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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시집 리뷰 위대한 항해자들(voyagers)
보이저 2호가 떠났다.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interstellar)에 진입했다. 플루토늄 238을 동력으로 삼아 추진하는 질량 722kg의 몸집은 오로지 전진하는 일에 견실하였다. 지구를 떠나, 우주의 중핵(中核)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에선 멀고, 거기까지는 가깝다. 거리는 우주의 질서를 만든다. 질량의 크기에 따라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형성되고, 중력이라는 조밀한 그물을 내리며, 시계태엽처럼 치밀한 순환 체계를 만들어낸다. 우주는 빨아들이고 간혹 토해낸다. 옛적 세상은 땅과 하늘의 구분 없이 하나의 덩어리였단다. 덩어리가 알처럼 깨지면서 가볍고 맑은 기체는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물체는 땅이 되었지. 거기에서 거인 반고(盤古)가 태어나, 땅을 짚고 하늘을 짊어졌단다. 반고의 숨결은 구름과 바람이 되고, 목소리는 우레가 되었으며, 왼쪽 눈은 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지
“안녕하세요? 지구인입니다.” 탐사선에는 지구 사진 118장, 90분 분량의 음악, 부글거리는 연못 소리, 개 짖는 소리 등 온갖 지구의 소리와 55개의 언어로 된 인사말, 고래의 언어와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의 뇌파 등이 녹음된 축음기판, 골든레코드가 실려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탐사선의 골든레코드는 반딧불이 내는 빛보다 작은 희미한 율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우주의 시간 안에서 인류는 점멸하는 빛처럼, 미진한 동작의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탐사선에 실린 수취인불명의 메시지란, 발신자로서는 절실한 외침이자 악다구니이기도 하다. 무작정 쏘아 올린 메시지는 비산(飛散)하여, 진공이라는 매질을 통해서 익명의 존재에게 수렴되고자 기약 없는 항해를 하고 있다. 무언의 존재를 향해 내던지는 메시지, 쓸쓸하고 가능성 없는 운동의 흔적이 마치 詩 같아 보인다. 시공간을 아우르는 우주(宇宙)를 두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총체와 질서적 단계에서의 ‘거대 우주’를 가리킨다. 다음으로는 생명에 내재해 있는 혼돈의 세계라는 뜻에서 ‘작은 우주’를 살필 수 있다. 우주는 바깥을 향해 무한히 팽창하면서, 또 사람의 자아 속으로 한없이 수렴하는 이중적 면모를 가진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향해 수렴하는 ‘내 안의 우주’를 다루는 손애라 시인과, 바깥을 향해 팽창하는 우주를 따라 쓰는 이효림 시인의 시는 각기 극점에 놓여있는 듯이 보인다. 만약 우리가 우주 탐사선에 담을 한글로 된 두 권의 시집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대의 감각을 가장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는 이 상반된 성격의 시집 두 권을 골라보고자 한다. 손애라 시인의 『내 안의 만다라』(작가마을, 2020)와, 이효림 시인의 『위대한 예측불허』(한국문연, 2020)를 말이다.
가령 골든레코드를 받아 든 외계생명체는, 녹이 슨 문자를 해독하려고 부단히 애쓸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하려고 들이는 노력처럼 음절과 어절의 단위에서, 또 구문의 단위에서, 활자의 조합을 연구하고, 쓸데없이 텅 비어있는 여백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할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우연처럼 시의 의미를 적확하게 파악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손애라 시인의 시가 직조하고 있는 조밀한 아름다움에 감탄할 것이고, 또 신비로운 노랫말에 반하고 말 것이다. 손애라는 언어의 절제와 응축을 통해서 삶의 예각을 드러내고, 그 잔잔한 여운을 담고자 하는 서정시의 모범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시는 결코 주저함이 없다. 그대에게 보내는 나의 그립다는 말은 쑥부쟁이꽃으로 그대와 나누는 즐거운 담소에서는 -「말씀이 꽃으로 피다」 전문 응축과 여운의 향기가 가득한 위의 시는, 시인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먼저 내용을 살펴보자면 시적 화자인 ‘내’가 익명의 청자인 ‘그대’에게 드리는 말씀은, 다섯 가지 꽃의 빛깔로 피어난다. “그립다”라는 표현은 “쑥부쟁이꽃”, “보고 싶은 마음”은 “보라색 엉겅퀴꽃”, “기다리는 마음”은 “하얀 솜다리꽃”, “행복한 마음”은 “주홍색 제라늄꽃”으로 피어나고, “그대와 나누는 즐거운 담소”에서 “치자꽃 향기”가 풍긴다. 앞에서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고, 다음으로 이를 꽃의 성격에 빗대어 은유하고 있는 구조이다. 여기에서 꽃은 내가 그대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보내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홀로 존재하고 있는 개별자이기도 한데, ‘쑥부쟁이꽃은 그립다’, ‘보라색 엉겅퀴꽃은 보고 싶다’, ‘하얀 솜다리꽃은 기다리고 있다’로 은유의 역(逆)도 가능해 보인다. 본디 은유가 보조관념이 원관념에 종속되는 성격을 가졌다면, 위의 시에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유별나게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시인이 대상을 더없이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이 생과 저 생 사이 어디쯤”, “흔들”리며 존재하는 대타자 “그대”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당신을 본다” 북방(北方)의 거친 생명력이 주는 섬세한 감각들이 잘 응축된 시이다. 시인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관심을 여러 시편에서 줄곧 드러내고 있는데, “원시原始의 바다를 보았다”(「필석」), “구천구백 살의 그대, 한반도의 미토콘드리아 이브”(「토우 여인-패총전시관2」), “동굴 속 주먹도끼 하나 발길을 막는다”(「주먹도끼-전곡선사박물관」), “나는 물에서 생겨난 사람”(「장마전선」), “생명이 완전히 비워진 그 지점에서 다시 생명의 싹이 튼다”(「알라의 정원」) 등이 있다. 하얀 종이에 찍은 점 하나는 -「하양과 검정의 만다라 –만다라 12」 전문 불교 용어로서 만다라(曼陀羅, maṇḍala)는 원(圓)을 뜻하며, 만물이 둥글게 두루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시인은 시집에서 인연과 관계, 자아 성찰에 관한 20여 편에 이르는 ‘만다라’ 연작시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삶이 바로 매듭 맺기”이고, “홀로 빛나는 무지갯빛 매듭을 / 한 코 한 코 더듬어가며 풀기”(「매듭, 맺기와 풀기 -만다라 3」)이기도 해서 삶은 인연을 매듭짓고 또 풀어가며 사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또 “고스란히 내 안에 간직되어 있다 / 켜켜이 쌓인 마음의 지층 / 시간의 더께 안에 점점이 박힌 화석 같은 추억”(「놓아주기와 간직하기 –만다라 10」)을 간직하고 또 풀어놓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 안에서 대자연은 질서를 찾고 / 별들은 평화로운 리듬으로 하늘을 운행” (「평화로운 리듬으로 –만다라 8」) 하게 되는 것이다. 만물이 우주의 이치에 따르고 세상의 질서에 순응할 때, 존재는 자연스럽게 원래 그 자리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3. 팽창하는 우주, 위대한 예측불허 이효림의 시는 위태롭다. 시공간의 맥락을 뛰어넘어 무작위(無作爲)로 팽창하고 있는 그의 시는, 오로지 ‘말’ 자체에 헌신하고 있다. 현실의 토대가 흐릿하거나 작은 개연성만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시에서, 질서와 중력이라는 정형적인 가치를 평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집의 제목을 참조할 때, 아마도 그는 의도적으로 ‘예측불허’한 전개를 진행하면서, 구문의 우연성과 의외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듯 하다. 이 시집에서 규범과 명쾌한 의미를 찾는 일이야, 그야말로 무의미한 행위이겠지만, 그래도 시작(詩作)에 관한 파편적인 단서를 탐색해보자면, “이상이 살았다 / 철학자의 해진 신발 같은 집이었다”(「민낯」), “공간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약적이고 가학적으로 예언을 따라간다”, “우연히 황당히 / 여러 가지 수식어를 섞어”(「시시각각」), “채색이 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플라스틱 화분은 모딜리아니」), “심심하고 심심한 영화가 오래 중얼거리는 동안 감독은 다음에는 세기에 남을 영화를 만드는 거야 유명 배우를 꼬드긴다”(「당나귀는 도미노처럼 떠밀려 해변에 앉아 있다」),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이 전람회는 비키니를 입고 오세요」) 같은 표현을 참고할 수 있다. 여자는 세계사에 몰두한다 -「아비뇽 씨, 창고를 참고하세요」 전문 위의 시는 기묘하다. 제목을 참조할 때,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과 관계된 내용인 듯하지만, 비교적 짧은 24행의 시에 상당히 많은 사건이 배치된 채 방사형으로 확장되고 있다. 각 행이 의미의 수렴이나 유기적 결합 없이, 제각기 활발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독자의 ‘편한 독해’를 방해한다는 사실인데, 이는 마치 큐비즘을 처음 접했을 때 관객들이 느꼈던, 낯섦과 유사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소란은 화분을 들다 부서진다”, “물소리가 미래 없이 깨어진다”, “하이힐에 여자의 가능성이 또각거린다” 같은 이질적인 표현은 불편하지만, 충분히 개성적이고, “여자는 세계사에 몰두한다”, “여자는 총을 들고 감옥 가까이 간다” 같은 시의 골조 또한 이상하게 매력적이다. 이 의도적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인상은 화려한 수식언의 사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언어를 인식하는 화분”,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어깨”, “낡은 소화기를 든 어둠”, “환호하는 미래의 방향”, “비명이 사라지는 정물”, “은총이 가득한 햇빛” 등의 조각들은 시의 매끄러운 리듬을 방해하면서 거친 굴곡을 만들어낸다.
생쥐는 수영을 잘한다 태양은 수영을 좋아한다 낙엽은 아이를 잡고 수영을 즐긴다 교양은 접영을 좋아한다 집배원이 수영을 하며 지나간다 고구마가 식탁 모서리를 잡고 뜀뛰기를 한다 둘레를 잴 수 없는 눈은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 파도는 앞집을 훑고 지나간다 열차는 무용수처럼 미래를 해설한다 수영복을 입은 엄마가 검은 물속에서 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는다 생일 없는 눈이 오래 떠다닌다 숲은 너울너울 배영을 한다 바위가 고개를 젖히고 동그라미로 운다 삐에로의 감정이 거품을 만든다 낚시하는 정원사 가을을 거두는 해바라기, 가방 멘 지붕이 빵집을 건너간다 몇몇 친구들과 전등은 컹컹 짖으며 집으로 간다 걸쭉한 손뼉의 맛이 난다 귀걸이만 달린 햇빛은 웃다가 웃는다 오늘은 유령이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한다 즐거운 수영의 날 -「생일이 없는 눈의 수영」 전문 언어는 동시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약속이다. 사물의 정의(定義)는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를 구분하고, 체계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는 일로써, 판명하려는 개념을 주어로 하고 종차를 객어로 판단함으로써 성립한다. 위의 시는 수영과 관련된 시어들을 나열하고 그 특성을 밝히고 있는데, 사물의 정의에 대해 공공연하게 합의된 내용과는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물에 비친 태양과 낙엽, 집배원, 숲과 바위 등을 수영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물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기이하게 혹은 왜곡된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일 없는 눈”이란 수영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물을 의미하는 것인데, 물의 표면이 사물의 형상을 비추는 속성을 눈의 각막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레를 잴 수 없는 눈은 한 번도 마른적이 없다”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물에 비친 사물이 그 상(像)이 굴절되고 반대로 그려지는 특성을 감안할 때, “즐거운 수영의 날”의 반어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묘사의 합리성도 일단 수긍이 된다. 첫 줄의 내가 없어졌다 첫 줄의 내가 돌아갔다 어떤 이야기도 회색은 말해주지 않았다 번지 없는 해안은 생겨나고 없어져 버렸다 내가 지워졌다 계속 따라오는 지우개를 피해 샛길을 달렸다 창밖으로 밀어낸 감정은 죽었나 깨어진 구름은 사슴이 되나 횟집이 되었나 사마귀가 죽어가며 다리를 흔드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울었다 지우개가 끈질기게 따라오는 새벽 나는 어디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재생을 공부하였다 나무들이 계절과 맞서는 터널로 달렸다 천천히 사라지는 앞발을 모으고 그 이상한 첫 줄의 피와 시끄러운 냄새가 눌어붙은 신발을 신는 사이 마지막이 굴러가 버리면 어쩌나 창을 밀면 유적에서 우는 여우 -「지우개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웅덩이를 만들었다」 전문 지독한 갈증 때문에 바닷물을 마시지만, 물의 염분으로 인해 갈증이 더 심해지는 상황을 시작(詩作)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십중팔구 보통의 시인은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에 점점 잠식되는 것이다. 위의 시는 시를 쓰는 태도에 관한 메타텍스트이다. 분명 첫 행에 ‘내’가 있는데, 문장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나는 “따라오는 지우개”에 의해 “천천히 사라지는”데 “앞발을 모으고 그 이상한 첫 줄의 피와 시끄러운 냄새가 눌어붙은 신발을 신”는다. 길과 터널은 인생에 관한 익숙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으며, “나의 오염된 발바닥”은 삶의 흔적, 혹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이효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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