것이다. 이 동상은 최근에 발원했지만, 본당은 에도시대에 문을 연 것으로 그간 폐불훼석(廢佛毁釋) 사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과 같은 발전을 하게 된 것이라 한다.
돌아갈 시간이 가까웠는지 한 사람씩 밖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여기저기 다니며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새소리마저 가끔씩 들리는 고요한 곳에 눈 감고 옆으로 누운 평화로운 모습 앞에 필자가 미물처럼 작아 보이니 어쩌랴. 40M도 넘는 크기의 동상도 그러하려니와 그 열반상(涅槃像)에 비해 수신이나 수도(修道) 면에서 너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모습이 너무 아름답네요.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시원한 나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