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림논단. 지못미 김태호
‘젊은 총리’ 탄생으로 주목을 받았던 ‘거창의 아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거치면서 불거진 문제로 인해 결국 지명 21일만에 자진사퇴하였다.
당초 김 후보자는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 외에 총리 인준이 어려울 정도로 큰 결점이 없어 비교적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청문회가 시작되자 김 후보자를 엄호했던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착오가 너무 많다”, “돈 관리 개념이 없다”, “정직하지 못하다” 등의 질타가 나왔다. 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해 말을 바꾸면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청문회 답변보다 이른 2006년 2월에 박 전 회장과 같이 찍은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여론은 급격히 돌아섰고 여당 내에서조차 ‘걸레’라는 수치스런 표현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지방선거 도지사 불출마선언을 할 때만 해도 그저 ‘입각’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막상 총리후보자로 발표되자 놀랍고 설레는 마음은 거창군민이면 누구나 매 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청문회가 시작되자 내 자식, 내 형님의 일인 듯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거창이 낳고 키운 인물이 연일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이른바 ‘중앙무대’의 ‘촌놈 신고식’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만 시킨 채 허망하게 무너지는 ‘거창의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알던 유능하고 촉망받는 김태호는 간데 없고 결국은 ‘썩은 양파’가 남았다.
우리가 알던 김태호와 청문회에서 드러난 김태호는 왜 이렇게 달랐던 것일까? 그 사이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내 고향 사람 김태호를 보는 눈과 총리후보자를 보는 국민의 눈이 달라서일 게다. 어쩌면 사소한 주변의 문제들을 미리 집어 바로잡도록 하지 못했다는 어느 지역신문의 반성문은 뒤로하고, 경남도청 직원을 가사도우미로 불러 쓰고, 관용차와 운전기사를 자신의 아내에게 제공한 사실을 우리가 미리 알았는데도 누가 매섭게 질책하고 바로잡으라 요구했을까? 도지사 시절 그의 재산이 갑자기 늘어난 사실은 이미 재산신고에서 알려진 일인데 연봉과 생활비, 채무관계 등을 누가 제대로 따져보았나? ‘은행법 위반’으로 밝혀진 선거자금 대출에 대해서 누가 당신의 선거자금은 어디서 어떻게 조달했냐고 물어볼 수 있었을까?
우리들의 정치지도자에 대해 이렇게 의혹투성이 상태로 내보낸 그 일말의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촉망받는 지역의 인물,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고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것이 우리 지역과 그 사람에게 쓴 보약이 될 것임에도 ‘보수적인 지역정서’와 당사자의 저항을 핑계 삼아 면피하고 자위하며 지나친 문제들이 결국 후보자는 물론이고 거창군민과 경남도민까지 덤터기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도록 만들었다.
객지에서 부와 명성을 쌓은 후 권력을 쫓아 고향을 찾는 여느 인사들과 달리 거창에서 나고 자라 거창에서 도의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군수가 되고 도지사가 되기까지 김태호는 늘 지역에서 일했다. 중앙권력 언저리에 빌붙어 유력자에게 줄을 대어선, 지역민은 이름도 잘 모르는 인사가 어느 날 낙점되어 지역의 정치지도자로가 나서는 우리 정치의 퇴행적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김태호의 미덕이 있고, 오늘의 아픈 실패담이 지방정치 무대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에게 쓴 보약이 되기를 기대한다.
유영재(푸른산내들 정책국장)
첫댓글 용기,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간사님, 이 코너의 글은 파일 형태로 말고 제목을 클릭하면 바로 글을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